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간략하게, 감상. 그도 그런 것이 어제 베갯머리 책으로 잡아서는 결말 부분만 집어서 보다가 깨달았습니다. 뭔가 이야기의 기승전결중 승의 중반인 것 같다 했더니만, 실제로도 그랬습니다. 이야기가 총 3편이고, 스기무라 사부로가 독립™한 뒤, 자기 혼자서 사립탐정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려냅니다. 이번 권의 뼈대 이야기는 그렇지만, 가장 먼저 읽은 세 번째 이야기도 읽으면서 기분 안 좋다 했더니만, 첫 번째 이야기도 그랬습니다. 오늘 나머지 부분을 읽을까 망설이면서 1편의 후반부를 넘겨 읽다가 지뢰를 밟았거든요.

 

 

먼저 읽은 세 번째 이야기부터 풀어 봅니다.

읽기 시작한 장면은 의뢰받는 부분이었습니다. 의뢰자는 여성이었는데 매우, 매우 성격이 안 좋더군요. 그 사람에게서 의뢰를 받고는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등장하는, 성격 좋아보이지만 호감 가는 여성 하나. 그리고 거기서 시작한 조사와, 그 뒤에 일어난 사건. 결말은 씁니다. 씁쓸한게 아니라 써요. 그래서 제가 스기무라 사부로 시리즈를 못 봅니다. 행복해지지 않을까, 모든 수수께끼가 풀린 것 같다 한 시점에서 갑자기 밑에 함정이 열립니다. 최근에 하도 헌터물을 많이 봐서 그쪽으로 표현하자면, 레벨 낮은 던전을 조금 지리하게 걸어서 보스방 들어왔더니, 보상 얻으러 가는 길에 갑자기 함정이 나타나 빠지는 겁니다. 함정의 진창에 빠졌더니 기분이 나쁩니다. 그러한 느낌. 『이름없는 독』도 그랬지요. 아니, 사실 이 시리즈의 앞 권도 구입은 했지만 읽지는 못했습니다. 엄두가 나질 앖았어요.

 

그래도 이번에 미미여사 책에 손댄 이유는 하나입니다. 요즘 독서가 매우 판타지, 웹소설 편향적이고 종이책은 거의 안보는 수준이라 시험해볼 겸 집어 들었습니다. 정말로 못 읽는 건가 싶어서 걱정하는 마음이었지요. 다행히 읽어보니, 미미여사는 미미여사입니다. 명불허전. 세 번째 이야기 중간에 난입했지만 단번에 읽어 내리고 허탈함에 빠졌고요, 첫 번째 이야기도 그랬습니다. 퇴근하면서 들고 퇴근할까 어쩔까 고민하다가 첫 번째 이야기의 결말 부분만 확인한다고 보았는데... 그러한데.....

여자에게 가혹한 곳이군요. 예전에 읽은, 제목도 기억나지 않은 어떤 소설도 그런 내용이었다 기억합니다. 범인은 나름 타당하지만 타당하지 않은 이유가 있고, 피해자가 저지른 일은 누군가에게는 트리거 혹은 약점을 건드리는 행위였습니다. 그 소설도 그랬지만, 이 소설의 세계도 그렇습니다. 탐정은 남성이지만, 범죄의 주인공들은 여성이며, 그러한 여성을 몰고 가는 것은 남성입니다. 세 번째 이야기는 모두 다 여성이지만. 몰고가는 이 마저도 여성입니다. 그래서 이 소설이 불편했는지도 모르지요.

 

그래도 미미여사의 소설은 여성이 매우 많이 등장합니다. 악녀이든, 성녀이든, 선한 인물이든, 악한 인물이든, 가리지 않고 매우 다양한 모습이 나옵니다. 약간은 클리셰적인 모습도 보이지만 남성만 등장하는 소설이나, 그 속에 홍일점으로 들어간 여성을 보는 것보다는 좋습니다. 아니 뭐, 흡입력은 대단했고, 그 덕에 저는 도로 스위치가 눌렸지만 말입니다.

 

 

미리 경고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강간 관련한 트리거가 눌릴 수 있으니 조심........ 그렇지만 읽으면서 이런 금수만도 못한 놈!을 외치다가 고개를 들어 한국을 바라보니 여기엔 n번방이 있습니다. 그러합니다. 남의 나라 욕할 필요도 없군요. 하하하하하.

 

미야베 미유키. 『어제가 없으면 내일도 없다』, 김소연 옮김. 북스피어, 2020, 16800원.

 

구입한 북스피어 책 중 두 권 정도가 밀렸을 걸요. 크리스마스 미스터리 어디뒀더라?

읽은 책보다 아닌 것이 더 많습니다. 상당수는 사은품 때문에 장바구니를 탈탈 털어 구입했더랬지요. 덕분에 지금 전자책 장바구니가 비어 있습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고요...? 하지만 종이책은 여전합니다. BL은 종이책보다 전자책이 익숙하지만 다른 책들은 종이책이 더 좋습니다. 이번에 구입한 전자책의 상당수는 종이책으로 구입하기에는 공간이 부족하여 대체 구입한 품목들입니다. 그러니 읽을 가능성은 낮네요.

 

 

형상준. 『책을 읽으면 경험이 쌓여! 1-12』.

현대, 판타지, 동양판타지.

현대물에 판타지적 요소를 섞은 소설입니다. 우연히 손에 넣은 책이 스킬북이라, 이 책을 단말기로 이용하여 여러 기술들을 익힐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능력을 써서 성적을 올리고, 집 떡볶이의 레시피를 바꿔 인기를 끌고, 벽화를 그려 마을 전체를 관광지화 합니다. 벽화 그리기는 이화동을 따랐다는군요. 여러 능력을 얻고 그걸로 본인과 가족, 친구, 그리고 더 나아가 마을 전체를 바꾸어 가는 과정이 상당히 흥미진진합니다. 단, 저는 10권에서 하차. 11권과 12권은 한 번에 구입해 놓고는 가만히 내려 놓았습니다.

이 소설은 동양판타지도 상당히 섞였습니다. 주인공이 공부를 잘하더니만 의대가 아니라 한의대에 진학합니다. 한의대를 진학한 이유는 스킬북을 통해 얻은 기술 중 무공이 있어서입니다. 무공을 얻어 혈도를 짚고, 내공을 써서 내시경수술이나 로봇수술보다 더욱더 정밀한 수술이 가능하고, 이걸 현실에 적용하는 이야기까지 이어지니 저는 더 못읽겠더랍니다. 양학과 한학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전 양학이라. 과학적으로 규명되지 않은 마법적 스킬이 현대에 얽히니 진도가 안나갑니다. 그리하여 조용히 하차. 원래는 20권에 특별편 1권으로, 총 21권 완결입니다.

 

 

안경크리너. 『나의 아찔한 룸메이트 외전』.

BL, 오메가버스.

알파로 알고 있다가 뒤늦게 오메가 발현이 되어서는, 발현 사실을 숨기고 알파 전용 고오급학교에 진학한 주인공의 이야기지요. 약혼한 이후의 이야기가 외전으로 나왔습니다. 아. ... ... (먼산) 매우 19금입니다. 하지만 귀여운 커플이라니까요.

 

 

진램. 『할리우드 타입 머더러(Hollywood Type Muderer 1-6』. 

BL, 현대, 연기.

할리우드의 시나리오 작가 네스 파라노프가 사망합니다. 주인공 이선은 오디션을 통해 시나리오 작가가 마지막으로 참여한 영화의 촬영에 참여하게 됩니다. 상대역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지만 매우 잘나가는 배우인 션 스펜서. 문제는 함정입니다. 오디션 보고 무작정 들어갔더니만, 이미 가고 없는 그 친구가 함정을 파뒀네요? 주인공 둘이 모두 다 실존인물이고, 시나리오 작가의 주변인이며, 그 중 하나가 이선입니다. 짐작 하시겠지만 다른 한 명은 션. 게다가 소문 자자했던 션이 실제와는 전혀 다르고, 유력 용의자이기도 한 모양입니다.

1권 초반을 읽고 나서 건너 뛰어 완결권인 6권을 확인했습니다. 추리소설은 결말을 확인하면 영 좋지 않은데, 이 책도 그렇습니다. 결말 확인하고 나니 책 읽을 의욕이 사라지네요. 이선이 고생할 게 눈에 선해 그런가...?

 

 

전기양. 『블루밍 블로썸 1-3, 외전』.

BL, 오메가버스, 현대, 연기.

이쪽도 연기 소재입니다. 이태인은 유명한 배우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가 사랑의 도피를 하던 도중 사고로 사망했다는 이유로 집안에서 냉대를 받습니다. 아버지는 사랑받는 존재였지만, 그렇기 때문에 거꾸로 태인은 천덕꾸러기가 되었지요. 연예계 은퇴를 앞두고 무명배우만 전전하다가 아르바이트 장소에서 재벌가의 한준혁을 만납니다. 그리고 둘이 계약 연애 비슷한 관계를 시작하며 ... (하략)

짐작하시겠지만 집안의 천덕꾸러기에게는 집안의 비밀이 얽혀 있고, 처음에는 강공이던 한준혁은 점점 집착공이 되어갑니다. 할리킹이라 해도 아주 틀리진 않네요.

오메가버스 설정은 오메가에게 불리한 쪽입니다. 오메가는 그 수가 많지 않고 사회 진출이 힘들며, 오메가가 히트사이클을 일으키면 그 반경 일정 공간 안의 알파들은 강제로 발정합니다. 그게 거꾸로 폭탄이 되는 일도 있고요. 이 설정이 조금 호불호가 갈릴만합니다.

 

 

냥이와향신료. 『어떤 계모님의 메르헨 1-4, 외전』

판타지, 로맨스, 회귀.

종이책으로 구입했다가, 이번에 공간 부족으로 처분하면서 전자책을 구입했습니다. 역시 백미는 외전...

 

 

장바누. 『그의 엔딩 크레디트 외전』.

BL, 현대, 회귀, 아이돌.

출간된지 오래된 소설인데 외전이 나온다 하여 기대했더니만, 가격이 0원. 매우 당황했습니다. 하지만 덕분에 즐겁게 읽었고...! 그리하여 오늘도 TTS로 본편 들으며 출근했습니다. 이번 외전은 유수와 영감님이 주가 아니라 부입니다. 무엇보다 '누님'의 과거 이야기가 펼쳐지다보니 더 몰입해서 봤습니다. 본편에서는 위화감은 있었지만 크게 생각 안했는데, 이번 외전 보고는 달팽이 사무실을 포함해 사장님 본가와 카페 등등이 왜 한 빌딩을 썼는가의 의문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김홍민 외. 『르 지라시 8』.

잡지, 문학, 장르문학.

르 지라시, 이거 앞호도 집 어딘가에 있을 겁니다만, 못찾았네요. 하여간 르 지라시중 판매중인 호가 있어 덥석 집어 들었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하의 책들은 전자책 구입해야하는데 금액 안 맞는다고 급하게 북스피어로 검색해 장바구니에 덥석 담았습니다. 네 글자로, 충동구매.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 『못생긴 것들에 대한 옹호』, 안현주 옮김, 2016, 7천원.
레이먼드 챈들러. 『당신 인생의 십퍼센트』, 안현주 옮김. 북스피어, 2016, 4천원.
나오키 산주고. 『나오키의 대중문학 강의』, 김소연 옮김. 북스피어, 2011, 3천원.
레이먼드 챈들러. 『심플 아트 오브 머더』, 최내현 옮김. 북스피어, 2011, 2500원.
윌러드 헌팅턴 라이트. 『위대한 탐정소설』, 송기철 옮김. 북스피어, 2011, 2500원.

문학비평, 장르문학.

이라고 해두죠. 키워드 어떻게 넣을까 하다가, 하여간. 에스프레소 노벨라 시리즈 네 권도 전부 전자책으로 있었고, 거기에 박람강기로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의 책도 같이 있어 밀어 넣었습니다. 언젠가는 읽을 거예요.

 

 

미쓰다 신조. 『검은 얼굴의 여우』, 현정수 옮김. 비채, 2019, 10300원.

공포, 추리, 역사.

종이책은 사도 방출될 가능성이 높으니 일단 전자책으로 구입합니다. 이렇게 구입하는 책은 많지만 읽는 책은 점점 줄어드는 팍팍한 삶을 보내는군요....

 

 

 

 

형상준. 『책을 읽으면 경험이 쌓여! 1-12』. 에피루스, 2018, 각 2500원.
안경크리너. 『나의 아찔한 룸메이트 외전』. M블루, 2019, 1천원.
진램. 『할리우드 타입 머더러(Hollywood Type Muderer 1-6』. 피아체, 2019, 1-2권 3천원, 3권 2500원, 4-6권 3500원.
전기양. 『블루밍 블로썸 1-3, 외전』. 비욘드, 2019, 1-2권 3000원, 3권 3300원, 외전 1천원.
냥이와향신료. 『어떤 계모님의 메르헨 1-4, 외전』. CL프로덕션, 2018, 각 3200원.
장바누. 『그의 엔딩 크레디트 외전』. 녹턴, 2019, 0원.
김홍민 외. 『르 지라시 8』. 북스피어, 2015, 1천원.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 『못생긴 것들에 대한 옹호』, 안현주 옮김, 2016, 7천원.
레이먼드 챈들러. 『당신 인생의 십퍼센트』, 안현주 옮김. 북스피어, 2016, 4천원.
나오키 산주고. 『나오키의 대중문학 강의』, 김소연 옮김. 북스피어, 2011, 3천원.
레이먼드 챈들러. 『심플 아트 오브 머더』, 최내현 옮김. 북스피어, 2011, 2500원.
윌러드 헌팅턴 라이트. 『위대한 탐정소설』, 송기철 옮김. 북스피어, 2011, 2500원.
미쓰다 신조. 『검은 얼굴의 여우』, 현정수 옮김. 비채, 2019, 10300원.

 

미쓰다 신조는 믿고 보고, 번역가가 현정수면 더더욱 믿고 봅니다. 이 둘의 조합은 확신하고 보아도 됩니다. ...라지만, 저는 공포소설을 잘 읽는 편이 아니라, 결말을 확인하고 봅니다. 미쓰다 신조의 소설 몇이 결말에서 제 뒤통수를 때려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추리소설도 결말 확인하고 보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랬지만.

이 소설은 절대 결말을 먼저 읽으면 안됩니다.

먼저 결말을 확인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결말을 알고 보니 이 이야기는 매우 김빠진 사이다입니다. 아니, 사이다라 부를 물건도 아니고 사카린 탄 물입니다. 반전을 알고 보자 그 앞의 여러 장치들이 다 빤히 보이는 이야기가 됩니다. 긴장감이 확 떨어지니 탄성을 잃은 고무줄도 아니고 그 .... 하여간 여러분, 이 책은 절대로 앞부터 차근차근 보아야 합니다. 소재가 걱정된다면, 미쓰다 신조를 믿으세요.

 

 

비채는 일전의 미야베 미유키 도서 발행 건으로 미운 털이 박혀 있어, 살까말까 하다가 도서관에 들어온 것을 보고는 덥석 물었습니다. 원서 제목도 黑面の狐라, 검은 얼굴의 여우 그 자체입니다. 표지도 멋지게 검은 여우를 그렸지만, 작가 미쓰다 신조의 괴담 시리즈처럼 마구 무섭지는 않습니다. 북로드에서 나와 덥석 잡아챈 『마가』보다는 온화한 표지라고 주장해봅니다.

 

보통 일본의 여우, 이나리 얼굴은 흰색 가면에 붉은 색과 금색으로 장식을 합니다. 왜 검은 여우인지는 배경부터 살피면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패전 후 일본. 전쟁을 겪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일본 규슈. 오사카에서 남쪽으로 가는 열차를 타고 가던 모토로이 하야타는 규슈 북부의 어느 작은 역에 충동적으로 내립니다. 탄광마을이라 광부를 모집하는 사람들이 열심히 영업중인데, 거기에 휘말려 있던 하야타를 아이자토 미노루가 구해줍니다. 그리고 하야타는 또 충동적으로, 미노루가 일하는 탄광에서 일하기로 마음 먹고 그를 쫓습니다. 광부로 일하기에는 오버스펙이지만 어찌 저찌하여 광부로 일하게 되지요. 가혹한 탄광의 현장에서 일하며 여러 사람들을 만나던 하야타는 대학 때 잠시 들었던 민속학에 얽힌 몇 가지 이야기를 듣습니다. 광부들이 겪은 육감sixth sence과 이질적인 것들의 이야기 말입니다. 예를 들면, 광부들 중에서도 상당한 경력자인 난게쓰가 겪은 검은 여우 가면의 여인이 있습니다. 아직 난게쓰가 결혼하기 전의 일이었지요. 그런 기묘한 이야기를 들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탄광에서 사고가 납니다. 이 소설은 하야타의 과거, 아이자토의 과거, 그리고 갱에 모인 여러 광부들의 과거 이야기를 탄광에서 엮고, 그 역사적 배경을 다시 이야기합니다.

소설의 소재가 쉽지 않은 건 그 때문입니다. 패전 직후, 전쟁 직후라 일본의 분위기는 좋지 않습니다. 지식인이었던 하야타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고뇌합니다. 유럽의 많은 지식인이 그러했듯, 하야타 역시 전쟁에 휘말리고 또 밑바닥의 바닥에 내려갑니다. 일본 정부에 절망하고, 또 그러면서 바른 삶을 고민하며 바닥을 걸어나가는 인물이지요. 그리고 당연히 이 사람이 탐정입니다. 원래 머리 쓰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어서 그럴지도 모르고요.

 

 

 

아니... 내용을 건드리지 않고 이야기를 진행하려니까 쉽지 않습니다. 하여간 이 소설은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앙금을 다루지만 읽고 나면 흡족합니다. 물론 한국인의 입장이니, 옮긴이의 말에 등장하는 평가도 있을 법 합니다. 일본에서는 작가의 역사관을 의심하는 서평도 있다는군요. 소설에 왜 이런 주제의식이 필요하냐니. 너는 지금 당장 가서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당장 후려치고 오련? 이 소설에 등장하는 수많은 다른 소설들의 역사적 사상을 평가해보련?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대강 이정도로 줄이고, 이 작품이 영화 『왕의 남자』를 떠올린다는 묘한 감상힌트 하나를 던져 놓고 갑니다.

