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이 이렇게 깁니다. 책 제목이 아니라 글 제목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깁니다. 하지만 저 제목이 책의 내용을 가장 잘 담고 있네요. 이 책은 집을 지으려는 사람들에게 집을 짓기 위해 필요한 여러 사항들을 구상적인 측면부터 현실적인 측면까지 차례로 담고 있습니다. 책 목차만 봐도 어떤 책인지 대강 감이 올 정도로요.

보통 이런 책들은 글이 길고 설명이 많은데, 이 책은 얇기도 하거니와 프리젠테이션을 하듯 양 쪽 페이지에 걸쳐 글과 그림, 도면, 도표를 한데 놓아 쉽게 설명합니다. 그림이 많으니 읽기 쉽겠다고 착각하기 좋지만 실제 읽어보면 도면에 달린 작은 주와 글, 설명 등을 하나하나 짚어 가며 읽어야 합니다. 근데 그게 또 상당히 도움이 된다는 말이죠.


이건 집을 지으려는 사람뿐만 아니라 집을 구하려는 사람도 함께 봐야할 책입니다. 이전에 독립 후 어떤 집을 구해야 할지 고민할 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주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여기서도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옆 집과의 거리는 어때야 하고, 아침과 저녁의 햇살이 어떤지 확인해야하고, 현관까지 들어가는 공간은 어떻고, 집 배치는 어떻고. 그것도 (일본 기준에서;) 많이 알려진 사자에상 같은 유명한 애니메이션의 집 평면도를 비교하며 보입니다. 그러니까 한국식으로 따지면 전원일기..(...)


일본 책이기 때문에 건축법상의 제약 등도 일본 기준을 따릅니다. 따라서 한국 기준은 따로 찾아야하지만, 그래도 옮긴이 주가 있기 때문에 도움은 됩니다. 몇 군데 편집 실수가 있기는 하지만 감수하고서라도 읽을만한 책입니다.


이 책 보고 나니 더, 집을 짓고 싶더라고요. 하지만 한국의 현실은 참...(먼산)
최근 『행복이 가득한 집』에서 보았지만 한국에서 다세대 주택을 지으려 했더니 집장사들이 내놓는 도면은 다 대동소이하더라더군요. 마음에 드는 집, 살기 좋은 집을 찾으려면 이모저모 공부도 많이하고 준비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집에 한 권쯤 놓고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며 참고하고 싶습니다.+ㅅ+



사가와 아키라. 『최고의 집을 만드는 공간 배치의 교과서: 편안한 일상을 담고 색다른 가치를 일깨우는 공간설계와 디자인의 기본』, 황선종 옮김. 더숲, 2013, 16900원

이 책에 대한 설명은 표지에 붙은 부제랑 설명만으로도 일단 감잡을 수 있습니다. 부제가 '13평 단독주택부터 50평대 전원주택까지 내가 꿈꾸는 집'입니다. 최근 유행하는 땅콩집처럼 작은 집만 소개한 것도 아니고, 양옥만 소개한 것도 아니며 다양한 종류의 집들을 소개합니다. 다만 아파트는 안나옵니다. 여기서 소개하는 것은 집이라는 단어에서 떠올릴 수 있는 이모티콘-즉, 단독주택뿐입니다.

단독주택이라지만 종류는 천차만별입니다. 전원주택으로 세운 것도 있고, 산자락에 지은 한옥도 있습니다. 연남동 골목길 안의 작은 집도 있고, 서촌의 한옥을 개조한 기록도 있습니다. 멀리 서해로 나가 스틸하우스를 지은 사람도 있고요. 그렇게 다양한 집들이 있기 때문에 읽는 사람이 취향에 따라 하나씩 골라 잡을 수 있습니다. 나는 이런 집이 좋아~라고 말입니다.
장마다 한 채의 집을 다루는데, 들어가면서 집의 위치, 대지 면적, 건축 면적, 건축 구조, 외부 마감, 실내 마감, 난방 형태, 공사 기간, 설계, 시공 등 집 짓기에 중요한 여러 정보를 자세히 적어 놓았습니다. 특히 총 비용을 소개하고 있더군요. 당연히 고친 집의 비용이 적게 드는 편이고 새로 짓는 것은 상당히 듭니다. 그리고 지을 때는 아무래도 대지 구입 비용은 별도잖아요.


