어쩌면 저 제목에 동의하지 않으실지도 모릅니다. 이미 읽은 사람들 중에는 어떻게 이우연이 귀여울 수 있냐고 입에서 불을 뿜을 분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뭐, 사람마다 감상은 제각각이니까요. 전 이우연도, 임태훈도 매우 귀엽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메가버스 세계관의 BL입니다. 『청춘만가』를 읽고 난 그 뒤에 다른 오메가버스 세계관을 셋 쯤 보았는데 그 중 하나입니다. 이전에 『가이드의 조건』을 재미있게 보았던 터라 이쪽도 궁금해서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외 다른 외전이나 스핀오프가 나오지 않는 거냐며 울부짖었지요. 최소 세 건은 나올 겁니다. 아니, 나이트만 연애를 했으니 킹을 포함해 퀸과 비숍, 룩 모두 연애담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최소한 룩의 연애담은 연재 예정인가 보군요.


조아라에서 연재되었던 건 기억하는데 그 당시 손은 안댔습니다. 아마 한창 조아라를 접고 있던 시점이라 그런게 아닌가 기억하는데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가이드의 조건』은 가이드버스, 『나이트를 잡는 방법』은 오메가버스로군요. 둘 다 재미있게 보았지만 전혀 이어지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세계관 자체가 다르니까요.



임태호는 평범한 회사원입니다. 평범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오랫동안 연락을 주고 받은 후배가 있다는 겁니다. 그 후배가 절대 평범한 인물이 아니거든요.

태호는 군대 다녀오는 시기가 엇갈려서 동기들이 모두 졸업한 이후에 마지막 학기를 다녔습니다. 그리고 그 때, 신입생으로 갓 들어온 이연우를 만납니다. 극우성알파에 재벌 3세. 전혀 연이 없을 것 같았지만 연우가 선배 멘토를 해달라고 찾아오면서 인연이 됩니다. 그리고 그 인연이 8년이나 이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연우는 태호를 꽤 오랫동안 만나왔습니다. 사실 관심을 갖게된 것은 매우 사소한 사건이었는데, 그 이후 호기심이 생겨 접근하고, 인연을 이어온 것이 벌써 8년입니다. 오메가 연인이 있다고 하는 선배다보니 그런가하고 접었는데 뭔가 이상합니다.


태호가 숨기고 있는 비밀은 초반에 쉽게 드러납니다. 임태호는 열성오메가이며, 이 사실을 감추고 베타인 척 하기 위해 억제제를 계속 복용해왔습니다. 그렇게 가까운, 그리고 유일한 후배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은 책 끝부분까지 내내 태호의 발목을 잡습니다.


오메가라는 사실을 감추고 베타인척 하는 태호, 그리고 왜 선배가 그렇게 친한 나에게도 오메가란 사실을 밝히지 않았을까-라고 고뇌하며 접근하는 연우는 매우 귀엽습니다. 특히 나이트라는 별명 대로, 손대면 그대로 손목이 날아갈 것 같은 무시무시한 극우성알파지만 태호의 반응을 두고 몇몇 사람들 앞에서 연우가 보이는 모습은 정말로 귀엽습니다. 그러니까 태호 앞에서는 안 그런척 내숭을 떨지만 형이나 누나나 친한 사촌들 앞에서는 그야말로 울부짖습니다. 왜 우리 주인님(?)은 나를 안 좋아하시는 거지? 나에게 관심이 없는 거지? 라면서 마구 날뛰는 시저(feat. 『동물의사 닥터 스쿠루』)를 보는 듯합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태호는 꼬마에 가깝습니다. 아파도 아닌척, 성실하면서도 공부도 잘하고, 그렇지만 소시민. 음. 설명은 이상하지만 하여간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구조는 얼핏 할리킹으로도 보입니다. 재벌 3세와 소시민이라는 점에서 말이지요. 하지만 한 발짝 들어가서 보면, 이 구조가 작동하는 것은 클라이막스에서 일뿐, 그 외의 연애담은 매우 평범합니다. 그러니까 평범한 로맨스에 가깝다는 이야기입니다. 말할 수 없고, 감추고 있는 것이 있기에 바로 다가가기 어렵고, 그렇다 보니 거꾸로 약점을 잡히기도 하고. 거기에 양념을 더하는 거은 오메가버스 세계관에서 보이는 오메가에 대한 시선과 히트사이클, 그리고 각인입니다.



뭐라해도 해피엔딩입니다. 모두가 행복해지지는 않지만 행복하지 않은 그 사람은 벌 받을 짓을 했습니다. 그러니 불행한 길로 본인이 그대로 걸어들어간 셈입니다. 그 사람을 빼고 나머지들은 행복하며, 앞으로 다른 이야기에서 등장할 누군가는 거기서 행복해지지 않을까 추측해봅니다.:)



진램. 『나이트를 잡는 방법 1-2, 외전』. 피아체, 2017, 1-2권 각 4500원, 외전 1천원.


만가라고 하면 슬픈 노래가락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사전을 찾아서 나오는 만가는 挽歌라고 씁니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은 책표지에 나온 대로 靑春輓歌입니다. 한자가 약간 다릅니다. 한자사전에서 확인하면 輓은 끌다와 슬픈노래라는 양쪽의 뜻이 다 있습니다. 다시 말해 애도하는 노랫가락을 가리키는 挽歌 역시 輓歌로 쓸 수 있는 겁니다.

이 소설은 그 중의적인 의미를 모두 포함합니다. 다 읽고 나면 그런 생각이 들지요.


오메가버스 세계관의 BL이기는 하나, 19금이 아닙니다. 일반으로 나왔고요. 제대로 된 키스신도 아니고 베드신도 아침짹에 가까운 묘사로 넘어가지만 그게 이상하지 않습니다. 창현과 지수, 이 둘에게는 그런 담백한 분위기가 훨씬 더 잘 어울립니다.



주인공은 창현입니다. 보통 로맨스소설은 여성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고, BL은 수건 공이건 둘 중 한 쪽이 주인공이고 다른 쪽은 주연급 조연이나 조연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지수의 이야기보다는 창현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창현의 이야기가 주인 것은 제목과도 관련이 깊습니다. 청춘만가라는 제목은 창현의 20여년 삶을 가리키는 輓歌이기도 하고, 소설 클라이막스의 상황에 대한 挽歌이기도 합니다. 그 둘 다 창현의 이야기이며 지수는 창현의 삶을 지켜보고 지탱하는 지팡이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개연성이 가장 없는 부분이라면 이 지팡이가 보통의 나무도 아니고, 나무로 치면 티크. 나무가 아니라 조금 더 멀리 보면 티타늄, 그것도 다이아몬드 세공을 한 지팡이란데 있습니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이 소설은 할리킹의 또 다른 변형입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로맨스소설 시리즈인 할리퀸은 BL에서는 단어를 바꿔 할리킹이라 불립니다. 흔히 신데렐라 스토리를 두고 신분을 초월한 사랑이라고 하지만 사실 신데렐라는 백작가의 딸이었고, 그것도 정식 결혼에서 나온 적자입니다. 소녀시절까지는 고급 교육을 받았을 것이고요. 그러니 신분은 충분했고 최근 몇 년 간의 상황이 문제였을 겁니다. 할리퀸은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일이 많으니 보통은 재산상의 차이를 언급합니다. 할리퀸이 그런 이야기라면, 할리킹은 BL에서 같은 상황을 두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니까 한쪽은 부자, 다른 한 쪽은 가난한 경우. 그게 아니더라도 대체적으로 사회적 배경이 차이 나는 경우를 두고 할리킹이라 말합니다.


이 소설이 할리킹인 것은 지수가 매우 부유한 집의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막내다보니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고, 집도 자식의 의사를 상당히 존중하는 분위기라 특별히 제지가 없습니다. 거기에 재산이 상당히 많음에도 창현 주변에 있을 때는 그렇게 티가 나지 않습니다. 다만 몇몇 장면을 곰씹어보면 야가 부잣집 아이가 맞구나 싶습니다. 걷다가 전화를 걸면 그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사가 차를 몰고 나타나는 장면이 그렇습니다. 근처에 대기하고 있었으니 최소한 막내인 지수에게도 별도로 차와 기사가 붙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을 겁니다. 막내인 지수가 면허를 딴 것은 소설 내에서 살짝 언급되지만 평소에는 그렇게 다니는 듯하고요. 거기에 막판에 등장하는 별장들은. 음. 이거 모마녀님이 홀딱 반할만한 그런 별장이었지요.



빙글빙글 돌았으니 소설 내용으로 돌아가봅니다.


대학교 3학년인 창현은 과에서 유일하게 친하게 지내는 민성의 요청으로 개강파티에 참여합니다. 그리고 나오는 길, 1학년 신입생인 지수와 동행합니다.

지수는 창현을 입학하기 전부터 알았습니다. 고등학교 때 방황하던 시기에 우연히 마주쳤고 꾸준히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 학교를 선택하고 과를 선택한 것도 창현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게 관심을 넘어서 좋아하는 마음이라는 걸 충분히 깨닫고 있습니다.

창현은 과내에서 아웃사이더입니다. 항상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으며 혼자서만 다니고 성적도 꽤 좋습니다. 열성 오메가에 다리가 불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모저모,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지만 별로 신경쓰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사고로 돌아가시고, 형은 전신불수이며 어린 여동생과 알콜 중독 어머니'가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생계 책임도 창현의 몫이라, 수업 외에는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럼에도 성적은 상위권이랍니다. 그런 창현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여유가 없어보이고 실제로도 그러하지만, 반한 쪽은 지수니까요. 어떻게든 접점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쫓아다닙니다.


그리고 이 소설은 그런 지수의 노력이 창현을 끌어올리는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일상과 학업을 포함한 그 모든 상황에 지쳐있던 창현은 지수를 거부하지만, 결국은 지수가 이깁니다. 다만 지수가 그냥 이긴 것만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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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수는 저이의 삶이 이렇게까지 자신과 다를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어깨를 누르고 있는 고단함만 좀 치워 주면 그걸로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쩐지 그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았다.

분명 같은 공간에서 서로를 마주 보고 있지만, 실제로 지수와 창현이 살아가는 세계는 완전히 달랐다. 지수는 자신이 창현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창현과 친하게 지내고 싶었고, 좋아하는 마음으로 쫓아다닙니다. 그러다 우연히 창현의 개인사와 얽히고, 밀어냈던 창현과 다시 이야기를 나누게 되며 절감합니다. 내가 부잣집이니 뭔가 도움을 주면 더 나아 질 것이라 생각하던 것은 매우 안이했다고,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말입니다.

그 뒤 지수의 역할은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창현의 지팡이입니다. 창현을 끌어내 어떻게든 쉴 수 있게 해보려 하고, 창현이 부담을 갖지 않게 이모저모 궤변을 늘어 놓기도 하고. 직접적이며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문제가 생길 것이니 그렇게 지팡이 역할을 자처합니다. 그리고 이 지팡이는 고급 나무에 티타늄과 다이아몬드를 쓴 것으로 모자라, 인공지능과, 네비게이션과 자동주행 기능을 탑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동적인 보조 역할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창현을 끌어주니까요.



오메가버스의 세계관은 이 소설에서 소품으로 사용됩니다. 창현의 힘든 상황을 묘사할 때, 지수와 창현이 얽히는 여러 사건들의 소재, 그리고 마지막의 키포인트로 작용하는 것까지. 오메가버스 세계관의 소설을 꽤 여럿 읽었지만 이렇게 담담하게 쓰일 수도 있구나 싶었습니다. 사실 이런 쪽이 취향이기도 하고요. 베드신이 없어서 더 마음에 들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사견.'ㅂ'a




다른 것보다 창현의 고단함을 묘사하는 장면들이 마음을 울렸습니다. 만성피로로 지쳐있을 때, 나 역시 힘들다 생각할 때가 절로 떠오르더군요. 그래서 挽歌구나 싶다가도 소설이 진행되면서도 같이 힐링되는 느낌.

저야 지수 같은 반려를 얻을 가능성이 매우 낮으니, 저를 구하는 것은 저 혼자만 가능합니다. 그러니 그 때까지 부지런히 돈 모으겠습니다.(먼산)



이미누. 『청춘만가』. 시크노블, 2018, 4천원.


도서관 서가를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발견한 책입니다. 빌리기 전에 훑어보니 사진 화보가 꽤 많더군요. 게다가 여러 남성복 장인들의 인터뷰도 실려 있어 덥석 빌렸습니다.

만. 정작 읽어보니 기대하던 것과는 책이 조금 다른 방향입니다.
읽기 전에는 남성복의 각 부분에 대한 유래 설명, 그리고 세부적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등장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읽다보니 설명이 있긴 있지만 그게 체계적이라기 보다는 재미있게 읽을 거리에 가깝고, 무엇보다 그림이나 사진이 없습니다. 책에 실린 화보는 책 맨 뒤에 소개한 것처럼 여러 사진작가들이 찍은 양복입은 남자들의 사진입니다. 젊은 남자뿐만 아니라 중년, 장년, 노년까지 나잇대도 다르고 스타일도 다른 것이 보는 재미가 있더군요. 하지만 그게 책에 소개된 수트의 각 부분별 차이를 세부적으로 확인할 수 있냐 하면 아닙니다. 보면서 헷갈리더군요. 몇몇은 가능하지만 몇몇은 또 아니라 수트를 원래 좀 알던 사람이 아니면 읽는 것만으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항상 캐주얼로만 입는 사람의 한계인 거죠. 그 부분이야 다른 수트, 양복정장 관련된 책을 추가로 봐서 확인하면 됩니다.

이 책의 묘미는 수트나 수트와 짝을 이루는 여러 소품을 제조하는 장인 인터뷰입니다. 영국에서 수트가 유래했지만 이탈리아나 미국 등에서는 각각의 취향에 맞게 다른 형태로 변화했다고 말하며, 이탈리아는 같은 국가 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또 다른 맛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소개하는 것이 나폴리 수트의 장인 체사레 아톨리니의 인터뷰입니다. 간략한 이력, 소개와 함께 대화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그 다음은 또 다른 테일러로 샤맛Sciaat의 오너이자 테일러인 발렌티노 리치. 이쪽은 첫 번째 인터뷰어보다는 젋습니다. 이 둘은 수트와 맞춤복 설명이었고, 거기에 이어 수트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셔츠와 타이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니 세 번째 인터뷰는 피렌체 스타일의 타이 브렌드 타이 유어 타이, 프랑코 미누치. 이 분 인터뷰가 재미있었습니다. 나폴리나 피렌체, 밀라노 수트의 차이를 세세하게 설명하더군요. 그 다음은 구두. 볼로냐의 구두 장인인 엔조 보나페. 그 뒤에는 여러 클래식한 브랜드의 운영자 등을 인터뷰합니다. 잘 모르는 분야의 인물들이지만 인터뷰가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클래식, 수트, 그리고 거기에 담긴 철학, 장인 정신 등등. 후르르 넘겨도 좋지만 곰씹어 볼 부분도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프랑코 미누치의 인터뷰였습니다. 모 마녀님이 보시면 고개를 끄덕끄덕하시지 않을까요. 아니, 시오노 나나미도 피렌체를 매우 좋아했으니까요.


p.153
N: 피렌체 스타일이란 어떤 것일까요?
F: 피렌체는 살면 살수록 피렌체만의 스타일과 아름다움을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 도시 자체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말입니다. 30~40년 전에는 피렌체 남성들이 이탈리아에서, 아니 세계에서 가장 멋지게 옷을 입는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피렌체는 수준 높은 수트와 구두를 만드는 장인들이 정말 많았고, 남자들은 그것을 우아하게 소비했습니다.(하략)


읽고 있노라니 시오노 나나미가 『남자들에게』에서 묘사한 마상창시합같은 결혼식 수트 대결이 떠오릅니다. 영국 vs 피렌체. 그거 다시 찾아 읽어봐야겠네요.


이 사람의 인터뷰는 그 뒤에도 재미있는 포인트가 하나 더 있습니다.


p.165

N: (중략) 혹시 선생님께서 좋아하시는 여성 브랜드가 있는지요.

F: 과장된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만약에 내가 여성이었다면, 나는 항상 샤넬만을 입었을 겁니다. 샤넬은 아주 시크하고, 아주 예쁩니다. 심플하면서도 자기주장이 분명합니다. 아르마니 여성복도 좋은 옷이라고 생각하는데 시크하면서도 심플하다는 면에서 그렇습니다. 샤넬에도 캐주얼이 있는데 항상 그 우아한 분위기나 스타일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나는 정말 샤넬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구두든 가방이든 샤넬의 모든 것이 좋습니다. 샤넬은 과장하지 않아요. 코코 샤넬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지금의 샤넬도 아주 멋지게 유지되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사이에 있던 나폴리와 피렌체의 수트 스타일 차이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그러고 보면 인터뷰가 유쾌한 것은 인터뷰이도 상대를 잘 알고 자주 만나서 안면이 있던 사이라 그랬던 걸까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데다 읽고 있다보면-저 역시 한 벌쯤, 한 켤레쯤, 한 세트쯤 장만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처럼 우아하게 늙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책입니다.:)



남훈. 『멋을 아는 남자들의 선택 클래식』. 책읽는수요일, 2016, 18000원.


조아라에서 연재되었다가 도중에 연재처를 이동하고 출간된 소설입니다. 기본 구조는 그 당시 조아라에서 유행하던 소설들의 패턴과 비슷합니다. 다만 그렇게 느낀 것은 조아라 연재 분량까지고, 출간된 부분을 확인하니 확연히 다른 부분이 몇 보입니다.



주인공인 프리실라는 백작가의 적녀였습니다.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새로 결혼하여 후처를 들였지만 그 새어머니가 그리 좋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의 사후, 계모는 아직 미성년자인 프리실라를 대신해 영지를 운영했지만 방만한 운영과 사치로 영지의 재정이 파탄에 이릅니다. 그리하여 작위를 갖고 있던 프리실라는 그 빚을 갚기 위해 이웃의 이혼남 자작과 결혼했고 그 자작이 백작가의 작위를 받아 챙깁니다.

새로 백작이 된 남편과 프리실라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는데, 어느 날 우연히 남편과 새어머니 사이의 대화를 듣습니다. 아이가 없었던 것은 그 둘이 공모하여 약을 먹였기 때문이고, 곧 죽이고는 남편이 이전에 이혼한 부인과 그 부인이 낳은 아들을 데려오겠다고 하는 것을요. 그리고 프리실라는 도망갈 채비를 합니다.

우연히 만난 마법사는 프리실라에게 자신이 가진 마력석을 줍니다. 그걸로 일부나마 마법사로서 성장할 수 있었지만 본인의 마력석은 아니어서 힘은 다 일깨우지 못합니다. 그래도 용병으로 일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지요. 한참 뒤에, 자신의 영지에서 엄청난 마력석이 나와 황제의 손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고, 그 마력석이 본래 자신의 것이었음을 느끼고는 한탄합니다. 하지만 이미 늦었지요. 게다가 마력석이 나온 뒤, 영지에서 다이아몬드 광산이 발견되면서 인척이었던 이웃의 변경백이, 프리실라의 영지 계승권을 주장하며 영지전을 벌입니다. 그도 그런 것이 현 영주는 프리실라의 남편이었을 뿐, 어떤 혈연관계도 없지요. 그리고 프리실라와의 사이에서 아이도 없었고요.

그 생의 끝은 드래곤하트를 찾으러 가다가 용병단이 전멸하고 프리실라도 간신히 살아 남았지만 죽어가는 도중, 손에 든 드래곤하트의 마력을 써서 시간을 되돌리는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마법이 성공하면서 프리실라는 어릴 적으로 돌아옵니다. 그것도 아직 이웃의 자작과 약혼을 하지 않았던 시점, 채무자가 찾아와 독촉을 하기 직전의 시점입니다. 그 때부터 프리실라는 이전의 삶에서 얻은 기억을 바탕으로 하나씩 바꾸어 갑니다.


조아라 연재분량은 회귀한 프리실라가 어머니가 약혼을 강행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성 밖에 머물러 있던 용병단을 찾아, 소드마스터인 키안에게 결혼 의뢰를 하고, 결혼을 하고, 채무자에게 사소한 복수를 하고, 영지 개발을 시작하고, 마력석을 찾아 마법사로 깨어나는데서 시작합니다.