 

 

 

 

 

 

 

 

 

미쓰다 신조. 『검은 얼굴의 여우』, 현정수 옮김. 비채, 2019, 14800원.

 

나카야마 시치리의 소설은 한국에 번역된 음악 시리즈를 읽고는 고이 손에서 뗐습니다. 이 작가를 좋아하는 B님 덕에 다른 소설 정보도 얼핏 듣긴 들었지만 그 내용이 제가 견딜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하시더군요. 앞서 읽었던 작품도 결말이 매우 취향이 아니었던 터라 얌전히 포기하고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단, 올해 나온 『시즈카 할머니에게 맡겨줘』는, 결말 부분만 확인하고 매우 중요한 마지막의 반전을 보았던 터라 무난한 이야기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오늘 이 책을 완독했습니다.

...

미묘. 매우 미묘.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기가 매우 미묘합니다.

초반에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상당한 호기심과 긍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제가 결말을 미리 보아서 이 책의 트릭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챕터의 제목이었습니다. 후기에 언급은 없지만, 챕터 제목은 길버트 체스터튼의 브라운 신부 시리즈 제목입니다. 오마쥬라고 봐도 될거고요. 열린책들에서 최근에 새로 번역해 냈지만, 북하우스 판으로는 지혜, 결백, 의심, 스캔들, 비밀의 순입니다. 집에 소장하고 있는 것도 북하우스판이라서요. 물론 원형은 북하우스책이 아니지만.(...)

 

따라서 이 소설도 브라운 신부 시리즈와 유사한 구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일본에서 자주 보이는, 남성 경찰과 머리 좋은 어린 여성의 조합이라 해도 틀리진 않습니다. 이 어린 여성의 뒤에 안락의자 탐정이 있다는 점이 아주 조금은 차이가 나지만, 이런 조합도 최근에 종종 보았습니다. 그러니 익숙하다면 익숙하지요. 제목에 적었던 불쾌감도 여기서 하나 시작됩니다. 그러니까 정의롭고 순수하며 올곧은데다 경찰같지 않은 경찰에, 법학부 재학의 어린 대학생. 그것도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마도카의 이미지는 청순하고 아름다우며 머리도 좋고 수줍은 여성입니다. 그리고 집밥도 잘합니다. 요리하는 장면도 여러 번 등장하니까요. 집 정리를 하지 않아서 시즈카 할머니에게 잔소리를 듣지만, 그래도 굉장히 만화 속에서 등장하는 것 같은 아가씨입니다. 그리고 이 경찰과 아가씨 사이에 감정이 흐르는 것도 당연한 수순입니다. 나이 차이는 꽤 있지만 그래도...(먼산)

 

 

하지만 본격적인 불쾌감을 불러 일으키는 건 이 소설 속의 경찰 조직 자체입니다. 읽고 있노라면, '그래, 한국 경찰은 얘들보다는 조금 나아.'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좋지 않아요. 또 이 소설의 검찰과 사법부 역시 최악의 조직입니다. 일본의 법조계가 亡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소설은 그런 문제점을 직접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래요, 이웃나라의 이야기이고 다른 곳에서도 들어 알고 있었으니 그냥 넘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폭 스위치를 누른 건 소설 속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정치 문제입니다.

 

남미 모 국가의 군부 독재자가 일본에 왔다가 살해당합니다. 그 사건을 보면서 시즈카 할머니가 말합니다.

 

"결국 나라는 통치자가 아니라 그 나라 국민이 만드는 것이란다. 지금까지 세계 정보를 차단당하고 독재자의 의중대로 움직인 사람들이 그 그늘에서 해방되었다고 해서 바로 사태가 호전될 것 같지는 않구나."
(마도카의 답변 생략)
"아니. 독재자가 사라진 것 자체는 나쁘지 않아. 문제는 암살이라는 수단을 취했다는 점이란다. 유혈 속에서 생겨난 것은 어떤 대의 명분이 있어도 올바르지 않아."
(마도카의 답변 생략)
"그런데 무조건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단다. -의 경우는 우연히 독재자가 이 남자였기에 이렇게 된 걸지도 몰라. 정치학자 중에는 멍청한 사람 여럿보다 우수한 정치가 한 사람이 더 낫다고 딱 잘라 말한 사람도 있으니까. 시대를 거꾸로 가냐,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거냐고 호된 반론을 들었지만 그 사람의 주장도 일리 있단다. 독재라고 하면 히틀러나 무솔리니가 바로 떠오르지만 고대 로마에는 독재자였지만 하드리아누스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같은 명군도 있었어."
"요컨대 독재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야. 독재자의 통치권이 정당하냐 아니냐. 말을 바꾸면 국민의 뜻이 그 독재를 인정하느냐 아니냐에 달렸단다. 독재 국가가 종종 문제가 되는 이유는 만은 독재 국가에서는 국민의 권리를 보장한 뒤에 자유로운 선거를 치르지 않으니까."
("그럼 드물게 보이는 명군이라면 독재라도 상관없다는 말이야?")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렇지. 하지만 물론 명군 이외에도 조건이 있는데 독재자는 언제나 국민의 감시를 받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국민에게 그를 파면할 권리가 있어야 하는 것."
("그게 독재라고?")
"말했잖니. 근래 변변치 않은 사람이 독재 정치를 하니까 이상한 선입견이 생겼을 뿐, 진짜 우수한 지도자인지 체크하는 기능이 완비되어 있으면 독재도 단순히 정치 형태 중 하나일 뿐이란다. 국가를 통치하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도 마찬가지고."
("가장 필요한 자질?")
"뭐 이것은 정치가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니지만 결코 자신의 권력을 자신을 위해 쓰지 않는 것.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다 마찬가지야. (중략) 그런 것에 털끝만큼이라도 사욕이 생기면 바로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단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마음을 조율해야 해. 그것이 사람 위에 서는 자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조건이야."

 

... 나 여기에 대고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진짜, 레이의 심정으로, 참담함 마저 올라옵니다....... 왜, 지난 탐라에서 본 은영전 감상기가 떠오르는 거죠.

 

https://twitter.com/peachpig0929/status/1195631766393905152

 

복복돼지돼지😷 on Twitter

“지인을 잘못 사겨서 쇼와라노베 은하영웅전설(이하 은영전)을 레이와시대에 읽어보는 타래, 그냥 짬짬히 조금씩 볼 예정이라 완주는 시간이 좀 걸릴것 같음”

twitter.com

 

그 은영전 소설판 감상기 타래는 저기. 하여간 저 부분의 대화를 읽고 있는 동안 위화감과 불쾌감이 동시에 올라오더군요. 암살로 독재자를 죽여본 적 있는 국가의 국민이, 1인 독재 혹은 그 비슷한 것으로 국가가 망가지는 중인 옆나라 국민이 저 소리 하는 걸 보고 있노라니 위화감이 들고, 저게 자학개그는 아니고 진짜로 하는 소리라 생각하니 불쾌감이 올라오는 겁니다. 와아. 진짜 어디서부터 지적해야할지 답이 안나옵니다. 아니, 저건 성선설이잖아요. 우리는 기본적으로 성악설을 깔고 가야합니다. 특히 정치권은요. 권력이 있는 공간에서는 인간이 선을 행한다가 아니라 악을 행한다고 전제하고 갑니다. 그래야 방어를 할 수 있고요. 그걸 넘어서 독재라는 정치체재가 단순히 1인이 통치하는 정치체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1인 통치체재가 망가진 형태를 가리킨다는 건 왜 생각치 않나요. 저런 논리가 독재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도 있고요. 아니... .. ... 이 부분은 조금 더 제정신일 때 다른 곳에서 찬찬히 다뤄봅시다. 졸리고 흥분한 상태에서 다룰 주제가 아니니까요.

 

 

하여간 그런 연유로 이 작가 책은 앞으로도 죽 손대지 않는 것이 현명하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개구리 남자는 아주 조금 흥미가 돌지만, 이미 여러 모로 경고 받은 책이라 기대는 하지 않을 테니, 이번처럼 실망할 일도 없겠지요. .. 아마도 그럴 겁니다.

 

 

 

나카야마 시치리. 『시즈카 할머니에게 맡겨 줘』, 강영혜 옮김. 블루홀식스, 2019, 14000원.

 

서지정보 정리는 다음에. 일단 간략 감상만 적어보지요.

 

『봉제인형 살인사건』

추리소설, 경찰소설.

주인공이 경찰들. 처음에는 미국계인줄 알았으나 읽다보니 런던경시청입니다. 읽다가 모 장면에서 기겁하고 결말부분 확인하는데, 맨 마지막 문장이 의미심장하네요. Wolf in the sheep. 아. 그렇구나.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구나.

어쨌건 결말의 모호함을 둘째치고서라도, 매우 뒤집히는 이야기입니다. 증거가 하나씩 수집될 때마다 팬케이크를 뒤집습니다. 그리고 그 결말은 매우 질깃합니다. 아니, 저, 이런 결말 좋아하지 않아요. 나는 한 마리 외로운 늑대!

아. 그렇구나.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구나.

 

 

 

『깊은 상처』

『잔혹한 어머니의 날』

추리소설, 경찰소설.

시작은 이 쪽이 먼저입니다. 이번에 새로 나온 잔혹한 어머니의 날을 보고는 흥미가 생겨 슬쩍 손댔는데, 이것도 마찬가지로 결말만 보았습니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은 나온지 얼마 안되어서 결말 확인하고는 고이 내려 놓았다가, 아직도 이 시리즈가 나오나 싶어 집어 들었습니다. 주인공들 둘다 몰려 있는 것이 참 미묘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내려 놓았다가 이 인물들 어떻게 사나 싶어서 『잔혹한 어머니의 날』 결말만 확인했습니다. 내용 짐작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지 않았고, 죽 읽어가면서 그 둘 중 누가 범인인가 살펴보는게 흥미진진하더군요. 커플은 깨졌다가 다시 합치고 등등을 반복하였으며, 마지막은 일단 해피엔딩...? 멀쩡한 사람일수록 의심하라는 것이 경찰 소설의 백미라고 생각합니다. .. 생각해보니 이 다음에 읽은 봉제인형도 그랬어.... 멀쩡한 사람일수록 일단 의심합시다.

 

최근편을 보니 그 전에 나온 작품들도 소개가 나옵니다. 그리하여 『깊은 상처』를 손댔는데, 이게 나치와 유대인 관련 이야기더라고요? 거기까지는 괜찮았는데, 결말부분만 달렸더니 그 ... .. ...  막장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아니, 음, 뭐, 원래 남남처럼 살다가 그렇게 된거잖아요? 그러니 문제 없다고 봅니다. 누구 말마따나 아기 낳을 것도 아닌데. 그런 의미에서 에필로그는 매우 아름다웠...(...) 시리즈의 다른 편들보다 매우 온건한 에필로그가 나왔더랍니다. 궁금해서 전체 독서를 할까 고민될 정도로.

 

 

올해의 독서기가 매우 빈약할 것을 두려워 하여 작성하는 글이 맞습니다. SF도 읽겠다며 쟁이는 것은 적당히 하고, 방출 준비도 할렵니다. 쌓아둬도 보지 않을 것이라면 보내는 것이 수순이지요. 하여간 추리소설이 더 제 입에 맞는다는 확증을 갖고 이만 총총.

 

 

 

 

 

다니엘 콜. 『봉제인형 살인사건』, 유혜인 옮김. 북플라자, 2017, 15000원.
넬레 노이하우스. 『깊은 상처』, 김진아 옮김. 북로드, 2012, 13800원.
넬레 노이하우스. 『잔혹한 어머니의 날 2』, 김진아 옮김. 북로드, 2019, 12800원.

지금 보고 알았는데, 봉제인형 살인사건의 원제는 Ragdoll이군요. ... 띄어쓰기 안하면 고양이인데?

... 어, 스포일러일까요. 하지만 제목부터가 『죽음을 선택한 남자』이고, 그 뒤의 설명은 감상보다는 슬쩍 사감을 집어 넣었으니까요. 제가 적은 저 감상 제목을 100% 신뢰하면 수수께끼는 안 풀립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이 소설도 읽다가 결말부분부터 확인하고 도로 앞으로 돌아가 내용을 확인했습니다. 시리즈 2편의 감상 적으면서 맨 마지막의 결말을 좋아한다 했지만 이번 편은 읽으면서, 시리즈 2권을 읽으면서 느꼈던 희미한 위화감을 밝혔다고 답하겠습니다. 그래요, 이 소설은 추리소설이지만 그 구조적 특징은 서부개척시대배경소설과 닮아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예 웨스턴소설이라 적어보지요. 미국의 서부개척시대를 배경으로 한 웨스턴소설은 여러모로 하드보일드와 닮았습니다. 백인남성이 주인공인 웨스턴소설은 어떤 면에서는 무협과도 닮았습니다. 웨스턴소설과 또 닮은 소설을 들라면 이언 플레밍의 007시리즈가 있네요. 007시리즈는 국가정보원에 해당하는 영국모기관에 소속된, 살인면허를 가진 에이전트가 지령을 받고 잠입해서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입니다. 그 속에는 본드걸이라 불리는 여성이 등장하며, 이 여성은 보조적 역할을 맡고 007의 업무 수행을 돕습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러브라인이 싹트지요.

웨스턴소설은 러브라인이 있건 없건, 일단 떠돌이 보안관 혹은 그 유사한 총잡이가 고인물마을™에 들어가 깨끗하게 청소하고 떠나는 형태를 취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드보일드와도 닮았지만, 대체적으로 추리소설의 하드보일드는 밑바닥계층의 가진 것 없는 이가 약자를 도우면서 또 외로운 늑대처럼 홀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그러니 007시리즈와 웨스턴소설과 하드보일드는 약간씩 차이가 있습니다.

 

『죽음을 선택한 남자』는 이 셋 중 어디에 들어갈까요. 굳이 따지자면 무협? 앞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문득 그런 생각도 들더랍니다. 아무래도 여러 사람들과 묘한 분위기(썸)를 풍기면서도 예전에 떠나보낸 가족을 떠올리며 홀로 울부짖는 늑대라 그럴 겁니다. 사건에 휘말리고 해결한다는 점에서는 하드보일드에 가깝지만, 기관에 소속되었다는 점에서는 007이며, 사건이 해결되면 또 거기서 떠난다는 점은 웨스턴소설과 닮았습니다. 아. 완전히 떠나지는 않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소속되고,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능력을 증명하고 친구를 만들며, 세 번째 이야기에서는 정규직이 되니까요. 예. 드디어 정규직이 됩니다.

 

이번 이야기는 에이머스 데커가 목격자입니다. 데커는 회의를 위해 FBI 건물로 걸어가다가 우연히 사살 및 자살 사건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그 특유의 능력을 이용해 이번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합니다. 다만, 가해자와 피해자가 매우 명백한 이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whydonit이었습니다. 왜 이걸 했지? 왜 그랬지? 가해자는 왜 피해자를 죽였지? 왜 그렇게 죽였지?라는. 그 부분은 많은 부분에서 007의 이야기를 따랐으며, 또 CSI에도 빚을 졌습니다. 대체적으로 남성의 비중이 높고, 여성 주요인물이 적은 이 소설 속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 하나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등장한 부분은 .... (하략)

 

재미있냐고 물으신다면 네라고 대답할 겁니다. 아마 젊은 사람보다는 조금 나이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설정들이 아닐까 싶네요. 007을 언급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이번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위화감은 에이머스 데커의 존재 자체에서 기인합니다. 그러니까, 주인공에게 능력을 몰아줍니다. 몰빵. 주인공이라지만 너무 과하게, 에이머스를 중심으로 모든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NCIS보다도 더하군요. 각각의 역할이 있기는 하나, 에이머스를 중심으로 과도하게 맴돌다보니, 능력이나 지위가 부족한 에이머스가, 다른 이들까지 멱살잡고 끌고 나가는 듯한 느낌도 받습니다. 편하게 말하면 작위적입니다. 에이머스가 아니면 사건 해결의 진행이 안될 것 같습니다. 에이머스는 사건의 중추신경이고 뇌입니다. 다른 이들은 손과 발이며, 아니면 심장쯤? 물론 심장도 중요하긴 하지만 모든 해결책은 에이머스에서 시작된다는 느낌마저 받습니다.

 

위화감이 그래서 느껴질지언정, 나름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NCIS나 CSI를 좋아하신다면, 추천합니다. 과연 다음편에서 에이머스의 복장 규정은 어떻게 될 것인가! =ㅁ=

 

 

 

 

데이비드 발다치. 『죽음을 선택한 남자』, 이한이 옮김. 북로드, 2018, 14800원.

 

삶은 달걀™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삶은 달걀은 좋아하지만 추리소설 장르인 하드보일드, 삶은 달걀™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드보일드는 강퍅한 남성이 도시의 외로운 한 마리 늑대가 되어 그 밑바닥을 훑고 다니는 이야기라 그렇습니다. 많은 경우 하드보일드에는 여성이 등장하지 않으며, 등장하더라도 밑바닥 인생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이 외늑대 혹은 차도남은 나쁜 남자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매우 싫어하는 K모국의 K모 감독의 영화에 나오는 그런 남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입니다.

 

 

생태학 책을 보다보면, 그리고 늑대의 생태를 공부하다보면, 늑대도 사자들처럼 암컷 중심의 무리 사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도시의 외로운 한 마리 (수컷) 늑대는 하드보일드에서 추구하는 남성의 이미지와는 다를지도 모릅니다. 도시의 주류 사회에서 떨어져 나와 무리에 속하지 못하고 혼자서 거닐다보면 쉽게 도태되고 죽기 마련이니까요. 뭐, 인간은 야생 늑대와는 다르니 어느 정도 살아남기는 하는 모양입니다.