(하지만 저처럼 게으른 인간은 단독주택이 쉽지 않긔...ㄱ-)

가장 마음에 드는 집은 1장의 한옥입니다. 크기도 그렇거니와, 책에서는 신혼집이지만 혼자살기에도 딱 적당한 크기의 집입니다. 14평이거든요. 개조비용이 3200만원이나 들었지만 뭐, 그정도면 오히려 저렴한지도 모릅니다. 집주인이 건축가라 적게 들은 것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그 외의 집들 중에는 외국 사례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을 것 같은 독특한 집도 많습니다. 동산이몽 같은 경우, 같은 산에 쌍둥이 집을 지어 겉은 비슷해 보이지만 속은 전혀 다른 집을 지었지요. 재미있는 건 집의 구조가 일본의 최근 주택 경향에서 많이 보았던 열린 집이라는 겁니다. 집은 앞 뒤로 긴 편이며, 가운데 계단을 반층 올라가면 거실, 반층 올라가면 침실, 이런 식으로 돌아가면서 공간을 구성한 겁니다. 공간이 완전히 열려있지도 않고 닫혀있지도 않은 집인데, 공간 활용도가 높다던가요. 그 뒤에 소개된 집 중에도 이와 비슷한 공간구성을 가진 집이 있습니다.


책 편집이 꽤 괜찮습니다. 저자가 『행복이 가득한 집』 에서 일했다더니 그런 분위기가 확실히 납니다. 사진도 그렇고 글도 그렇고 배치도 그렇고. 그래서 저는 편하게 읽었네요. 행복이 가득한 집을 5-6년 정도 장기 구독하던 때가 있어서리..ㄱ-;

건축보다는 집 자체에 관심이 있으신 분께 추천합니다.'ㅂ'



성정아. 『고친 집, 새로 지은 집』. 나무수, 2012, 16500원.

어쩌다가 이 책을 집어 들었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카무라 요시후미의 책을 빌리다가 옆에 있는 책을 보고 덥석 집어 들었던 거로군요.-ㅁ- 그래도 굉장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제목에 적고 싶은 문장은 사실 저게 아니었습니다.
아마 그 드라마 CD를 들으신 분이라면 아주 익숙할 대사이지요.

"家がほしい."

한 단어만 살짝 바꿨을뿐인데 분위기가 달라지네요. 원래 대사는 아주 중후한 목소리로 "國がほしい."라고 말하는 것이라 분위기가 전혀 다릅니다.-ㅂ- 그쪽은 나라, 이쪽은 집. 나라는 둘째치고 집이라도 한 칸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도 옛 사람들이 말하는 초가삼간말입니다. 이 책을 보면 초가삼간도 아주 넓은 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 본 것 중 가장 작은 집은 7평방미터였어요. 하하하.


로이드 칸의 책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이전에 『셸터』도 본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하여간 이 책은 G의 부탁으로 도서관에서 빌려왔다가 홀라당 반하고 구입을 고민중입니다. 사고는 싶은데 둘 곳이 없어요. 정말 참고하고 싶은 집들이 많은데..;ㅂ;
(혹시나 해서 교보에서 검색해보았는데 전자책으로는 없습니다.)

종류도 상당히 다양합니다. 하지만 모두 한 가지는 같습니다. 초소형 주택, 땅콩집, tiny home이란 점은 말입니다.
다만 땅 위에 있냐, 바퀴 위에 있냐, 건축가가 지은 거냐, 조립식이냐, 천연재료로 지었냐, 나무 위에 지었냐. 아니면 아예 주거용 차량이냐, 물 위에 있느냐까지.