마법사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아 일반적으로는 마법사도 만나기 어려운데, 개화한 프리실라는 3백년전의 대마법사보다도 뛰어난 실력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 때문에 서제국의 황태자에게 프로포즈를 받고, 동제국의 황태자에게도 비슷한 것을 받습니다. 아니, 비슷한 건 아닌데 하여간.

회귀 전에는 서제국에서 동제국을 침략해 전쟁이 발발하였으므로 그걸 막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백작위를 계승한 뒤의 종신서약을 위해 수도에 올라가서는 황태자의 동복 누이인 후작을 만나 또 다른 움직임을 보입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하면 스포일러라 일단은 뺍니다. 요약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행보가 대단하네요.


책 분량이 전자책으로도 4권이고, 각 편당 쪽수도 상당합니다. 4권은 394쪽이고요. 대화나 문단 분리 때문에 분량이 늘어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상당합니다. 동제국이 안정되는데 이미 3권이고, 4권은 통째로 프리실라와 키안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여기서 프리실라의 회귀와 관련된 이야기, 그리고 그렇게 신혼부부 티를 내는데도(순화어) 임신을 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답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부분 때문에 이 책은 19금입니다.



프리실라의 행보는 본인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딸만 있으면 데릴사위를 들여 사위가 작위를 받는 것이 보통이나, 프리실라는 소드마스터를 남편으로 맞았으면서도 본인이 작위를 잇고, 대마법사로서도 활약합니다. 주변의 여러 여성들은 프리실라를 보면서 자신의 꿈을 키우며 직업을 가지고 활동합니다. 그것도 한 두 명이 아니로군요. 물론 그런 프리실라를 고깝게 보는 인물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대마법사 앞에서 그런 소리를 해봤자 나중에 무릎꿇고 빌 일만 생기더군요.

이렇다보니 프리실라는 킹메이커가 되어 회귀 전에는 이루지 못한, 남편의 꿈도 달성합니다. 업적이 한 둘이 아니지요.



다만.

이런 판타지소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크게 판타지소설로서의 문제점과 로맨스소설로서의 문제점이 나뉘네요.

판타지소설로서는 프리실라가 너무 강하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왜 그리 프리실라가 강해졌는가에 대한 설명은 4권에서 등장하긴 하지만, 그걸 제외하더라도 소드마스터인 남편을 넘어설 정도로 강한 인물이라 그 존재가 조금 걸리네요. 하기야 그렇기 강했기 때문에 킹메이커도 되었고, 남편의 숙원 사업도 이뤘지만. 만약 4권에서 등장한 그 치트키(?)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역사에 길이 남을 평범한(?) 대마법사로 끝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로맨스소설로서는 '연애와 사랑은 이렇게 아름다운데, 그런 아름다움을 모르는 당신이 불쌍해요!'로 치환할 수 있는 4권의 대사 때문에 걸렸습니다. 정확히는 그 부분이 뭐였나면... 내용 폭로 위험이 있어 접어두겠습니다.



...

이거 솔로들을 광역 저격하는 말들인데요. 전투 중에 나온 이야기라지만 인간이 혼자서는 살아가지 못하고 기쁨과 행복을 느끼지 못한 존재라는 건 다릅니다. 소설 속에서도 그 예외적인 존재들이 존재하니까요. 예를 들자면 신관들. 신관들은 신에게 자신을 바치는 것으로서 기쁨을 누리고 온전히 행복합니다. 그리고 키안의 말도 틀리지요. 왜 틀리는지는 그 뒤에 이어지는 사건들이 증명합니다.


그리하여 저 부분을 읽으면서 커플 지옥!을 외치고 있었다는 겁니다. 하하하.


취향에는 조금 안 맞았지만 여주인공이 혼자서 서사를 다 끌고 나가며 다 깨부수는 이야기를 좋아하시는 분께 추천합니다. 일부러 위의 감상에는 주요 코드 하나를 빼놓았지만, 그래야 읽을 때 더 재미있겠지요.:)



임서림. 『프리실라의 결혼 의뢰 1-4, 외전』. 고렘팩토리, 2018, 1~4 각 4천원 , 외전 3천원.


구입할 때야 알았습니다. 『이세계의 황비』 작가님이더군요. 전작을 보신 분은 이번 편의 분위기도 대강 짐작 하실 수 있을 겁니다.

리디북스 선공개, 알라딘에는 아직 풀리지 않은 고로 출판사와 책 가격 표기는 이후에 추가합니다. 이 감상은 전자책이 아니라 개인지를 읽고 쓰는 글입니다. 아차. 미리 적어두지만, BL입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한데 개인지와 전자책의 내용 차이는 아마 없었을 겁니다. 그래도 표지가 워낙 예뻤던 데다 벽돌형 하드커버(...)라 덥석 집어 들었습니다. 종이책으로는 총 645쪽. 전자책으로도 분량은 비슷할 거라 봅니다.


제목이 윈터메르헨, 겨울동화이고 아예 책 표지는 WINTERMÄRCHEN이라, 움라우트까지 들어간 독일어입니다. 한국어 번역제목인 겨울동화하고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지요. 책 읽어 보면 확실히 윈터메르헨이라는 이름이 가장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인공이 겪는 모험담이자, 동화이자 설화니까요.


네이브 출신의 술사인 텐은 장기 휴가를 얻어 북쪽나라 발렌스에 옵니다. 어머니의 유언이 발렌스로 가라는 것이기도 했고, 또 어머니의 유품 때문에도 올 일이 있었지요. 북쪽 출신인 어머니의 외모를 빼닮은 덕에 인종적으로는 고향인 네이브가 아니라 발렌스에서 위화감 없이 섞여듭니다. 거꾸로 말하면 네이브에서는 외모 때문에, 그리고 출신 때문에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북쪽의 마을에서 시간을 보내던 텐은 우연히 어느 꼬마를 만나게 되고, 그 꼬마와 만난 뒤 설화 속에서만 있다 생각했던 여러 요정과 존재들을 차례로 만납니다. 그리고 얼결에 코가 꿰였지요.


쉽게 표현하면 이 책은 텐의 모험기입니다. 텐은 출생에 문제가 있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부외자입니다. 그랬던 그는 마찬가지로 방랑하고 있던 군주님을 만나 살뜰하게 보살피고 쫓아다니다가, 그간 전혀 도움이 안되던 집안이 마지막에 발목을 잡...았지만 거꾸로 그 사건을 계기로 발렌슈타인의 권속에 들어가 행복한 삶을 영위합니다. 조금은 불안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주변의 여러 사람과 요정의 조언으로 외전에서 마지막 키워드가 등장하네요.
외전은 빼고 본편만 놓고 보면 주인공은 텐이며, 방랑하던 것을 멈추고 정주하여 자신의 집을 찾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전형적인 모험담이자 동화입니다.

또 다른 주인공인 아힘은 텐의 모험보다 훨씬 전에, 텐과 마찬가지로 출생에 문제가 있었던 초월자입니다. 출생의 문제는 텐과 마찬가지로 아힘의 발목을 잡으며, 또한 그 힘의 원천과 근본이기도 합니다. 제대로 사랑받지 못했던 테다 태생적 문제로 감정이란 것을 제대로 모르던 아힘은 텐을 통해 몰랐던 감정들을 하나씩 깨달아 갑니다. 어릴 적 소망했던 것이 무너진 뒤 계속 얼어 붙어 있던 아힘은 텐을 통해 봄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본편에서 다 풀리지 않았던 아힘의 이야기는 외전에서 마저 채워집니다. 특히 맨 마지막의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새로운 시작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네요.

주인공은 아힘과 텐이지만 그 외의 여러 조연들도 매력적입니다. 취향만 따지자면 악마님 참 좋은데요. 옛날 옛적 상당히 좋아하던 여러 판타지소설에서 등장하던 매드사이언티스트, 혹은 매드알케미스트 스타일의 멋진 분입니다. 악마다보니 성격 나쁜 것은 당연하며, 실력도 매우 좋습니다. 그러면서도 아힘과 텐을 은근슬쩍 걱정하는 것도 참 귀엽고요. 텐의 선배이자 가장 가까운 친우인 단장님도 좋습니다. 단장님의 매력은 본편에서도 여러 차례 확인할 수 있지만 외전에 가면 그 뒷이야기까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신혼집에 쳐들어 왔다가 떠나는 모습이라든지, 그 속에 뭘 품고 있는지 등등도 자세히 나옵니다.


본편 자체만 놓고 보면 모험을 완수한 텐과 성장하기 시작한 아힘의 이야기입니다. 거기에 외전을 더하면 성장하는 아힘과 코 꿰인 줄 모르고 있다가 코뚜레 하고서야 깨달은 텐의 이야기로 바뀝니다. 쉽게 표현하자면 외전은 19금이라는 이야기지요. 맨 마지막의 외전은 아힘의 성장에 방점을 찍습니다. 그 마지막 문장 하나로 아힘은 마지막의 굴레를 벗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본편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판타지 소설이니, 동화풍 성장형 모험 판타지를 좋아하시는 분께 추천합니다. 다만 텐이 조금 많이 고생하니 그건 감수하시어요. 결말은 행복하게 끝나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도도연. 『윈터메르헨 1-3』. 시크노블, 2018, 1권 3400원, 2권 3천원, 3권 3200


개정 전 버전을 알라딘에서 구입했어야 했는데, 까맣게 잊은 사이에 이전 버전이 내려갔고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출판사도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구판은 루트미디어, 개정판은 B&M. 그리고 가장 달라진 것은 개요 일부를 포함한 내용 전반입니다.


개정 전과 개정 후 중 어느 쪽이 낫냐 그러면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제 취향은 구판에 가깝고, 가장 큰 이유는 판타지소설로서의 흐름은 구판이 좋기 때문입니다. 각각의 서사가 훨씬 길고 상세하게 묘사가 들어갔으니까요. 현재는 그걸 두 권에 압축했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아무래도 뼈대와 등장인물들만 두고 전체를 다시 쓴 것이라 개정을 넘어서 개작에 가깝습니다. 전작을 보았다면 살짝 위화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고, 아니라면 병약미청년 황자님의 회귀 후 연애담을 즐기실 수 있을 겁니다. 무엇보다 요나스는 이전보다 조금 더 강직하고 바른 인물이 되었고, 밀란은 조금 더 많이 음흉해졌으며, 막스는 귀엽고, 나디아는 훨씬 어른스러워졌습니다.

내용이 압축되다보니 등장인물들이 다 조금씩 변화가 있었지만 누구보다 요나스, 밀란, 나디아의 변화가 도드라집니다.


그렇지만 가장 많이 바뀐 인물이 누구이고 설정이 무엇인지는 감춰둡니다.




이렇게 적고 보니 나디아의 비중이 확 늘어났네요. 요나스와 나디아의 대화도 중요한 부분이 많이 늘었습니다. 그리고 몇몇 장면을 포함해 밀란과 요나스의 연애담이 줄었습니다. 오두막집 이야기 빠졌고, 보석 건도 빠졌고요.

릴리와 나리 자매(함정)는 여전합니다. 비중을 줄일 수가 없었겠지요. 주요 얼개는 ㄱ대로


그러나 외전은 그대로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한도에서는 그대로. 이렇게 되면 이 다음 이야기로, 용공작과 관련된 그 이야기도 다시 볼 수 있을까요. 지금 연재 다시 준비하시는 건 『마녀의 나라』라고 알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용의 만찬』을 다시 볼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아차. 잊지말고 『강호애가』도 장바구니에 담아야겠네요. 『솔솔』도 다시 볼 수 있는 그 날을 기다려야..! +ㅅ+



가막가막새. 『우리들의 시간』(개정판)(2권 세트). B&M, 2018, 6800원.



읽고 나니 도로 구판도 보고 싶어져서 꺼내 놓았습니다. 그리고 나면 다시 개정판 보고 요나스와 밀란의 꽁냥꽁냥을 감상하겠습니다. 흠흠흠.



덧붙임.

그러고 보면 분명 크게 달라진 것 한 건이 더 있다 기억하는데 뭐였을까요.=ㅁ=

간략 감상: 출판사는 마음에 안 들지만 소설이 좋았다.


이전에 조아라에서 연재되다가 완결을 못보고 넘어간 로맨스 소설이 출간되었습니다. 그런 소설이 한 둘이 아니긴 하지만, 분량이 전자책 네 권이나 되다보니 궁금하기도 하더군요. 그리고는 후회했습니다. 이 책, 교보문고에서 나온 책이더군요. 교보문고라면 치를 떠는데 미처 확인을 못한 겁니다. 게다가 이 출판사는 책 페이지당 가격이 미묘하게 높다고 느낍니다. 대체적으로 BL보다 로맨스의 책 가격이 높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은 페이지 계산을 해봐도 만만치 않네요. 책 편집은 동일하니 페이지수와 가격으로 나중에 한 번 비교해볼 생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래 본 판타지소설 중에서 기억에 남을만한 괜찮은 소설이었습니다. 로맨스 자체보다는 판타지에 더 방점을 맞추었다고 해도 틀리지는 않고요. 이 소설이 말하려는 것은 하나, "왜 전설의 화석이 되었는가."이고 그에 대한 답은 두 가지로 나뉩니다. 첫째, 휴학 잘 안하는 아카데미에서 3년 휴학해서. 둘째, 그 휴학의 원인과 졸업까지의 지난한 과정 때문에.


애쉬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애쉴리 루테는 백작가의 차녀입니다. 위로 언니와 오빠가 있었고 환생자라는 것을 제외하면 그럭저럭 평범한 삶을 살았습니다. 환생자이기 때문에 가족과 약간 괴리된 느낌은 있었지만 그래도 보통의 귀족집안 아이들이 그러하듯 아카데미에 진학해 평범한 삶을 살아가려 했습니다. 그런 애쉬의 삶을 완전히 뒤틀어 버린 것은 맏이인 카넬리안과 마왕입니다.


북쪽에는 마왕이 있어 인간들이 찾아가기 어려웠고, 그 마왕을 물리치는 것은 매우 어려웠지만 애쉬는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그 일을 해치웁니다. 3년이 걸린 마왕 퇴치 프로젝트 뒤, 애쉬가 한 일은 복학입니다. 자신이 마왕을 물리칠 인물이라는 예언 때문에 3년간 휴학을 했으니 이제는 복학을 해야지요. 그렇기 때문에 애쉬는 환생과 마왕 퇴치 때문에 노숙한 정신세계를 갖고 나이 어린 학생들과 함께 아카데미를 다닙니다.


그냥 평범했다면 모를까, 문제가 발생합니다. 학교에 황자가 들어온 겁니다. 보통 황자들은 수도 근처의 아카데미에 다니는데, 귀족이 적고 평민이 많은 로지나 사립 아카데미는 황자가 올만한 곳은 아닙니다. 그랬는데 황자의 친구인 테르나크 벨로크와 그 쌍둥이가 진학했기 때문에 황자도 왔다는군요. 물론 황태자의 최측근인 카넬리안 루테의 여동생이 다니는 것도 그 한 이유일 겁니다.



이 이야기는 정치가도 아니고 겉보기에는 평범하나, 산전수전 다 겪어 자신의 안위와 관련된 부분은 눈치가 매우 빠르며 머리도 잘 굴러가는 마왕퇴치용사 애쉬가 이 모든 상황을 헤쳐나가는 것입니다.

-2황자 루크는 황태자인 형을 질투하며 이런 저런 사고를 꾸며 자신의 세력을 넓히고 황제가 되고자 합니다.

-주변 사람들도 확고한 후계자인 황태자와, 거기에 반기를 드는 2황자 루크를 두고 관망중입니다.

-마왕의 사망으로 북쪽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이 되어 그 주변 왕국과 제국이 땅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중입니다.

-제국의 중추에 있는 루테 백작 카넬리언은 테러와 암살 위험에 놓여 있습니다.


등등.

이러한 사건들의 와중에 애쉬는 평온한 삶을 위해 애를 쓰다 눈이 자주 가던 잘생긴 청년과 연애를 시작합니다.



로맨스소설보다는 판타지소설에 방점을 두는 건 로맨스 자체는 굴곡이랄 것이 크게 없이 물 흐르듯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애쉬를 믿는 테르와, 테르를 믿기 때문에 뭐든 물어보는 대로 답해주겠다고 하며 실제로도 그렇게 행동하는 애쉬는 궁합이 잘 맞습니다. 테르가 참 귀엽기도 하거니와 애쉬가 끌면 끄는대로, 밀면 미는대로 가기도 합니다. 무뚝뚝하고 표정 없는 것 같지만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참 귀여워지는 천상 로맨스소설 남자주인공입니다.(...)



거기에 하나 더 하자면, 소설 설정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작위적이지 않게 소설 전체에 능력주의가 녹아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귀족 작위는 장자에게 우선적으로 계승되지만 능력이 있다면 뒤집히는 것도 가능한 것으로 보입니다. 소설 속 가문들은 대개 장자가 월등이 뛰어나고 차자가 그럴 마음이 없기 때문에, 혹은 그럴 마음이 있어도 제거되기 때문에 장자가 계승합니다.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어느 쪽이든 능력 우선입니다. 귀족과 평민에 따른 신분적 차별은 있지만 돈도 매우 중요합니다. 이종족에 대한 차별도 있지만 노예 등은 처벌 대상입니다.

앞으로는 더 나은 세상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하는 건, 이종족과 원주민 친구를 둔 애쉬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르지 못한 것을 참지 못하고 자기가 하고자 하는대로 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은 그런 인물이 주인공이고, 또 힘을 갖고 있으니 앞으로는 더 나아질 것이라 믿는 겁니다.

황제가 여성이라는 것은 대화 속에서 단어 하나가 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알 수 있습니다. 카넬리언이 백작위를 이은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작위 계승 문제로 백작이 결혼을 미루기도 합니다. 용사는 애쉬입니다. 나중에 그 보상으로 애쉬 역시 작위를 받습니다. 이러한 사소한 이야기는 소설 속에서 설명적으로 등장하지 않고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나타납니다. 이를 통해 소설 세계관 자체도 능력주의란 것을 자연스럽게 내보이는 거죠.


코르셋은 있지만 없는 옷도 있으며 자신의 취향에 따라 적절히 입는 것도 가능합니다. 여성도 검술훈련을 받으며 크게 저어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물론 여성은 체력적 요건 때문에 남성보다는 불리하지만 애쉬가 있으니까요. 이 모든 설정은 애쉬 하나로 다 뒤바뀝니다.



에필로그를 보면 왜 제목이 전설의 화석인지 나옵니다. 앞부분에도 나오지만 뒤에서는 완전히 못을 박는군요. 행복한 결말로 흘러가는 이야기는 여러 등장인물들에게까지 매우 상냥합니다. 후계에서 밀린 인물도 그 길이 아니라 다른 길을 선택해 손을 잡고 걸어갑니다. 결말부에서 언급된 그 커플의 이야기를 보고 더 그렇게 생각했지요.


재미있고 즐겁게 잘 읽었습니다.:)



청종. 『전설의 화석』 1-4. 마담드디키, 2018, 각 3천원(합권 12000원).


이전에 지름목록으로 KCDF를 소개한 적 있습니다. 그릇 찾으러 가다가 얼결에 이 사이트를 발견하고, 그러다가 홈페이지 메인에 '우리 공예 디자인 리소스북'이 소개된 걸 보았습니다. 몇몇은 사이트에서 전자책을 볼 수도 있는데, 저는 책을 볼 때는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을 선호합니다. 특히 요즘처럼 눈의 피로가 심할 때는 더더욱.

그 목록 중에서 특히 찾아보고 싶은 책이 이 책이었습니다. 『한 눈에 보는 침선』은 제목 그대로 바느질법을 소개합니다. 『한 눈에 보는 누비』는 일단 뒤로 미루고, 침선부터 찾아봅니다. 그러나 이 책은 그 당시 품절이더군요. 일단 도서관에서 찾아보자며 찾은 다음 훑은 뒤에, 왜 이 책을 진작 보지 못했을까- 구입해야 했다며 후회했던 것이 지난 봄의 일입니다. .. 아, 아직 봄이긴 하지만, 하여간 지금은 다행히 재고가 들어와서 구입 가능합니다.



이 책은 한국의 전통 바느질 기법과 바느질 방법, 그리고 옷 꿰메는 법 등을 한 권에 걸쳐 간략하게 소개합니다. 사진이 많지만 머릿속으로 그려보다 보면 이게 실제로 만만한 작업은 아니라는 걸 깨닫기도 하고요. 애초에 침선에 소개된 바느질 법은 1cm 안에 세 땀을 뜨는 기법입니다. 일반 홈질보다 훨씬 잘게 꿰매야 한다니까요. 게다가 울면 안되겠지요. 그러면서도 또 튼튼해야지요.