 

 

음주 포스팅도 아닌데 잠시 헛소리를 주절거렸군요. 오랜만에 하드보일드 느낌의 미국추리소설을 읽어 그럴 겁니다. 이런 소설은 아주 오랜만에 읽습니다. 최근의 독서는 거의 전자책이고, 종이책을 읽더라도 대부분 일본소설이었습니다. 그렇다보니 미국소설은 굉장히 오랜만입니다. 그것도 읽고 나서 하드보일드 느낌이다 싶은 것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하드보일드일 수도 있고, 아니면 패트리샤 시리즈나 니암 링컨 시리즈와도 닮았습니다. 이 소설을 아마도 하드보일드라고 모호하게 언급한 것은, 동료가 있지만 그래도 고독하며 아직도 혼자인 것처럼 보이는 주인공 때문입니다.

 

『괴물이라 불린 남자』는 시리즈의 두 번째입니다. 첫 번째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이고, 세 번째는 『죽음을 택한 남자』입니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는 결말부분의 약 10%를 확인했고, 『괴물이라 불린 남자』는 전체를 다 보았습니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는 에이머스 데커가 자신의 문제를 딛고 일어서는 이야기를 담았고, 두 번째 편인 『괴물이라 불린 남자』는 에이머스 데커가 본격적으로 사건에 뛰어드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세 번째 이야기는 아직 못 읽었지만 이것도 꽤 기대중입니다.

책 뒷면의 줄거리만 보면 그리 취향은 아닐 것 같은데, 왜 손이 갔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괴물이라 불린 남자』의 결말 부분을 확인하고는 조금 흥미가 생긴 상태에서,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의 결말 부를 읽고, 그게 굉장히 마음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거든요. 아니, 개인적인 취향 문제이기도 했지만 정말로, 『괴물이라 불린 남자』의 결말부는 제 취향의 스트라이크존에 들어갑니다. 정확히 맞았어요.

 

결말을 알고 봄에도 이야기를 읽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읽은 결말 부분은 데커 말고,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인 멜빈 마스가 정상적인 삶을 찾기 위해 새로운 출발을 하며 데커와의 끈끈한 우정을 남기고 떠나는 장면입니다. 혹시 모르니 이 부분은 슬쩍 가려 놓지만, 알고 보더라도 큰 문제는 없습니다. 책 뒷면의 줄거리를 보아도, 에이머스 데커와 비슷한 상황이 멜빈 마스가 어찌 될 것인지는 대강 짐작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 소설 역시 그러한 기대를 크게 배신하지 않습니다.

물론 배신 당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소설 내에서 뒤통수는 세 번쯤 맞았나봅니다. 반전의 반전이라기보다는 사건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일어난 여러 일들이지만, 그게 전개를 심각하게 해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전개를 해치는 부분은 주인공인 에이머스 데커 자신입니다. 이번 소설을 읽으며 생각했지만, 대체적으로 데커는 만능입니다. 소설의 전개와 실마리는 모두 데커가 끌고 나가며, 데커는 구글신을 포함한 각종 자료들을 읽고 파악하고 분석하여 진상에 접근합니다. 고전부 시리즈의 사토시가 자신은 데이터베이스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 적 있지만, 데커는 데이터베이스이며 그걸 분석하는 오레키 호타로적 능력도 지녔습니다. 아니, 고전부 시리즈의 팬이라서 읽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일단 말리겠습니다. 이건 일상 추리가 아니라 미국식 범죄수사물입니다. 그것도 FBI 계통의 스릴러, 경찰소설, 탐정소설이요. 첫 번째 이야기인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는 여는 장면 때문에 더 읽는 것을 포기했지만, 그리고 결말의 모습을 보고서 다음 권은 읽겠다고 생각했지만, 일본의 잔잔한 추리소설하고는 매우 거리가 있습니다. CSI나 NCIS보다는 덜 잔혹하지만 그래도 미국적인 추리 요소가 많습니다. 읽다보면 그렇게 생각하게 되더군요. 거기에 동료들과는 아직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어떻게든 살아 나가기 위해 애쓰는 데커가 안쓰럽기도 합니다. 완벽한 인물이 아니라 애초에 바닥까지 떨어졌던 사람이고, 어떻게든 일어서서 걸어 나오다가, 자기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이의 사연을 듣고 움직입니다.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 그리고 전개에 해당하는 이야기로는 매우 적절했네요.

 

결말부가 취향 직격이라는 건 그래서이기도 합니다. 마지막까지 약자와 뒤에 남은 자에게 손을 내미는 듯한 그 모습이 좋았거든요. 그리고 끈끈한 우정이란.... 그래요. 읽고 나면 판도라 상자 맨 바닥에 남은 희망을 엿본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듭니다.

 

오랜만에 집어든 미국추리소설이 입맛에 맞아 다행입니다. 이제 다른 책들도 더 읽을 수 있겠어요.

 

 

 

 

 

 

 

 

데이비드 발다치. 『괴물이라 불린 남자』, 김지선 옮김. 북로드, 2017.

 

서점 목록 확인하고는 깨달았습니다. 이거 네 번째 이야기가 올 7월에 나왔습니다. 내용을 보고 궁금한 김에 앞 시리즈 검색하면서 알게되었나보네요.'ㅂ'

M님이 이 책을 읽고 계신 모양입니다. 트위터에 일부 감상기가 올라와 거기에 댓트윗 달았더니 감상 기대한다는 말에.. 일요일 아침에 서둘러 작성해봅니다. 아니, 이야기 없었어도 감상기 올렸을....? 장담은 못하겠네요. 요 며칠 사이에 희한하게 무기력이 와서 그렇습니다. 어제와 그제 글쓰기를 건너뛴 것도 그 때문이고요. 아. 트위터를 좀 줄여야. 차라리 다른 책을 읽는 것이 낫지, 트위터를 읽고 있는 것은 그리 좋지 않습니다. 그나마 어제 저녁 잠자리에서 읽은 책이 매우 훌륭하였다는 것이 장점이라면 장점이네요.

 

 

다 읽고 나서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분개했고,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소설이라며 투덜댔습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소설은 학생 아리스보다는 작가 아리스를 편애합니다. 학생 아리스의 탐정이, 뭔가 뒷 사정이 있어보이는 남자 대학생이라는 점이나 뒤끝이 좋지 않다는 점 때문에 그렇습니다. 『외딴섬 퍼즐』을 읽고 특히 분노하고는 그 뒤에 나온 학생 아리스는 손대지 않았습니다. 이 이야기와 이어지며, 아리스가와 아리스 책 중 가장 평가가 높은 『쌍두의 악마』 도 손 안댔습니다. 지금 적다보니 볼까 말까 고민되네요. 고민만 하다가 미룰 가능성이 높긴 합니다만. 대체적으로 치정싸움이 빠지지 않는다는 점도 걸리는 부분입니다. 작가 아리스 시리즈지만 『46번째 밀실』이나 『말레이 철도의 비밀』 , 그리고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 다른 한 권도 읽다가 짜증나서 던졌습니다. 두 번째 책은 그럭저럭 보았지만 『46번째 밀실』은 범행동기를 보고는 이런 치정이었냐고 분노했으니까요. 『외딴섬 퍼즐』도 범행 동기가 매우 치졸합니다. 그렇다보니 읽으면서 공감을 못합니다. 차라리 아야츠지 유키토처럼 광인(狂人)이 등장하는 시리즈들이 낫습니다. 하기야 양쪽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고. 작가 아리스는 비교한다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를 생각할 수 있는데, 사람만 놓고 보면 작가 아리스 쪽이 조금 더 취향입니다. 범행 동기나 그 트릭은 한없이 취향에 안 맞지만요.

 

예.

단적으로 짚어 말해서 『자물쇠 잠긴 남자』는 중요 트릭이 몇 등장합니다. 한신아와지대지진이 그 중 하나이며, 시간적 불가능도 또 하나의 문제입니다. 근데, 아무리 봐도 이건 미친짓입니다. 정말로 미친짓이예요. 혹시나 하는 생각은 했지만 정말로 그 트릭이 등장하는 순간 속에서 육두문자가 치솟아 올랐습니다. 그건 아니지요.

 

 

일단 정신 차리고 정리를 좀 해보지요.

 

 

어느 날 작가 아리스는 소설가 대선배에게 개인적인 연락을 받습니다. 직접 연락을 받은 건 아니고, 편집자를 통해서 전해온 연락을 받고 나가보니, 어떤 사건 하나를 조사해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경찰이 자살로 마무리한 어떤 사망 사건을 두고, 절대 자살일 리가 없다며 이 사건을 다시 살펴달라는 이야기입니다. 바꿔 말하면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아니라 히무라 히데오의 힘을 빌리고 싶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때는 연말 연시. 조교수는 입시 때문에 동원되어 정신 없습니다. 그리하여 사건 장소인 오사카에는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먼저 가서 조사를 해두기로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모님 이야기대로 '조수일 3년이면 탐정뺨친다'(링크)는 수준입니다. 그런 점에서는 『바스커빌 가의 개』와도 비슷하군요. 다만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조사 수준이 더 높습니다. 보면 아실 거예요.

 

이 소설의 매력은 지리적 위치에 있습니다. 호텔을 운영하는 젊은 부부와, 고즈넉한 분위기의 작은 호텔, 그리고 맛있어 보이는 호텔 레스토랑, 그리고 특정 지역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돋보이거든요. 망자의 궤적을 따라가는 그 모습이 매우 현실감 있습니다. 그래서 앞부분까지는 좋았습니다. 죽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자살을 할 만한 인물인지, 어떠한 정보도 남기지 않고 장기 투숙한 호텔방 하나에만 모든 것을 두고 간 인물의 정체가 무엇인지,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차근히 살펴 나갑니다. 거꾸로 말하면 히무라 히데오는 마지막의 마지막에 모든 증거와 판이 깔린 곳에 와서는 사건의 진상을 확인하고 발표합니다. 그 내용까지 말하면 아쉽죠.

 

간사이나 오사카 여행을 가시는 분들께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시리즈는 추천할만 합니다. 단편집도 그렇고, 이번 책도 매력적입니다. 매력적이지 않은 것은 사건의 동기와 트릭 문제입니다. 개인적으로 분노한 부분도 '시간서술 트릭'이라 부를 수 있는 그 부분이었습니다. '말도 안돼!'가 아니라 'ありえない!' 그러니까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분노했으니까요. 트릭은 있을 법하나, 그 과정에서 그 사람의 선택은 정말로 미친 짓입니다. 이것은 아냐. 남자 작가라서 쓸 수 있는 트릭이야, 싶더라니까요. 하하하하.-_-

 

 

일단 추천합니다. 간사이 여행 좋아하시는 분께는 매력적인 책입니다. 맨 마지막 부분에서 분노했지만, 그건 아리스가와 아리스 장편 소설 읽을 때 대부분은 그랬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책은, 호텔의 묘사나 주변 지역 묘사가 손에 잡힐 듯 생생한데다, 비용만 아니면 나도 이런 호텔 가고 싶다!는 절규가 튀어나오는 수준이니까요. 작가들이 통조림으로 거듭나던 도쿄의 야마노우에호텔은 이보다 규모가 작지만, 그리고 고베의 호텔 피에나가 이와 비슷하거나 작을 거라 생각하지만 도심에 있는 작은 호텔이란 여행자들에게는 로망입니다. 후후훗.

 

 

아리스가와 아리스. 『자물쇠 잠긴 남자 상-하』, 김선영 옮김. 엘릭시르, 2019, 각 13500원.

지금 보니 출판사가 엘릭시르였군요. 번역은 대체적으로 걸리는 곳 없이 무난합니다. 아마 한 두 곳 정도 갸웃거리는 부분은 있었다고 기억하는데 그 외엔 없고요. 책 판형이나 기타 등등의 편집은 엘릭시르 답게 좋습니다.

 

 

 

 

덧붙임.

그러고 보니 제목에 적은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안 짚고 갔습니다. 왜 까먹었지.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트릭은 본문에 잠깐 언급했던 것처럼 무리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작위적이고, 트릭을 위한 트릭, 전체 이야기를 만들어 놓고 거기에 트릭을 끼워 맞추기 위한 이야기로 보입니다. 작가 아리스의 소설이 안 팔리는 이유가 이거지! 라는 엉뚱한 생각이 들 정도로 말입니다. 단편의 경우는 덜하지만 장편은 그런 작위감이나 위화감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쌍두의 악마』는 어떨지 모르지만.. 으으음. 트릭들만 놓고 보면 작가가 따르고 싶어하던 엘러리 퀸 쪽이 아니라 요코미조 세이시의 느낌이 강합니다. 살인이라는 점에서는 파일로 밴스도 닮았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거기서는 작위감이 그렇게 심하게 느껴지지는 않거든요.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문제점은 그 부분입니다.'ㅅ'




일단 사진 찍은 다섯 권 중 셋은 읽었습니다. 정확히는, 둘은 읽었고 하나는 초반과 결말 확인하고 덮었고, 다른 둘은 아끼는 중입니다. 아끼면 안되는 건 알지만 못 읽고 두고 있으니 어쩔 수 없네요. 역시 트위터를 접어야...(...)

트위터를 훑는 것으로 활자 중독 증상이 해소되거나 혹은 강화되기 때문에 오히려 책을 손에 안 잡게 되더군요. 의도적으로라도 좀 읽고 좀 써야하는데 많이 게으릅니다. 역시 이 모든 것은 봄....!





『근사하게 나이들기』는 나중에 종이책 감상기 모음에 짤막하게 올릴 거고, 『구원자의 요리법』은 따로 감상기를 올릴 겁니다. 투덜투덜 불평을 올릴 『사쿠라코 씨의 발밑에는 시체가 묻혀 있다』는 종이책 감상기에 올릴까 하다가 생각을 정리할 겸 끄적여 봅니다. 오늘 올릴 다른 글도 지름목록의 연장이라, 오늘도 그런 글 쓰면 안되겠다는 위기감이 왔기 때문입니다.



『사쿠라코 씨의 발밑에는 시체가 묻혀 있다』는 1권이 아니라 5권부터 구입했습니다. 이전부터 제목은 들었지만 라이트노벨은 최근에 거의 손을 안댔기 때문에 이 책도 그러려니 생각하고 피했습니다. 트위터 타임라인에 간간히 보이다가, 이 책이 법의학쪽을 다룬 책이란 이야기에 잠시 고민하고는 5권을 구입했습니다. 가장 최근에 나온 것이 5권이고, 초판 한정 일러스트 엽서가 있다는 말에 혹한 겁니다. 1권은 높은 확률로 그 엽서가 없을 거라 봤거든요. 원래는 홍대 총판에 간 김에 집어올 생각이었는데, 북새통은 온라인에서만 이 책을 취급하더랍니다. 의외로 수요가 없었는지도 모르지요.



5권부터 읽어도 어차피 기본 얼개는 대강 알고 있었던 터라 따라가는데 크게 문제는 없었습니다. 어쩌다가 권세 있는 집 가문의 성격 독특한 아가씨와 얽힌 고등학생 남자아이의 이야기라고 파악하고 봤지요. 그런 분위기가 조금은 더 진중하게 그려진 것 외에 큰 차이는 없습니다. 아가씨도 약간 물정 모르고 사람과는 친하지 않은, 흔히 표현하는대로는 지식계입니다. 거기에 얼결에 휘말란 보통의 남학생이군요. 원래대로라면 별로 접점도 없었을 것이나, 조금은 차분하고 사쿠라코와 관련된 일이라면 먼저 손 뻗어 나서고 싶어하는 그런 인물입니다. 적어도 5권에서 파악한 주인공의 성격은 그렇습니다. 앞은 휘말리는 단계였을 것이니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을지도요.


다만, 그렇게 취향에 맞는 소설은 아니었습니다. 5권에서 나오는 X라는 인물은 앞서의 사건들과도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렉터 박사에 가깝겠네요. 사쿠라코는 자신이 매우 존경하는 숙부의 발자취를 쫓다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X의 존재를 알아채지만, 사건에 관련은 있되 직접적인 관련자는 아니고, 범인은 또 별도로 존재하다보니 X는 경찰의 수사 대상과는 거리가 멉니다. 자극은 주지만 그것이 자극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은 X, 그리고 쫓는 입장인 사쿠라코와 그 주변 몇몇 뿐입니다.


어떻게 보면 정석적인 이야기지만 풀어나가기에 따라서는 흥미롭지요. 하지만 저는 여기서 얌전히 손을 떼었습니다. 주인공들의 움직임이 제가 원하던 것과는 조금 다르더랍니다. 인간관계가 넓지 않아보이는 사쿠라코는 '나'와 함께 사건을 조사하러 가고자 합니다. 거기까지 보고서 결말부로 건너 뛰었는데, 절정 쯔음에서 예상대로의 사건이 일어나더니 또 예상대로의 흐름이 이어집니다.


클리셰보다는 예상대로라는 것이 맞습니다. 주인공은 '아가씨'라 이모저모 서투르고, '나'는 원래 그렇게 오지랍이 넓은 편은 아니나 아가씨와 관련된 일만은 예외입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나'가 고등학교 남학생이 아니라 여학생이었다면 오히려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생각은 합니다. 뭐, 그렇게 나올 가능성은 매우 낮지요.


범인이 벌이는 여러 사건이나 그 뒤의 대사도 예상할 수 있는 범위 안이고, 뒷 이야기가 더 나와야 하다보니 X의 이야기는 간접적으로만 나옵니다. 5권이 흥미로웠다면 다시 1권으로 넘어가 차근차근 읽어볼 생각이었지만, 거꾸로 손을 놓는 것이 낫겠다 싶었습니다. 이전에 10권으로 완결된 라이트노벨계 추리소설을 볼 때와 비슷한 느낌입니다. 그 때도 4권인가 쯤에서 손을 놓았더랬지요.



중간 난입이지만 그래도 한 권을 읽고 나니 대체적으로 취향에 안 맞겠다는 생각입니다. 홋카이도 배경이라 풍경 묘사만이라도 괜찮았다면 계속 읽었겠지만 일단 이 책은 여기서 접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1권부터 다시 보겠지만 글쎄요... 음....