바퀴 위의 집과 주거용 차량이 어떻게 다르냐면, 전자는 트레일러 틀 위에 집을 올린 거고 뒤는 마차나 작은 수레 위에 집을 올린 겁니다. 아니면 아예 바퀴 달린 집-즉 차 자체를 집으로 개조한 겁니다. 그런 차이가 있어요.'ㅂ'

전체적으로 보니 나무 위의 집, 주거용 차량, 물 위의 집은 취향이 아니더랍니다. 조립식 주택도 의외로 비쌉니다. 역시 눈에 들어온 건 땅 위에 지은 초소형 주택이랑 천연재료로 지은 초소형 주택입니다. 이 둘이 제 취향에 가장 잘 맞네요. 물론 제가 살고 싶은 집은 대부분 1장에 나온 땅 위의 초소형 주택입니다. 천연재료는 마감이 지나치게 덜 된 것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흙집이 많거든요.

다른 집은 안 보더라도 책 맨 앞에 나온 돌집은 꼭 보세요. 스키장 한 가운데, 현지에서 구한 자재만 사용하여 오두막을 지은 사람이 있습니다. 아니, 여기는 스키장 한 가운데가 아니라 그냥 설원 한 가운데입니다. 다만 눈이 내리면 어디서든 스키를 탈 수 있다는 것이 다를뿐입니다. 그리고 짐작컨데, 그 산 자체가 아마 이 사람 땅일 겁니다. 스노보드 장비 제조 회사의 창업주이자 소유주랍니다.(Area-241) 근데 그런 사장님이, 스노보드도 잘 타는 그런 사람이, 혼자서 이런 근사한 집을 지었습니다.ㄱ-; 게다가 그 만드는 과정을 사진으로 찍어 놓고, 그 뒤에도 스노보드와 집과 눈과 별과 등등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아... 정말로 이런 집도 멋지지만 집을 짓는 사람도 멋집니다.

그러고 보니 이 책에서는 집 짓는 사람을 빌더라고 하더군요. 아키텍처, 즉, 건축가와는 다른 단어입니다. 한국에서는 건축가는 많이 생각하지만 시공자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지요. 여기서 빌더는 집을 짓는 사람, 실제 시공하는 사람을 말하나봅니다. 목수하고도 조금 다릅니다. 목수는 직업이지만 빌더는 하는 일을 말하는 것이니까요.
읽다보니 아주 평범한 사람도 마음만 먹으면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물론 한국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한국은 그 어떤 규모의 건축물을 짓더라도 허가를 받지 않으면 불법건축물이니까요. 하지만 이 책 앞부분에 나오는 건물 중 몇 가지는 그런 허가 없이 지었습니다. 주에 따라 다르지만 소형 면적의 건물(11평방미터 등등)은 허가 없이 지을 수 있답니다. 그러니까 정원 한 구석에 골방을 만드는 것은 문제가 아니예요.-ㅁ-;


집들이 마음에 드는 이유는 아마, 제가 짓고 싶은 집의 모습과 유사한 것이 많아서 일겁니다. 1층에는 부엌과 거실을, 2층에는 침실과 개인공간을. 물론 그리 되면 2층이 여름에는 아주 더워서 잠들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그런 때는 1층 마룻바닥에 이불 펴고 자도 됩니다. 한국은 좌식생활이 기본이고, 신발을 집 안에 신고 들어오지 않으니까 가능한 이야깁니다.


아마 M님이 보시고 포복절도할 집은 천연재료로 만든 집일 겁니다. 웨일스에 호빗집이 있어요.(...) 언덕을 파고 들어가 약간의 벽체를 세워 만든 호빗집.; 정말로 호빗집입니다. 하하하;


로이드 칸. 『로이드 칸의 아주 작은 집』, 이주만 옮김. 한스미디어, 2013, 35000원.