일반 바느질 외에 장식 바느질법도 나오고, 조각보를 만들 때 솔기를 하는 방법과 각각의 바느질 법이나 만드는 방법에 따른 솔기 처리법 등도 매우 상세하게 다룹니다. 그러나 바느질을 다른 곳에서 배워서 어느 정도 하는 사람에게 적당한 책이지, 전통 바느질을 처음 익히려는 사람에게는 쉽지 않을 겁니다.


생각보다 책은 얇고 작습니다. 작다고 해도 아이패드보다 작다는 것이고요. 쉽게 기본적인 이야기를 접하기에 좋으나 본격적인 것을 배우려면 책이 아니라 전통공예학교를 다니는 쪽을 추천 합니다. 사실 저도 주변 사람에게서 공예학교 다니라고 추천을 받았으나 G4를 완성하면 그 때 생각해보겠습니다.(먼산)




박가영, 김여경. 『한 눈에 보는 침선』.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2015, 16000원.


전체 컬러입니다. 바느질 기법 외에는 조선시대 의상 등에 대해서도 상당히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고 한복 만드는 법도 소개가 되어 있으니 의복 재봉이 궁금하시다면 참고하시기 좋습니다.



장바구니에 담아 놓고 언제 살까 시간만 재고 있네요.

소설 자체도 만족스럽지만 가장 좋아하는 것은 역시 오하나의 존재입니다. 오하나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이 소설은 읽을 가치가 있습니다.


일단 북스피어고요, 일단 하타케나카 메구미입니다. 이 둘의 조합이니 책의 재미는 보장되었지요. 데뷔작이라는 『샤바케』도 살짝 떠오르지만 괴이를 소재로 한 그 책과는 달리 이 책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소설의 시작은 누군가의 독백입니다. 언니는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지만 아버지는 그 사람은 두고 다른 사람과의 혼인을 추진합니다. 그 사이에서 번민하던 언니는 최근 강물에 빠져 사망했습니다. 그 자살이 아버지에 의한 타살은 아닌지, 의심하지만 그걸 대놓고 물어볼 용기는 없습니다. 아버지는 료고쿠바시 근방을 주름잡는 행수입니다.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만 행수인 것은 아니고, 굳이 따지자면 지금의 야쿠자보다는 범죄에 손을 덜 대는 쪽에 가깝지 않을까요. 근방 지역의 힘쓰는 손이라고 생각하면 얼추 맞을 겁니다. 자신 역시 그런 아버지 그늘 아래 있고 그 아래서 호의호식 하고 있으니 말을 꺼내기 어렵습니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관리하는 예능장에 '진실의 하나히메'가 있다는 것을 듣고는 아버지를 졸라 공연을 보러 갑니다.


진실의 하나히메는 원래 인형 만드는 장인이었던 쓰키쿠사가 마지막으로 만든 인형이랍니다. 지금은 사고로 더이상 인형을 만들 수 없다는 군요. 그 사고 때문에 일자리를 잃고 어떻게든 돈을 벌기 위해 목소리 예능을 했지만 전혀 반응이 없어, 인형을 들고 나와 1인 2역의 예능을 시작했는데, 그게 의외로 잘 먹힌 덕에 길거리에서 지금은 공연장까지 진출했답니다.


인형의 이름은 오하나. 그래서 하나히메. 쓰키쿠사는 그 인형을 제작자이고 복화술로 인형의 대사를 읊는 인물이니 사실상 오하나의 인(형)격도 쓰키쿠사의 것임에 틀림없지만 묘하게 인형에 얽힌 이야기 때문인지 진실만을 말한다고 믿고 또 그렇게 소문이 퍼지기도 합니다. 그 소문도 주로 보통 사람들에게 돌지만 말입니다.

뭐라해도 시타마치 이야기니까요.


자. 서문에 등장한 독백의 주인공이자 행수 야마코시의 유일한 자식인 오나쓰는 공연을 보러 와서 또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진실을 보는 인형이라니 진실을 말해달라고요. 그리고 그 자리에서 야마코시는 딸이 품고 있던 의문을 본인의 입으로 말합니다. 큰 딸 오소노를 죽인 것이 자신이라고 딸이 생각하고 있다고.



첫 번째 이야기는 이 의문을 풀어냅니다. 괴이는 손톱만큼도 등장하지 않고 발품을 팔고 머리로 생각하여 진행됩니다. 어떤 결말이 나올지는 직접 읽어보시면 될 것이고요. 해결된 뒤에도 오나쓰는 꾸준히 쓰키쿠사의 예능을 보러 갑니다. 오하나가 무척이나 예쁘기도 하거니와 하나히메 추종자들이 공주님을 위해 꾸준히 비녀니 뭐니 갖다 바치기도 하니까요. 매번 아름답게 차려 입은 오하나를 보는 것도 좋고, 여러 이야기들이 흘러 나오는 것도 좋습니다. 가끔은 처음으로 오하나를 보러온 인물들이 무의식 중에 끼어드는 일이 있어 그 광경을 구경하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소문이 그러하다보니 하나히메에게 진실을 밝혀달라며 찾아오는 사람도 여럿입니다. 그런 일들에 자주 휘말리기도 하고, 그 소문이 와전되기도 합니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하나와 쓰키쿠사가 그 일들에 휘말리고 그 광경을 오나쓰가 들여다보며 가끔은 참견하기도 하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무슨 이야기냐하면, 아주 다행스럽게도 오나쓰와 쓰키쿠사의 로맨스는 손톱만큼도 없다는 겁니다. 혹시나 싶어 두근거리며 내내 봤는데 전혀 없다는 것에 감명을 받아 가슴을 쓸어 내렸습니다. 역시 『샤바케』의 작가 답습니다.


오랜만에 『샤바케』를 다시 보고 싶어지는 건 물론, 이 책과 마찬가지로 낭만픽션 시리즈이자 작년에 나온 『뇌물은 과자로 주세요』도 읽고 싶습니다. 잠시 구입을 미뤘는데 다음 장바구니에 담아 덥석 구입할 생각입니다.



하타케나카 메구미. 『인형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 남궁가윤 옮김. 북스피어, 2018, 13800원.



부작용.

이 책을 읽고 나서 인형 놀이가 매우, 매우 하고 싶어졌습니다. 인형 놀이가 아니더라도 예쁜 기모노 장식의 인형이 보고 싶어지니. 표지부터가 아리따워 상상하기 쉬웠기 때문일 겁니다.

맥주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려준다기에 궁금해서 덥석 집어 든 책입니다. 표지부터가 책의 정체성을 알려주더군요. 여러 종류의 맥주와 그 색, 그리고 각각의 이름뿐만 아니라 가장 이상적인 잔 형태까지 한 눈에 보여줍니다.



만.

책을 읽는 것은 또 다른 문제더군요.


지난 번에 음식 관련 인포그래픽 책을 볼 때도 책을 '읽는 것'에 굉장히 애를 먹었습니다. 다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다보니 어디부터 눈을 두고 어디부터 읽어야할 지 모르겠고, 그걸 차분히 머릿속에 정리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텍스트를 차근차근 정리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림으로 된 것을 정리하는 것은 배로 어렵다고 느꼈으니, 전 활자중독인가봅니다. 그림으로는 그렇게 와닿지 않네요.


게다가 생각보다 맥주의 종류가 많고 지역별로 비슷하면서 또 다르고. 그렇게 술을 좋아하지 않다보니 마셔본 맥주는 손에 꼽을 정도고 덩달아 익숙한 맥주만 좋아하고. 이런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다보니 책을 읽는데 애를 먹었던 겁니다. 결국 후르륵 훑어 보고는 이 책은 읽는 것보다는 자료 제공이나 정보 확인에 어울린다는 것을 확인하고 얌전히 내려 놓았습니다. 집에 한 권 갖다 놓고 이런 저런 맥주를 사다 놓은 다음, 내가 이번에 들고 온 맥주가 어떤 맥주인가 확인하기에는 좋습니다. 그러니까 본격적으로 맥주를 공부하며 배우고 마시려는 사람에게 좋은 책이란 겁니다.

전 알콜 중독이 무서워서, 그리고 체중조절 문제 때문에 본격적으로 마실 수 없는 몸입니다. 게다가 그제부터 찾아온 감기는 알콜을 허락하지 않아요.




Michael Larson. 『맥주 인포그래픽: 당신이 알아야 할 맥주의 모든 것!』, 박혜진 역. 영진닷컴, 2018, 22000원.



책 가격은 높지만 지질, 판형, 인쇄를 보면 납득 됩니다. 종이가 얇은데다 올 컬러, 그리고 그리 무겁지 않아서 좋아요.

감상을 쓰면서도 내내 망설이는 건, 내용폭로를 하면서 쓸 것인가, 아니면 최소한의 정보만 적으며 쓸 것인가라는 문제입니다. 아무래도 내용폭로하는 부분은 접어서 가려야겠네요. 여러 가지 장치를 사용한 소설이라 굉장히 흥미롭기도 하지만 읽는 속도도 빠릅니다. 책 읽는데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으니까요.



시작은 1인칭입니다. 나는 어릴 때 배신을 당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약속을 한 사람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그 때문에 가까운 이에게 그 사람뿐만 아니라 나 역시 매도당합니다. 말이 칼이 되어 날아온다는 것이 딱 거기서 나오더군요. 그러나 매우 현실적인 칼날이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현재진행형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어드메에서는 분명 이런 말을 뱉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하여간 그 전에도 그랬지만 그 뒤에도 나는 내내 혼자입니다. 그런 나에게 손을 내밀었던 유일한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의 가족은 지금 내 곁에 없습니다. 힘들게 견뎌오던 나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내려 놓으려는 생각으로 집에 오지만 그 도중에 저승사자를 만납니다. 저승사자는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온다더니, 가장 사랑하는 그의 모습으로 자신에게 찾아옵니다. 분명 그 사람은 죽었을 것인데요.


일주일 뒤에 너는 교통사고로 죽을 것이다, 편하게 죽고 싶으면 내 이름을 두 번 불러라. 이미 한 번 부른 뒤이니 세 번 부르면 죽는다는 건가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찾아온 저승사자는 둘이서 해야하는 일들의 버킷리스트를 죽 적어 내려가고 그것을 하나 하나 클리어합니다.



이름을 불렀는가 아닌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할 수 있는 것들은 많지 않았고 같이 하면서 조금 더 살고 싶어졌다는 것이 중요한 겁니다. 그리고 ..(하략)




굳이 표현하자면 화자가 나-정희완인 이야기가 본편인 셈입니다. 본편의 주인공은 정희완과 저승사자이고 그 뒤의 이야기는 각자의 사정에 따라 여러 시점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외전이라고도 할 수 있고 스핀오프라고도 할 수 있는데, 굳이 따지자면 후자입니다. 각 이야기의 주인공은 정희완이 아니거든요. 남은 이야기에 각 이야기의 주인공 이름을 붙여서 첫 번째는 정희완, 두 번째는 김인주, 세 번째는 한호경, 네 번째는 고영현, 다섯 번째는 김람우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그리고 네가 없는 이야기 A와 B가 더 붙고요. 직접적인 외전은 맨 마지막의 두 편이고 다른 다섯 이야기는 본편의 스핀오프입니다. 희완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그리고 인주의 뒷 사정과 호경이 본 **과 ##, 고영현의 이야기가 얽힙니다. 람우의 이야기야 두말할 나위 없지요.



넓게 보면 이것도 어반 판타지에 해당할 겁니다. 이 책 출간 준비하던 당시 브릿G에서 어반 판타지 공모전을 하던 것이 기억나는데, 일상 속에 슬쩍 섞인 판타지이니 어반 판타지라 할 수 있지요.



눈물샘이 약한 분들은 옆에 손수건을 놓고 보시길 추천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슬픈 결말이지만 다른 의미에서는 꽉 닫힌 해피엔딩입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편은 한호경의 외전이었습니다. 훗훗훗.




서은채. 『내가 죽기 일주일 전』. 황금가지, 2018, 12000원.



후기에서 언급한 다른 이야기들도 더 읽고 싶습니다. 언젠가 다른 곳에서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ㅅ+



덧붙임. 이것도 분명 로맨스입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판타지소설이란 것이야 두말하면 입아프지요.

그러니까 김보영을 알게 된 것은 오래 전의 일입니다. 소개해주신 분이 M님이었지요. 그 당시 개인지로 찍던 『진화신화』를 읽고 굉장히 감탄하여, 그 뒤에 나온 출판본은 구입은 당연하고 여기저기 도서관에도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넣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SF단편집을 거의 보지 않아서 그 간 손 안대고 있었는데 트위터가 모든 지름의 시작이었습니다. 작년에 아작에서 『저 이승의 선지자』라는 신간이 나온다는 소식을 트위터로 접했으니까요. 표지도 굉장히 마음에 들어 덥석 집어 들었지만, 그 표지와 관련해서 그간 책 표지가 어두침침했는데 이번에는 화사하다는 트윗을 읽고는 앞에 출간된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을까 아주 잠깐 고민했습니다.



오늘 드디어 책을 꺼내 들었습니다. 읽어야 할 책이 산적한 터라 미루고 미루다가 이제야 손대었네요. 그러고 보니 책도 장바구니에 담아 놓고 한참 미루다가 구입했더랍니다. 사실 '옛 작품만 읽고 최근 작은 안 읽으며 팬이라 할 수 있는가'라는 이야기를 듣고 어맛 뜨거라~ 하며 집어 들었던 겁니다. 오늘 읽을 책을 고를 때 그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았다면 더 미뤘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오늘 읽어서 다행입니다. 날이 그래도 맑아서, 여유가 있는 때라서 읽기 나쁘지 않았습니다. 제목에 적었던 것처럼 매우 난해하지만 읽다보면 그것이 차분히 이해되는 그런 소설입니다. 원래는 다른 단편집에 소개되었던 단편을 중편 분량으로 확대한 소설이라 합니다. 씨앗이 된 소설을 읽지 않은 것이 다행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책을 다 읽었으니 찾아볼 생각입니다.



이야기는 설명하기 매우, 매우 난해합니다. 보통 감상을 쓸 때는 제가 파악한 전체 줄거리를 적어가면서 소개하는데 이번에는 그것도 쉽지 않습니다. 다만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에 대한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 약간의 실마리를 얻었습니다. 작가의 말은 책 맨 뒤에 실려 있습니다.

이 소설은 저승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어디가 저승이고 어디가 이승인지의 경계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인 '나'는 분열된 '나'들과 분열과 합일을 반복합니다. 아메바로 흔히 생각할 수 있는 단세포의 생물체가 아닌가 추정하지만 SF이니 그것이 어떤 생명체인지 구체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독자는 따라갈뿐.


원래는 하나의 생물체였다가 분열된 2세대들은 하나이지만 또 다릅니다. 그리고 그 세대에서 다시 분열된 개체들은 하계로 내려가 하나의 삶을 겪고 다시 돌아오고 하는 일을 반복합니다. 그 과정에서 기억을 가진 중심 개체인 2세대들은 자신의 분열 개체를 가르치는, 중음(中陰)을 구성하고 거기서 지도를 합니다. 서술자인 나는 그렇게 분열한 개체가 이상을 보이는 걸, '타락'했다고 볼 정황을 파악하고 그와 다시 합일하기 위해 다른 수많은 분열 개체를 삼키고는 제자들을 찾아 나섭니다. 독특한 성정을 가졌지만 다른 이들과는 달리 지나치게 하계의 삶에 집착한 아만, 그리고 특이한 사상을 지녔던 탄재가 그들이지요.

'나'는 그 와중에 타락한 제자를 처치하려는 다른 2세대들의 방해를 물리쳐야 합니다. 2세대 중에는 하계에서의 삶이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한다며 서로 합일하고 개체를 지키는 걸 선택한 이도 있고 하계의 좋은 삶만을 선택해 쾌락을 추구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역시 '나'의 제자들이 타락했다고 보고 움직입니다.



이렇게 보면 줄거리 정리가 쉬워 보이지만 아닙니다. 처음에는 그런 실마리가 전혀 없습니다. 주인공의 이야기와 생각은 정리되지 않고 합일과 분열, 그리고 통합된 개체와 각각의 자아 인정이라는 여러 가치관 혹은 생각을 두고는 갈팡질팡합니다. 애초에 분열과 합일을 반복하면서 하나의 자아를 갖고 있던 존재들이었고, 각 개체, 특히 주인공인 나반의 분열체들은 자아를 유지하고 하나의 개체로 독립해 존재하는 것을 원합니다. 하지만 원래 하나였던 2세대들에게는 합일은 아무것도 아니고 그저 하나가 되는 것이니 그러한 분리 자아를 이해하지 못하겠지요. 나반 역시 다른 이들이 타락이라 부르는 하계에의 집착, 삶에의 집착, 분리 자아 유지 요구 등을 이해하지 못하다가, 혹은 이해하지 않으려 하다가...(하략)



설명하기 어려우니 그냥 읽으시면 됩니다. 초반은 어렵지만 그 초반만 넘기면 괜찮다니까요.



마지막에 덧붙여진 외전과 다른 단편은 매우 가볍습니다. 앞 이야기를 읽어 그런지 몰라도 그 자체로 완결된 이 단편들은 앞서 나왔던 단편집의 느낌과 닮았습니다. 짧은 이야기 안에서 완결성을 가져야 하니 아무래도 복잡한 설정은 나오지 않지요. 그러면서도 희망적이고 밝은 무언가를 보여주어서 좋습니다. 본편의 여러 반전을 넘겨 마지막의 결말과 이어지는 외전도 좋았고요. 어찌되었든 저 이승의 선지자는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갈 겁니다.




김보영. 『저 이승의 선지자』. 아작, 2017, 14800원.



『새벽열차』나 그 뒤의 외전들이나, 읽다보면 사이버펑크가 아니라 스팀펑크 배경의 그림이 문득 떠오릅니다. 소재들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는데, 그림으로, 아니면 영상으로 짧게 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새벽열차』의 말미에 영향 받았던 여러 작품에 모토라도가 없는 것도 재미있네요. 다시 읽다보니 그것도 떠올랐습니다.


분열한 개체와 융합했을 때 자신의 자아는 사라지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00년대 초반에 살짝 다룬 소설이 잇었지요. 『마왕의 육아일기』. 서술 장치도 독특했지만 서술자가 등장하는 그 이야기에서 언급한 내용은 나반이 자신의 분열 개체에게 하는 말들과 닮았습니다. 합일한다 해도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 물론 그건 합일한 주격이 하는 이야기니 그렇긴 하지만 나중에 등장하는 누구씨가 누구의 자아를 유지하는가 생각하면 일리는 있지요.



다 읽고 지금 다시 표지를 보니 표지가 달리 보입니다. 우와아아아...=ㅁ=!

간단 요약.

<건전한 출판·유통 발전을 위한 자율협약>은 도서정가제, 정확히는 '출판문화산업 진흥법 시행령'의 개정이 아닙니다. 출판인회의와 출판유통업체들이 동의한 '협약'입니다.

(그리고 해당 협약의 해설)


오늘 오후에 도서정가제 폐지 청원이 올라간 모양입니다. 제 탐라에도 여러 번 올라왔는데 청원 내용을 읽다가 혈압이 올라서 트위터에 끄적였는데, 역시 글자 수 제한이 있다보니 엉뚱한 소리를 하기 쉽더군요. 일단 발단이 된 여러 트윗들을 종합하면 대략 이렇습니다.


1.5월 1일자로 도서정가제 때문에 책 할인이 더 이상 안된다.

2.도서정가제 개정안이 5월 1일에 발효되면서 전자책 10년 50년 등 장기 대여가 금지되고 최대 90일만 대여가 가능함.

3.할인쿠폰은 1천원까지만 가능함.

4.유가증권 형태의 추가 보상이 금지됨.

등등.


일단 청와대 홈페이지의 청원 게시판에도 내용이 올라갔습니다. 독서를 막는 도서정가제 폐지를 청원합니다.(링크) 청원 글을 읽어보면 등골이 쎄한 것이, 내용이 오락가락합니다. 그리하여 차근히 읽으면서 적어봅니다.



1. 청원 글에서 말하는 『건전한 출판 유통을 위한 자율협약』은 도서 정가제가 아닙니다.