오타 시오리. 『사쿠라코 씨의 발밑에는 시체가 묻혀 있다 5』, 박춘상 옮김. 디앤씨북스, 2019, 11000원.



...디앤씨였군요. 여기 책은 묘하게 읽고 나면 취향에 안 맞는 경우가 발생한단 말입니다. 그것도 꽤 높은 확률로.;



법의학 기반의 추리소설이니 그쪽 좋아하신다면 의외로 재미있게 보실 겁니다.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법의학은 미국드라마 『본즈』나 링컨 시리즈라 이쪽과는 거리가 좀 있습니다.

도서관에 갔다가 충동 대출한 책입니다. 요코미조 세이시는 그다지 취향에 맞지 않아 집 서가에 들일 가능성이 낮습니다. 아무래도 벙거지 모자에 추레한 이미지의 긴다이치 코스케를 좋아하지 않아 그럴 겁니다. 제 취향은 엘러리 퀸이나 파일로 밴스 쪽이라, 긴다이치하고는 정반대에 서 있지요. 그건 코스케나 하지메나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메는 호불호 측정기를 대면 극단적으로 불호에 갈겁니다. 저질의, 상습 성추행범이니까요. 아무리 능력이 탁월하다 한들 저런 놈은 싫습니다.


하기야 하지메나 신이치나 둘 다 재앙을 몰고다니는 인물이니, 숙박부에서 이들 둘의 이름이나 모리 코고로의 이름이 보이면 무조건 도망치는 것이 상책이지요.



코스케는 조금 다릅니다. 긴다이치 코스케는 주로 의뢰를 받아 움직입니다. 이번 이야기에서도 주요 인물이 특정 사건을 조사해달라는 요구를 해와서 고개를 들이 밀었다가 특정인을 중심으로 한 연쇄 사망사건을 마주칩니다.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는 오토리 지요코는 다섯 번째 연인을 만나고 있지만, 1년 전 첫 번째 남편이 사망한 사건과 두 번째 남편의 교통사고 사건에 휘말려 있습니다. 첫 번째 남편의 죽음은 자살, 두 번째 남편은 사고사로 추정했지만 연이은 전남편의 죽음을 두고 소문이 돌았던 겁니다. 거기에 세 번째 남편이 사망하고 네 번째 남편이 행방불명 됩니다.

....

적고 보니 어이 없기도 하지만, 이게 책 뒷면의 요약입니다. 그리고 읽다보면 사실 남편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는 않습니다. 워낙 많은 인물들이 들어와 뒤섞이고 있으니까요. 책의 앞머리는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처음에는 속도가 별로 안나서 투덜댔지만, 긴다이치가 등장하여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고 사건이 연속적으로 발생하니 이들 죽음 사이에 있었던 여러 코드들이 나타납니다. 하지만 현대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이상한 일일 수도, 아닐 수도 있고, 이 시대에서만 뒤섞인 수수께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성냥개비의 정체를 알았을 때는 당황했습니다. 이중 함정에 빠지고 말았네요.




배경이 도쿄 근교의 휴양이 가루이자와이고, 여기의 음악제는 고리적 만화 『수다쟁이 아마데우스』에서도 본 적이 있습니다. 사실상 가루이자와라는 지명을 들은 것도 저 만화가 처음이었네요. 하여간 결말을 보고 나면 허탈해지는 것이 단점이자 장점입니다. 거기에 또 옛날 소설이다보니 지금에서 보면 비뚤어진 시각이라거나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다는 겁니다.

추리하는 사람이 긴다이치뿐만 아니라는 것도 재미있지요. 진상에 다가갈 가장 중요한 실마리를 쥐고 있는 것은 여럿이나, 실제 범인에 다가간 건 또 긴다이치뿐. 하여간 낙인효과나 오해, 커뮤니케이션 부재 등의 문제는 이 소설 속에서도 여러 번 나옵니다. 역시 소통을 하고 살아야 하는 거죠. 그런거죠. 허허허허허.




요코미조 세이시(2014). 『가면 무도회 1-2』, 정명원 옮김. 시공사, 각 11000원.



뒤의 해설을 보면 후기 작품이랍니다. 하기야 『옥문도』나 『팔묘촌』과는 느낌이 사뭇 다릅니다. 『병원 고개의 목매달아 죽은 이의 집』 보다 앞서 출간되었고 비슷한 소설로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를 소개합니다. 과연. 이 셋의 분위기가 사뭇 닮아있네요. 앞의 둘을 읽어 다행입니다.:)

1월의 종이책 기록을 남기겠다고 했으니 간략하게만. 여행기도 간신히 마쳤지만 독서기도 길게 올릴 기력이 없습니다. 아니, 업무를 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만 받을뿐, 업무를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럴까요.


순서는 무작위입니다.



김승섭(2018). 『우리 몸이 세계라면』. 동아시아, 2만원.
사회과학, 의학.
보건의학이라는 학문은 의학중에서도 사회과학 파트를 담당합니다. 이 책은 알라딘 메인에 뜬 것을 여러 번 보다가 호기심에 집어 들었는데 책을 받아보고는 좀 놀랐습니다. 하드커버에 두껍기도 하고 내용도 쉽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술술 읽히는 것이 매력이군요.
무엇보다 연구하는 사람들이 읽어야할 책이라 봅니다. 판타지소설 작가들에게도 꽤 흥미로운 책인게, 소설 속에서 써먹을만한 여러 역사적 사건들을 재미있게 풀어냈습니다. 조선시대의 역병이나 천문학도 함께 다루었으니 역사학 전공자들도 재미있게 읽을 겁니다. 그리고 초반의 여성학과 의학을 다룬 파트는 여성학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도 좋겠고요.


기시 유스케(2018). 『미스터리 클락』, 이선희 옮김. 창해, 15000원.

일본소설, 추리.

어... 읽다가 이 소설은 내 소설이 아니라면서 내려 놓았습니다. 저는 같은 추리소설이라도 통쾌한 것을 더 선호하다보니 그렇습니다.


구로이와 루이코 외(2018). 『세 가닥의 머리카락』, 김계자 옮김. 이상, 13000원.

오카모토 기도 외(2018). 『단발머리 소녀』, 신주혜 옮김. 이상, 13000원.

일본소설, 추리.

단편집입니다. 정확히는, 추리소설 도입 초기의 일본소설들 중 일부를 추려 엮었습니다. 『세 가닥의 머리카락』이 일본 추리 단편선 1권이고, 두 번째가 『단발머리 소녀』입니다. 『단발머리 소녀』의 앞 이야기, 그러니까 한시치 시리즈로 나온 오카모토 기도의 책은 매우 취향이었습니다. 이전에도 한시치 시리즈는 재미있다 생각했지만 다시 보아도 그렇네요. 이전에 책세상에서 출간한 한시치 사건부였나, 그것과는 겹치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 외에는 취향 외. 『세 가닥의 머리카락』은 대부분이 번안소설입니다. 그렇다보니 내용이 상당히 기묘하더군요. 이름은 일본이름인데 왜 런던에서 살고 있으며 프랑스와 미국까지 등장하는지 원. 원작이 앞에 소개되어 있으니 원작과 비교해서 읽어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대체적으로 옛 소설, 일본의 근대소설 느낌이라 재미는 슬쩍 접어두는 것이 좋습니다. 그 당시의 추리소설이 이랬더라 맛보는 걸로도 충분하지만요.



교고쿠 나츠히코(2014). 『무당거미의 이치 상,중,하』, 김소연 옮김. 손안의책, 각 14000원.

일본소설, 추리.

교고쿠도 시리즈를 꽤 오래 손 안 댔던 터라 읽었습니다. 그리고 상권을 읽다가 뚜껑이 열려서 하권으로 넘어갑니다. 하권 후반은 이해가 잘 안되었지만 그래도 대강의 흐름은 알겠던데, 결말까지 보고 나니 이거 뭐야!라는 비명소리가 터집니다. 아놔. 물론 교고쿠도 다운 결말이니, 속터짐은 당연한 겁니다.(눈물) 하권 보고 나니 중을 읽을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하권에 교고쿠도가 모 아가씨와 나눈 대담(?)은 누군가의 목을 잡고 짤짤짤 흔들고 싶은 수준입니다.



교고쿠 나츠히코(2009). 『항설백물어』, 금정 옮김. 비채, 14000원.
교고쿠 나츠히코(2011). 『속 항설백물어』, 금정 옮김. 비채, 22000원.

교고쿠 나츠히코(2018). 『후 항설백물어 (하)』, 심정명 옮김. 비채, 13800원.

일본소설, 추리.

12월에 후 항설백물어 상권을 읽고 나서는 도로 앞 이야기가 궁금했던 터라 앞 권과 뒷 권을 다 빌려왔습니다. 그리고 1월 초에 정주행하고는 탈력했습니다. 아... 이게 이렇게 되었구나 싶군요. 앞 이야기를 다 잊고 있었으니 후 항설백물어의 이야기를 못 따라가겠더랍니다. 그래도 나중에 전체 이야기의 흐름이랑 순서를 차근차근 정리해주더군요.

이것도 취향이 매우 갈린다고 보는게, 저는 교고쿠도보다는 항설백물어가 더 취향입니다. 물론 억지스러운 것도 있긴 하나 강간 소재가 끊임없이 등장하는 시리즈보다는 이쪽이 낫...지요. 아마도. 항설백물어도 없는 건 아니지만 결자해지까지는 갑니다. 무당거미의 이치를 읽을 때도 느꼈지만 교고쿠도도 가끔 보면 긴다이치 하지메나 긴다이치 코스케 같은 부분이 있네요.

... 아. 다음에 읽을 책이 긴다이치 코스케인데.OTL



다부치 요시오(2018). 『다부치 요시오, 숲에서 생활하다』, 김경원 옮김. 에이지21, 13000원.
인문?

인문? 생활상? 어디로 넣을지 애매한 책입니다. 정확히는 수필집인데, 거칠고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작가가 자신의 삶을 그렇게 기록한 책입니다. 근데 저는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자연에 피해가 되지 않게 살아가려면 그냥 인류 멸망을 기다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생각이라...(....)

솔직히 말하면 읽다가 매우 졸았습니다. 가구 만드는 이야기나 집 만드는 이야기가 더 많았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더군요.




김승섭(2018). 『우리 몸이 세계라면』. 동아시아, 2만원.
기시 유스케(2018). 『미스터리 클락』, 이선희 옮김. 창해, 15000원.
오카모토 기도 외(2018). 『단발머리 소녀』, 신주혜 옮김. 이상, 13000원.
교고쿠 나츠히코(2018). 『후 항설백물어 (하)』, 심정명 옮김. 비채, 13800원.
교고쿠 나츠히코(2014). 『무당거미의 이치 상,중,하』, 김소연 옮김. 손안의책, 각 14000원.
교고쿠 나츠히코(2009). 『항설백물어』, 금정 옮김. 비채, 14000원.
교고쿠 나츠히코(2011). 『속 항설백물어』, 금정 옮김. 비채, 22000원.
다부치 요시오(2018). 『다부치 요시오, 숲에서 생활하다』, 김경원 옮김. 에이지21, 13000원.
구로이와 루이코 외(2018). 『세 가닥의 머리카락』, 김계자 옮김. 이상, 13000원.



이렇게 한 달 간 읽은 책을 모아 놓고 보니 종이책 수량이 부족합니다. 더 채우겠습니다...?

책 원제가 'The Big Book of Christmas Mysteries'입니다. 크리스마스 전에 나온 책인데, 장바구니에 담고 조금 망설이고, 크리스마스 즈음에는 로맨스소설을 읽다가 이제서야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표지의 대표작가는 엘러리 퀸이 등장하는데, 엉뚱하게도 퀸 외의 작품들이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북스피어에서 예전에 냈던 유사한 책이 있었지요. 그쪽도 오토 펜즐러가 엮은 단편집이었습니다. 그쪽은 손이 안가서 초반 읽다가 조용히 치웠습니다. 그래도 이번 책은 도전의지를 불태우며 첫 번째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고, 다 읽는데 딱 이틀 걸렸습니다. 다른 책들은 손 안대고 이 책만 독파했으니 상당히 재미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이보다 더 빨리 시작한 몇몇 책들은 아직 중반도 못갔거든요. 읽고 나니 크리스마스가 소재인 이야기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한 감이 오더랍니다. 크리스마스 소재라면 진짜로, 그게 메인이 되어야 하니까요.


다양한 단편을 동시다발적으로 읽다보니 휘발되는 것도, 기억에 남는 것도 있네요. 크리스마스 단편도 그냥 실어 놓은 것이 아니라, 단편의 성격에 따라 여럿을 묶어 놓았습니다. 정통, 유머, 셜록 홈즈, 통속, 기담인데, 이 중에서는 기묘한 이야기쪽이 가장 취향에 맞았습니다. 메리 로버츠 라인하트의 「집사의 크리스마스 이브」는 읽으면서 엉뚱하게도 『폭풍우 섬 오누이』가 떠오르더군요. 에이스88 전집에 실린 책인데 한국에 따로 번역된 건 없었다고 기억합니다. 아마 몇몇 설정 때문에 닮았다 느껴 그런 모양입니다.


셜록 홈즈 크리스마스 미스터리 중에서는 「겨울 스캔들」이 마음에 듭니다. 중심이 되는 소녀가 있고 그 소녀의 입장에서 담담히 서술하는데.....! 예상은 했지만 그 사람이 그 사람이군요. 훗훗훗.


기묘한 크리스마스 미스터리는 선작 넷 다 마음에 들었습니다. 「귀신 들린 크레센트 저택」은 처음의 공포감과 마무리의 공포감이 다릅니다. 포인트가 그 부분이고요. 「유령의 손길」은 전체 이야기 중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재미있었습니다. 고딕 공포의 느낌이 들면서도 묘하게 에드거 앨런 포가 떠오르더군요. 결말을 보면서는 살짝 웃었지만 웃을 이야기는 아닙니다. 당사자가 되면 정말로 그럴 테니까요.

「크리스마스에 나타난 적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블랙 유머라고 봅니다. B님과 C님이 보시면 폭소할만 합니다. 나중에 이 책 챙겨가서 꼭 보여드리고 싶더라고요.



편집 후기를 보니 올...이 아니라 작년-2018년에 한 권, 올해인 2019년에 또 한 권 나온답니다. 이번 책이 매우 마음에 들었던 고로, 12월에 나올 다음 책도 기다려봅니다. 장바구니 비워놓고 기다릴 터이니 책 내주시면 됩니다. 바로 담아 구입할거니까요.




엘러리 퀸,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외. 오토펜즐러 엮음. 『화이트 크리스마스 미스터리』, 이리나 옮김. 북스피어, 2018, 16800원.



올해 크리스마스 전 책이 나오면, 그 책은 크리스마스에 읽겠다며 묵혀두고 이 책을 그 사이에 재독 할 겁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띄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네요. 여름에 본다면 더더욱 부러울 그런 책입니다. 하하하;

소설 주소: https://britg.kr/novel-group/novel-posts/?novel_post_id=72558

『Lars』. 브릿G 연재 완결작입니다. 브릿G에도 공개한 리뷰고요.



제목에서는 일부러 특정 키워드를 뺐습니다. 결말을 보고 나면 이 키워드도 넣어야 할 것이나, 의도적으로 뺐습니다. 그 부분은 다 읽은 분들을 위한 즐거움으로 남겨두지요.


처음 읽고 나서 리뷰를 쓰겠다고 호기롭게 외쳤지만 몇 번 재독하면서 어떻게 하면 내용 폭로를 덜하고 리뷰를 잘 쓸 수 있을까 고민이 되었습니다. 소설이 어려워서, 내용 정리가 힘들어서는 아니고, SF 배경의 추리소설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적게 알고 보는 쪽이 훨씬 더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추리소설 류는 가능하면 책 뒷면의 내용 소개를 안 봅니다. 그 자체가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함정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제목인 Lars도 뭐라 읽어야할지 고민되지만 다 읽고 나면 의문은 해결됩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주인공인 라스를 의미하는 걸로 보이니까요. ... 설마 아니라면, 할 수  없지요. 하지만 그 외에는 딱히 짐작가는 곳이 없는 걸요.


소설의 첫 문장은 간결합니다.

"이상하게도 그날, 라스는 구스타브를 생각했다."

1화에서는 여러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라스와 구스타브, 수산네와 올가, 그리고 마르틴.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일면은 확인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이 인물들이 누구인지는 차츰 밝혀집니다. 소설의 첫 머리에 등장하는 구스타브는 그보다 더 뒤에 등장합니다. 『Lars』는 주인공인 라스의 현재와 과거를 번갈아 가며, 과거도 먼 과거와 가까운 과거를 번갈아 진행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따라가는 것이 조금 버거울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꾸준히 몰입하여 읽어가는 것은 전개되는 이야기에서 조금씩 힌트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마르틴이 누구인지, 왜 라스는 마르틴을 그렇게 자세히 알고 있는지, 보육원에서 보육교사가 올가와 라스를 보고 느꼈던 감상이 이상하게 느껴진 건 왜인지. 그리고 이 작품의 키워드가 SF인 건 왜인지. 무엇보다 소설 첫 머리에서처럼 라스가 구스타브를 떠올린 것은 왜인지.

SF라는 건 소설의 배경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대라해도 아주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근미래라기보다는 다른 분기의 현대라고 보아도 될겁니다. 그리고 그 SF라는 코드는 이 소설에서 굉장히 중요한 작용을 합니다. 두 무리의 사람들이 어떻게 소통하고 또 이해하는가, 또 이해하지 못하고 절망하는가가 이 설정에서 출발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기동전사 건담』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니까 79년의 그 작품, 거기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요. 하지만 그쪽은 전쟁 자체에 초점을 맞췄다면 『Lars』는 두 무리의 사람들의 관계, 즉, 인간관계에 초점을 맞춥니다. 나와 다른 이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혹은 이해할 수 있는가? 거기에 또 깔려 있는 또 하나의 이야기는 첫사랑의 아픈 추억들입니다. Boy meets girl, Girl meets boy의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주인공이 라스다보니 전자가 더 와닿지만, 또 다른 이 때문에 후자도 상당히 감정 이입이 됩니다.