가격이 높지만 올 컬러에 책도 굉장히 묵직하고 사진도 멋집니다. 이 가격 주고 살만한 책이라니까요.:)
한 줄 요약.
관 시리즈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겠습니다.OTL

가장 최근에 읽은 아야츠지 유키토의 소설이 『어나더』, 그 전에 읽은 것이 『키리고에 저택 살인사건』입니다. 그러니 관 시리즈 내용이 어땠는지 기억이 가물하긴 한데, 첫 작품이 『십각관의 살인』이었던 만큼 관 시리즈는 각별하지요.
『시계관』까지는 어찌어찌 기억을 하는데 찾아보니 그 사이의 몇몇 관 시리즈를 안 읽고 넘어갔습니다. 그러니 이번 『기면관의 살인』이 처음에 뜬금없이 다가오기도 했고요. 하지만 주인공의 행적이 앞에 나오기 때문에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뿐이지, 이 사람만 떴다 하면 사건이 터지는 데는 한숨이 나옵니다. 허허허;ㅂ; 어딘가의 건방진 꼬마보다 더 무섭지요.
그런 의미에서 교보문고에 올라온 책 소개는 틀립니다. 이 사람은 절대 명탐정이 아닌걸요. 앞서의 다른 사건을 떠올려보면 더욱 그렇지요. 직업이 탐정인 것도 아니고, 살인 사건에 몇 번 휘말리다가 어쩌다보니 추리소설작가가 된 불쌍한 인생...ㄱ-; 그렇다보니 시체를 봐도 이제는 상대적으로 무덤덤합니다.


주인공이야 그렇다 치고, 전체적인 트릭도 나쁘지 않습니다. 특히 그 미친 건축가의 솜씨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던걸요. 이쯤되면 mad scientist가 아니라 mad architect입니다.-_-; 그러니 이 사람의 건축물에는 가까이 가지 마세요. 뭔가 사건에 휘말릴지도 모릅니다.(...)
앞부분의 위화감이 복선이었다는 것도 그렇고, 그걸 깨닫는 주인공이나 풀어내는 솜씨나 역시 답다 싶습니다. 그리고 수 많은 생일과 기념일을 기억하는 걸 보니 이 사람 결혼하기 글렀어라는 생각도 드는군요.(...)


간단한 감상은 이정도로 적고, 건축물이 배경이다보니 T님은 그럭저럭 보실 듯합니다. 아야츠지 유키토의 시리즈는 고전 추리소설 분위기에 가까운지라 지루하다는 반응도 나올법 하거든요. 물론 고전이라고 해도 셜록보다는 뒤쪽입니다. 엘러리 퀸이나 파일로 밴스 쯤에 가깝겠네요. 밀실 살인에 범인은 이 안에 있다는 것도 그렇고 말입니다. 짧은 시간 내에 수수께끼를 풀어야 하는 점은 요즘 추리만화하고 비슷한 것 같기도 하군요.
다만 가면이 많이 등장하니 이런 건 질색이라는 분은 피하시고, 약간 잔인한 부분도 있습니다. 잔인한 정도야 물론 CSI 등에 비하면 아주 순수합니다.(...) 아, 그러고 보니 그 트릭도 어떻게 보면 현대적....; 배경은 물론 90년대 초반이지만 말입니다.

B님은 보셨으려나요..? 아야츠지 유키토는 B님 취향 범주는 아니라 원서로라도 건드리진 않으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가볍게 보기에는 나쁘지 않아요.'ㅂ'