전제부터가 틀렸습니다. 도서정가제는 앞서 언급했듯이 출판문화산업 진흥법 시행령의 내용을 따릅니다. 도서의 할인을 15%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청원글에 따르면 2018년 5월에 한 번 더 개정을 앞두고 있다는군요.


아닙니다. 문체부에도, 법령정보시스템에도 개정안 공지가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건전한 출판 유통을 위한 자율협약』은 출판문화산업 진흥법 시행령의 도서정가제를 준수하기 위해 출판인회의가 출판유통업체들과 함께 맺은 협약입니다. 일각에서 돌고 있는 것처럼 조례도 아닙니다. 조례는 자치단체에서 지정하는 바, 이 조례가 성립되려면 서울시, 경기도 등의 자치단체가 만드는 것이지요. 협약처럼 민간이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2.출판산업의 붕괴, 책 판매랑의 감소, 책값의 상승, 독서량의 감소가 도서정가제와 관련이 있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관련 연구를 특별히 찾아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출판산업의 붕괴 이야기는 이미 IMF 때부터 돌던 이야기이고, 책 판매랑의 감소, 독서량의 감소는 책 외의 다른 놀 거리가 많아지면서 발생하는 것일 수도 있지, 그게 도서정가제와 관련있으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책값의 상승은 책 판매랑의 감소가 영향을 주었을 수는 있군요. 하지만 그게 도서정가제와 연관이 있나요. 굉장히 복잡하게 연계된 사안들을 '도서정가제'를 비난하기 위한 재료로 쓴 느낌입니다. 아니, 독서량 감소를 이유로 패려면 도서정가제가 아니라 스마트폰을 먼저 들어야 하지 않나요.



3.그리고 이 사람, 도서관을 때렸어.


막연하게 도서관 대여를 떠올려보지만, 도서관 대여가 마냥 쉬운 것도 아닙니다. 베스트셀러는 언제나 대여중이며, 바쁜 현대인들은 도서관 개장 시간에 맞추어 들리는 것이 어렵습니다. 개개인의 독서 습관이 도서관 정책과 맞지 않기도 합니다.


... 아니, 대여가 아니라 대출입니다. 도서관 이용자가 아니시군요. 베스트셀러만 읽지 말고 다른 책도 골라 읽으세요. 도서관 개장시간은 요즘 꽤 많이 늘어나서 밤 10시, 11시까지도 합니다. 그리고 요즘 예약대출이나 예약대출기를 이용한 대출도 가능합니다. 개개인의 독서습관이 도서관 정책과 맞지 않기도 하다는 것은 왜 넣으셨나요. 이거, 도서관 관계자들이 들고 일어날만한 내용이군요.



4.도서대여 시장이 전자책 시장의 위축과 관련이 있을지 어떨지는 연구를 조금 더 해봐야 알겠지요.


10년, 50년 등의 장기 대여가 가능했던 때와 아닌 때의 전자책 매출 비교를 하면 금방 나올 겁니다. 물론 자료를 구할 수 있을지의 여부는 두고 봐야지요. 거기에다 사실상 10년, 50년년의 대여가 도서 정가제를 회피하는 방법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겁니다.


도서정가제의 실시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마트에서의 도서 덤핑판매였습니다. 유통시장질서 교란을 문제 삼아서 실시한 것이지요. 도서정가제에 대한 비판은 정가제가 시작되었을 당시 적은 글이 있었으니 그 글로 갈음합니다... 라고 적고보니 이거 다른 데다 올렸구나.OTL


간단히 요약하면 도서정가제는 크게 세 가지 좋은 점을 들면서 시작했습니다.

1.책값 재설정을 통한 책값 하락

2.책의 덤핑 할인 방지로 작가의 수익 보장

3.동네서점 활성화


결론은 아시겠지요. 셋 다 망했습니다. 도서정가제는 10%의 할인과 5%의 적립을 가능하게 하였고 그 때문에 오히려 오프라인이 아니라 온라인 구입을 활성화 시켰지요. 무엇보다 그 사이에 쇼핑 환경이 온라인으로 급격하게 이동한 것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책값 하락은 체감할 수 있을 정도가 아니고, 작가의 수익보장도 빈수레였지요.
도서정가제에 저도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지만 덤핑판매보다는 지금이 낫다 생각하며, 도서정가제보다는 도서의 유통구조가 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고쳐야 할 부분이 다르다는 의미입니다.


청원은 일단 두고. 그럼 협의 내용이 어떠한가가 문제입니다. 이건 출판인회의 홈페이지의 공지사항에서 확인 가능합니다.(http://kopus.org/info/NoticeRead.aspx?b_type=A&b_idx=5584)


1.베스트셀러 집계와 발표의 개정
2.도서로 제공하는 경품 및 사은품 금지, 가격 기재된 환금 가능한 유가증권 형태의 경품 및 사은품 제공 금지(영화권 등), 제3자 제공에 의한 할인은 판매가의 15% 이내로 제한, 경품과 사은품 지급시 매입원가보다 낮게 제공하는 것 금지
3.신간 발행 후 6개월이 지난 도서에 한해서만 중고도서 판매 가능, 전자책 대여는 3개월 이내로 함


1번에 해당되는 것은 비회원 구매, 대량 납품 도서라고 합니다. 그리고 한 명이 동일 도서를 중복 구매할 때도 1권만 집계한다고요. 이건 베스트셀러 만들기를 위한 의도적 움직임을 차단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ISBN이 있는 것만 베스트셀러에 집계되고 ISSN 등의 번호는 해당 안된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 엘릭시르의 『미스테리아』 같은 도서는 베스트셀러에 오를 수 없습니다.


3번도 사실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보긴 하는데. 6개월 이내의 신간은 중고도서 판매 등록 자체가 안되는 겁니다. 오프라인도 적용이고요. 그리고 온라인 서점에서 새책과 중고도서가 함께 표시되는 것도 하지 않는답니다. 이건 논란의 소지가 있어 보이네요. 품절이나 절판도서의 경우에는 중고도서가 표시되는 쪽이 이용자 입장에서는 편한데.=ㅅ=


일단 전자책은 ISBN이 있는 책만 해당됩니다. 연재소설 등은 전자책, 도서정가제 대상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이게 지난 번의 출판문화산업 진흥법 일부 개정안 문제(http://esendial.tistory.com/7045)와도 관련이 되겠지요. 그리고 이 전자책은 최대 90일까지만 대여가 가능합니다. 10년 대여와 50년 대여 등 장기 대여가 사라진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리디북스나 알라딘 같은 전자책 공급업체에서는 4월 내내 장기 대여 도서 이벤트를 벌였습니다. 저야 전자책은 무조건 소장하는 타입이라 그러려니 생각만..'ㅂ'a 무엇보다 제 경우엔 90일 동안 안 보는 책이면 평생 안 봅니다. 하하하하.;

물론 자료 형태로 들이려는 책이라면 또 다를 겁니다. 연구 목적 등으로 도서를 대여한다면야 90일이 너무 짧겠지요. 어쩔 수 없이 구입해야 하니 도서 구입비가 상승합니다.(먼산) 결국 도서관을 잘 이용하거나, 전자도서관을 이용하거나 해야할 겁니다.


문제는 2번의 경품 문제입니다. 유가증권 형태야 제가 구입하는 도서들에는 잘 없습니다. 문제는 굿즈입니다. 협의의 Q&A에는 출판사의 상품 제공만 언급해놓긴 했습니다. 이 상품은 최초 구매가나 매입원가를 기준으로, 이보다 낮게 제공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출판사가 도서에 제공하려는 상품을 개당 3천원의 원가로 제작했다면 이를 2900원에 제공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출판사에만 해당되는 것인지, 아니면 유통사에도 해당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알라딘 굿즈는 도서 유통사인 알라딘에서 제공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니까요. 현재 알라딘에서 제공하는 여러 출판사 협업 상품들은 5월 1일을 기준으로 일시적으로 이벤트 중단이 되지 않을까 생각은 합니다만..? 과연?

그리고 서점 회원 가입시 제공하는 이벤트 상품권은 1천원까지만 허용된다는군요. 다만 회원가입 이벤트 상품권이라, 알라딘 등에서 제공하는 출석 이벤트 등의 적립금도 포함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위의 링크에 들어가 PDF를 받아보시면 문의 가능한 이메일 등이 있습니다.

출판물불법유통신고센터 : cleanbook@kpipa.or.kr, 063-219-2799 / 02-3153-2788~9
대한출판문화협회 : webmaster@kpa21.or.kr, 070-7126-4737
한국출판인회의 : kopus@kopus.org, 02-3142-2336


위의 이메일로 문의를 보내면 답변이 오지 않을까 합니다.(먼산)



publisher.pdf

그리고 자료 백업 차원에서 위의 내용을 담은 '건전한 출판 유통 발전을 위한 자율협약'의 주요 내용 PDF 파일입니다.

꽤 오랫동안 기다리던 외전편입니다.

BL, 가이드버스(에스퍼), 현대.


리디북스에서 선출간 독점기간이 있었고, 그 출간소식을 보고는 본편인 『가이드의 조건』에 흥미를 갖고 본편 4권을 홀랑 읽었더랬지요. 가이드버스 소설 중에서도 손꼽게 마음에 드는 소설입니다. 본편의 이야기는 에스퍼와 가이드를 중점관리하는 센터에서 10년 전에 발생한 살인 사건에 얽힌 이야기들이 현재에 와서 다시 불거진다는 점에서는 추리소설과도 비슷합니다. 특히 지난 사건의 주요 용의자인 이한솔과 관련된 이야기는 더더욱 추리요소가 강하고요. 이한솔과 아버지의 관계, 다시 최태훈과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추리소설로서도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누가 그랬느냐(후더닛, whodonit)가 문제가 아니라 왜 그랬느냐(와이더닛, whydonit)가 중점인 이야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편의 주인공은 에스퍼인 지관영이 아니라 가이드인 최태훈이 주인공입니다.


본편을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오연입니다. 그 짝인 박승원도 마음에 들지만, 일단 오연의 이미지 자체가 제가 소설, 애니, 만화 등등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상입니다. 머리 좋고, 무뚝뚝한 인물. 거기에 핸디캡도 갖고 있습니다. 본편에서 오연은 센터의 중심인물이지만 요주의인물이기도 합니다. 10년 전의 사건의 또 다른 주요 용의자인 오진우가 오연의 친동생입니다. 그리고 『가이드의 생활』 첫 번째 외전은 이런 오연과 박승원이 만났던 때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본편으로부터 3년 전이고요. 그 다음 외전은 4년 후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오연의 이야기는 그 두 사람의 포지션(...)이 어떻게 정해졌는지, 왜 박승원이 오연의 가이드가 되었는지는 구체적으로 다룹니다. 군과 사이가 좋지 않은 센터임에도 장교가 센터 중심 인물의 가이드를 맡고 있는 것이 희한하다 싶었지요. 박승원 외에는 군인으로 언급된 센터 내 가이드는 없습니다. 군 내부에도 에스퍼가 많기 때문에 그 안에서 소화하기도 하겠지요.

박승원의 집안에 대해서는 언급이 많지 않았다고 기억하는데, 외전에서는 양쪽 집의 이야기가 더 확실히 언급됩니다. 어쩌면 군에서는 위험인물인 그 에스퍼에게 목줄을 채움과 동시에 센터 중심에 우리 편을 하나 박아 놓는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요. 페어가 깨졌을 때의 핸디캡은 가이드보다는 에스퍼에게 더 크게 작용할 테니까요. 아니, 이런 내용까지는 나오지 않으니 그저 짐작할 따름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지관영의 건강검진 에피소드입니다. 그 자체는 지관영의 흑역사로 언급할만 하나, 중요한 건 막판에 오연과 지관영이 나누는 이야기라고 봅니다. 가이드와 완전한 짝을 이룬 그 두 에스퍼는 자신의 가이드를 보내고 싶지 않을 테니까요. 자세한 이야기를 적으면 지관영이 너무 불쌍하니 슬쩍 접어둡니다. 달달한 이야기라 옆에 커피를 꼭 챙겨두시라 권하고 싶습니다.



읽다가 문득 생각난 것은 동성혼 문제입니다.

본편 뒤에 실린 외전에는 박승원과 오연의 결혼 이야기가 언급됩니다. 본편 시작에서 최태훈이 스물여덟이라는 언급이 있고, 외전은 그 3년 뒤, 서른하나입니다. 그 일년 반 전에 박승원과 오연은 결혼식을 올렸답니다. 오연이 프로포즈를 했다더군요. 그리고 거기에 이런 언급이 있습니다.

p.234/254

결국에는 끈질기게 살아남는 쪽을 선택한 그이지만, 승원은 아직도 프로포즈를 받았던 순간만큼 제 연인이 근사하게 보였던 날이 없다고 회상한다. 아직 법으로 묶이지 못한다는 것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즉, 이 때만해도 법적인 결속력은 없다는 겁니다. 동반자법이나 혼인신고 같은 것도 없다는 것이지요.


『가이드의 생활』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혼인신고 언급이 있습니다. 동성 간의 혼인신고이니, 그 사이에 아마도 법이 바뀐 걸까요. 사소한 것이라면 사소한 이야기지만 외전 어디에도 그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무엇보다 혼인신고에 대한 최태훈의 언급을 보면 동성간의 혼인신고가 전혀 문제 없는 것처럼 이야기 합니다. 그렇다면 오연과 박승원은 박승원의 사정 때문에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걸까요..? 하지만 그것도 언급이 없었고.


엉뚱한 이야기로 흘렀지만 즐겁게 읽었습니다. 그리고 후기를 보면 오진우가 등장하는 외전편이 한 권 더 나올 모양이니 기다려봅니다.



진램. 『가이드의 생활』(가이드의 조건 외전). 피아체, 2018, 2500원.


가이드버스도 대개는 SF죠.'ㅂ' 판타지를 배경으로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건 현대 + SF.

알라딘에서 신간을 훑어보다가 궁금해서 덥석 도서관에 신청했습니다. 받아 보고서야, 이 책이 TED, 그러니까 18분짜리 간단한 교육 영상으로 만들었던 것을 다시 책으로 만든 것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TED는 유명하긴 한데 영상을 선호하지 않는터라 제대로 본 적이 없습니다. 가끔 트위터에 올라왔지만 몇 분도 못 견디는 제가 그 18분을 견딜 수 있을리가요.

18분짜리 영상을 보는 것보다 시간은 더 걸리지만 이 책 한 권 읽는 것이 더 마음 편합니다. 그리고 읽는데 걸리는 시간도 그렇게 많이 차이는 안납니다. 종이책은 또 언제 어디서건 읽었다 끊었다를 할 수 있으니 그것도 좋고요.



이야기의 시작은 페루의 어느 산을 등산하고 온 꼬마가 할아버지에게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입니다. 꼬마는 할아버지에게서 아마존 어딘가에는 끓어오르는 강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꼬마는 나중에 지질학 공부를 하고 지질학과 논문을 위해서 페루 각지의 지열을 측정해 지열지도 만드는 일을 시작합니다. 대학원 프로젝트였지요. 그리고 이게 박사논문 주제이기도 합니다. 이를 위해 각지의 유정이나 가스정, 탄광을 이용하기 위해 회사를 방문했답니다. 그리고 그 때 이 끓어오르는 강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떠올리지요.

다른 학자는 이를 비웃습니다. 그런 강이 있을리 없다고요. 사실 그렇기도 합니다. 끓어오르는 강이라는 건 말그대로 굉장히 높은 온도의 온천수가 솟아 올라 흐르는 강이라는 겁니다. 온천이 솟은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마그마의 영향으로 강물이 매우 뜨겁게 데워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건 현재의 페루 환경에서, 아니 아마존 환경에서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그야말로 환상이라 생각했지요.

그러면서도 미련은 남아, 어느 날 고모를 만난 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꺼냅니다. 끓어오르는 강은 그냥 전설이지요, 라고요. 그러나 고모는 단호하게 답합니다. "아냐, 진짜야." 당황해 하는 조카 앞에서 이번에는 고모부가 거듭니다. "나도 가봤어."


그리고 이렇게 대학원생이 된 꼬마는 어릴 적 할아버지에게 들은 전설의 강을 찾아 나섭니다.


이 책은 전설의 강을 찾고 확인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기도 하지만 그 강이 흐르는 아마존의 환경보호 이야기를 담고 있기도 합니다. 아마존의 밀림은 벌목꾼들에게 철저하게 파괴되고 있지요. 아마존이 지구의 허파라는 비유를 많이 하니, 이건 허파의 공기주머니를 하나씩 잘라내는 행위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읽고 있다보면 그에 대한 통제를 하지 못하는 페루 정부에 대한 한탄과, 아마존의 정글이 완전히 망가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동시에 찾아옵니다. 인간 스스로가 폐를 잘라내고 있으니 정말로 인류는 멸망의 길로 가는가 하고 말입니다.

그런 와중에도 전설을 찾고 이를 지키고자 하는 이들이 있으니 조금은 희망이 있는가요. 아뇨,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열 경찰이 한 도둑 못잡는 것처럼, 밀림을 파괴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그리고 그들을 처벌하지 않는 한 인류 멸망의 시계는 한없이 자정으로 다가갈 겁니다.


우울한 가운데서도 약간의 희망은 남았지만, 알 수 없습니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요.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남기는 책입니다.



안드레스 루소. 『끓어오르는 강: 전설 속 아마존 강을 찾아 나서다』, 김성아 옮김, 문학동네, 2018, 13800원.


TED 시리즈라더니, 과연. 짧고 간결하게 읽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게다가 컬러라 그 강을 생생하게 사진으로 볼 수 있는 것도 좋네요. 물론 영상이 더 생생하려...나?

카우니스테라는 브랜드가 있는 모양입니다. 저는 이번에 처음 알았지만 패턴을 보니 어디서 본 것 같은 모양새로군요. 물론 마리메코를 비롯해 유사한 디자인 때문에 그리 느끼는 건지도 모릅니다.

도서관에서 다른 책을 찾아 헤매다가 우연히 꺼내보고 충동적으로 빌린 책이었지만 결론적으로는 매우 마음에 들었습니다. 카우니스테라고 하는 일본과 핀란드 합작 브랜드의 설립자가, 자신의 브랜드에 소속된 여러 디자이너들을 인터뷰하여 모은 책입니다. 어떻게 보면 광고 같기도 하지만 읽어보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소속 디자이너들의 작품들을 소개하고, 작업 방식을 보여주고, 그것이 어떻게 상업화 패턴으로 이어지는지를 꽤 자세히 소개합니다. 영향 받은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패턴을 만드는지, 그림을 어떻게 그리는지 구체적으로 나오니 이런 분야가 궁금한 사람들에게도 추천할만 합니다.


책의 시작은 브랜드 설립자인 하라다 히로유키와 협업자인 밀라 코우쿠넨이 끌어 갑니다. 어떻게 브랜드를 설립했는지, 어떤 상품을 내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그 뒤에는 같이 작업한 여러 디자이너들이 등장합니다. 각자의 생활이나 작업 환경뿐만 아니라 북유럽의 풍광도 보여주니 좋군요. 거기에 패턴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습니다. 각자 작업 방식이 다른 것도 재미있습니다. 물감과 붓을 이용하는 사람도 있고, 오려 붙이는 사람도 있고. 각각을 섞는 방식도 등장합니다. 어느 것이든 이건 핀란드 패턴이라고 떠올릴 만큼 특색있고요.



보다보면 지름신이 슬며시 등 뒤를 두드린다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잘 안쓰게 되는 것을 알면서도 식탁 매트 같은 건 하나 들여 놓고 싶군요.


하라다 히로유키. 『카우니스테 디자인』, 정영희 옮김. 미디어샘, 2016, 13800원.


앞서 리뷰에 묶어 쓰려다가 까맣게 잊고 뒤늦게 올립니다. 읽기는 이 책을 가장 먼저 읽었네요. 다만 베갯머리 책으로 읽으려다가 읽는 내내 졸았고, 막판에는 마구 책을 넘겼습니다. 얼핏 봐서는 읽는다기보다는 본다는 것이 어울리지만 실제 책장을 넘겨보면 글 있는 책보다 오히려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책입니다.