소설의 또 다른 특징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북유럽 배경의 추리소설, 경찰소설이라는 점입니다. 경찰들은 누군가를 쫓고 있으며, 그 추적은 덴마크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와의 국제적 공조 아래서 이뤄집니다. 경찰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마르틴 벡 시리즈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아마 같은 이름이 등장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피가 난무하는 잔혹한 범죄는 아니나 사람의 정신을 파괴하는 잔악한 범죄를 소재로 합니다. 잔혹하고 비정하거나 폐쇄적인 이야기는 아니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라스는 인간관계에 매우 소극적이며 사람들에게 거리를 둡니다. 이는 과거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바뀌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더 이상 피해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 분노하고, 또 절망하며, 자신이 그어 놓은 선과 규칙을 무시하면서 마지막에 달리는 순간은 굉장한 카타르시스를 줍니다. 그리고 마무리까지도. 마무리를 읽고 나면 더없이 몽실몽실한 감정을 갖고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2주 전, 시즌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더없이 봄날 같은 이야기이기도 하며, 연말 연시의 따뜻하고 포근한 분위기와도 잘 맞습니다.

그러하오니 안 읽으신 분들은 읽으세요. 완결 났고 내용도 아주 길지 않으니 연말 연시를 행복하고 흡족하게 보내실 수 있을 겁니다.+ㅅ+

반쯤은, 아니 80% 정도는 충동구매였습니다. 『탈레랑 커피점』은 그럭저럭 보긴 했지만 아주 좋아하는 책은 아니었고, 사실 그 즈음 나온 거의 대부분의 일상 추리들은 취향에 안 잠았습니다. 모 고서점의 이야기도 1권을 번역 전에 원서로 보다가 매우 취향에 안 맞는다고 내려 놓았습니다. 완결 났으니 다시 손댈만도 한데 묘하게 손이 안가더군요. 독서 동료들이 그 책 읽고 나서 싫어하는 인물 한 명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걸려 그럴지도 모릅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일상추리라 충동적으로 집어든 것치고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소재가 독특합니다. 카페 배경의 일상추리는 지겹도록 많이 나왔지만 이 쪽은 그보다 더 마이너한 소재입니다. 도연사라는 절의 주지승이 주인공들의 아버지이고, 이 소설의 주인공인 나는 주지의 맏아들로 현재 아버지를 도와 전업 승려를 합니다. 제목에서 나오는 쌍둥이는 소설 초반에 기술된 것처럼 양자입니다. 절 근방에서 발견된 쌍둥이 남매로, 주지인 아버지가 이 둘을 거뒀습니다.


총 네 편이 실려 있는 이 책은 단 권으로 완결입니다. 이야기를 더 끌어갈 수도 있지만 거기까지는 나가지 않았습니다. .. 혹시 이래놓고 2권이 나올 가능성도 있긴 합니다. 종종 편집부의 사정으로 2권을 내기도 하니까요. 그렇게 나오더라도 크게 무리 없어 보입니다.



대체적으로 이 이야기는 신도들을 살피며 두루두루 관리하는 승려들의 일을 보여줍니다. 그 점도 재미있지만 보통 그러하듯,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거기서 1차로 추리하고 그게 뒤집어 졌다가, 또 다시 반전이 일어나는 식의 엘러리 퀸 수법의 뒤집기가 많이 나옵니다. 누군가 진상을 밝혔다고 이야기를 하면 듣고 있던 누군가가 다른 시점으로 또 다른 해법을 제시하고, 그걸 바탕으로 풀다가 다른 증거가 나오고 이야기가 뒤집어 지는 식입니다.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만나는 추리들은 그렇지요. 그렇게 몇 번 헛다리를 짚어가면서 진상에 도달하는 것이 오히려 재미를 줍니다.



다만 공감하기 어려웠던 부분은 나이 서른에 수줍음 많고 연애 경험 없다는 주인공 잇카이, 속세명 가즈야입니다. 하기야 숫기 없는 사람이니 소설 속에서도 이런 역할을 맡긴 하지만요. 지금 분위기 봐서는 결혼할 수 있을지부터가 난감합니다. 맨 마지막 에피소드 보면 더더욱 그렇군요.(먼산)



오카자키 다쿠마. 『도연사의 쌍둥이 탐정일지』, 김동욱 옮김. 소미미디어, 2017, 12800원.



배경이 후쿠오카입니다. 그러니 후쿠오카 자주 가시는 분들은 상당히 이입해서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근방 지리가 세밀하게 묘사되네요.:)

소설 좌표는 여기.

https://britg.kr/novel-group/novel-post/?np_id=94755&novel_post_id=52727

『비오는 날은 재즈와 함께』


재즈는 언제 들어도 좋습니다. 음악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골라 듣는다면 클래식보다는 재즈를 듣습니다. 특히 일할 때나 글 쓸 때 배경음악이 필요하다면 재즈를 선택합니다. 그래서 모처에서 구한 스위스 재즈 라디오는 아예 즐겨찾기에 걸어 놓고 생각날 때마다 틀어 놓습니다. 다양한 음악을 듣다보니, 예전에 좋아하던 음악을 우연하게 다시 찾고, 제목을 알고, 다른 버전으로도 듣게 되는 일도 많군요.

이 소설도 재즈와 함께 시작합니다.


나와 그 일행은 비내리는 날, 재즈카페에서 창 밖의 비를 바라보며 재즈와 칵테일을 즐깁니다. 둘은 재즈와 비가 잘 어울리는 이유에 대해 잠시 대화를 나누다, '나'는 무언가를 찾는 듯한 카페 직원을 보고 궁금증을 느낍니다. 뒤이어 일행인 도하는 재즈와 비가 잘 어울리는 이유에 대한 답이라며 카페의 손님인 어느 커플을 가리킵니다. 각각 재즈와 비를 상징하는 것 같은, 잘 어울리지만 뭔가 묘한 분위기의 커플을 보고 도하는 새로운 수수께끼를 내놓고 둘은 커플에 얽힌 일상적이지만 비일상적인 수수께끼를 풀어 갑니다.


브릿지 자유게시판에서 이 소설을 추천하신 분이 있어 덥석 물었습니다. 처음 읽은 그 날은 마침 비가 내렸고, 종일 비가 온 덕에 저도 무의식 중에 재즈를 틀어 놓고 있었거든요. 덥석 물어서 보고 있는 동안 슬며시 웃음이 나오더군요. 탐정 콤비는 다른 작품들 속에서도 종종 만나는 전형성을 지닙니다. 약간은 막무가내며 눈이 매우 좋고(관찰력이 좋고) 집중력도 좋은 탐정, 그리고 그런 막무가내 탐정에게 휘둘리는 입장이며 본인은 평범하다고 여길 탐정의 친구. 일단 시점은 후자인 '나'의 1인칭 관찰자 시점에 가까우니 나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 인물상은 확신할 수 없지만, 내가 보는 타정- 도하의 정보는 상당히 많습니다. 단편이라 길지 않은 이야기임에도 탐정의 성격이나 습관 등에 대해 이것 저것 파악할 수 있는 것도 콤비 덕분이겠지요.

작은 이벤트가 얽힌 이야기는 다 공개하면 재미없으니 접어둡니다. 다만 재즈카페에서 작은 사고가 발생했고, 탐정 류도하는 그 사건을 해결하는데 공을 세웠으며 그 뒤에 친구의 심장을 들었다 놓았습니다. 전체 이야기의 프롤로그로도 볼 수 있지만 이 자체로도 충분히 완결성이 높습니다. 읽는 동안 미소가 입가에서 떠나지 않는 그런 이야기였고요. 슬쩍 웃으며 그 커플을 축하할 수 있었습니다.


소설 읽으면서 가장 걸렸던 부분은 탐정인 류도하의 설정입니다. 읽으면서, 라노베나 만화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인물이지, 솔직히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는 그런 인물은 아니라는 위화감이 있었습니다. 외모나 관찰력, 집중력은 좋지만, 친한 친구와 대화하면서 놀리는 과정에서 혀를 내밀고 메롱이라. 음. 그렇게 긴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이런 사람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거든요. 제 주변뿐만 아니라 보통의 이성 친구 사이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는 인물은 앞서 말했든 창작물 속에서만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 어딘가의 재즈카페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가 살짝 뜬 것 같은 위화감이 들었습니다. 거기에 주인공 둘의 관계 설정이 그런 맥락으로 이어지는 전형성을 가진다는 것이 아쉬웠고요. 뭐라해도 맨 마지막에 도하가 선언한 일이 실제 발생한다면, 그 와중에 '내'가 도하에게 내내 휘둘릴 것이란 점은 불 보듯 뻔히 보입니다.


하지만 읽으며 조금 투덜거리더라도, 읽고 나면 소설에 등장한 재즈 곡들을 찾아 듣게 됩니다. 그리고 곡을 들으며 다시 한 번 소설을 읽습니다. 여운이 좋은 소설로, 그 자체의 완결성도 좋지만 이게 다른 긴 이야기의 프롤로그라 해도 좋습니다.

소설 자체도 만족스럽지만 가장 좋아하는 것은 역시 오하나의 존재입니다. 오하나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이 소설은 읽을 가치가 있습니다.


일단 북스피어고요, 일단 하타케나카 메구미입니다. 이 둘의 조합이니 책의 재미는 보장되었지요. 데뷔작이라는 『샤바케』도 살짝 떠오르지만 괴이를 소재로 한 그 책과는 달리 이 책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소설의 시작은 누군가의 독백입니다. 언니는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지만 아버지는 그 사람은 두고 다른 사람과의 혼인을 추진합니다. 그 사이에서 번민하던 언니는 최근 강물에 빠져 사망했습니다. 그 자살이 아버지에 의한 타살은 아닌지, 의심하지만 그걸 대놓고 물어볼 용기는 없습니다. 아버지는 료고쿠바시 근방을 주름잡는 행수입니다.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만 행수인 것은 아니고, 굳이 따지자면 지금의 야쿠자보다는 범죄에 손을 덜 대는 쪽에 가깝지 않을까요. 근방 지역의 힘쓰는 손이라고 생각하면 얼추 맞을 겁니다. 자신 역시 그런 아버지 그늘 아래 있고 그 아래서 호의호식 하고 있으니 말을 꺼내기 어렵습니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관리하는 예능장에 '진실의 하나히메'가 있다는 것을 듣고는 아버지를 졸라 공연을 보러 갑니다.


진실의 하나히메는 원래 인형 만드는 장인이었던 쓰키쿠사가 마지막으로 만든 인형이랍니다. 지금은 사고로 더이상 인형을 만들 수 없다는 군요. 그 사고 때문에 일자리를 잃고 어떻게든 돈을 벌기 위해 목소리 예능을 했지만 전혀 반응이 없어, 인형을 들고 나와 1인 2역의 예능을 시작했는데, 그게 의외로 잘 먹힌 덕에 길거리에서 지금은 공연장까지 진출했답니다.


인형의 이름은 오하나. 그래서 하나히메. 쓰키쿠사는 그 인형을 제작자이고 복화술로 인형의 대사를 읊는 인물이니 사실상 오하나의 인(형)격도 쓰키쿠사의 것임에 틀림없지만 묘하게 인형에 얽힌 이야기 때문인지 진실만을 말한다고 믿고 또 그렇게 소문이 퍼지기도 합니다. 그 소문도 주로 보통 사람들에게 돌지만 말입니다.

뭐라해도 시타마치 이야기니까요.


자. 서문에 등장한 독백의 주인공이자 행수 야마코시의 유일한 자식인 오나쓰는 공연을 보러 와서 또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진실을 보는 인형이라니 진실을 말해달라고요. 그리고 그 자리에서 야마코시는 딸이 품고 있던 의문을 본인의 입으로 말합니다. 큰 딸 오소노를 죽인 것이 자신이라고 딸이 생각하고 있다고.



첫 번째 이야기는 이 의문을 풀어냅니다. 괴이는 손톱만큼도 등장하지 않고 발품을 팔고 머리로 생각하여 진행됩니다. 어떤 결말이 나올지는 직접 읽어보시면 될 것이고요. 해결된 뒤에도 오나쓰는 꾸준히 쓰키쿠사의 예능을 보러 갑니다. 오하나가 무척이나 예쁘기도 하거니와 하나히메 추종자들이 공주님을 위해 꾸준히 비녀니 뭐니 갖다 바치기도 하니까요. 매번 아름답게 차려 입은 오하나를 보는 것도 좋고, 여러 이야기들이 흘러 나오는 것도 좋습니다. 가끔은 처음으로 오하나를 보러온 인물들이 무의식 중에 끼어드는 일이 있어 그 광경을 구경하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소문이 그러하다보니 하나히메에게 진실을 밝혀달라며 찾아오는 사람도 여럿입니다. 그런 일들에 자주 휘말리기도 하고, 그 소문이 와전되기도 합니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하나와 쓰키쿠사가 그 일들에 휘말리고 그 광경을 오나쓰가 들여다보며 가끔은 참견하기도 하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무슨 이야기냐하면, 아주 다행스럽게도 오나쓰와 쓰키쿠사의 로맨스는 손톱만큼도 없다는 겁니다. 혹시나 싶어 두근거리며 내내 봤는데 전혀 없다는 것에 감명을 받아 가슴을 쓸어 내렸습니다. 역시 『샤바케』의 작가 답습니다.


오랜만에 『샤바케』를 다시 보고 싶어지는 건 물론, 이 책과 마찬가지로 낭만픽션 시리즈이자 작년에 나온 『뇌물은 과자로 주세요』도 읽고 싶습니다. 잠시 구입을 미뤘는데 다음 장바구니에 담아 덥석 구입할 생각입니다.



하타케나카 메구미. 『인형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 남궁가윤 옮김. 북스피어, 2018, 13800원.



부작용.

이 책을 읽고 나서 인형 놀이가 매우, 매우 하고 싶어졌습니다. 인형 놀이가 아니더라도 예쁜 기모노 장식의 인형이 보고 싶어지니. 표지부터가 아리따워 상상하기 쉬웠기 때문일 겁니다.

이것도 BL, 가이드버스 세계관입니다.

조아라 연재였던가 아닌가 기억이 가물가물한 건 제가 읽지 않은 소설이라 그렇습니다. 아마 연재 맞을 거고요..? 다만 편수가 길고 내용이 묵직해서 중간에 들어가다가 포기했거나 피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확실히, 이 소설은 연재로 읽었으면 상당히 힘들었을 겁니다. 중간에 터진 사건을 비롯해 모든 일이 해결되는 것은 4권 후반. 그 부분은 편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제 취향과는 거리가 조금 있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이 소설도 센티넬 대신 에스퍼라는 단어를 썼네요. 정신계 에스퍼, 물리계 에스퍼로 나뉘며 가이드와는 적합률에 따라 페어가 생기기도 하고 깨지기도 합니다.



최태훈은 가이드입니다. 그것도 아주 어린 나이에 가이드 판정을 받았지만 스물이 되도록 적합 판정을 받은 에스퍼가 없었습니다. 센터에 오랫동안 들락날락했지만 페어를 이룰 만큼의 적합 판정은 단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보니 결국에는 여러 과정을 거쳐서 적합여부 테스트에서 제외되기로 합니다. 그리하여 가이드이지만 한 번도 에스퍼를 만나지 않고, 그냥 평범한 삶을 살아갈 예정이었습니다. 지관영의 팬인 동생만 아니었다면요.


유명한 배우인 지관영은 사인회에서 최태훈과 만납니다. 그리고 이상한 떨림을 느끼고는 자신의 가이드이자 네임이 최태훈인 것을 먼저 깨닫습니다. 태훈은 그냥 이상하다고만 생각하고, 그 만남 직후에 나타난 네임의 이름을 보고서도 설마하니 그 유명 배우 지관영은 아닐거라 생각하며 자신의 네임을 열심히 찾습니다.


그 둘이 다시 만난 것은 어떤 사고 때문이며, 그 사고를 통해 지관영은 지금까지 딱 두 명 있었던 능력 측정불가 판정을 받은 에스퍼와 마찬가지로 측정불가라는 판정을 받습니다. 계열은 물리계. 측정불가였던 첫 번째 에스퍼는 정신계였다고 하고, 두 번째 에스퍼는 물리계였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이드로서 피할 수 없었던 태훈은 적합 판정 테스트에 들어가고, 전무후무한 적합률을 확인합니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가이드가 되기 위해 살아왔지만 맞는 에스퍼가 없어 평범하게 살아가려다가 순식간에 삶이 뒤바뀌고 게이로서의 길을 걸어야 하는 태훈과, 어릴 적의 사고 때문에 오랫동안 혼자서 살아왔지만 그 누구보다 유명한 지관영이 어떻게 페어가 되는가를 다룹니다. 그리고 그 조금 뒤까지는 같습니다.

전체 4권의 이야기 중 1권은 이 둘이 페어가 되어 짝을 이루는 이야기를 그리고, 2권부터는 본격적으로 사건이 발생합니다. 센터의 실험 결과라는 이한솔은 그 누구와도 페어를 이룰 수 있다는 가이드이며, 이전에 센터 내에서 발생한 가이드 살인사건의 범인이기도 합니다. 이한솔은 자신과 페어를 이룬 인물을 버리기로 하고, 새롭게 지관영에게 접근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4권 중반까지 이어집니다.



사실 제 취향을 말하자면 이 둘이 알콩달콩 다투면서 이어지는 것이지만.. 이건 중간에 발생한 큰 사건이 두 사람을 갈라 놓았던 터라, 읽으면서도 해피엔딩일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꽤 힘들었을 겁니다. 연재분을 보았으면 힘들었을 거란 것도 같은 맥락에서 그렇습니다. 3권 읽으면서는 저 한니발 렉터만도 못한 비뚤어진 매드사이언티스트 따위 죽어버려! 라고 절규하고 있었으니까요. ... 제게 있어 저런 계통의 매드 사이언티스트를 고르라면 한니발 렉터가 먼저 떠올라서 말입니다. 하하하.