그리고 몇 군데 걸렸던 번역문제.
다른 부분은 다 무난하지만 홋카이도를 홋카이 도로 띄어썼습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도쿄 도 등으로 행정구역명과 지역명 사이를 띄어썼습니다. 눈에 걸리더군요.
그리고 앞부분의 민얼굴이란 단어가 나옵니다. 아마 민낯이라고,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을 가리키는 유행어 때문에 그리 쓴 것이 아닌가 추측합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맨얼굴이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리지 않나요.
이 두 부분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아야츠지 유키토. 『기면관의 살인』, 박수지 옮김. 한스미디어, 2012, 13500원
가끔 건축이나 정원과 관련된 서가를 둘러보면 쏠쏠하게 건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쪽 서가를 본 것도 오랜만이네요. 예전에 나카무라 요시후미의 책을 잔뜩 빌려본 뒤로는 한동안 안갔으니까요. 정원 책은 그보다 더 오래전입니다. 독일 정원과 관련된 몇 권을 책을 본 뒤에는 다른 책에 밀려 서가를 찾는 걸 잊었으니까요.
이날은 나카무라 요시후미의 책 중에서 에시에릭 하우스를 다룬 책이 갑자기 보고 싶어져 찾으러 갔다가, 옆에 정원 책이 있길래 문득 집어 든 것이 이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에 대한 감상 한 줄 요약.

"영국에 가고 싶어!"

그렇습니다. 이 책은 영국 여행을 굉장히 자극하는 책이므로 여행을 가고 싶은 분들은 부작용이 심각하오니 주의하시길 당부드립니다.-ㅁ-/


이 책은 영국의 유명한 정원사들, 정확히는 정원 디자이너들을 중심으로해서 정원과 개개인의 필모그래피를 다루었습니다. 그와 함께 살짝 영국 정원의 역사도 다루고 있고요.
사진 자료가 굉장히 풍부하기 때문에 보는 재미도 있고, 글도 괜찮습니다. 몇몇 문장이 조금 걸리긴 하지만, 그래도 사진과 함께 전문적인 이야기를 다루는데도 그리 지루하지 않고 흥미있게 보았습니다. 정원 입문서나 영국 정원의 역사를 보기에 좋습니다. 아마 티이타님이나 빙고님이 좋아하실 것 같네요. 첫비행님은 ... 음, 이거 보시면 차 렌트해서 영국 전역을 누빌 것 같다는 생각이 잠시...(먼산)


1권에서는 영국 정원 디자이너 중 현재를 중심으로 인상깊게 활동하고 있고, 현대의 영국 정원에 많은 영향을 준 최근 사람들을 중심으로 다루었습니다. 2권은 옛 정원사들을 중심으로 다룬 모양인데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현대의 사람들을 다루다보니 정원 디자인에도 굉장히 호불호가 갈립니다. 일단 타샤 할망의 정원이 영국식 정원이라는 것도 여기서 처음 깨달았고요. 처음 등장한 로즈메리 비어리의 정원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영국의 정원이 이런 모습이구나 싶습니다. 아니, 책의 배치 자체가 그렇군요. 처음에는 전통적인 영국 정원을, 뒤에는 현대적인 감각을 더했거나 독특하고 신기한 정원을 만든 디자이너가 나오네요. 전 후자보다는 전자가 취향이기 때문에 앞에 등장한 로즈메리 비어리의 정원이나 그 다음의 베스 샤토가 굉장히 마음에 듭니다. 비어리의 정원은 딱, 영국 장원의 정원이란 느낌입니다. 물론 공간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비밀의 화원』에서 메어리가 뛰어 놀던 정원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기야 거긴 황야지대니까 이보다는 훨씬 스산하겠지만요. 적어도 저택 주변은 이런 정원이 있을 거라 상상합니다.
베스 샤토의 정원은 그보다는 특징적입니다. 이 정원이 있는 지역은 기후가 영국 내에서도 독특하다 하는데, 그래서인지 불모지, 혹은 황야에 조성한 정원이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이안 해밀턴 핀레이, 아이반 힉스의 정원은 키워드를 뽑자면 요정, 정령, 아일랜드,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 『호빗』이 떠오릅니다.-_-; 영국의 이런 판타지 전통은 정원에도 살아 숨쉬는 군요.;
데릭 저먼의 정원은 영국보다는 미국의 바닷가를 보는 것 같습니다. 황량하고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바닷가에 집 한 채가 서 있고 그 옆에 쓸쓸하지만 화사한, 외롭지만 쾌활한 정원이 있습니다. 베스 샤토의 정원과도 조금 닮았습니다.
찰스 젱스의 정원은.... (먼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답군요. 하하하. 물론 정원의 구조물은 수학이나 과학에 가깝지만 『앨리스』 자체가 수학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걸요. 블랙홀이니 웜홀이니 하는 개념을 정원에 구축하다니 영국 + 미국 + 과학자 + 건축가 답습니다. 멋지네요.
제프 해밀턴이나 존 브룩스의 정원은 NHK 일요일 아침에 하는 정원 관련 프로그램에서 많이 본 정원 같습니다.(...) 정확히는 이런 영국적인 정원을 일본에서도 참고하고 따라가려 하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그러니 닮아 보이지요. 이쪽은 소규모로 구획을 나눠 작고 작은 정원들을 나눠 꾸미는 것 같거든요. 실제 제프 해밀턴은 BBC에서 정원 프로그램을 맡아 오랫동안 활동했답니다. 그러니 닮았다고 느끼는 건지도 모르지요.