최근에 인포그래픽이라면서 책의 내용을 그림과 도표로 바꿔 소개하는 책들이 많습니다. 그런 류의 책이 쏟아졌지만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고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무엇보다 글자 중독형 인간인 제게는 그림 읽는데 오히려 시간이 더 많이 걸립니다. 그림만 보고 단번에 파악하는 것은 무리고, 그림 하나 하나의 색을 확인하고 그 옆의 재료를 봐야 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30쪽에는 각양각색의 스무디 제조법이 소개되었습니다. 물론 글로 표기하는 것보다 훨씬 간결하고, 압축적으로 보여주지만 다시 말하면 하나하나를 읽는데는 시간이 많이 듭니다. 30쪽에는 하단에 스무디 만드는 기본 방법을 흐름도로 보여주고, 그 위에 6개의 스무디 제조법이 나옵니다. 어던 것이 들어가는지는 각각의 재료 색을 보고 대강 짐작을 합니다. 그리고 실제 완성된 스무디의 색이 어떨지, 맛이 어떨지 상상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 재료는 모두 프랑스어입니다. FRAISES라든지, GLACONS라든지. 글씨 크기에 따라 재료 분량은 짐작하지만 구체적인 비율은 그 옆의 재료를 확인해야하고요.

그렇다보니 하나하나의 레시피를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이건 미리 읽고 기억했다가 그 다음에 실제 만들 때 다시 확인해야하는 그런 책인 겁니다.


그래도 색이 멋지고 디자인도 멋지니 한 번쯤 후르륵 넘겼다가 필요할 때 떠올려 찾으면 나쁘지는 않겠더군요. 베이글 샌드위치나 피자 등의 레시피도 상당히 직관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만 요리 해먹기보다는 이거 따라서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더 먼저 드는 건, 내용보다 그래픽이 먼저 와닿기 때문이겠지요.


베르트랑 로케, 안 로르 에스테브. 『인포그래픽 요리책』, 강현정 옮김. 시트롱마카롱, 2018, 18000원.


몰아 쓰다보니 이번에는 책 감상 세 건이 함께 올라갑니다. dancyu시리즈인 『日本一の卵レシビ(일본 최고의 달걀 레시피)』,『자꾸만 만들고 싶은 쿠키책』, 『오늘은 집에서 카페처럼』의 세 권이고, 읽은 순서는 쿠키-달걀-카페 순입니다.


읽은 순서대로 적어보지요.

『자꾸만 만들고 싶은 쿠키책』은 제목 그대로 쿠키 만드는 법을 소개합니다. 루스루스라고, 도쿄의 니시 아자부 주변에 있는 과자공방이랍니다. 구움쿠키, 그러니까 baked cookie이고 일본어로 燒き菓子라고 부르는 과자 종류입니다. 일본 번역서에서는 대개 구움과자라고 적더군요. 적절한 번역어는 아니라고 보지만 대체하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하여간 버터와 밀가루와 설탕과 기타 재료를 여러 비율로 섞어 구워 만드는 과자들은 매우 다양합니다. 같은 재료를 어떻게 조합하고 어떻게 배합하느냐에 따라 모양도 식감도 굉장히 달라집니다. 재료만 놓고 보면 바삭바삭하게 입에서 부서지며 녹아내리는 프랑스 과자 사브레나, 어떤 때는 바삭하고 어떤 때는 또 질기며 어떤 때는 폭신한 스콘과 핫비스킷도 같은 재료로 만듭니다. 배합 비율과 조합 순서가 다를 뿐입니다.

여기서는 그 기본부터 차근하게 가르칩니다. 버터는 녹이지 않고 크림 상태로 만들며, 밀가루를 섞을 때는 주걱으로 두 번 긋고 아래부터 뒤집어 섞는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그 기본 방법에 기초해서 굉장히 다양한 쿠키를 소개합니다. 표지부터가 이미 사람을 홀리죠.

이런 과자를 좋아하신다면 재미있게 보실 겁니다. 그리고 저는 이 책에 홀려 오븐 구매 욕구도가 10% 상승했습니다.(먼산)


『日本一の卵レシビ(일본 최고의 달걀 레시피)』는 제목 그대로 달걀로 만드는 요리들을 소개합니다. 비슷한 책들은 많은데 이 책은 묘하게 사람을 홀립니다. 아마도 달걀이 재료가 되는 요리가 아니라, 달걀이 주역인 요리를 소개하기 때문일 겁니다. 오믈렛이나 반숙달걀뿐만 아니라 프리타타, 달걀볶음밥, 샌드위치, 카르보나라 2s등등 다양한 요리를 소개하고 레시피도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게다가 사진이 사람을 홀리네요. 멀리서 초점 흐리며 찍은 사진이 아니라 내가 주역! 내가 메인! 이러면서 달걀 요리들이 유혹합니다. 견디기 매우 어려우니, 집에 들어가면서 달걀 한 판 사들고 가야할 듯 합니다.


『오늘은 집에서 카페처럼』은 조금 미묘한 책입니다. 집에서 카페처럼 여러 음료들을 만들어 먹는 책이라며 나왔는데, 보고 있노라면 이 많은 재료를 집에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인가 싶습니다. 각종 과일청은 물론이고 초콜릿이나 코코아, 커피, 크림 등등이 있어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에스프레소 만들 모카 포트와 우유 거품 만들 거품기도 있어야지요.

그냥 카페 음료 만드는 법을 소개한다고 생각하면 다른 책들과 크게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집에서 편하게 카페처럼 음료 만들어 마시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그것도 재료와 솜씨와 시간이 있어야 하는 것인데.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삐딱하게 보게 되는군요. 하하하.;ㅠ;

그래도 인스타그램 보듯 가볍게 보기에는 나쁘지 않습니다.



닛타 아유코. 『자꾸만 만들고 싶은 쿠키책』, 송혜진 옮김. 한스미디어, 2018, 12000원.

『dancyu 日本一の卵レシピ』. プレジデント, 2017, 13000원.(알라딘 기준)

박현선. 『오늘은 집에서 카페처럼』. .지콜론북, 2018, 15000원.


쿠키책은 일단 장바구니에 넣고 오븐 구입 여부를 심각하게 고려해보려합니다.

물론 BL입니다.-ㅁ-

BL, 현대.


2016년 출간작인데 출판사의 출간작 전체 판매 중단으로 알라딘에서는 4월 27일까지만 구매 가능... 아니, 그 때부터 판매 중단이었나요. 하여간 며칠 안남았습니다. 리디북스는 이미 판매 중단되었을 겁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매우 간단합니다. 하진은 홍찻집을 운영합니다. 그리고 최근에 이 홍찻집에 드나들며 홍차를 주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매우 하진의 취향이어서 어떻게든 꼬셔볼려고 노력 중이나 쉽지 않습니다. 노말인지 게이인지도 확실하지 않지만, 이름만이라도 알아두려고 해도 카드마저 법인카드를 쓰는 터라 알 수 있는 것이 매우, 매우 드뭅니다. 그나마 법인카드 덕에 회사 이름은 알았지요. 로펌에 다니는 모양이더랍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한창 놀러 다니던 때 하진은 클럽 내에서 마성의 게이로 유명했습니다. 백이면 백, 찍은 사람들은 다 넘어오는 터라 그렇기도 했지만 외모 자체도 굉장히 예쁩니다. 찻집 운영하면서도 자신에게 홀랑 넘어온 사람들이 여럿이니까요. 정말 더럽게 맛없는 하진의 홍차를 매번 찾으면서도 정보 하나 제대로 안주고 무심하게 있는 것이 또 매력적이란 말입니다.


하진이 북촌에 홍찻집을 차린 것은 로또 당첨이 된 후입니다. 별 생각 없이 했던 로또가 세금 이것저것 제하고도 81억을 남겼습니다. 그래서 북촌에 이층집을 사서 1층은 가게, 2층은 살림집으로 설계했습니다. 로또 맞아서 백수로 산다고 하면 겸연쩍으니, 뭔가 직업이라도 갖자 싶어서 1층 가게에는 찻집을 차렸답니다. 잘 아는 것도 아니고 그냥 고상해 보여서.(먼산)

하지만 돈이 있으면 뭐든 됩니다. 찻잔 구비를 위해서 백화점 가서는 가장 비싼 걸로 주세요! 라고 했다니 저도 참 부럽습니다. 거기에 세계 여행 다니면서 홍차도 이것저것 사다 놓았다고 하니까요. 다만 솜씨는 그리 좋지 못해서, 향만큼은 끝내주지만 맛은 백이면 백, 한 모금 머금고는 그대로 분사할 정도입니다. 극악의 맛을 자랑하지요.


짐작하시겠지만 이 이야기는 하진이 그 홍차남이라 불리는 손님을 꼬시는 이야기입니다. 워낙 출중한 미모를 자랑하는 하진이라, 이미 스토커에 가까운 구애자가 둘이나 있고, 하나는 돈 많은 놈, 하나는 체력이 넘치는 놈이 그 둘입니다. 하지만 대단한 홍차남은 그 둘을 아무렇지도 않게 물리치고는 하진을 차지합니다. 뭐, 하진이 트로피인 것은 아니지만 홍차남인 민선우 입장에서야 수 많은 난관을 물리치고 애인자리를 얻어냈으니 트로피라 해도 틀리진 않을 겁니다.-ㅁ-a


이렇게만 보면 참 평범한 연애담인데, 몇 가지 양념이 첨가되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첫째, 하진은 락rock 매니아입니다. 광팬이고요. 락페스티발 쫓아다니는 것은 당연하지만, 백화점에서 가장 비싼 찻잔을 갖다 놓고 한옥으로 지은 홍찻집의 배경음악이 락입니다. 주인의 심경에 따라 락발라드에서 메탈까지 자유자재로 오고갑니다.

둘째, 하진은 로또 당첨자입니다. 돈이 많지요. 그래서 주변의 방해꾼 중 누군가가 '얼마면 돼! 얼마면 떨어질거야!'를 외쳤을 때도 "저 돈 많은데요?"라는 답을 줄 수 있습니다. 한 장이 들어왔을 때, 시큰둥 하자, 두 장을 내밀었던 그 분은 로또 당첨자라는 이야기에 고이 꼬리를 내리셨습니다.

셋째, 민선우의 입장에서 보면 이야기가 또 달라집니다. 그리고 선우도 하진과 함께 락의 길을 걷습니다. 외전을 보면 서당개도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애인 몇 년차가 되니 이제 척하면 척입니다. 같이 다니더군요.-ㅁ-


이 외에 바나나라든지, 삼청파출소라든지, 종로경찰서라든지, 태릉이라든지, 제주도라든지의 이야기가 더 남아 있지만 그건 직접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구입 가능한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아쉽네요.;ㅂ;


violetcream. 『지금 그대와 나』. 청순한언니들, 2016, 2800원.


읽고 나면 홍차가 마시고 싶어진다는 것도 단점입니다. 내일은 잊지말고 출근하면서 포트 들고 와야겠네요. 꿩대신 닭이라고, 스누피라도 우려 마셔야지.-ㅠ-

처음에는 전자책 서재 정리하면서 감상 적으려 했던 것이었지만, 결국 작성하다보니 4월 전자책 구입 및 감상기가 나왔습니다.-ㅁ-a

일단 지난달 구입분에 포함된 4월 구입분 네 권부터 감상을 적어봅니다.



두나래. 『처음이라서』

BL, 현대.

결말 부분만 손대고 아직 앞은 못보았습니다. 주인공들이 엇각리다가 나이 먹고 다시 재회하는 것이라,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되었습니다. '처음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에 확신이 없었고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없었지요. 그리고 나이 먹고 나서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것은 사랑이었더라, 그런 이야기입니다. 꽉 닫힌 해피엔딩이니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중에 올라올 외전을 기다립니다.



설탕통. 『엠페러 1-3』

BL, 현대, 연예계, 아이돌, 회귀.

그리 잘나가는 아이돌은 아니었고, 나중에 합류한 멤버가 무던히도 사고를 친 덕에 결국 공중분해에 가까운 상태가 됩니다. 팀의 맏이로서 애썼지만 소용 업었던 데다, 예의 그 문제아가 또 사고를 쳤다는 소식에 급하게 차를 몰고 가다가 차 사고로 사망합니다.

그랬는데, 분명 그 기억이 확실하게 있는데 정신 차려 보니 멤버가 합류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으로 돌아왔습니다. 꿈을 꾼 것인지 어떤 건지 확신도 없는데 여러 일들은 기억하고 있는 그대로 따라갑니다. 일단은 가장 최근에 터진 사건들부터 막아야 하나, 미운정만 들었던 저 딱딱한 녀석을 왜 챙겨주냐는 생각 사이에서 한참 갈등하던 와중, 팬 편지 휴지통 투척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서서히 상황은 바뀌어 갑니다.

아이돌 소설에서 종종 보이는 회귀형 소설입니다. 리더는 아니고, 팀내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서현이, 나중에 들어와서 문제만 일으키던 준을 챙기면서 점차 기억하고 있던 것들이 바뀌어 가는 내용이지요. 조아라에서 연재 분량을 본 기억이 있는데 완결은 본 기억이 없네요. 보다가 내려 놓았던가..?



미네. 『루돌프 사슴, 콘』.

BL, 판타지, 역키잡, 산타버스?

결말을 보고서야 이게 역키잡인걸 알았습니다. 하지만 초반부터 힌트는 있었지요.-ㅁ-a

이거 B님이 보시면 좀 우실지도 모르겠는데, 초반 부분이 특히 그렇습니다. 앞부분 읽으면서 눈물그렁그렁했던 곳이 한둘이 아니거든요.

산타는 루돌프와 페어를 이루어 크리스마스 날이 되면 선물을 돌립니다. 이 설정의 소설이 여럿 있었던 걸 생각하면 이것도 세계관이 아닐까 추정합니다. 한국지부 산타인 다원은 지난 크리스마스 직후 파트너를 잃었습니다. 노환이었지만 갑작스러웠던지라 마음을 대강 추스르고 나서는 다음 크리스마스를 위해 사슴을 예약합니다. 그러나 상당한 대가를 지불했음에도, 새로 태어난 사슴은 앞 다리가 하나 없는 선천적 장애를 가졌습니다. 다른 사슴은 없다고 하니 임시로 혹은 보증 삼아서 장애를 가진 사슴을 데려옵니다.

하지만 사슴 육아는 처음이고, 아직 파트너를 잃은 뒤 몸 상태가 제대로 돌아오지 않아 제대로 돌봐주지는 못합니다. 게다가 다리가 하나 없는 사슴은 썰매를 끌 수 없는 건 둘째치고 제대로 서지도 못합니다. 어미에게 버림받았던 건 당연하고요. 유전자는 좋았지만 그런 장애가 있으니 안락사 당할 상황이었는데...

딱 잘라 말하지만 이거 꽉 닫힌 해피엔딩입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고요. 무엇보다 주인공인 콘이 한없이 해바라기입니다. 한없이 긍정적이고, 산타를 가장 먼저 생각하고, 산타를 위해 뭐든 하겠다는 마음가짐. 이거 사슴이 아니라 멍멍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그만큼 산타인 다원도 자신의 파트너에게 지극 정성입니다. 그렇게 산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사슴이 얼마나 멋진 사슴이 되는지는 직접 보시면 압니다.



하르넨. 『악녀의 애완동물 1-3』

로맨스, 판타지, 환생.

책 속 세계에 환생을 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자작가 영애라. 어떻게든 편하게 살아 남기 위해 익힌 것이 애완동물입니다. 샤샤는 그렇게 사교계의 뭇 여성들에게 참으로 귀엽고 보호본능을 불러 일으키고, 언제건 위로를 해주는 그런 애완동물로 살아왔습니다. 그러한데, 황태자의 약혼녀이자 이 세계의 악녀 포지션인 그 분, 레베카에게 홀딱 반합니다. 그리고 결심하지요. 제국을 망하게 만들 저런 황태자 따위는 원래 여주인공에게 던져 버리고 레베카는 그 나름대로 멋지게 살라고 하자-라고요.

하지만 이상하게 원작이 비틀려 있습니다. 나타난 여주인공은 원작에서 말하는 것처럼 청초한 인물이 아니고, 황태자에게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리고 뭔가를 숨기고 있는 모양인데?

나비효과처럼 샤샤라는 존재가 원작의 악녀를 바꾸고, 결국에는 원작 자체를 완전히 틀어버립니다. 그 과정에 샤샤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은 샤샤다보니 샤샤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원작과 달라진 인물 중에서 샤샤와 연이 닿지 않은 인물은 딱 한 명뿐입니다. 그건 내용 폭로라, 슬쩍 덮어두지요.



그리고 오늘 갈무리한 구입 목록입니다. 4월에도 적지 않게 샀네요. 다음 구입은 제발 5월 이후이기를 통장은 간절히 바라고 있을 겁니다.



주야노. 『이런 엔딩』.

판타지, 로맨스.

배드엔딩입니다. 각오는 하고 봤고, 애초에 시한부 인생을 걷고 있던 여주인공이 자식을 아들의 생부에게 보내면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전 남자친구는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고, 여주인공은 죽기 전에 아들을 맡길 사람이 그 밖에 없어서 보낸 것인데, 예상치 않게도 전 애인이 자신을 붙듭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해피엔딩과 언해피엔딩이 나뉠 수도 있고, 무엇보다 외전에서 결말 분기가 또 갈립니다.



하예지. 『왕이시여 바라옵건대』

판타지, 회귀.

BL일지 로맨스일지. 단편이라 일단 판타지로 달아둡니다. 결말의 호불호가 상당히 갈릴 수 있네요.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명군이나 성군은 아니지만 나쁘지 않은 왕인 마코르. 하지만 그는 죽음과 함께 정신을 차리고 다시 하루를 시작합니다. 자살임은 확실하나 왜 자살인지도 모르게, 끝없이 하루를 반복합니다. 반복되는 날들에서 실마리를 하나씩 잡아 전과는 조금씩 다른 행동을 취하지만....

...

이렇게 보고나니 제게는 불호에 가깝군요. 마지막의 장면은 그야말로 데우스엑스마키나입니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등장인물들이 참 안타깝습니다.



새벽바람. 『얼음 호수 아래 그림자 2』

BL, 판타지, 동양판타지, 차원이동.

이것도 아마 클리셰..? 3만원 맞추려고 고민하다가 충동구매한 책입니다. 1권과 2권을 두고 한참 고민했는데, 정치극에 가깝다는 이야기가 있어 2권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러길 잘했네요. 스캔들 때문에 두문불출하고 집에 있던 수오는 언 호수에 빠졌다가 다른 세계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자신과 얼굴이 같은 서율이라는 수배범으로 오해를 받아 감옥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자신이 좋아하던 선배와 얼굴이 같은 황제를 만납니다.

.. 순서상으로는 이걸 나중에 작성했는데, 아래 작성한 미코노스作 『약사의 황제』와 유사합니다. 하지만 이것도 클리셰니까요.

이쪽은 정치극의 분위기가 강합니다. 『약사의 황제』는 내궁 암투극에 가깝지만 이 소설은 그보다는 더 정치적 암투? 더 큰 차이는 얼굴이 같은 인물의 존재 여부입니다. 수오와 얼굴이 같은 서율이 저지른 사건이나, 그렇다면 서율은 어디에 있느냐는 문제는 2권에서 다 풀리거든요.

이쪽도 해피엔딩입니다.



겸연. 『명작성인동화 1』.

BL, 판타지, 단편집.

명작동화를 기반으로 한 판타지 BL입니다만, 첫 번째편인 라푼젤을 읽고는 고이 내려 놓았습니다. 제 취향이 아니었습니다. 핫핫핫...(먼산)



가막가막새. 『폭력의 잔재』.

BL, 현대.

종이책 구입한 뒤 전자책은 미루고 있다가 이번에 다시 구입했습니다. 찬찬히 처음부터 읽어야겠네요.



한민트. 『디어 마이 아스터』.

판타지, 로맨스, 회귀.

읽어보고 알았습니다. 외전이 중요했네요. 조아라 연재 당시에는 아스터의 이야기가 상대적으로 덜 나와서 몰랐는데, 외전이 본편의 여러 수수께끼를 다 풀어줍니다. 회귀의 이유가 무엇인지, 아스터가 태어난 그 뒤의 이야기 등등. 그걸 보고 나서 아스터가 떠난 그 뒤의 짧은 이야기를 보면 느낌이 또 다릅니다.

어, 그러니까 본편 내용을 먼저 적어야지요.