그래도 해피엔딩으로 끝났고, 앞으로도 밝을 일이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 4권의 마무리는 상당한 포만감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왜 이 책을 사게 되었냐-면 트위터 타임라인에 이 책의 외전이 나왔다는 정보를 봤기 때문입니다. 『가이드의 조건』 외전은 아직 이퍼브 계열에는 풀리지 않았고, 검색하다보니 본편은 있어서 덥석 구입했던 것이지요. 가이드버스가 갑자기 확 땡기기도 해서...'ㅂ'


이날 같이 구입한 오메가버스의 다른 책 한 권 리뷰도 조만간 올리겠습니다. 플레누스 리뷰는 일단 그 뒤에. 한 차례 더 복기하면서 써야지요.



진램. 『가이드의 조건 1-4』. 피아체, 2016, 각 3천원.



1.외전은 다음달 쯤 볼 수 있을까요..?


2.중반부에 이한솔이 등장한 후부터는 전체 이야기가 추리적 요소를 강하게 띱니다. 수수께끼의 제공자는 매드 사이언티스트, 그걸 풀어내는 모든 사람들이 탐정.

게다가 가이드버스와 센터라는 존재 때문에라도 SF의 분위기도 강하게 나고요. 4권의 절정부분에서 그 모든 이야기가 해결될 때의 고양감이 상당합니다. 취향에서 조금 벗어났지만 그래도 재미있었던 건 그래서일 겁니다.

책 앞의 1/3을 읽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건너 뛰고 나서 뒤로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뒷부분에서 스위치가 눌렸습니다. 일단 리뷰를 쓰고 나서 그 다음에 다시 앞부분 이어 읽을 요량입니다. 다 읽지 않고 일단 쓰는 것은 그 방아쇠가 어디서 당겨졌는가를 적기 위함입니다.

뒷부분 내용을 적지 않을 수 없으니 내용 폭로가 싫으시다면 아랫부분은 읽지 않으시면 됩니다.


앞부분의 이야기는 상당히 괜찮습니다. 유명 화랑의 주인이 칼에 찔려 사망하고 방안은 밀실입니다. 그리고 경찰들이 신고를 받고 출동하지만 외부인 침입 흔적은 많지 않고 창문도 안에서 잠겨 있었습니다. 주변 인물부터 차근차근 조사해 나가는 이야기가 앞 이야기의 주요 내용입니다. 원한을 가질만한 인물은 있지만 그렇다고 죽일 정도는 아니고 재산상의 문제가 있냐면 .. 그것도 애매하군요. 다만 이 앞부분 이야기를 끌어 나가는데 수사팀의 지휘권을 가진 경부가 매우 싫어하는 타입이라 읽는데 애를 먹었습니다. 앞부분 읽다 말고 뒤로 넘어간 것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운노 형사는 그런 경부 아래서 꽤 오래 일했나봅니다. 위경련 때문에 고생도 했다는군요. 그 위경련 증상이 도질까 싶었던 찰나, 낯선 인물이 살인현장인 저택에 들어오겠다고 난동을 부립니다. 그리고 그 인물은 오랫동안 연락이 두절되었던 조카입니다. 백수는 아니고 내키는대로 일하다가 돈 벌며 놀다가 어쩌다 하는 이 조카는 예술에도 관심이 많아서 외숙부에게 이런 저런 조언을 합니다. 그렇게 탐정역과 그 보조역이 등장합니다만. 으으음. 주인공 탐정도 제가 좋아하는 타입이 아닙니다. 그렇다보니 건너 뛰는데 상당한 기여를 합니다.



자아. 하지만 스위치가 눌린 것은 앞이 아니라 뒤에서였습니다. 막무가내 경부나 철없어 보이는 탐정은 그렇다 치지만 도저히 용서가 안되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이 책을 빌린 것은 작가의 두 번째 책이 나왔고, 그 앞편으로 이 책이 언급된 것을 보아서였습니다. 두 번째 책은 토스카가 주제더군요. 이 책은 에콜 드 파리, 동시대를 영위한 파리의 여러 화가들이 주요 소재입니다. 이야기를 버무리는 것은 괜찮았지만 저기에 기술한 이야기만큼은 참을 수 없었습니다. 다음 책도 그리 기대는 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탐정과 그 주변 인물이 둘 다 마음에 들지 않으니 읽는 내내 마음에 걸리겠지요.




후카미 레이치로. 『에콜 드 파리 살인사건』, 박춘상 옮김. 한스미디어, 2014, 13000원.



예술사, 미술사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재미있을 겁니다. 저처럼 스위치만 눌리지 않는다면요..ㅠ_ㅠ



일주일에 한 번은 알라딘 새로나온책 코너에 들어가 장바구니를 점검합니다. 도서관 창을 동시에 열어놓고 희망도서 신청과 장바구니 정비를 동시에 하는 거죠. 지난 금요일에도 그렇게 점검 중이었는데 이상한 책 두 권이 눈에 들어옵니다. 표지만 봐도 이거 라노베나 그 비슷한 종류의 책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새로나온책에서 보이는 책 소개글이 포복절도할 수준이고요.





...이 책 뭐야. 무서워........



시바타 요시키라는 이름이 익숙한데 딱 떠오르지는 않더랍니다. 일단 그건 제쳐두고. 저게 BL에 가까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는 건 소개글로도 알겠는데 걸리는 것이 두 가지입니다.

출판사가 알에이치코리아. RHK라고 표기되고 알에이치코리아로 읽지만 랜덤하우스코리아의 달리 부르는 이름입니다. 랜덤하우스도 꽤 큰 출판사지요. BL소설을 본격 출판하는 출판사들은 여럿 알고 있지만 그런쪽은 전혀 아닙니다.

게다가 번역자. 김은모씨죠. 일본소설을 자주 읽다보니 번역자도 자주 만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인데, 김은모는 주로 추리소설을 번역하고 저랑은 취향이 잘 안 맞는 편입니다.(...) 깔끔하게 떨어지는 추리소설이 아니라 뒤끝이 남고 약간 하드보일드의 분위기도 있는, 그런 추리소설이 많더군요. 김은모가 번역하는 추리소설은 제 취향에 맞지 않을 가능성이 있으니 일단 확인을 해야한다-는 것이 여러 해에 걸친 결론...(...) 번역이 걸린 적은 없고 책도 좋지만 저랑 안 맞는 것이니 저랑 다른 취향을 가지신 분 중에는 믿고 보는 사람이라는 평도 있을 법합니다.


위의 두 가지를 조합하면 이 책, 소개글과는 조금 많이 다른 분위기일 건데 싶더군요.



그랬는데. 진정한 멘붕은 그 다음에 찾아왔습니다. 시바타 요시키를 검색해서 보니 제가 아는 책이 여럿 있더군요.






최근에 리뷰를 올린 오늘의 런치, 바람의 베이컨 샌드위치도 있고. 이 책도 같은 작가였어? 라고 비명을 지를 찰나 쓰나미가 하나 더 몰려 옵니다.




으, 으아아아아악! 고양이 탐정 쇼타로 시리즈의 작가였어!



괴리감이 큽니다. 아주.

『성스러운 검은 밤』은 BL 분위기 운운하고 표지부터도 그렇지만 원작의 스핀오프 작품이고, 원작은 하드보일드랍니다. 아마도 하드보일드 느와르 계통 같군요. 데뷔작이 그 하드보일드 작품인데 『리코, 여신의 영원』은 한스미디어에서 나왔습니다. 소개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제 정신이 갈려 나가는 느낌이니 저와 취향이 비슷하신 분들은 피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제 트라우마와 지뢰가 동시에 들어가 있어요. 하여간 소재도 그렇고 이번에 출간된 『성스러운 검은 밤』도 어떤 분위기일지 대강 짐작은 됩니다.

그런데. 그 작가가 『고양이 탐정 쇼타로』 시리즈와 같은 작가......;


저보다 더 많이 읽으신 B님께 여쭤보니 일본 내에서는 저 하드보일드 소설로 유명한 모양입니다. 원작 시리즈를 읽으시려다가 도중에 포기했다고 하시네요. 하기야 한국에 소개된 소설 줄거리만 봐도 짐작이 됩니다. 그런데 고양이 쇼타로는 굉장히 발랄하잖아요. 『참을 수 없는 월요일』은 OL을 주인공으로 하지만 상당히 현실적인 이야기인데 『오늘의 런치 바람의 베이컨 샌드위치』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현실이지만 판타지로 결말을 냅니다. 아니, 뭐, 두 소설 모두 결말을 생각하면 판타지에 가깝지만, 등장하는 여러 에피소드들은 현실기반이라 읽는 사람의 속을 후벼팝니다. 하하하. 그게 저 하드보일드 시리즈에서 연유한 것이라 생각하면..



하여간 책 표지와 출판사와 번역자의 괴리감 때문에 작가 검색했다가 뒤늦게 아는 작가라는 걸 깨닫고 왜 이제야 안 것인가 좌절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반전이 있는 소설은 크게 두 타입입니다. 이야기를 잘 풀어 내다가 마지막에 강력하게 만루 홈런과도 같은 한 방을 날리는 것, 그리고 이야기를 풀어 내는 과정에 여러 차례 반전을 날려 사람의 뒤통수를 얼얼하게 만드는 것. 어느 쪽을 선호하냐고 물으신다면 크게 상관 없다고 답하겠습니다. 사실 반전이 많은 소설은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얼얼함이 오래가기도 하고, 그런 반전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일종의 배신을 당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소설은 후자의 반전입니다. 다만 뒤통수를 후려치는 것이 점점 강도가 심해지다 못해 결말까지 보고 나면 책을 집어 던지고 싶은 심정마저 듭니다. 나 이 책 왜 읽은 거야!



물론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아주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번역자가 김소연씨라는 것, 출판사가 북홀릭이었다는 것, 그리고 이게 무가 저택이라는 배경을 두고 있어서 미미여사의 에도시리즈와 같은 전개를 기대했다는 것도 있었습니다. 다 읽고 난 심정은 미미여사 책으로 힐링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고... 하하하하. ;ㅂ; 김소연씨 번역이어서 혹시 에도시대물이거나 앞서 읽은 오노 후유미의 영선 가루카야랑 비슷한 타입이 아닐까 하는 기대가 배반당했거든요. 그런 기대를 하지 않고 봤다고 하면 뒤통수는 얼얼하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작품으로 남았을 겁니다.



풋내기 변호사지만 변호보다는 온갖 사건의 해결을 맡아 하고 있는 카와지는 의뢰인에게서 자신의 생가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습니다. 부부가 운영하는 사설 복지원에서 자란 시즈나이 미즈키는 복지원 앞에 생후 며칠 만에 버려진 채 발견되어 그곳에서 자랍니다. 양부모 밑에서 훌륭하게 자랐고, 성인이 되어 독립하려 할 때 쯤, 양부모에게서 자신의 출생과 관련된 서류를 받습니다. 누군가의 일기장과 돈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보낸다고 하는데, 아마도 미혼모로 출생했다는 문제 같더랍니다.

하지만 일기장만으로 그 집이 어디인지 찾는 것은 어렵습니다. 특정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요. 그리하여 카와지는 때 의뢰를 받는 자리 옆에 있던 나카 쿠니히코를 끌어 들입니다. 그리고 나카는 순식간에 문제를 해결합니다. 해결한 것까지는 좋으나 그 뒤가 문제로군요. 무가 저택에서 일어난 과거의 살인사건, 그리고 최근의 살인사건까지. 둘이 뒤섞이면서 이야기는 점점 산으로 갑니다.(...)



읽다보면 왜 굳이 그런 복잡한 방법을 써야 했느냐, 더 쉬운 방법이 있을 것인데 왜 그런 트릭을 써야 했는가에 대한 건 의문이 들긴 합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단순히 부모찾기로 시작한 이야기가 나중이 되니 스토커와 치정싸움과 막장 드라마로 이어지고, 왜 그렇게 복잡하게 이야기가 돌아가냐 싶기도 하고요. 그러니 산으로간다고 표현한 겁니다.

그래도 이 소설에 대해 괜찮은 이미지가 남은 것은 리버카약이 소설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고, 안 좋은 이미지가 남았다면 그건 무가저택을 둘러싼 막장드라마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소설의 또 다른 축인 누군가의 독백은 읽다보면 누구의 이야기인지 금방 파악이 됩니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과 또 연결이 되는군요.

그리고 탐정과 조수의 관계가 달라지는 점도 재미있습니다. 역시 어른은 어른이군요. 공으로 나이를 먹은 건 아닌가봅니다. 그게 또 하나의 반전 포인트가 되네요.




결말만 놓고 보면 해피엔딩에 가깝습니다. 행복한 결말로 가기 위해서는 뒤통수를 여러 차례 맞아야 한다는 것이 단점이지만 읽어볼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다 읽고 나서의 탈력감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코지마 마사키. 『무가저택의 살인』, 김소연 옮김. 북홀릭, 2016, 13800원.


초반을 읽으면서 위화감이 들길래 뭔가 했더니 가와지 고타로가 아니라 카와지 코타로라고 표기했습니다. 바뀐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쪽이 위화감이 들다니...; 그래도 익숙해지니 별 문제 없습니다.


하여간 이쪽도 약간의 지뢰요소가 있었던 터라, 읽고 나서의 허탈감은 뭐라 이루 말할 수 없더군요. 그리하여 다음 책은 힐링을 위해 조아라 소설만 열심히 파고 있습니다 .크흑.;ㅂ;

노리즈키 린타로 시리즈를 읽기로 마음 먹은 것은 G가 던져준 링크 때문이었습니다.


http://1boon.kakao.com/munhak/detective : 봄날의 탐정을 좋아하세요?



이걸 보고는 다른 책은 몰라도 노리즈키 린타로는 읽어 봐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엘러리 퀸처럼 부자가 같이 활동하고, 아버지는 경시, 아들은 추리소설작가 겸 탐정이라고 하니까요. 그랬는데...... 소설을 읽어보니 국명 시리즈보다는 라이츠빌 시리즈에 가깝습니다. 저, 엘러리 퀸 시리즈는 좋아하지만 대체적으로 국명시리즈를 선호하거든요. 라이츠빌은 꿈도 희망도 없는 분위기라 이전에 시그마북스로 컬렉션할 때도 라이츠빌은 빼고 구입했습니다. 그럴 진대, 전개되는 방향이나 결말이나 다 꿈도 희망도 없는 것에 가깝습니다.


게다가 이번에도 지뢰. 하하하하하. 하기야 일본추리소설을 읽는 입장에서 뭘 더 바랄까요. 게다가 오해가 쌓이고 겹치고 또 오해하고 하는 과정 자체가 이야기의 뼈대입니다. 권말의 해설에도 언급되지만 이 책의 주요 트릭은 오해입니다. 이 모든 것은 오해! 오해! 오해!(...)


A가 B를 오해해서 C와 사이가 틀어지고, B와도 사이가 나빠집니다. 나중에 D가 사실을 알고 나서 혼자 어떻게 해결하려 하다가 그 와중에 E가 오해합니다. 그리하여 사건이 이래저래 꼬입니다. 결말을 보고 나면 이 꿈도 희망도 없는 이야기! 라며 절규하게 되는데, 저만 절규하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이 절규하는 것을 보고 머리를 쥐어 뜯습니다. 으아아아아아!



범인이 제가 예상하던 인물이 아니라는 것도 뒤통수를 맞은 것인데, 의심하던 다른 인물이 범인인건 맞았지만 사건의 진상을 들여다보면 진짜 한탄만 나옵니다. 하아. 게다가 처음의 이야기가 맨 마지막에 가서 풀리는 것을 보면 굉장히 세심하게 잘 짰다는 생각이 들고요. 주인공인 린타로가 그 사람을 구할 수 있었을 기회가 몇 번 더 있었다는 점도, 그게 소설 상에서 섬세하게 교차된다는 점도 참.....(먼산)




소설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노리즈키 린타로는 고등학교 시절의 후배로 현재 사진작가로 활동중인 다시로에게 연락을 받고 전시회에 갑니다. 거기서 우연히 일 관계로 알게 된 가와시마 아쓰시를 만납니다. 가와시마는 조카인 에치카랑 같이 전시회를 보러 온 참이고요. 같이 전시회의 주인공인 다시로를 만나자고 이야기 하던 찰나, 위암 투병중이라던 아쓰시의 형이자 에치카의 아버지인 가와시마 이사쿠가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이사쿠의 작품에 대한 수수께끼가 하나 등장하고, 그 뒤에 에치카의 행방불명, 그리고 주변 인들의 수상한 행동, 에치카의 어머니와 얽힌 이야기 등이 차례로 등장합니다.

근데 정말 꿈도 희망도 없습니다. 읽고 나면 재미있게 읽었지만 허탈하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결말이 등장인물의 절규로 끝나기 때문에 더 그런가 봅니다. 게다가 또 지뢰를 밟았으니. 하하하하.;ㅂ; 차라리 『흉가』로 힐링 해야하나요..?



노리즈키 린타로.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 , 최고은 옮김. 비채, 2010, 14500원.


노리즈키 린타로 시리즈는 한 권을 더 빌려 왔는데 이것도 같은 지뢰가 매설되어 있으면 아마 다른 시리즈는 손 못댈 것 같습니다.(먼산)




덧붙임. 이 감상을 쓴 것이 지난 일요일이었지요. 도서관에서 빌린 다른 시리즈 한 권도 지뢰였습니다. 그런 고로 이 시리즈는 더 손 안 댈겁니다. 허허허.

왜 늦었냐고 묻는 건 출간 시기의 문제입니다. 읽으면서 살짝 위화감 같은 것이 있었는데, 결말부까지 다 보고 마지막의 해설을 보고 나서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중 초기 소설에 해당하는데 왜 뒤늦게, 최근에서야 출간이 되었는가?" 궁금해지더군요.