말로 설명하기보다는 이 책 속의 사진을 보시는 쪽이 훨씬 마음에 와 닿을 겁니다.


특이한 정원이라 언급한 찰스 젱스의 정원입니다. 이름은 우주적 사색의 정원. 관련 사진은 구글 이미지에서 찾아 들고 왔습니다. 해당 정원의 이미지는 링크를 눌러보시면 더 많습니다.-ㅁ-(링크)
여기서 찾으면 앞서 언급한 다른 정원 디자이너들의 정원도 다 볼 수 있을 것 같군요. 그러면 영국 여행에 대한 충동은 드높게 올라갈 것이 분명하고..


책 맨 뒤에는 부록으로 이 책에서 다룬 정원 디자이너들의 유명 정원과 그 정원을 가는 법을 실어 놓았습니다. 영국 지도에는 친절하게 이 정원들이 어디쯤 있는지, 관람 가능 여부와 관람 시간, 히드로 공항을 기준으로 얼마나 걸리는지 등을 짤막하게 다루었습니다. 뭐, 핸드폰 로밍해서 구글신을 통해 안내를 받으면 어렵지 않게 갈 수 있겠지요. 그러니 어떤 정원을 갈지만 결정하면 됩니다.(...) 그런 겁니다.;


윤상준. 『윤상준의 영국 정원 이야기 1: 12인의 정원 디자이너를 만나다』. 나무도시, 2011, 22000원.

장소는 서울역사박물관이었습니다. 1월 6일로 끝났는데, 토요일 오전에 보러 갔으니 일주일만에 올리는 셈이네요. 아직 밀린 사진도 많은데 게으름 피우다 늦었습니다. 제깍 제깍 올려야하는데 말입니다.


정보 출처는 아버지. 아버지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한옥공모전 전시회를 하고 있다고 일러주시고는 다녀오셔서는 이런 저런 사진을 찍어 오셨더랍니다. 궁금한김에 역사박물관은 입장도 공짜고 하니까 가볼까 싶어 토요일에 약속 있을 때 오전에 잠시 짬을 내어 후다닥 다녀왔습니다.

전시회 구경하는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지요. 어느 정도 걸리냐면, 버스에서 내려 들어가 구경하고 사진찍고 수첩에 끄적이고는 돌아나와 버스를 탔는데 환승받았습니다. 하하하하. 원래 그래요.;




1층 로비 오른편에서 전시중이더랍니다. 생활공간으로서의 한옥이라는데, 간단하게 말하면 '살만한 한옥'을 공모했다는 이야기인가봅니다. 한옥은 구조가 복잡하고 생활하기 불편하다는 단점을 가진다지만 그걸 새롭게 해석해서 어떻게 한옥의 느낌을 살리면서 운치있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었는가가 관건인듯 합니다. 실제 지은 집에 대한 공모도 받았고 기획에 대한 공모도, 한옥 사진에 대한 공모도 있었습니다.