자작가의 딸로 태어나 선을 봐서 결혼했지만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자기 중심적이고 뭐든 자기 입맛대로 휘두르는 시어머니가 있고, 남편과의 사이에서는 딸만 하나 있었습니다. 남편이 바람 안 피우는 것도 아니라 그저 딸 하나만 보고 잘 키웠지만 결혼식을 앞두고는 마차 사고로 사망합니다. 후회되는 것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무난하고 평탄하게 살았다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아직 학교 졸업하기도 전의, 선을 보기도 전의 그 때로 돌아와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결혼하면 딸을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이라 딸을 만나기 위해서는 마음에도 없는, 남편과의 결혼을 해야한다 생각하고 있지만 그래도 그 시절 딱 한 번 설레었던 사람을 만나니 흔들립니다.


미리 적어두지만 이것도 꽉 닫힌 해피엔딩입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고요.



류진리. 『간이역』.

BL, 현대.

결말만 확인하고 닫았습니다. 모님 추천으로 장바구니에 담았는데, 만만치 않은 내용이네요. 결말을 보면 앞 내용을 대강 짐작할 수 있는데 과연 읽을 수 있을지.OTL 무엇보다 결말의 그 장면을 보고는 왜 추천했는지 이해가 가더랍니다. 인물들의 감정선 묘사가 매우 섬세하고, 읽다보면 '아, 이게 한국문학.'이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그 장면만으로도 추천이 이해되고, 추천할만한 작품입니다. 그러니 언젠가는 읽을 수 있겠지요.



미코노스. 『약사의 황제 1-2』

BL, 판타지, 차원이동.

판타지세계의 신이 주인공을 차원이동시켰습니다. 그리하여 제약회사 영업직이던 주인공은 각종 약과 물품이 들어 있던 가방과 함께 떨어져 제국을 개혁합니다.

끝.

클리셰적인 이야기를 잘 풀어내는 건 클리셰에 어떤 살을 붙이느냐에 따라 달라지지요. 황제가 주인공의 짝사랑 상대와 얼굴이 꼭 닮았다는 것이나, 차원이동해서 신전을 등에 업었던 것이나, 자신의 전공과 직업을 살려 제국을 개혁하는 것은 클리셰입니다. 제약회사 영업직에, 가방을 들고 가서 벌어지는 개혁이 양념인 셈이지요.



꽃낙엽. 『애인있어요 1-3』

BL, 현대.

소장본 구입을 한 터라 전자책 구입을 미루다가, 곧 내려간다는 말에 덥석 구입했습니다.



미코노스. 『만져지는 시간』

BL, 현대, 가이드버스.

이전에 교보에서 구입했다 알라딘 재구입은 미루고 있었는데, 마찬가지로 곧 내려간다는 말에 덥석 구입했씁니다.


두나래. 『처음이라서 1-2』. 고렘팩토리, 2018, 각 3천원.

설탕통. 『엠페러』(1-3 세트). 마담드디키, 2018, 9천원.

미네. 『루돌프 사슴, 콘』(1-2 세트). W-Beast, 2018, 6400원.

하르넨. 『악녀의 애완동물 1-3』. 파피루스(디앤씨미디어), 2018, 각 5400원.

주야노. 『이런 엔딩』. 제로노블, 2017, 2500원.

하예지. 『왕이시여 바라옵건대』. 노벨레테, 2018, 800원.

겸연. 『명작성인동화 1』. 피아체, 2018, 3천원.

가막가막새. 『폭력의 잔재』(1-2 세트). B&M, 2016, 7600원.

한민트. 『디어 마이 아스터 1-2』. 루시노블, 2018, 2018, 각 3500원.

류진리. 『간이역』. 청순한언니들, 2015, 2800원.

미코노스. 『약사의 황제 1-2』. 청순한언니들, 2016, 각 2800원.

꽃낙엽. 『애인있어요 1-3』. 청순한언니들, 2016, 각 2800원.

미코노스. 『만져지는 시간』(1-2 세트). 청순한언니들. 2016, 각 3500원.

새벽바람. 『얼음 호수 아래 그림자 2』. 더클북컴퍼니, 2018, 3500원.


『악녀의 애완동물』이 디앤씨 책이었군요. 여기 출판사 책 내내 피하고 있었는데..=ㅅ= 다음에는 출판사도 꼭 확인해야겠네요.

청순한언니들 출간작은 알라딘 기준으로 4월 27일까지만 판매됩니다. 리디북스는 20일까지만 판매였으니 이미 종료되었을 거고요.


장바누의 『스푸너』는 아직 읽지 않았고, violetcream의 『지금 그대와 나』는 따로 간략 감상을 작성할 생각입니다.'ㅂ'

확인해보니 2018년 이후에는 출간도서가 없습니다. 일단 알라딘 기준이긴 한데, 제가 좋아하는 여러 책들이 나온 출판사라 아쉽네요.


어제 트위터 타임라인에-정확히는 오늘 새벽 트위터 타임라인을 보고 확인했습니다. 모님이 출간작품 하나를 추천하는데 분위기가 이상하다 했더니 해당 책을 출간한 출판사가 4월 20일 판매 종료한다고 했던 모양입니다. 그게 '청순한언니들'이었고요. 전자책 출판사는 워낙 많다보니 특별히 기억하는 곳 외에는 작품과 출판사를 잘 안 잇는데, 여기는 이름이 독특한데다 제가 가이드버스에서 손꼽는 소설인 『쉐킷쉐킷』을 출간한 곳입니다.

알라딘에서 찾아보니 총 78종의 책이 있습니다. 그 중 책 체험판과 낱권, 세트가 있어 실제 종수는 더 줄어들지만 대강 훑어서 다섯 종을 장바구니에 추가했습니다. 소장본으로만 구입하고 전자책은 미루던 『애인있어요』도 그렇고, violetcream의 책도 미처 확인 못한 것이 있어 추가했고요. 그리고 탐라에 올라온 추천작 『간이역』이랑 목록 훑다가 추가한 『약사의 황제』도 있습니다. 미코노스의 책도 상당수 여기서 출간된 것 같으니, 좋아하는 분들은 미리 구입하시기를. 저도 오늘 중으로 장바구니 한 번 더 털 예정입니다.

같은 SF라도 분위기는 매우 다릅니다. 제가 좋아하는 SF는 대체적으로 밝고, 긍정적이며 한없이 낙천적인 무언가입니다. 지금까지 읽은 중에 가장 추천하는 SF는 『대우주시대』이며 『Tear&Dear』도 좋아하지만 이건 19금이니까요. 그렇다보니 SF 단편집은 높은 확률로 실패합니다. 이전에 과학소설상 수상작품집도 그렇고 이 책도 그렇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SF와는 거리가 있더군요.


각 이야기는 서로 다르며 SF라는 주제 아래 다른 색으로 모였습니다. 어떤 소설은 유머러스하며, 어떤 소설은 절박하고, 또 어떤 소설은 철학적 질문을 던지며, 어떤 소설은 강합니다. 어떤 소설은 읽지 못하고 고이 건너 뛴 것도 있습니다. 워낙 제각각이라 읽고 난 뒤의 감정을 뭐라 정리하지 못하고 맨 마지막의 해설을 읽고 나니, 그제서야 소화가 된 듯 모든 이야기들이 정리됩니다. 어떤 이야기는 해설을 읽고 나서야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이해가 되기도 했습니다....(먼산) 이건 제 이해력이 부족했기 때문일 겁니다.


색이 각각 다르지만 또, 어느 날 문득 떠오를만한 그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야기 전개는 절대 취향이 아닌데도 문득 떠오를 것 같은 이야기도, 딱 그 장면만 남아서 언젠가 머릿 속에 떠올라 그 소설 뭐였더라 생각날 법합니다. 그럼에도 여기서 제일 마음에 든 소설은 무엇이냐 묻는다면, 없었다고 답할 겁니다.(먼산2)


파출리, 박애진, 전혜진, 권민정, 양원영, 남유하, 아밀, 이서영, 전삼혜, 박소현, 심완선. 『여성작가 SF단편모음집』. 온우주, 2018, 15000원.


그래도 다양하게 읽는다는 것은 좋은 것이니까요.=ㅁ= 반쯤은 '읽어 주어야 해!'라는 의무감으로 읽었습니다.

책은 참으로 예쁘고, 예전이라면 재미있게 읽었을지 몰라도 지금의 제게는 여러 모로 불편한 책이었습니다.


미야시타 나츠는 작가입니다. 소설가로 데뷔했지만 여러 잡지에 에세이 등을 기고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세 아이의 어머니이기도 합니다. 막내는 초등학생이고 맏이는 중학교 3학년입니다. 남편을 포함하여 다섯명의 이 가족은 어느 날 갑자기, 신들이 노는 정원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홋카이도의 도무라우시라는 마을로 산촌유학을 갑니다.그 직전까지는 아이들의 학교를 고려하여 오비히로로 방향을 잡았지만 갑자기 남편이 방향을 틀었습니다. 더 외진 곳, 더욱더 자연에 파묻힐 수 있는 곳으로 가자고요. 그곳이 다이세츠산국립공원, 그러니까 아사히카와보다 더 남쪽, 대설산(大雪山) 자락에 있는 도무라우시였던 겁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곰 나옵니다. 직접 목격한 적은 없지만 마을에 곰들이 왔다 갔던 적이 있다더군요. 마을이 작으니 학교도 매우 작아서, 초등학교 겸 중학교가 하나 있고, 큰아들은 혼자 중3입니다. 그러니 도무라우시로 가기까지 주변의 만류가 상당했던 모양입니다. 양가 부모님 중 한 쪽은 알아서 해라라는 반응이었지만 다른 한 쪽은 매우 반대했다고요. 그리고 그 쪽이 시댁이었던 모양입니다. 왜 그런 곳에 가느냐, 다른 손자는 이번에 진학고로 갔는데 왜 너희는 이 중요한 때...! 라든지. 거기에 대놓고 "댁의 아드님이 도무라우시를 찍어서 가는 겁니다."라고 대꾸는 안했다고 합니다.(먼산) 소설이었다면 그랬을지 몰라도 현실에서는 그런 소리 하면 연을 끊자는 것일 수도.....


이사비용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가는 것이라 지원비가 전혀 안 나오는데, 이사업체의 견적이 편도 120만엔. 120만원이 아니라 120만엔이었습니다. 허허허허. 왕복 생각하면 머리 아프지요.


그래도 가서는 상당히 재미있게 보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이 책을 쓴 것이 2015년, 그 이듬해인 2016년에는 일본서점대상을 수상합니다. 2012년의 소설도 서점대상 후보에 올랐다더니, 수입은 적지 않지 않았을까 추측해보지만 알 수 없지요.

솔직히 여기서 다른 행간을 읽었지만 그 부분은 어림짐작이니 함구합니다. 다만 이런 행간에서 느껴지는 곳, 여기저기에서 상당히 불편했던 것이 이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딱 잘라 말하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짐작이긴 하나,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고 홋카이도에서 산촌유학을 하겠다고 하고, 거기서 어떤 일을 하는지는 언급이 거의 없습니다. 일자리 면접보러 간다는 이야기는 초반에 나오더군요. 물론 1년 뒤에는 다른 회사에 자리를 잡아 취직하지만 그 때도 홋카이도의 다른 오지로 다시 여행을 떠납니다. 그 때는 다른 가족은 못가고 남편 혼자만 가지만, 그런 부분을 읽을 때 제 머릿 속에 떠오른 것은 하나입니다. "나는 自然人이다."

...

저 그 프로그램 굉장히 싫어합니다. 여러 맥락으로 아주 싫어합니다. 그러니 그 싫어하는 프로그램을 떠올리는 이 책은 좋아하기 참 어렵더군요. 허허허.



그리고 이하는 이 책을 좋아할 수 없는 두 번째 이유입니다. 이 부분은 책에서 옮겨 적은 것이라 꽤 길어질 것이니 접어둡니다.




미야시타 나츠. 『신들이 노는 정원』, 권남희 옮김. 책세상, 2018, 15000원.


책 표지는 참 예쁩니다.(먼산)


뭐라해도 산골 마을에서 가족들이 좌충우돌하며 지내는 이야기를 좋아하신다면 재미있을 겁니다. 하지만 한국은, 시골에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대강 알고 있기 때문에, 한국 상황에 투영하시면 안됩니다. 한국의 시골과 일본의 시골은 꽤 다르지요. 지역마다, 사람마다 또 다르겠지만 일단 한국의 시골에 산다는 것은...(하략)

고시마 유스케라는 청년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건축 공부를 하고, 더 많은 것을 보고 싶어 독일 유학을 선택해, 몇몇 건축사무소에 신청했다가 근 4년간 독일에서의 건축 경험을 쌓습니다. 그리고는 일본으로 돌아와 건축사무소를 차리게 되었지요. 일본에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마작 모임에 초대됩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대학시절의 인연으로 알고 있던 야마모토 고지 화백이 마작 모임에 초대를 해준 겁니다. 그 자리에, 고시마 유스케가 오랫동안 팬이었던 연구자이자 저술가 우치다 다쓰루가 온다면서요. 평소 흠모하던 분이 온다는 말에 고시마는 덥석 초대를 받아 들여 마작 모임에 갑니다. 그리고는 거기서, 우치다 다쓰루의 집을 짓게 됩니다. ... 정말로요.


집짓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굉장히 뜬금없습니다. 마작 모임에서 친구가 데리고 온 젊은 건축가, 그것도 햇병아리에 햇콩 수준인 신예에게 자신이 은퇴 후 살 집을 지어달라고 한 겁니다. 그것도 아주, 매우 복잡한 용도의 집입니다. 그게 가능한가 싶은데 읽다보면 가능했던 모양입니다. 거기서 집짓기를 맡겨달라, 그러겠다는 이야기가 오갑니다. 토지를 구입하면 연락하겠다고 하더니, 정말로 집 지을 땅을 찾았다는 메일이 오고 그렇게 집을 짓게 됩니다.

...

농담 같지만 정말입니다. 다 읽을 즈음에야 건축주인 우치다 다쓰루-책 표기는 우치다 다츠루. 다른 곳에서는 우치다 타츠루-가 한국에도 상당히 알려진 학자라는 걸 알았습니다. 유명한 저술가라 알았다는 이야기가 책 머리에도 있었지만 그냥 넘어가다가, 몇몇 책의 제목이 익숙한 것 같아 트위터에 검색을 해보니 꽤 유명한 모양입니다. 트위터에 검색을 한 건 제 주변 사람들 중에 혹시라도 이 작가를 언급한 사람이 있을까 해서였는데 아닌 모양입니다. 하기야 책 내용이나 기타 등등이 제 팔로워들이 읽을 것은 아니었지요. 으음. 제일 가능성이 높은 ... 아냐. 그 분도 이런 쪽은 안 보실거야.


하여간 이 책은 그렇게 시작해, 땅을 확인하고 건축주의 의향에 맞춰 설계를 하고, 설계 안을 확정한 다음, 집을 짓는 이야기입니다. 집도 일반적인 공법이 아니라 일본 전통건축 방식을 섞습니다. 나무를 주로 사용하는 목조건축이고 거기에 흙을 사용해 미장을 합니다. 이전에 다른 책 리뷰할 때 언급했던 공무점이라는 단어도 여기서 계속 등장합니다. 사실 이건 공무점이 아니라 한국에도 해당되는 다른 단어로 바꿔도 좋지 않을까 싶었는데, 일본건축과 한국건축은 또 다르니까요. 완전히 같다고 할 수는 없으니 섞어 쓰는 것이 옳지 않은지도 모릅니다.


집을 짓는데는 나무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나카지마 공무점은 골조를 포함한 시공 전체를 담당하고, 나중에 방화문제로 나무벽이 아니라 흙벽을 사용하기로 하여 업체를 수배합니다. 또 기초 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하중이나 기초를 위해 구조 설계를 전문 업체에 맡기기도 하고요. 구조설계를 단단히 하고, 목골조를 올리고, 흙벽을 올린 뒤에는 내장도 봐야지요. 커튼은 텍스타일 전문가에게 맡기고, 가구도 들입니다. 거기에 앞부분에도 나왔던 야마모토 고지가 다시 등장합니다. 집에 있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였지요. 무얼 그렸냐고 하면, 오이마츠. ... ... 그러니까 우치다 다쓰루의 집은 단순한 주택이 아닙니다. 1층은 우치다 다쓰루가 합기도 도장으로 사용하며 그 부인이 노 공연을 올리기도 할 도장과 노 공연장의 겸용 공간이고, 그 위에 서재를 겸해 서생들도 함께 쓸 공부 공간이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공간도 있긴 합니다. 이런 곳이기 때문에 노 공연장에 있는 그 소나무 그림을 야마모토 고지가 그린 거랍니다.


그림 이야기를 끝으로 이 책의 짧지 않은 이야기도 끝납니다. 아니, 하나 더 있습니다. 집이 완성된 4개월 뒤에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이 집을 방문합니다. 우치다 다쓰루와도 여러 번 만났던 모양이군요. 그리하여 건축가인 고시마 유스케와, 건축주인 우치다 다쓰루, 그리고 손님인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집을 둘러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슬램덩크』나 『베가본드』의 연재와 관련된 이야기도 다수 등장합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역시,

P.279

고시마 유스케: 건축에서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을 향한 상상력을 발동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노우에 씨가 만화를 그릴 때는 누구를 향하여 또는 무엇을 향해 그리는지요? 구체적인 독자의 모습이 머릿속에 들어 있는지요?

이노우에: 누구를 향하여? 글쎄....

우치다: 염두에 둔 독자가 있나요?

이노우에: 있다면 그것은 제 자신인데요.

우치다: 아, 그래요? 나도 그런데요.(웃음)

이노우에: 그렇습니까?(웃음)

우치다: 예상 독자라고 할까, 자신이 읽고 싶은 것을 누구도 써주지 않으니까 어쩔 수 없이 내가 쓸 수밖에요. 이노우에씨는 어떤가요?

이노우에: 슬램덩크는 바로 그거였어요. 농구 만화가 없는 게 좀 억울해서요.

(하략)

이 부분이었습니다. 읽고 싶은 것이 없으면 본인이 쓰는 수밖에 없군요. 허허허허허.



맨 마지막의 대담도 재미있었고, 글도 전체적으로 재미있습니다. 일본건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재미있게 볼 수 있었고요. 이전에 읽었던 야마시타 카즈미의 ‘지어보세 전통가옥!’은 건축주 입장에서의 좌충우돌이라면, 이쪽은 건축가 입장에서의 이야기입니다. 이 집도 전통기법을 사용해서 그런지 이 책이 떠오르더군요.

고시마 유스케. 『모든 이의 집』, 박상준 옮김. 서해문집, 2014, 15000원.

앞부분은 컬러지만 책 중간은 다 흑백이라 사진이 아쉬웠습니다. 가격이 더 올라가더라도 컬러였다면 더 자세히 볼 수 있었을 건데요..!

『마녀의 귀환』은 지난 달 리뷰에 포함되었습니다. 그러니 그 바로 위부터 챙기면 되네요. 4월에 구입한 네 권은 이후에 올리겠습니다. 가능하면 개별 감상문 올리는 것이 좋은데 말입니다. 게으름 덜 피우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하하하.


얼리버드. 『장미 의상실』

BL, 오메가버스, 현대.

페로몬 조절에 난조를 보여서, 더 정확히는 오메가 페로몬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문제가 발생해서 고향에 돌아왔습니다. 이모저모 스트레스는 받지만 그 스트레스 받는 걸 마을에 하나 있는 의상실의 디자이너에게 풉니다. 옷에 트집을 잡는다든지 단추를 달아달라고 쳐들어 간다든지 하는 식으로요. 알파지만 순한 편이라 그런지 투덜거리면서 받아줍니다. 예상할 수 있는 전개로, 그 두 사람이 몸 맞고 눈 맞아서 연애하는 것이 주요 내용입니다. 읽고 있다보면 시골 생활의 무서움(...)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하하하.



윌브라이트. 『꽃은 나비를 찾아 피지 않는다』

로맨스, 판타지.

솔직히 말하면 앞은 건너 뛰고 뒤만 보았습니다. 그도 그런게 원수 집안의 아들을 계획적으로 유혹해서 무너뜨리려고 했다가 사랑에 빠지는 내용입니다. 앞부분 이야기는 집안이 완전히 무너지면서 여주인공 혼자 살아 남는 부분이라, 주인공만 살아 남고 집안의 모든 사람이 사망합니다. 간신히 혼자만 빠져나와 아버지의 친구인 후작 집안에 양딸로 들어가 지내게 되는데. 그 뒤에 집안의 복수를 위해 원수 집안인 공작가의 아들을 유혹하겠다며 아카데미에 남장하고 들어가지요.