아마도 미미여사의 초기 소설은 거의가 북스피어에서 출간되었으니 출간 계약이 되지 않았다거나,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음, 솔직히 북스피어에서 나온 다른 책들과는 조금 방향이 다르다는 느낌이 있긴 합니다. 해설에서 같이 언급되는 소설들이 『마술은 속삭인다』와 『쓸쓸한 사냥꾼』인데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지역과 같은 구에 있답니다. 그러고 보면 에도 시리즈도 전부 이 주변이 배경이지요. 고토구와 후카가와 지역, 시타마치라고 부르는 에도시대의 서민거주지.



주인공인 준은 부모님의 이혼으로 이사를 옵니다. 이사한 곳은 아버지가 자란 지역의 근처이기도 하고 아버지의 직장과도 머지 않은 곳입니다. 아버지는 수사1과 소속의 형사입니다. 일본의 경찰 조직은 한국과는 조금 다르다고 알고 있는데, 이 부분은 제가 한국의 경찰 조직 체계를 잘 몰라 확신은 못합니다. 하여간 일본의 경찰 조직은 굳이 비교하자면 한국의 군대와 비슷합니다. 사병을 제외한다면 크게 부사관과 사관으로 나뉘는데 일본 역시 지역 밀착형의 순경과 엘리트 코스에 가까운 경시청쪽으로 구조가 나뉜다고 알고 있습니다. 경찰에서 형사로 승진하는 것도 가능하긴 하지만 위에 올라가면 또 관리자로서의 일이 있으니까요. 음, 이런 구조, 어디서 많이 보았는데..?(...)


하여간 준의 아버지는 경시청쪽 형사에 해당합니다. 소설 속의 사건이 터졌을 때도 관할서의 경찰과 짝을 이루어 같이 움직입니다. 관할서의 경찰로 형사가 된 대표적인 인물이 가가형사겠지요. 가가는 『신참자』에서 이미 위로 올라갈 가능성은 낮지만 실력 있고 능력 있으면서 서포트도 잘하는 유능한 인물로 등장합니다. 준의 아버지도 이미 경력이 상당하다보니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감이란 것과 함께 행동하더군요. 그리고 이번에 그 감으로 파트너를 고른게 하야미 슌입니다. 아, 뭔가 이름이 익숙해...?



마을에 이상한 소문이 돌고, 강변에서 비닐봉지가 발견됩니다. 그 안에 뭐가 있었는지는 노코멘트. 『모방범』을 떠올리면 쉽게 상상하실 수 있는 무언가입니다. 그리고 그것과 함께 준네 집의 우편함에 이상한 우편물이 날아듭니다. 범행 성명이 나오고, 수수께끼가 나오고. 그 와중에 준네 마을에 있는 어느 저택의 은둔형 괴팍한 노인이 휘말립니다. 거기에 도쿄 대공습 이야기가 얽히며 다시 마을에 퍼진 이상한 소문까지 연게됩니다.

사건 앞부분에 등장한 여러 실마리들이 하나씩 풀리면서 준도 아버지를 도와 친구와 함께 몇 가지를 조사합니다. 그 와중에 사건에 휘말리는 것이야, 예상할 수 있는 이야기고요. 그러고 보니 『퍼펙트 블루』도 함께 언급된 이야기지요. 개인적으로 꽤 뒷맛이 씁쓸해서 한동안 야구 소재 소설은 안 보게 한 원흉입니다만.



읽는 맛은 상당합니다. 어제 퇴근길에 차안에서 읽기 시작해서는 336쪽의 책을 단번에 읽어 내렸으니까요. 읽고 나서 예의 그 코드가 또 등장하는 덕에 좌절했지만, 짐작은 했던 부분이라 괜찮습니다. 미미여사 소설에서도 종종 등장하니까요. 그쪽 범죄보다 다른 범죄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니 상대적으로 타격이 덜했습니다. 그냥 넘어갈 수 있었다는 거죠.



결론은 애들입니다. 제대로 자라지 않은 아이들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시한 폭탄이지요. 개인적으로 성인이 되는 나이를 아주 조금 내려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만, 주류 판매 문제를 생각하면 또 다릅니다. 끄응. 솔직히 머리는 크지만 사회에 뛰어드는 시기는 예전보다 늦어졌으니 성인이 되는 시기가 빠른 편이 나은가 늦은 편이 나은가 골치 아프네요. 게다가 술에 취했을 때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 더 강하게 처벌해야한다는 것도 그렇지만 나이 어린 아이가 범죄를 저질렀을 때, 아이의 인생을 망칠 수 있다며 선처하는 것이 좋은가에 대해 회의가 들더군요. 일본에서는 이런 쪽의 연구가 많은 모양인데 몇몇 르포르타주나 소설을 보고 나면 허탈합니다. 그렇게 면책된 아이들은 정상적으로 사회에 편입되는 걸까요. 아니면 교정할 수 있는 기회를 아예 틀어 막고 비뚤어진 그대로 사회에 나가도록 돕는 것인가요. 어느 것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런 소설을 읽을 때마다 회의가 드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결말이 그리 깨끗하진 않고 입맛이 쓰니까 감안하고 보세요. 흡입력은 상당히 좋으나 그게 오히려 독이 되는 느낌입니다.



미야베 미유키. 『형사의 아이』, 권영주 옮김. 박하, 2015, 12000원.



오오. 책가격이 생각보다 저렴하군요. 이 두께에 이 정도 분량이면 대개 1.5만 정도 가격을 매기게 마련인데..=ㅁ=

중간에 『최후의 일구』가 없었다면 3연타 홈런이었을 겁니다. 젠장. 그나마 힐링이 된 책이 있어 다행이라고 할까요. 거기에 어제 상경하는 차 안에서 다 읽은 『형사의 아이』도 읽고 나서 기분이 화아아아아아악 가라앉았는데. 이걸 덮어줄 책이 미쓰다 소지의 신작 『흉가』라는 것이 좋은 일일까요, 나쁜 일일까요.


앞에서 이미 내용 폭로를 해버린 셈이지만 그래도, 간략하게 적어봅니다.



모리 히로시의 이력은 찾아보지 않아도 꽤 독특할 것임에 틀림 없습니다. 『기시마 선생의 조용한 세계』를 봐도 그렇지만 대학원의 생활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거든요. 이게 일본만의 사례인지 아니면 한국도 그런지는 모릅니다. 거기에 공대 특성일 수도 있고요.

모리 히로시의 데뷔작이자 대표작인 『모든 것이 F가 된다』가 지난 시즌에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면서 한스미디어에서 책을 재판했습니다. 번역은 무난했다고 기억하고요. 특별히 걸리는 부분은 없었습니다. 다만, 첫 작품은 읽어보았던 지라 시리즈 두 번째인 『차가운 밀실과 박사들』을 붙잡고 읽었는데 이것 참 묘하네요.



일단 주요 인물을 소개하자면 주인공인 사이카와 소헤이는 N대학의 공학부 조교수입니다. 정확히는 건축학과이고 건축사쪽의 전공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인문학적 의미의 건축보다는 공학적 의미의 건축 경향이 강해보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이카와와 함께 움직이는 것이 니시노소노 모에. 성에서 느껴지는 묘한 분위기 답게, 쿄 & 잇페이 시리즈의 아야노코지처럼 상당한 자산가 집안의 딸입니다. 아버지가 N대학 전 총장이기도 하고요. 사이카와는 모에가 초등학생 때부터 알았기 때문에 꽤 귀엽게만 보고 있는 모양인데 모에는 사이카와에게 마음이 있습니다.(아마도)



이야기의 전개는 시간 순서와 다르게 흘러갑니다. 사건이 터진 현장에 있었던 세 사람이 사건 2주 후에 다시 모여서 사건의 상황을 되짚어 보겠다며 그 날 있었던 일을 반추합니다. 사이카와 교수와 모에는 극지 연구소에 참관하러 갔다가 뒷풀이 자리에 합류합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닫혀 있는 방에서 죽어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요. 죽은 사람은 한 명이 아니었습니다.

분명 죽은 사람들은 그 직전에 있었던 실험에도 참여했고 그 방은 밀실에 가까운 상태였습니다. 사망한 사람들을 죽인 이가 누구였는가가 문제지만 연구소에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뒷풀이에 참여하고 있어서 알리바이가 절로 입증됩니다. 외부인은 없었다고 경비원들이 증언했고요. 도대체 범인이 누군가가 문제인데, 그 와중에 시체가 또 발견됩니다.



딱 여기까지만 이야기 하지요. 트릭을 알고 나면 생각보다 어렵지 않구나 생각하게 되고, 의심할만한 사람도 의외로 쉽게 나오긴 했습니다. 다만 사이카와 교수가 내내 말했듯이 동기가 무엇인지 알 수 없어요. 마지막의 마지막에야 그 이유를 알게되지만.


읽고 나니 다시 『모든 것이 F가 되다』가 읽고 싶어집니다. 그리하여 다음 책은 그걸로 낙찰. 과연 읽을 시간이 날지 모르지만 날 거라고 우겨봅니다..?



모리 히로시. 『차가운 밀실과 박사들』, 이연승 옮김. 한스미디어, 2015, 13000원.


최근에 ... 는 아니군요. 2015년 8월에 모리 히로시의 에세이 혹은 인문학 책이 나왔습니다. 이쪽도 한 번 찾아 읽어보고 싶네요.

앞서 『러시아 유령군함 사건』 감상(http://esendial.tistory.com/6594)에도 적었지만 강간이 소재나 주제로 나오면 웬만해서는 피합니다. 하지만 이 책에 대한 소개에는 전혀 그런 이야기가 없어서 몰랐습니다. 책 뒷면에도, 그리고 앞부분에도 그런 이야기가 없거든요. 그런데 ... ... (먼산)



책은 크게 두 시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는 담배가게 주인 살인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즉, 한쪽은 3인칭, 한쪽은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셈입니다. 문제가 되는 건 1인칭쪽 시점인데 초반에 설마설마했음에도 그런 장면이 등장하는데다, 이 사람이 결국 트라우마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고 또다른 사고를 칩니다. 나중에는 정신적으로도 굉장히 불안해지는 상황이 되는데 그게 담배가게 주인 살인사건의 후폭풍하고 연결되어 둘의 이야기가 만납니다. 다만 끝의 끝까지 '나'가 그 뒤에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안나옵니다. 다만 둘의 이야기가 연결되면서 아마도 그 뒤에는 그나마 평온하게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따름입니다. 하여간 이쪽 코드 질색인 분들은 피하세요.



책의 중심 주제는 사실 저런 이야기도 아니고 살인사건도 아닙니다. 주제, 메인 테마는 1인칭 시점에서 나오는 그의 직업과 관련이 있습니다. 3인칭 이야기에서도 스쳐 지나가는 이야기로 등장하지만 원자력 발전 말입니다. 시마다 소지는 '나'의 입을 빌려서 원자력 발전의 문제, 그리고 일본에서 개발 중인 핵연료 리사이클 방식의 문제, 주먹 구구식인 재처리 과정, 그리고 원자력 발전에서 나오는 독성물질과 그 피해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하기야 일본은 한국보다는 지진에 많이 노출되어 더 위험하고, 그게 극단적으로 나타난 것이 후쿠시마 사태였지요. 이 소설이 출간된 것은 그 뒤의 일입니다. 2011년 10월에 발매되었으니, 2011년 3월 11일의 도호쿠 대지진 이후, 그리고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에 쓰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뭐, 그 전에는 몬쥬의 사고 사례도 있었으니까요. 여기서 말하는 핵연료 리사이클은 아마 몬쥬 쪽을 염두에 둔 것일 겁니다.


하지만 사건의 트릭과 결말은 사실 전혀 관계가 없었고, 원자력 발전 연료 제작에 대한 것은 슬며시 지나가는 이야기였다는게...; 어쩌면 그것이 반전일지도 모르지요. 실제 범행 동기는 의외로 평범(?)하고 또 다른 의미로 열 받는 내용입니다. 그러니 감안하고 보시길.


어찌되었건 퇴근길에 손대고 읽기 시작해, 저 큰 고비를 넘기고도 단번에 읽어 내릴 정도로 상당히 흡입력 있습니다. 게다가 악의 원흉은 무사히 퇴치되었고요. 아니, 무사히는 아니로군요.-_-;



시마다 소지. 『고글 쓴 남자, 안개 속의 살인』, 이윤 옮김. 호미하우스, 2014, 13800원.


2014년 출간작인데도 벌써 품절...=ㅁ=; 의외로군요.;

월요일에 다 읽었으니 그날 감상을 쓰면 딱 맞았을 텐데, 늦었습니다. 그리하여 프로야구 개막일이라는 오늘에야 쓰게 되었네요. 야구 이야기를 꺼내는 건 이 책의 주 소재가 야구이기 때문입니다.


시마다 소지의 책은 열심히 챙겨보지만 몇몇은 피합니다. 번역 상태가 조금 걱정되는 작은 출판사의 책도 그렇거니와, 청소년 소설 분위기로 나온 책도 피합니다. 이 책은 소재가 야구라서 피했습니다. 안 보고 넘어가려 했는데 『러시아 유령군함 사건』을 읽고 나니 괜히 시마다 소지 책이 땡겨서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번역자가 현정수인 것을 보고는 내용 확인 하지 않고 고이 빌렸습니다. 2012년에 나왔는데 너무 늦게 보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아주 운이 좋게도, 내용 확인하지 않고 보았는데 이 책이 딱 『러시아 유령군함 사건』에 이어진 이야기입니다. 일본에서의 발간 순서가 어떨지 몰라도 이전에 일어난 사건이 무엇이었는지 알고 보니 더 좋더군요.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읽은 것이 다행인지도 모릅니다.


소설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앞은 이시카와의 이야기, 뒤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이시카와의 이야기는 우연찮게 어느 자살미수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를 하게 된 상황부터 시작합니다. 어느 청년이 자신의 어머니가 자살을 시도했는데 그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고 하며 찾아옵니다. 설명을 들어보니 아버지는 일찌감치 돌아가셨고 편모 슬하에서, 어머니가 하시던 미용실을 이어받아 작은 도시(마을)에 자리를 잡았답니다. 그런데 이유도 알 수 없이, 어느 날 어머니가 자살을 시도하셨답니다. 빨리 발견해서 구할 수 있었지만 자살 이유를 절대 이야기 하지 않으신다네요. 그리고 미타라이는 사건이 명확해 진상 밝힐 것도 없다고 하면서 찾아갑니다. 그리고 진상을 밝히지만 그 뒤에 알 수 없는 일이 발생합니다. 왜 이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저, 사건은 해결되었다는 것뿐.


뒷부분은 어떤 2류 야구 선수의 시점에서 시작됩니다. 돌아가신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와의 어려운 생활.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희망이 있다면, 프로 야구선수가 되어 연봉을 많이 받아 그래도 편히 사는 것입니다. 하지만 노력은 하여도 재능은 없었기 때문에 결국 그렇고 그런 선수가 됩니다. 하지만 이 때는 이미 거품이 꺼질 시기지요. 그리하여 상황은 악화됩니다. .. .. 그리고 하략. 이 이상 쓰면 내용 폭로가 되어 재미가 없습니다.-ㅁ- 그러니 여기까지만 쓰고 접도록 하죠.


이 두 가지 이야기가 어떻게 맞물리는가가 시마다 소지의 매력이라 생각합니다. 결말은, 그래도 희망적이라고 생각하렵니다. 다만 여기서도 시마다 소지 답게 일본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아주 많이 묻어납니다. 근데 불신이 불신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저런 상황이라면-전관예우라는 구습이 한국에도 뿌리내리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저런 상황이 없으리란 장담을 못합니다. 아니, 있을 겁니다. 하하하하하...........(먼산)



상당히 매력적인 책이니 야구에 관심이 있는 분이나 아닌 분이나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시마다 소지. 『최후의 일구』, 현정수 옮김. 블루엘리펀트(동아일보사), 2012, 12000원.



덧붙임: 최후의 일구는 퍼펙트했습니다. :)

금요일에 이 책 읽다가 체했습니다. 가볍게 체한 것이라 그냥 속이 안 좋고 마는 걸로 끝났지만 저녁 때 몸 컨디션이 안 좋아지면서 감기에 제대로 걸렸습니다. 열이 올라 반쯤 들떠 있는 상태가 된 것도 참 오랜만이네요. 허허허.



제 블로그에 자주 오시는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제가 소설 읽으면서 절대 피하는 코드가 강간입니다. 그것이 집단 강간, 즉 윤간이면 읽는 도중 더더욱 멘탈이 부서집니다. 그런 코드가 있음에도 보는 소설이 있지만 예외적인 것이고, 대체적으로 이 소재를 사용하면 소설을 피합니다. 절독하는 경우도 있지요. 그 대표적인 예가 『초룡전기 카르세아린』인데, 이건 연재 도중 제가 제일 싫어하는 코드가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고 고이 소설을 접었습니다. 뭐, 그 앞서도 조짐이 있긴 했지만 등장인물 중 한 명이 그런 일을 당하는 걸 보고는 더 읽을 수 없더군요.


앞 부분까지는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역시 시마다 소지, 역시 미타라이 기요시라고 생각했는데 읽으면서도 설마설마한 부분이 있긴 했습니다. 만, 정확하게 예상했던 그 상황이 제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 위가 멈추더군요. 아오.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읽고, 다 읽고 나니 과연 있을 법하다 생각했지만 말입니다. 그 부분은 시마다 소지의 창작일 겁니다. 증거가 전혀 없거든요. 하지만 충분히 있을 법하고 가능한 이야기라는 점이 더 무섭습니다. 그래서 읽고 나서는 어디까지가 역사적 사실인지, 어디까지가 가상인지 헷갈릴 지경에 몰렸습니다. 허허허.




이야기의 발단은 『어둠 비탈의 식인나무』와 이어집니다. 따라서 이 소설을 먼저 읽는 것이 좋으며, 그리고 가능하면 사전에 올리버 색스의 책을 읽는 것이 좋습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현재 절판이지만 .. 이라고 적고 다시 검색하니 2015년에 재출간되었는데, 하여간 이 책을 사전에 읽으면 도움이 됩니다. 소설 중반부에 등장한 미타라이의 추리는 읽는 내내 올리버 색스의 책을 인용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참고서적에는 다른 책들이 올라 있습니다. 다른 어려운 책보다는 올리버 색스의 책 한 권을 보는 쪽이 이해하기 더 쉬울 겁니다. 그에 대해서는 권말의 저자 후기에 자세한 이야기가 나와 있으니 참고하시면 되고요.