돌아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한옥에 대한 사진만 몇 장 찍어보았습니다.




둘러 본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한옥입니다. 왼쪽이 개축 전, 오른쪽이 개축 후의 평면도입니다.




단면도는 이렇고요. 건축부분 한옥상을 탄 가회동의 양유당입니다. 구조가 재미있기도 하지만 아이방에 따로 다락을 놓고, 그 다락 벽 아래에 달린 창에서는 부엌에서 일하는 사람(주로 어머니?)과 대화가 가능한 구조라는 것에 감탄했습니다. 살기 좋은 한옥, 살기 재미있는 한옥이더군요.



이건 한옥을 설치하겠다고 계획한 장소가 재미있습니다. 어제 생협분들이랑 같이 지나친 장소지요. 창덕궁 옆길, 창덕궁 안 가옥의 맞은편 공간에 이런 한옥을 지으면 어떨까란 제안이었습니다.




저 깨알같은 설정. 한옥 안쪽 마루에서 편히 쉬고 있는 사람입니다. 부럽군요.




언덕길 양쪽편을 한옥 마을로 구성했습니다. 주거별 공용공간과 개별공간으로 나누어 설계했더라고요.




이쪽은 아현동 골목길이었나. 계단 골목 내려가면서 한옥이 늘어섰습니다. 밖에서는 양옥 같지만 안은 한옥. 그런 분위기였다고 기억합니다.




이게 위의 집에 대한 설명이네요.




... 만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아마 T님은 사진을 내내 모형 만드는 쪽에 집중해서 살펴보고 계실듯..?)




지붕은 한옥이고 분명 안뜰도 있는데 한옥 느낌은 많이 안납니다. 아마도 건물이 3층이라 그런가봐요.




이건 한옥을 옆으로 엎어놓은 모습으로 만든 건물이었고요. 엎었다고 하기 보다는 뉘었다고 하는 게 맞나.




이게 금상 작품이었다고 기억합니다. 도시 속의 한옥. 슬며시 있는 듯 없는 듯 들어 앉은 한옥들.




만든 사람들의 노고에...;....




아, 이건 뭐였더라. 양옥 같아 보이기는 한데 기본 구조는 한옥식이었을 겁니다. 동상 작품이네요.




이것도 도시 공간 속에 들어 앉은 한옥의 모습.


주제가 한옥과 현대의 어울림, 그런 쪽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보는 내내 재미있었습니다. 살고 싶은 집은 어떤 집인지, 어떻게 있어야 하는지 등등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더라고요. 편의나 비용을 생각하면 아파트 같은 집합주택이 좋은데 이런 아기자기한 맛은 덜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하지만 혼자 살면서 난방비랑 택배 받는 거랑 등등 생각하면 단독 주택은 살기 쉽지 않아요. 게다가 지금까지 살아온 집들이 다 집합 주택이다 보니 용기가 나질 않네요.
그러면서 항상 살고 싶은 집 그려내라 하면 단독 주택을 그리고 있지.-ㅅ-;


이게 2012인 것을 보면 2013도 하겠지요? 다음 전시회를 기다립니다건축.+ㅅ+
부제를 보면 이 책의 성격이 환하게 보입니다.

"건축가 이일훈과 국어선생 송승훈이 e-메일로 지은 집, 잔서완석루"

그렇습니다. 건축주와 건축가가 전자편지를 주고 받으며 지은 집에 대한 기록이 이 책입니다. 건축가 이일훈씨는 잘 모르지만 송승훈씨는 그 바닥(...)에서 워낙 유명한 사람이라 저는 이 분의 이름을 보고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역시, 국어선생님은 다르네요. 전자편지 여기저기에 묻어난 표현이 아주 맛깔납니다.