제가 본 것은 복수들이 다 끝난 그 뒷부분입니다. 그 뒷부분을 보는 것만으로도 음.... 앞을 견뎌낼 수 있을지 장담못하겠더라고요. 남자주인공은 후처의 아들에게 밀려 후계자가 되지 못하고 구박만 받는 상황이었던데다 그 학대의 수준이 상당했던 모양입니다. 상황 종료 후의 이야기가 언급되는 걸 보면 그런 트라우마에 대해 굉장히 고민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러니 이 둘이 마음 고생하는 걸 과연 읽을 수 있을까 생각하고는 잠시 미뤄두었습니다. 언젠가 읽을 것이 부족하면, 예전에 다른 소설 읽을 때 그랬듯이 조금씩 앞으로 당겨 읽어가며 확인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전체 10장인 소설이라면 9-10장을 먼저 읽어 소설 결말이 해피엔딩임을 확인하고, 그 다음에는 8-10장을, 그 다음에는 7-10장을, 그 다음에는 5-10장이나 아예 1장부터 차근히 읽는 식으로 말입니다. 적고 보니 온천 들어갈 때 발끝부터 적시는 것과도 비슷하군요. 심장의 단련이 필요합니다. 흠흠.



밤바담. 『고양이는 아홉 번을 산다』

BL, 판타지.

종이책으로도 두 권 구입했지만 전자책도 샀습니다. 전자책에는 베드신 포함 외전이 추가되었습니다. 몇 번 보아도 귀엽지요.(흐뭇) 아. 잊지말고 고양이 먹이 챙겨주겠다 하고는 까맣게 잊었습니다.

트위터에서 잠시 언급했던 '베드신 없은 좋은 작품'으로는 이 책을 추천합니다. 두 권 산 것도 그래서였고요, 19금 지정도 안되어 있고 고양이들과의 잔잔한 일상을 다룬 책이라 추천하기 좋습니다. 베드신 묘사가 덜하고 잔잔한 작품을 찾으라면, 이번에 출간되는 『Dream of Winter』. 이쪽은 베드신이 있지만 슬쩍 넘어갑니다.



양효진. 『플레누스』

로맨스, 판타지.

앞서 리뷰 올렸습니다. 식문화 중흥의 책무를 받잡고 대지의 여신님이 친히 데려와 판타지 세계에 환생한 에우데모니아가 대륙의 식문화 판도뿐만 아니라 경제 판도, 정치 판도까지 싹 뒤집어 엎는 것이 주요 내용입니다. 1부는 읽다보면 매우 배가 고파지니 옆에 야식이든 간식이든 준비해놓아야 합니다. 그러고 보니 감자. 여름감자 나오면 잊지말고 꼭 한 상자 들여서 잔뜩 해먹을 겁니다.=ㅠ=


진램. 『가이드의 조건』

BL, 가이드버스, 현대.

이것도 리뷰 올렸지요.

내내 상성 맞는 에스퍼가 없어서 결국에는 가이드 매칭 검사 자체를 거부했다가, 우연히 만난 에스퍼에게 찍혀서 코 꿰인 가이드가 주인공입니다. 리디북스에 외전이 나온다는 말에 본편이 궁금해서 찾아보았다가 외전만 기다리는 중입니다. 그러고 보니 구입하고 읽는 사이에 책 표지가 전면 교체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일러스트 표지였고 변경 후에는 디자인 표지입니다.



사봄. 『둘이어서 좋은 이유』

BL, 오메가버스, 현대, 할리킹.

베타였다가 뒤늦게 오메가로 발현된 한국계 프랑스인 줄리앙. 오메가로 발현된 뒤에는 파양 당하고, 위탁소를 거쳐 다시 다른 집에 입양됩니다. 그리고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혼자 생활하던 중, 어릴 적 알고 지냈던 알렉과 만납니다. 베타였던 지라 알파나 오메가에 대한 교육은 전혀 안 받았고, 그 때문에 첫 히트사이클을 악몽으로만 기억하고 있었던 터였지요. 그 악몽 같은 일은 알렉과도 관련이 있었지만 다시 만나면서 조금씩 관계도 변합니다.

할리킹의 정석을 따르는데다 갈등 구조도 낮아 마음 편히 읽을 수 있습니다.



산달목. 『용의 둥지』

BL, 판타지. 떡대수.

읽기 전에는 긴가 민가 했는데, 다 읽고 나니 조아라에서 보았던 소설입니다. 황실 기사단장을 하다가 은퇴하고 고향에 내려왔는데, 키우다시피 했던 황태자가 쫓아옵니다. 잘 달래서 돌려 보내려 했는데, 알고 보니 황태자는 인간이 아니고 용이며, 자신에게 알을 낳아달라고 합니다.

키워드에 임신수도 넣을까 했는데 임신하는 내용은 없고 인큐베이터 같은 것을 사용하니 슬쩍 빼도 되지 않을까요.'ㅂ'

흑막이 의외였습니다. 흠흠.



라그돌. 『Remedy』

BL, 현대.

주인공의 이름이 옛 직장동료 이름과 같아서 집중하기 어려웠던 소설이 전자책으로 나왔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보니 좋더군요.

일가친척이 없어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 혼자 삭월셋방에서 생활하는 최윤형은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합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도 별 변화가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이사장 손자이자 국회의원 아들이라는 담임을 만나고, 개인적인 사정이 더해지면서 담임의 집에 들어가 입주 가정부와 비슷한 생활을 합니다. 가정사 때문에 고생했던 윤형이가 아주 오랜만에, 평범한 일상이라는 것을 누리면서 시작되는 연애담.

저 소설 나올 때는 아청법이란 게 없었습니다. 지금 기준에서 보면 문제의 소지가 있지만 옛날 소설이니까요. 하여간 그 당시 유행하던 교사×학생의 소설입니다. 읽을 때마다 탕수육이 땡기는 무서운 소설이지요.



제이비. 『사랑에 빠지다』

BL, 판타지, 차원이동, 빙의.

애인에게 배신당한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교통사고로 사망. 그리고 정신 차려보니 판타지 세계의 황후에게 빙의했습니다. 황후인데 남자. 게다가 이 세계 자체가 멸망 직전의 상황인가봅니다. 빙의한 사실을 감추고 그냥 기억 상실인 것으로 포장해서 버티는 것도 쉽지 않은데, 황제에게 소박맞고 황제의 애첩에게도 괴롭힘을 당하니 쉽지 않습니다.

과거, 애인에게 배신당했던 때의 일과 현재의 이야기가 번갈아 진행됩니다.



한국여성의전화. 『2018 대한민국 여성백서』

제목 그대로 백서입니다. 알라딘에서 무료로 다운 받을 수 있어 함께 구입했고 아직 읽지는 않았습니다. 읽어야 하는 다른 자료들도 잔뜩 쌓여 있어서 밀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시작한 작업 때문에 정독해야 마땅한 책입니다. 크흑. 이거 읽고 버틸 수 있을까요. 속쓰릴 것 같으니 미리 위장약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얼리버드. 『장미 의상실』. 피플앤스토리, 2018, 3800원.
윌브라이트. 『꽃은 나비를 찾아 피지 않는다』 1-2(세트). 루시노블, 2017, 8000원.
밤바담. 『고양이는 아홉 번을 산다』 1-2(세트). 시크노블, 2018, 6400원.
양효진. 『플레누스』 1-7(세트). 가하에픽, 2018, 15600원.
진램. 『가이드의 조건』 1-4. 피아체, 2016, 각 3천원.
사봄. 『둘이어서 좋은 이유』 1-2(세트). 블리뉴, 2018, 5500원.
산달목. 『용의 둥지』. 피아체, 2018, 3500원.
라그돌. 『Remedy』. 더클북컴퍼니, 2016, 2800원.
제이비. 『사랑에 빠지다』 1-2(세트). 시크노블, 2018, 6400원.
한국여성의전화. 『2018 대한민국 여성백서』. 한국여성의전화, 2018, 0원.


자, 다음에는 4월 4일에 구입했던 저 책들의 리뷰를 차례로 올리겠습니다.-ㅁ-/

아, 간만인 것은 요리책이 아니라 감상 올리는 건가요.=ㅁ=


신간 체크 하며 신청했던 책들이 들어온 걸 덥석 빌려왔습니다. 한 권은 잼 책이고 다른 한 권은 마들렌입니다. 어느 쪽이거나 지금까지 비슷한 책을 여럿 보았으니 약간은 삐딱한 시선으로 평가하듯 보게되는데, 둘 다 괜찮은 책입니다. 특히 마들렌은 구입 여부를 진지하게 고민중이고요.


『투명한 잼』은 알맹이가 살아 있는 잼을 중심으로 해서 프리저브와 마말레드도 함께 다룹니다. 평소 알고 있는 잼과는 많이 다른게 특징입니다. 그러니까 뭐든 과일에 펙틴 등을 추가하여 가열해 만든 것은 잼이고, 프리저브는 과육의 약 1/3을 으깬 것입니다. 마말레드는 과육의 껍데기를 함께 사용하는 것이고요. 그러니까 잼 자체도 과육을 으깨지 않고 살려서 만듭니다.

가장 처음에 소개되는 것은 딸기잼이고 만드는 법도 일반적인 방법과는 다릅니다. 보통은 잼만들 때 이런 과정을 거치지요. 딸기를 예로 들면,

1.딸기에 설탕을 뿌려 재워둔다. : 짧게 하기도 하고 하룻밤 재우기도 한다.

2.설탕 뿌린 딸기를 냄비에 넣고 가열한다. : 『어제 뭐 먹었어』는 딸기의 색이 빠져서 회백색이 되었다가 다시 루비빛으로 돌아올 때 불을 끕니다.

3.열탕소독한 병에 담고 밀봉한다.

의 순입니다. 이 책은 그 과정에 하나가 더 추가됩니다.


2-1.설탕 뿌린 딸기를 냄비에 넣고 가열한다. 그리고 볼에 옮겨 담아 랩을 표면에 밀착한 상태로 하룻밤 둔다.

2-2.하룻밤 재운 끓인 딸기를 다시 냄비에 넣고 가열한다.


설탕은 대략 1/3을 1차 가열 때 쓰고, 2/3은 2차 가열 때 씁니다. 랩을 씌우는 것은 거품을 한 번에 제거하고 미생물의 발생을 막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하면 과육이 으깨지지 않고 그대로 살아 있는 잼이 되는군요.


딸기 뿐만 아니라 다양한 잼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어떤 것이든 2-1과 2-2의 과정으로 나누어 가열합니다. 독특하지요. 거기에 딸기잼 만들 때도 펙틴을 첨가한다는 것이 또 특이합니다. 보통 딸기잼은 그냥 만드니까요.=ㅠ=



해피해피레시피는 제과수업도 함께 하는 과자집 이름입니다. 정자동 쪽에 매장이 있는 모양인데, 최근에는 과자집 순례고 뭐고, 주말에는 집에 뻗어 있기 바빠서 소식이 늦습니다. 아마 정원사님은 이미 알고 계시지 않을까 싶...ㄱ- 이글루스는 거의 안 들어가고 있으니까요. 흠흠.


이 책에서는 기본 마들렌을 제외하고 총 15개의 변형 마들렌을 소개합니다. 유자, 말차, 초콜릿, 초콜릿&헤이즐넛, 베리베리, 아몬드&크랜베리, 인절미, 래밍턴, 크렘브륄레, 트리플치즈, 슈톨렌, 고르곤졸라&꿀, 당근, 티라미수, 조청유과가 변형 마들렌입니다. 이름만 들어도 웃음이 나올 것 같은게, 다른 곳에서는 본 적 없는 마들렌이 대부분입니다. 다른 곳은 변형이라고 해야 초콜릿과 말차, 그리고 과일류 한 두 종이지요. 이렇게 다양한 레시피는 처음입니다.

레시피 자체는 기본 마들렌의 변형입니다. 그 기본 마들렌도 두 쪽이 아니라 여러 쪽에 걸쳐 사진과 함께 자세히 만드는 법을 소개하니, 웬만큼 해본 사람들은 더 쉽게 숙지할 수 있습니다. 특히 각 단계에서 최종 결과물에 끼치는 영향을 이야기하니 주의점을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읽고 있다보면 손이 근질근질 하더군요.

티라미수는 Take out이 아니라 Eat in 타입입니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보면 아실 거고, 여기 소개된 것 중에서 몇몇은 제가 다른 방향으로 바리에이션을 넣고 싶더라고요. 특히 조청유과는 조청이 들어가 그 자체만으로도 맛있을 것이고, 크렘브륄레도 그렇고요. 취향이 아닌 부분은 마들렌 속에 필링을 넣는 것이니, 그건 빼고 만들어 봐도 괜찮겠다 싶습니다.


읽고 나면 오븐 지름신이 찾아오는 무서운 책이었습니다.(먼산)


다나카 히로코. 『투명한 잼』, 김윤경 옮김. 한스미디어, 2018, 15000원.

해피해피케이크.『해피해피레시피 마들렌』. 청출판, 2018, 12000원.


김초엽. 「관내분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선호. 「라디오 장례식」

김혜진. 「TRS가 돌보고 있습니다」

오정연. 「마지막 로그」

이루카. 「독립의 오단계」


총 다섯 편의 작품이 실려 있습니다. 가장 궁금했던 것은 대상 수상작이었던 「관내분실」. 도서관에서 장서가 어디 있는지 확인할 수 없는 경우 서가부재도서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서가의 원래 자리에 없는 책이란 뜻이지요. 그리고 그 책은 관내, 그러니까 도서관 내부에서 분실되었다고 보는 겁니다. 즉, 배경이 도서관이기는 하나 SF인만큼 특이한 도서관이 배경입니다. 망자를 기억하기 위해 망자와 관련된 여러 데이터를 모아 구성한 것이 '마인드'이고, 마인드를 모아 놓은 곳도 도서관입니다. 마인드는 개인의 기억을 기반으로 죽기 전의 모습을 구성한 것이고, 접속하여 마인드를 만나는 것은 살아 있는 상태의 죽은 사람을 만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아마 사람보다는 반려동물을 대상으로 하면 더 실감나게 느낄 분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만... 하여간 어머니의 마인드를 만나기 위해 도서관에 간 지민은 마인드가 관내분실되었다는 통보를 받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가작을 수상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어느 우주정류장을 배경으로 합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시작으로 기술의 발전과 비용 문제, 그로 인한 단절을 이야기합니다. 아니, 더 자세히 쓰면 내용 폭로가 되어 쓸 수가 없습니다.


「라디오 장례식」은 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 한 로드무비에 가깝습니다. 클리셰적이고 전체 흐름도 다 그렇지만 마치 영화 한 편을 감상한 것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TRS가 돌보고 있습니다」는 미묘한 감정을 이끌어 내는 이야기입니다. 연명치료와 간병, 그리고 그에 따른 제반 비용까지. 심사평을 보면 이 단편을 두고 심사위원들도 잠시간 토론을 하게 만들었다(배명훈)는 언급이 있습니다.


「마지막 로그」는 죽음을 선택한 뒤의 일주일간을 다룹니다. 안락사까지 남은 기간 동안의 이야기가 담담하게 흘러가지만 거기에 안락사까지의 편의를 봐주고 죽음을 집행하는 안드로이드의 이야기가 섞입니다.


「독립의 오단계」는 로봇을 어디까지 독립인격체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자식도 자신의 소유물로 보는 어머니는 사고로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아들의 인격을 로봇, 안드로이드에 연결합니다. 그리고 안드로이드는 자신이 독립된 개체임을 주장하며 주인이자 어머니와 법정에서 만납니다.




워낙 기대가 커서 그랬던 건가 곰곰히 따져보았는데, 아닙니다. 실망이 컸던 것은 그 때문이 아니라 소설들 자체가 저와 맞지 않아서 그랬던 겁니다.

비단 SF-과학소설뿐만 아니라 판타지, 로맨스, 추리까지, 제가 좋아하는 소설은 하나같이 마음 편한 소설입니다. 복잡한 소설도 읽지만 대체적으로 결말이 평온한 소설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소설을 읽는 목적 자체도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SF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여기 등장한 소설 중에서 행복한 결말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둘. 애매한 것도 있지만 좋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읽고 나면 허탈하기도 하고, 심장에 안 좋기도 하고요. 한국소설에 손을 안 댄 것도 그런 이유였지만 SF에 손을 덜 대게 된 것도 그래서였던가 다시 생각하게 되더군요.

그러기에는 최근에 읽었던 SF들이 마음에 들어서 단언하기는 어렵고. 『대우주시대』나 『별의 계승자』는 매우 재미있게 보았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이 책들은 그 해의 책으로 손에 꼽을 정도로 마음에 든 책이기도 하니 직접 비교하면 안되겠지요.


결국 읽고 나서 뒷맛이 씁쓸했기 때문에 감상도 덩달아 쌉쌀합니다. 하하하.;ㅂ; 설마하니 이 다음에 읽을 『사소한 정의』도 씁쓸한 맛일까 걱정 중인데. 우우움. 일단 도전하고 보렵니다.



김초엽, 김선호, 김혜진, 오정연, 이루카.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허블, 2018, 12000원.



그리고 추가.

1. 어떤 작품은 읽다가 왜 그 장면이 들어가야 했나 싶었습니다. 특별히 필요한 장면도 아니고 특별히 필요한 장치도 아닌데 왜? 물론 분노 폭발 장치로 선택할만 하나, 과했다 생각했습니다. 그 부분보며 갑자기 조아라가 떠오른 것은 왜인가..=ㅅ=


2.AI는 인간인가. 몸을 일부를 사이보그로 대체했다면 어디까지가 인간이고 어디까지가 사이보그, 인조인간, 로봇인가.

제게는 진부한 질문입니다. 인류 멸망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바, 인간을 구성하는 가장 근원적인 부분은 몸이 아니라 사상, 생각, 그 모든 것을 포괄하는 정신적인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뇌를 포함한 모든 것이 기계라 해도 그 사상이 인격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라면 인간입니다. 당연히 AI도 일정 수준 이상을 넘어가 인격체라면 사회에서 인간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경계를 정하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항상 그래왔잖아요. 인간 사회는 그렇게 진화해왔으니 시간이 지나면 그런 경계 또한 해결되리라 봅니다.

과격한 사상일까요.'ㅂ'

한 줄 요약: 경고합니다. 읽을 때 꼭 옆에 간식이나 야식 두세요. 그렇지 않으면 읽는 내내 허벅지를 찌르며 식탐에 시달릴 겁니다.



『플레누스』의 작가인 양효진(둥근보름달)은 조아라에서 활동하던 작가입니다. 과거형을 붙이는 것은 이전 작인 『드라마틱』 때부터 연재처 고민을 하다가 조아라를 떠나 다른 곳에서 연재하고 출간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유야 간단하지요. 『드라마틱』도 초기에 공지가 있었습니다. 만약 이 작품이 유출된다면 그 즉시 연재를 중단하고 연재처를 옮길 것이라고요. 이 모든 것은 조아라의 부실한 보안 시스템이 원인입니다. 조아라가 혹시 부진을 겪는다면 그 모든 것은 자승자박이라고 강력히 주장하는 바.-_-; 올 초에 언급되었던 단문 글쓰기 서비스도 그렇지요. 텍스트를 바로 긁을 수 있는데 누가 거기에 아이디어를 올려 정리하려 할까요. 차라리 트위터 같이 공개된 곳에 올리거나 자기 핸드폰에 저장하는 것이 낫지요.



그런 이유로 『플레누스』도 조아라가 아니라 블로그에서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1부만 블로그 연재한 뒤 비축분이 쌓인 상황에서 유료연재플랫폼으로 이동했습니다. 출간 계약작이라 유출되면 문제가 커지니까요.



전체 전자책 7권으로 완결되었고 7권 후반부는 외전입니다. 본편이 1권부터 7권 중반까지입니다. 1권은 맛보기라 조금 페이지가 적고, 다른 것은 그 2.5배쯤 됩니다. 제가 보는 글씨 크기 기준으로 1권이 62쪽, 7권은 162쪽입니다.