시간의 흐름상 『마신유희』는 이 이야기의 뒤에 있습니다. 앞부분에 등장하듯 이 소설의 사건이 있은 1년 뒤에 미타라이 기요시는 유럽으로 건너갑니다. 일본을 버리고 건너갔다고 투덜대는데 거의 마지막에 참여한 사건이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하여간 아는 사람의 연락을 통해 받은 어느 편지에는 이미 사망하고 없는 어떤 미국인에게 보내는 사죄의 글이 있었습니다. 사죄의 글 말미에는 하코네의 호텔 후지야 매직룸에 있는 사진을 보여주고 싶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호기심이 동한 미타라이는 이시오카를 끌고 후지야에 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호텔에서 오랫동안 보관하고 있었다는 사진과 만나지요. 사진은 1919년에 찍은 것으로, 유리건판 사진이라 딱 한 장만 남아 있습니다. 거기에는 후지산 근처의 이시노코 호수에 정박한 러시아 군함이 찍혀 있습니다. 그 군함은 다음날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고 하고, 내륙의 호수에서 찍힌 러시아 군함은 수수께끼로 남아 유령 군함으로 불립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군함에 대한 이야기는 미타라이가 풀어냅니다. 그날의 주변 상황이 왜 그래야 했는지, 어떻게 내륙 호수에 러시아 군함이 있었는지는 아주 손쉽게 풉니다. 그리고 그걸 읽으면서는 정말로 폭소했습니다. 이렇게 간단한 트릭일 줄은 미처 몰랐거든요. 이 트릭 자체가 아마 B님과 C님의 취향에 맞을 겁니다.


그리고 소설 속에 등장하는 어떤 일이 발생할 확률을...


"김일성과 노태우가 악수할 확률이고…."


애초에 미국 저널리스트가 저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신기합니다만.



시마다 소지. 『러시아 유령 군함 사건』, 김동주 옮김. 영상출판미디어, 2016, 12000원.


상당히 마음에 들어서 아래 올린 『영선 가루카야 기담집』이랑 같이 주문하고 싶지만, 과연 주문하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허허허허. 앞에서 언급한 그 코드가 심히 좋지 않은 곳을 스쳐서 말입니다.;ㅂ;

추리소설은 대개 반전이 있게 마련입니다. 일상 생활의 추리를 소재로 한 소설은 그렇기 때문에 반전이 있는 경우가 더 많기도 합니다. 일상을 다루다보면 잔잔한데, 그걸 막판에 뒤집어서 독자에게 충격을 주면 꽤 강렬하게 남을 수 있잖아요. 개인적으로 그런 반전이 매력 있는 소설로 『빙과』를 꼽습니다. 소설보다는 애니메이션 쪽의 반전이 더 강렬했다고 기억하지만, 하여간 세키타니 준을 둘러싼 잔잔한 이야기는 그를 둘러싼 어른들의 사정과 그 속의 울분을 폭발시키면서 마무리 됩니다.


갑자기 왜 다른 소설 리뷰를 쓰면서 『빙과』를 건드리냐 하면, 조금 닮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학교를 배경으로 한 일상 추리소설의 클리셰일지도 모르지만 평범하고 그리 눈에 안 띄는 학생이 학교 내의 작은 소동에 휘말려서 조사하다가 얼결에 진상을 밝혀내는 구조가 같거든요.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고전부 시리즈의 오레키 호타로는 저에너지 행동주의자지만 이 책의 주인공인 하야마는 평범한 미술부원입니다. 아니, 여러 예술부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으니 그리 평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1인칭 주인공시점이라 이 소설 내의 내용만 봐서는 특별할 것이 없어보이거든요. 진상을 밝히는 것도, 사건이 왜 그렇게 흘렀는지 밝히는 것도, 범인도 다 다른 인물들이지만 맨 마지막의 반전은 하야마의 손에서 이뤄집니다.



다른 곳에서 소설 평을 읽었을 때 마지막의 반전이, 소설의 발랄하고 밝은 이야기들을 순식간에 반전시킨다고 했는데 반전을 읽고 과연 그렇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에필로그를 보고 나서는 좌절했습니다. 어억. 갑자기 이야기의 장르가 일상 추리에서 다른 것으로 확 바뀝니다. 이런 게 어디있어! 라고 절규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다 읽고 나니 잠자기 글렀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안 그래도 낮에 수입 믹스커피 마신 참이라 카페인 과다증상을 보였는데 이 책의 결말까지 보고 났더니만 잠이 안와서 평소보다 고생했습니다.



하야마가 다니는 시립고등학교는 꽤 오래된 곳인 모양입니다. 그 중에서도 오래된 건물은 예술부가 주로 서식하는 낡은 별관입니다. 미술부와 연극부,취주악부를 비롯해 여러 부서들이 모여 있는데 예술부이다 보니 물건이나 소품은 많고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 어수선한 분위기입니다. 건물이 낡아 음침한 분위기도 들고요.

그런 별관에 이상한 소문이 돕니다. 목이 잘린 귀신이 벽에서 튀어나온다는 일명 벽남 귀신이야 그렇다 치고, 거기에 덧붙여 최근 행적이 묘연한 어느 취주악부 학생의 유령이 플루트를 분다는 소문도 생겼습니다. 소문은 소문이지만 그 때문에 취주악부 연습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그 진상을 조사하는데 주인공인 하야마가 덩달아 휘말립니다. 그리고 그 사건의 진상은 굉장히 어이 없는 쪽으로 끝납니다.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면 다행인데, 그 과정에서 벽남 사건을 함께 겪습니다. 벽남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 서주하고 결국에는 프롤로그의 묘한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그리고 그 뒤는 ........;




그러니까 학교는 참 무서운 공간이라니까요. 왜 괜히 여고괴담이 나오고, 왜 괜히 공포물의 상당수가 학교를 배경으로 하겠어요. 그만큼 무서운 공간이라 그렇지. 무엇보다 인적이 드문 곳에 위치하거나, 번화가에 있더라도 안쪽에 숨기듯 들어 앉았다거나. 거기에 일과가 끝나면 사람들이 없고 불이 거의 다 꺼진다는 점도 공포 심리를 자극하는 것이겠지요.

하여간 학교는 참 무섭습니다.




니타도리 게이. 『이유가 있어 겨울에 나온다』, 이연승 옮김. 한스미디어, 2015, 12000원.


공포소설을 좋아한다고 날뛰는 어린이들에게는 미쓰다 신조를 추천합니다. 한국의 공포소설을 읽으면 좋아한다고 말하던 아이들에게 미쓰다 신조를 권했는데, 시범삼아 걸린 어느 어린이는 이걸 읽고 나서 공포소설 달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더군요. 추천한 책은 미쓰다 신조의 미쓰다 신조 시리즈 『기관: 호러작가가 사는 집』이었습니다. 효과가 상당히 좋은 셈이지요. 책을 읽은 어린이가 말하더랍니다. 한국 공포소설은 뒷부분이 어떻게 될지 상상이 되어서 재미가 없고, 공포를 강요하는 것 같은데 이건 정말 무섭다고 말입니다. 뒤가 어떻게 될지 상상이 안된다더군요.



저는 공포소설을 싫어합니다. 싫어하면서도 책이기 때문에 볼 수 밖에 없습니다. 한국형 공포소설은 현실적이기 때문에 안본다 치면, 미쓰다 신조는 외국, 물건너의 사정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마음 편히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한국소설을 잘 보지 않는 것과도 비슷하네요.


한국에 번역된 미쓰다 신조의 책은 크게 도조 겐야 시리즈와 미쓰다 신조 시리즈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해당 안되는 것은 사상학 탐정인데 그건 취향에 안 맞아 일찌감치 던졌으니 예외입니다. 하여간 이 두 시리즈는 책 주인공에 따라 나눈 겁니다. 비채에서 나온 것이 도조 겐야, 한스미디어와 북로드에서 나온 것이 미쓰다 신조입니다. 레드박스에서는 『붉은 눈』, 『사상학 탐정』이 나왔고 『괴담의 집』과 『노조키메』도 있네요. 『붉은 눈』은 미쓰다 신조 시리즈인지 아닌지 가물가물한데, 아니었던가요...? 역시 헷갈립니다. 하지만 다시 볼 용기는 안납니다.(...) 『괴담의 집』과 『노조키메』는 확실히 미쓰다 신조 시리즈입니다. 『일곱명의 술래잡기』는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아마 시리즈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하도 오래 전에 읽은 거라....;


미쓰다 신조는 그냥 출간 순서대로 보시면 됩니다. 도조 겐야 시리즈도 출간 순서대로, 미쓰다 신조 시리즈도 출간 순서대로 보시고요. 연결된 이야기는 『사관장』과 『백사당』만입니다. 매번 헷갈리는데, 사관장이 먼저고 백사당이 그 다음입니다. 이 둘은 반드시 순서대로 보셔야 합니다. 섞어 보시면 연결이 안되거든요.

.. 근데 의외네요? 미쓰다 신조 시리즈가 꾸준히 나와서 미처 신경쓰지 않았는데 비채에서 나온 도조 겐야 시리즈는 뒷권이 안나옵니다. 『미즈치』다음 권이 나와야 하는데, 그리고 그 후속편인 『유녀』가 『괴담의 집』에서 언급이 되는데 2013년 11월이 마지막이고 뒷권이 안나오네요. 허허허허허.


생각난 김에 시리즈 순서도 적어보지요. 도서관에서 빌려 보신다면 한 곳에 모여 있을 테니 다음 순서로 보시면 됩니다.

1.도조 겐야 시리즈
민속학에 상당한 조예가 있고 유명한 민속학자인 아버지를 둔 도조 겐야가 독특한 풍습이 있는 곳들을 찾아다니면서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을 보고 추리를 해나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긴다이치 시리즈와 비슷하다고 느끼는데, 보통 연쇄살인이 발생하거든요. 하하하.....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
『산마처럼 비웃는 것』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


2.미쓰다 신조 시리즈
오노 후유미의 『잔예』처럼 소설 속과 밖이 구분 안됩니다. 작가 본인의 경험담을 적는 것처럼 시작해서는 매번 '미쓰다 신조'가 구르는 것으로 흘러가더군요. 공포소설입니다. 집에서 혼자 읽을 때 보시면 절대 안됩니다. 이 책은 밝은 날, 사람 많은 곳에서 읽어야 합니다. 11월의 흐린 날, 해가 기울어 갈 때 읽기 시작해서 해가 저물어 어둑어둑, 그리고 깜깜해질 때까지 혼자 읽는다면 최악입니다. 자취하시는 분이라면 방에서 읽지 않기를 추천합니다. 읽고 나면 책을 건드리기도 무서운 지경에도 이릅니다.......
『기관: 호러작가가 사는 집』
『작자미상 상-하』
『노조키메』
『사관장』, 『백사당』
『괴담의 집』


3.그 외
『일곱명의 술래잡기』: 이건 주인공이 미쓰다 신조였는지 아니었는지 기억이 안나네요. 하여간 뒷맛이 안 좋은 이야기입니다.
『붉은 눈』: 읽기는 했는지부터가 이미 헷갈립니다. 하지만 확실히 도서관에서 빌렸습니다. 읽었는지의 여부가 문제죠.
『사상학 탐정 1-2』: 취향에 안 맞는 주인공이라.......


『노조키메』>『사관장』, 『백사당』>=『괴담의 집』>『작자미상 상-하』=『기관: 호러작가가 사는 집』

... 왠지 최근에 읽은 순서대로 무섭다고 여기는 것 같다면 착각이 아닐 겁니다. 기억이 휘발되어 대체적으로 예전에 읽은 책을 덜 무섭게 여기는 건지도 몰라요.

수수께끼는 좋았지만 결말에서 힘이 빠졌습니다. 나쁘지는 않은데 묘하게 기운빠지는 결말이더군요.



도서관에 가서 이리저리 돌아보다가 만난 책입니다. 도서관에서는 표지를 모두 벗겨놓으니 속옷(...) 차림인 셈인데, 그게 오히려 좋을 때도 많습니다. 겉표지의 화려함에 홀릴 일이 없거든요. 가끔은 겉표지의 삽화를 보지 않아서 더 다행이었다 싶은 때도 있습니다. 겉표지가 삽화인 경우 주인공의 이미지가 고착화되는 일도 종종 발생하니까요.

하여간 이 책은 노블엔진팝 라인으로 나온 책이라 원래의 표지는 상당히 화려할 겁니다. 일부러 찾아볼 생각은 안드네요. 말은 그리해도 속지의 일러스트를 보면 대강 상상은 됩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여행입니다. 신세를 많이 진 숙부님이 어렵게 말을 꺼내 부탁할 것이 있다 해서 시골집으로 내려가는 길이었지요. 주인공인 마이츠라 마토모는 이공계의 대학원생으로 연말까지는 이런 저런 실험을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친구에게 실험을 부탁하고 시골 깊숙이 자리한 본가에 내려옵니다.

본가인 마이츠라는 증조부 때 재벌로 이름을 날렸지만 패전 후 재벌이 해체되면서 건설사 하나만 남았다고 합니다. 그 직전에 증조부는 돌아가셨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숙부가 부탁해온 것은 증조부가 남겼다는 수수께끼를 풀어달라는 것입니다.


상자를 풀고 돌을 풀고 가면을 풀어라

좋은 것이 기다리고 있다


상자는 뭔지 짐작이 갑니다. 같이 전달된 작은 금속 상자가 있었거든요. 돌도 짐작가는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가면만은 도무지 모르겠단 말입니다. 그리고 이걸 풀어나가는 것이 전체 이야기입니다.



물론 라노베계열로 나온만큼 여자도 있습니다.(...) 주인공은 남자가 맞고요, 숙부의 딸인 사촌여동생인 미나모가 아마도 상대가 아닐까 추측합니다. 하지만 양념을 더하는 정도고 그 이상의 진도는 안나갑니다. 미나모는 마음이 있어 보이지만 마토모는 별 생각이 없거든요. 반응이 없다도 아니고 시큰둥하다도 아닙니다. 자세한 건 읽어보시면 아실 테고..

수수께끼를 푸는데는 가면을 쓰고 나타난 소녀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역할은 주인공인 마토모가 맡지요. 수수께끼를 푸는 방식이 꽤 재미있더군요. 그리고 그 수수께끼 뒤에 숨어 있던 좋은 것이 무엇이냐는 것도 말입니다. 다만 좋은 것의 정체부터 김이 새기 시작해서 맨 마지막 이야기는 더더욱 김이 샙니다. 반전이 있긴 하나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네요. 책 분량이 적은 것도 그 이유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것이 중점이 되다보니 그렇긴 하지요. 다만 내용을 부풀리지 않고 마감한 것은 마음에 듭니다. 가볍게 읽어볼만한 소설인데.. 특정 부분에서는 살짝 감정 이입이 되었지요. 허허허허허. 어디인지는 비밀입니다.-_-




노자키 마도. 『가면을 쓴 소녀』, 도마소 일러스트, 구자용 옮김. 노블엔진팝(영상출판미디어), 2014, 9천원.


가격을 확인하느라 교보에 들어가서 보았는데 의외로 표지는 무난하네요. 속 표지의 것과 동일해보입니다.'ㅂ'

교보에 들어갔더니 『꿈꾸는 책들의 도시』 후속편이 나왔다 그러고, 해당 도서 정보를 확인했더니 아래 '미스터리 스포일러 사건수첩'이라는 이벤트 알림이 있더군요. 뭘까 하고 들어갔더니 인터넷교보문고의 장르문학 담당 MD가 만든 장르문학 큐레이션 소식지랍니다.


총 네 개의 내용, 그러니까 4면으로 되어 있는데 여성독자와 남성독자가 선호하는 장르문학도 꽤 재미있지만 출판관련자들이 선호하는 미스터리 목록도 재미있습니다. 파일명을 보니 이거 150604이니 한참 전에 뽑은 건가봅니다?




이름을 아는 사람도 있고 출판사를 아는 사람도 있고. 목록을 보니 꽤 재미있습니다. 거기에 읽은 것도 있고 제가 동의하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어서 더 그렇기도 하고요.

『마크스의 산』은 읽어보지 않았는데 자주 등상해서 궁금합니다. 모르는 작품은 넘어가고, 대강 훑어 보았을 때 자주 등장하는 저자는 미미여사와 기시 유스케 인듯. 의외..는 아니지만 교고쿠 나쓰히코도 자주 등장합니다. 그리고 미쓰다 신조도요. 아, 어딘가에서 오타 발견. 자린이 아니라 잘린이겠지요. 그러고 보니 아야쓰지 유키토랑 시마다 소지도 보이네요. 온다 리쿠도 있는데 개인적으로 점점 취향에서 멀어진 터라 패스.


번역자들도 개인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어떤 소설을 자주 번역하는구나-라는 패턴이 있는데 취향을 보면 그런 패턴이 보입니다.



다섯 편만 뽑으라면 너무 어려운데. 끄응. 하기야 일본으로 좁히면 그럭저럭 가능하려나요? 저도 점성술 살인사건은 넣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거 아니면 마신유희. 추리트릭만 놓고 보면 교고쿠도 시리즈는 추천하기가 애매한데. 그러고 보니 미쓰다 신조가 적은 이유는 상당수가 괴기이기 때문인가요. 추리보다는 괴기에 힘을 실었으니. 허허허. 화차와 이유는 저도 꼽지만 둘 중 어느 것이 낫냐고 하면 고르기 힘듭니다. 둘 다 장단점이 있는데 좋아한다고는 말 못해요.

미미여사의 에도 시리즈가 외딴집만 올라온 것도 아쉽고.


언제 날 잡아서 저도 순위를 매기든 추천 목록을 작성하든 한 번 해 볼 생각입니다. 아마 괴이 소설까지 아울러 고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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