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다 신조는 믿고 보고, 번역가가 현정수면 더더욱 믿고 봅니다. 이 둘의 조합은 확신하고 보아도 됩니다. ...라지만, 저는 공포소설을 잘 읽는 편이 아니라, 결말을 확인하고 봅니다. 미쓰다 신조의 소설 몇이 결말에서 제 뒤통수를 때려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추리소설도 결말 확인하고 보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랬지만.

이 소설은 절대 결말을 먼저 읽으면 안됩니다.

먼저 결말을 확인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결말을 알고 보니 이 이야기는 매우 김빠진 사이다입니다. 아니, 사이다라 부를 물건도 아니고 사카린 탄 물입니다. 반전을 알고 보자 그 앞의 여러 장치들이 다 빤히 보이는 이야기가 됩니다. 긴장감이 확 떨어지니 탄성을 잃은 고무줄도 아니고 그 .... 하여간 여러분, 이 책은 절대로 앞부터 차근차근 보아야 합니다. 소재가 걱정된다면, 미쓰다 신조를 믿으세요.

 

 

비채는 일전의 미야베 미유키 도서 발행 건으로 미운 털이 박혀 있어, 살까말까 하다가 도서관에 들어온 것을 보고는 덥석 물었습니다. 원서 제목도 黑面の狐라, 검은 얼굴의 여우 그 자체입니다. 표지도 멋지게 검은 여우를 그렸지만, 작가 미쓰다 신조의 괴담 시리즈처럼 마구 무섭지는 않습니다. 북로드에서 나와 덥석 잡아챈 『마가』보다는 온화한 표지라고 주장해봅니다.

 

보통 일본의 여우, 이나리 얼굴은 흰색 가면에 붉은 색과 금색으로 장식을 합니다. 왜 검은 여우인지는 배경부터 살피면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패전 후 일본. 전쟁을 겪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일본 규슈. 오사카에서 남쪽으로 가는 열차를 타고 가던 모토로이 하야타는 규슈 북부의 어느 작은 역에 충동적으로 내립니다. 탄광마을이라 광부를 모집하는 사람들이 열심히 영업중인데, 거기에 휘말려 있던 하야타를 아이자토 미노루가 구해줍니다. 그리고 하야타는 또 충동적으로, 미노루가 일하는 탄광에서 일하기로 마음 먹고 그를 쫓습니다. 광부로 일하기에는 오버스펙이지만 어찌 저찌하여 광부로 일하게 되지요. 가혹한 탄광의 현장에서 일하며 여러 사람들을 만나던 하야타는 대학 때 잠시 들었던 민속학에 얽힌 몇 가지 이야기를 듣습니다. 광부들이 겪은 육감sixth sence과 이질적인 것들의 이야기 말입니다. 예를 들면, 광부들 중에서도 상당한 경력자인 난게쓰가 겪은 검은 여우 가면의 여인이 있습니다. 아직 난게쓰가 결혼하기 전의 일이었지요. 그런 기묘한 이야기를 들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탄광에서 사고가 납니다. 이 소설은 하야타의 과거, 아이자토의 과거, 그리고 갱에 모인 여러 광부들의 과거 이야기를 탄광에서 엮고, 그 역사적 배경을 다시 이야기합니다.

소설의 소재가 쉽지 않은 건 그 때문입니다. 패전 직후, 전쟁 직후라 일본의 분위기는 좋지 않습니다. 지식인이었던 하야타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고뇌합니다. 유럽의 많은 지식인이 그러했듯, 하야타 역시 전쟁에 휘말리고 또 밑바닥의 바닥에 내려갑니다. 일본 정부에 절망하고, 또 그러면서 바른 삶을 고민하며 바닥을 걸어나가는 인물이지요. 그리고 당연히 이 사람이 탐정입니다. 원래 머리 쓰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어서 그럴지도 모르고요.

 

 

 

아니... 내용을 건드리지 않고 이야기를 진행하려니까 쉽지 않습니다. 하여간 이 소설은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앙금을 다루지만 읽고 나면 흡족합니다. 물론 한국인의 입장이니, 옮긴이의 말에 등장하는 평가도 있을 법 합니다. 일본에서는 작가의 역사관을 의심하는 서평도 있다는군요. 소설에 왜 이런 주제의식이 필요하냐니. 너는 지금 당장 가서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당장 후려치고 오련? 이 소설에 등장하는 수많은 다른 소설들의 역사적 사상을 평가해보련?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대강 이정도로 줄이고, 이 작품이 영화 『왕의 남자』를 떠올린다는 묘한 감상힌트 하나를 던져 놓고 갑니다.

 

 

 

 

 

 

 

 

 

미쓰다 신조. 『검은 얼굴의 여우』, 현정수 옮김. 비채, 2019, 14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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