에우데모니아 플레누스(에모)는 환생자입니다. 1인칭 주인공시점이라 본인이 환생자라는 건 처음부터 등장합니다. 정확한 전생의 기억은 없지만 추정컨대 한국에서 살다간 인물로 보입니다. 태어난 곳은 제국 동쪽의 자작가. 부모님은 제국 아카데미 출신의 작위 귀족으로 결혼하면서 영지를 합치고 작위 하나를 반납하며 플레누스 자작가를 이룹니다. 마왕과의 전쟁 때 윗세대가 모두 사망한데다 부모님은 외동이라 가까운 친척은 없답니다.

세계는『헤스키츠 제국 아카데미』에서 처럼 과학을 대신하여 마법이 발달했으며, 전기 대신 마력이 동력 역할을 합니다. 대신 마법공학을 기반으로한 마법물품들은 기초 설치비가 굉장히 비싸고 마력을 충천하는 방식입니다. 대강 유추하실 수 있겠지만 플레누스 세계관의 공돌이는 마법사입니다.


그렇게 사회환경은 발전해 있지만 식문화는 바닥입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기억을 온전히 가진 에모가 가장 불만을 가진 것도 먹을 것이었고요. 백일 때 대지의 여신 샤키리의 신전에 가서 축복을 받으니 식복이 있답니다. 부모는 매우 기뻐하며 돌아오지만 그 뒤 이유식을 시작하면서 식복 있다는 에모는 내내 투덜거립니다. 그나마 영지가 바다에 면해 있어서 소금은 풍부해 간은 하지만, 그 외의 감칠맛은 전혀 없습니다. 향신료 없음, 향신채 없음, 설탕은 매우 비쌈. 식단 구성이 빵과 채소(샐러드), 구운 고기나 구운 생선이랍니다. 전쟁의 피해를 상대적으로 덜 입은 영지라 먹는 것이 풍족하다는데 이 지경이고요. 아냐, 그래도 영국보다는 낫습니다. 무조건 삶거나 무조건 굽거나 이상한 조리법을 첨가하진 않으니까요.

식재료가 다양하지 않은 것도 문제고 가격이 비싼 것도 문제입니다. 게다가 주 식량인 밀은 영지에서 재배를 많이 못합니다. 영지가 산과 바다, 약간의 평지라서 밀재배 면적이 좁다는군요. 그리하여 남쪽으로 가서 쌀을 수입하기도 합니다. 전쟁의 주 격전지가 중앙과 북부라 상대적으로 남부는 괜찮기는 한 모양입니다. 에모가 이유식을 막 시작할 즈음에야 쌀을 들여와 쌀죽을 먹기 시작하니까요.


... 이렇게 적다보면 책 소개가 엄청나게 길어질 것 같으니 건너 뛰어 에모가 세 살 때로 갑시다. 그래봤자 이것도 1권 챕터 4의 이야기입니다.

이 때 마왕과 용사의 전쟁도 막바지에 이르릅니다. 그리고 세 살 생일이 되어, 모든 아이들이 그러하듯 신전에서 하룻밤 지내게 된 에모는 여신님을 만납니다. 대지의 여신 샤키리님. 성에서 가장 가까운 신전이라 여기서 머물렀더니, 여신님이 나타나 전생의 기억을 남겨 준 것은 식문화 혁명을 위한 것이며, 마왕이 던진 엿 때문에 조만간 난리가 날 것이니 이계의 지식으로 사람들을 널리 배부르게 하라고 합니다.


(1권 55/62)

제 이름은 에우데모니아 플레누스. 올해 나이 세 살. 졸지에 대기근에서 대륙을 구하라는 임무를 받고 말았습니다. 아웅! 큰일이다!


크흑.T-T 에모의 혀 짧은 소리는 참으로 귀엽습니다.


그리고 말뿐만 아니라 대단한 신기(神器)를 주십니다. 소꿉놀이 세트와 책. 소꿉놀이 세트는 신력을 이용해 자유자재로 크기가 변화하며 불이 없어도 조리가 가능한 만능 주방도구입니다. 그리고 책인 애풀레는 아무리봐도 태블릿PC. 아카식레코드에 접속 가능-한 것이 아니라 신들의 백과사전과 그 레시피북에 접속할 수 있는 모양입니다. 세상 만물의 지식을 담았다더니, 사진촬영도 아니고 주인이 본 것이 뭔지 궁금하다며 검색하면 글분만 아니라 사진자료까지 생생하게 담아서 보여주는 만능 신기입니다. 이야. 여신님이 실제로도 스마트폰, 태블릿PC를 참고했다 말씀하시는군요. 에모를 콕 찍어 기억 남겨 환생시킨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신기를 받았지만 대외적으로 에모가 샤키리 여신과 가깝다는 것은 비밀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정세가 혼란한데, 거기에 힘없는 자작가의 딸이라 하면 더욱 휘둘리기 쉬우니까요. 그리하여 신전과 플레누스 자작가는 그 사실을 숨기기로 합니다. 그리고 이제 에모가 본격적으로 활약을 시작하지요. 첫 활약은 입덧으로 아무것도 못 먹는 상태인 어머니에게 칼국수면과 바지락, 마늘, 고추, 올리브면을 이용해 바지락칼..파스타 한 사발 만든 것이었습니다. 애초에 마늘과 고추는 대마족 무기로 확보중이어서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닌 독극물 취급을 받고 있었는데... 그게 순식간에 향신료, 향신채가 됩니다. 물론 무기를 먹는다는 것에 대한 반감은 덜했습니다. 자작님이 먹으며 생각했듯이, 이렇게 먹는다면 마족들이 피해가겠다는 생각을 했으니까요. 아마 다른 이들도 고추와 마늘을 먹으며 그랬을 겁니다.

거기에 가축용으로 사용되던 토마토나 옥수수를 사람이 먹을 수 있게 시험 재배 후 가공하고 시식하며, 안 먹던 고구마도 보급합니다. 그 와중에 마왕이 패배하면서 건 저주 때문에 제국 내 모든 밀밭은 검게 변해 죽어갑니다. 밀뿐만 아니라 다른 작물들도 영향을 받아 최악의 식량난이 닥쳐오지요. 그 때 꺼내는 것이 옥수수와 고구마였고, 그 다음에는 감자증명(...)을 통해 ‘먹으면 죽는다’는 음식이던 감자가 훌륭한 구황작물임을 입증합니다.

김치 담그는 것도 성공하고, 그렇다보니 식생활은 에모와 플레누스 자작가 덕분에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의 혁명기를 겪습니다. 식복을 가진 아기씨 덕에 모든 것이 변했지요. 그 덕에 목숨을 구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귀족가의 아가씨였지만 모든 것을 다 잃고 몸만 남았던 패티, 그리고 마나 문제로 죽어가던 마법사와 그 제자, 플레누스 영지 근처에서 발견된 피스와 그 외삼촌. 이들은 플레누스 자작가의 도움으로 건강을 되찾고 평범한 일상을 이어나가며 회복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에게는 1부의 이야기가 치유기와 성장기겠네요. 아니, 사람뿐만 아니라 여러 영지들도 에모의 조언과 도움으로 마왕의 저주를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1부의 이야기는 이렇게 에모가 일으킨 제국 식문화 혁명과 그 도움을 받은 여러 사람과 가문들을 다룹니다. 그리고 2부는, 그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에모는 훌륭히 잘 커서 재산 규모가 제국 내에서 손 꼽힐 정도로 대단한 아가씨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에모가 자라는 사이, 무능한 황제가 사망하고 제위를 툰 경쟁이 일어납니다. 수많은 황자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가운데, 그간 죽었다고 알려졌던 황자가 나타나 전세를 역전시키고 황제가 됩니다. 그리고 독자들은 그 황자가 누구인지 압니다.-ㅁ-


2부의 이야기는 1부에서 연결되었던 플레누스 중심의 여러 인맥이 한 번에 뒤섞입니다. 새 황제가 즉위하면서 플레누스는 그 재산과 영지 덕분에 백작가로 승격되며, 그 이후에도 다양한 사업에 손을 대며 신흥 귀족집안으로 우뚝 섭니다. .. 그리고 그 때문에 황제의 배우자 찾기에도 휘말립니다. 황가의 내정을 맡은 사람이 오랫동안 비어 있었던 터라 공작가에서 잠시 맡았지만 나이가 많아 은퇴를 요청한 데다 황제도 슬슬 배우자를 맞아야 한다는 소리가 나왔지요. 그리하여 황제는 주위의 조언을 듣고는 배우자 후보로 넷을 들여 황궁 내의 일을 맡깁니다. 그러니까 임시직 공무원으로 삼아 업무를 맡기고 그 중 황후를 선택한다는 것이지요. 에모도 이 후보에 올라 다른 세 사람과 함께 여러 행사들을 치러냅니다.


아래는 내용폭로가 될 수 있어서 일단 점어 넣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넷의 조합은 팀프로젝트와도 닮았습니다. 각자 잘하는 분야가 있는 사람들이 모여 팀프로젝트를 꾸리면서 그 와중에 자신이 갈 길을 탐색하고 그 길을 걸어가는 모습이란게.


우음. 그래서 솔직히 아쉬웠습니다. 종이책이 있었다면 당장에 구입하고 도서관에도 신청했을 것인데, 전자책으로만 나왔거든요. 혹시라도 나중에 종이책으로 나와주지 않을까 기대는 하지만 가능성은 낮습니다. 전자책 네 권으로 나왔던 헤스키츠 제국 아카데미는 편집 빡빡하게 하고도 두꺼운 종이책으로 두 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플레누스는 4~5권 정도는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쉽지 않겠지요. 끄응.



뭐라해도 이 책의 1부 백미는 여신님과 그 형제들입니다. 맨 마지막까지 그 방점을 찍어주시니, 감자는 위대하여라. 맥주와 함께하는 감자는 이 세상 최고의 존재인겁니다.(경건) 우리 모두 감자와 옥수수와 고구마를 모시고, 감자피자로 샤키리 여신님께 제를 올리지요. 식복 저도 주시면 안될까요..?


양효진. 『플레누스 1-7』. 가하에픽, 2018, 합본 15600원.



자작가의 꼬마 아기씨 덕분에 여러 별명이 생기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자생 토마토는 보통 가축이 먹지만 에모는 잘 익은 빨간 토마토를 따서 토마토 소스를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그게 쌀밥과 밀가루 모두에 잘 어울린다는 것을 안 뒤에는 자작님이 대규모로 토마토를 사들이고 가공해서 판매합니다. 그리하여 토마토 자작이란 별명을 아버지가 얻었는데. 그 이후에 사탕무 재배에 성공하고 설탕을 생산해서 판매하기 시작하자 에모에게 설탕 아가씨란 이름이 붙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감자 증명으로 별명을 얻는데. 이게 가장 유명하고 가장 오래 남은 별명이 아닌가 합니다. 직접 찾아 읽어보세요.(웃음)


그리고 마지막.


3권, (77/144)

(중략)

"피스 이하 얼굴은 전부 거절이야."

"으아, 아기씨. 그건 너무한 발언이세요. 동부에서 제일 예쁜 어린이 뽑기 대회가 있으면 1등은 피스가 차지할 거라고요?"

"난 동부에서 제일 부자인 어린이다!"

미남은 능력있는 여자가 차지하는 법이자.(하략)


정말 그렇습니다.-ㅁ-;

요즘의 책 구입은 거의가 트위터발이군요. 아니면 알라딘의 맞춤형 도서. 이건 트위터에서 소개를 보고 검색했다가 오메가버스 세계관의 할리킹이라는 소개를 보고는 덥석 구입했습니다.


초지일관 달달합니다. 원체 할리킹이다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달달달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물론 고생이 없는 것은 아니나, 과거의 일이고 현재는 내내 행복한 이야기로만 흐릅니다.



줄리앙 뇌브는 대학 졸업 뒤 번역일과 국립도서관 파트타임을 하는 오메가입니다. 한국계 입양아로, 어릴 적 프로방스의 농가에 입양되었지만 일꾼으로 부려먹힐 뿐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는 못합니다. 그러다가 나이 스물에 오메가로 발현했고 베타를 바라던 집안에서 파양당합니다. 그 뒤 파리로 올라와 잠시 입양보호소에서 머물다가, 여러 입양아를 들인 부부에게 다시 입양이 되어 대학을 다녔습니다. 한국어에 관심이 많았기에 말하지는 못하지만 읽고 쓰는 것은 가능하도록 공부했고 그렇게 번역일을 얻어 조금씩 벌이를 합니다.

그러다 지도교수의 요청으로 함께 하게 된 문학 세미나에서, 정말로 만나고 싶지 않았던 사람을 만납니다. 파양 직전, 안 좋은 일로 헤어졌던 어린 날의 희망과 꿈...(왠지 적으면서 손이 오그라 들지만;)



여기서 과거에 있었던 사건이 다시 나옵니다. 과거, 오메가로 발현한 것을 알게 된 계기는 히트사이클이었습니다. 그 때 옆에 있었던 사람은 그냥 알렉이라는 이름만으로 알고 있었던 알렉 카너. 재회해서야 그 신상을 알았는데, 영국의 공작으로 카너사의 오너이자 프랑스의 유명 문학가 막심 카를의 외손자랍니다. 그 때는 그냥 자신이 살던 농장 옆, 커다란 성에 사는 청년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고, 우연찮게 나무에서 마주친 뒤로는 여러 모로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알파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히트사이클 당시 두 사람은 관계를 가졌고, 베타로서만 내내 지내오던 줄리앙은 처음 히트사이클이 왔을 때의 충격 때문에, 그리고 파양 때문에 둘은 헤어졌습니다. 정확히는 줄리앙이 도망친 겁니다.


하지만 알렉은 예상했던 것과 다른 행동을 보입니다. 아주 오랜만에 재회했음에도 그 때와 다름없이 줄리앙을 부르며 살갑게 대하고, 같이 옆에 있어주며 전용기를 타고 자주 날아옵니다. .. 그렇습니다. 이건 할리킹. 재력이 있으니 그게 가능한 거죠.




하이라이트는 알렉의 입장에서 본 과거의 일입니다. 그걸 보면 연애사, 한쪽의 말만 듣고 판단하기 어렵구나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그 당시 알렉의 상황이나, 그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보고 있노라면 웃음만 납니다. 그래서 본편이 끝난 뒤 맨 마지막에 나오는 IF 외전을 보면 납득이 더더욱 되고요.



기복 없이 달달한 이야기를 보고 싶은 분께 추천합니다.:)


사봄. 『둘이어서 좋은 이유 1-2』. 블리뉴, 2018, 합본 5500원.


다만 걸리는 부분이 딱 두 곳 있었는데.


1.프랑스 국립도서관인 BNF는 센강변에 있군요. 그렇다면 줄리앙의 집은 어딜까요..? 헬기 착륙장도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그런 곳..? 거기에 서가 배치 관련한 이야기가 문득 궁금해져서 말입니다. BNF 내부 관련 책이 있나 나중에 찾아봐야겠네요.


2.임신중인 줄리앙. 오메가버스니까 임신 이야기도 나옵니다. 만. 출산 예정일이 다가온 시점에서 가벼운 산책까지는 좋으나, "마음 같아서는 카너성의 정원을 조깅이라도 하고 싶었지만~"이라는 부분에서 기겁했습니다. 저기; 막달이면 균형잡기도 만만치 않을 건데 조깅?

이것도 BL, 가이드버스 세계관입니다.

조아라 연재였던가 아닌가 기억이 가물가물한 건 제가 읽지 않은 소설이라 그렇습니다. 아마 연재 맞을 거고요..? 다만 편수가 길고 내용이 묵직해서 중간에 들어가다가 포기했거나 피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확실히, 이 소설은 연재로 읽었으면 상당히 힘들었을 겁니다. 중간에 터진 사건을 비롯해 모든 일이 해결되는 것은 4권 후반. 그 부분은 편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제 취향과는 거리가 조금 있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이 소설도 센티넬 대신 에스퍼라는 단어를 썼네요. 정신계 에스퍼, 물리계 에스퍼로 나뉘며 가이드와는 적합률에 따라 페어가 생기기도 하고 깨지기도 합니다.



최태훈은 가이드입니다. 그것도 아주 어린 나이에 가이드 판정을 받았지만 스물이 되도록 적합 판정을 받은 에스퍼가 없었습니다. 센터에 오랫동안 들락날락했지만 페어를 이룰 만큼의 적합 판정은 단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보니 결국에는 여러 과정을 거쳐서 적합여부 테스트에서 제외되기로 합니다. 그리하여 가이드이지만 한 번도 에스퍼를 만나지 않고, 그냥 평범한 삶을 살아갈 예정이었습니다. 지관영의 팬인 동생만 아니었다면요.


유명한 배우인 지관영은 사인회에서 최태훈과 만납니다. 그리고 이상한 떨림을 느끼고는 자신의 가이드이자 네임이 최태훈인 것을 먼저 깨닫습니다. 태훈은 그냥 이상하다고만 생각하고, 그 만남 직후에 나타난 네임의 이름을 보고서도 설마하니 그 유명 배우 지관영은 아닐거라 생각하며 자신의 네임을 열심히 찾습니다.


그 둘이 다시 만난 것은 어떤 사고 때문이며, 그 사고를 통해 지관영은 지금까지 딱 두 명 있었던 능력 측정불가 판정을 받은 에스퍼와 마찬가지로 측정불가라는 판정을 받습니다. 계열은 물리계. 측정불가였던 첫 번째 에스퍼는 정신계였다고 하고, 두 번째 에스퍼는 물리계였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이드로서 피할 수 없었던 태훈은 적합 판정 테스트에 들어가고, 전무후무한 적합률을 확인합니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가이드가 되기 위해 살아왔지만 맞는 에스퍼가 없어 평범하게 살아가려다가 순식간에 삶이 뒤바뀌고 게이로서의 길을 걸어야 하는 태훈과, 어릴 적의 사고 때문에 오랫동안 혼자서 살아왔지만 그 누구보다 유명한 지관영이 어떻게 페어가 되는가를 다룹니다. 그리고 그 조금 뒤까지는 같습니다.

전체 4권의 이야기 중 1권은 이 둘이 페어가 되어 짝을 이루는 이야기를 그리고, 2권부터는 본격적으로 사건이 발생합니다. 센터의 실험 결과라는 이한솔은 그 누구와도 페어를 이룰 수 있다는 가이드이며, 이전에 센터 내에서 발생한 가이드 살인사건의 범인이기도 합니다. 이한솔은 자신과 페어를 이룬 인물을 버리기로 하고, 새롭게 지관영에게 접근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4권 중반까지 이어집니다.



사실 제 취향을 말하자면 이 둘이 알콩달콩 다투면서 이어지는 것이지만.. 이건 중간에 발생한 큰 사건이 두 사람을 갈라 놓았던 터라, 읽으면서도 해피엔딩일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꽤 힘들었을 겁니다. 연재분을 보았으면 힘들었을 거란 것도 같은 맥락에서 그렇습니다. 3권 읽으면서는 저 한니발 렉터만도 못한 비뚤어진 매드사이언티스트 따위 죽어버려! 라고 절규하고 있었으니까요. ... 제게 있어 저런 계통의 매드 사이언티스트를 고르라면 한니발 렉터가 먼저 떠올라서 말입니다. 하하하.

그래도 해피엔딩으로 끝났고, 앞으로도 밝을 일이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 4권의 마무리는 상당한 포만감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왜 이 책을 사게 되었냐-면 트위터 타임라인에 이 책의 외전이 나왔다는 정보를 봤기 때문입니다. 『가이드의 조건』 외전은 아직 이퍼브 계열에는 풀리지 않았고, 검색하다보니 본편은 있어서 덥석 구입했던 것이지요. 가이드버스가 갑자기 확 땡기기도 해서...'ㅂ'


이날 같이 구입한 오메가버스의 다른 책 한 권 리뷰도 조만간 올리겠습니다. 플레누스 리뷰는 일단 그 뒤에. 한 차례 더 복기하면서 써야지요.



진램. 『가이드의 조건 1-4』. 피아체, 2016, 각 3천원.



1.외전은 다음달 쯤 볼 수 있을까요..?


2.중반부에 이한솔이 등장한 후부터는 전체 이야기가 추리적 요소를 강하게 띱니다. 수수께끼의 제공자는 매드 사이언티스트, 그걸 풀어내는 모든 사람들이 탐정.

게다가 가이드버스와 센터라는 존재 때문에라도 SF의 분위기도 강하게 나고요. 4권의 절정부분에서 그 모든 이야기가 해결될 때의 고양감이 상당합니다. 취향에서 조금 벗어났지만 그래도 재미있었던 건 그래서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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