아직 책을 다 읽지 못했습니다. 한창 읽고 있는 중인데 이걸 읽다보니 중간 중간 리뷰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올려 봅니다.

책 앞머리의 사진과 문장이 인상적입니다.
(그러나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 -_- 뇌가 썩었.... 이 모든 것은 최근의 조아라 독서목록이....)


2005년부터 2007년 중반까지는 전자편지로 집에 대한 생각을 주고 받습니다. 그리고 2007년 하반기에 본격적으로 공사를 하여 잔서완석루(殘書頑石樓), 낡은 책이 있는 거친 돌집을 완성합니다.
아마 빙고님이시라면, 그리고 생협분들이라면 표지의 서재 사진에서부터 낚이실겁니다. 저 앞쪽에서 빛이 들어오고 이쪽은 복도입니다. 약간은 그늘진, 어둑어둑한 복도에는 양편에 서가가 늘어서 있습니다. 그냥 책장이 아니라 규칙적이지만 들쑥날쑥한 재미난 모양의 서가. 도서관 서가를 사랑하는 제게는 조금 이용하기 불편하게 느껴지지만 이 서가의 정면사진을 보는 순간 졌다!를 외쳤습니다. 이 서가에 책을 꽂고 싶습니다. 하나하나 가꿔가며 말이지요. 국어 선생님이신데도 상당히 중구 난방의 장서 구성인데 그게 자유롭게 꽂혀 있는 것을 보니 손이 근질근질하지만, 한 편으로는 저기의 서가에 책을 잔뜩 채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책장 앞에는 여러 책상자가 놓여 발판도 되고 의자도 됩니다. 저는 아마 이 서가 아래 다리 죽 펴고 앉아 굴러다니며 볼 것 같습니다.


본론으로 돌아가;
주고 받은 편지 첫 머리부터 집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만듭니다. 건축가가 집 주인의 꿈을, 마당, 침실, 욕실, 서재, 대문 등에 대해 적어 달라 했더니 장문의 글을 보냅니다. 본문이 넘칠까 첨부파일로 보냈더군요. 쓰임새, 집모양, 마당, 침실, 욕실, 서재, 거실, 대문, 툇마루, 옥상-베란다, 가구, 꾸밈, 책꽂이, 컴퓨터, 침대, 계단, 벽난로, 마루, 황토까지 집에 대해 생각나는 대로 적은 글입니다. 읽고 있노라면 손이 근질근질하여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 나도 이렇게 집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싶다는 충동이 듭니다.
이에 대한 답장은 꼼꼼히 읽은 뒤 건축적으로 중요한 부분-동거인(어머니), 영사막 사용 시간대, 담장, 방범 등에 대한 재질문으로 이어집니다.
건축주가 쓴 집에 대한 글 두 번째는 겉모습과 방, 집의 구성요소, 그외 생각나는 것들을 담았습니다. 근데 이 분 글이 맛깔나.;ㅂ; 쉬우면서도 철학이 묻어나고 생각이 있는 글입니다. 컴퓨터 방에 밖으로 문을 내면, 거기로 뒤뜰이 보여 밖에서 놀자고 바람이 부르면 온라인 게임 하다가도 뛰쳐나가고 싶겠지요.(...) 그리고 방문이 두 개인 구조는 외국의 부엌이 떠올랐습니다. 로베르 아르보의 『오늘의 행복 레시피』에 보면 부엌이 정원과 바로 이어져, 아이들이 정원에서 뛰어놀다가도 타일 바닥이라 신발신고 바로 뛰어들어올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의 옛 부엌도 그랬지요. 아궁이 때문에 부엌이 낮은 곳에 있을 수 밖에 없었지만, 아궁이 불로 데워진 부뚜막은 겨울철에도 뜨끈뜨끈하고, 그 안쪽에는 찬장이 놓인 곳과 함께 작은 마루가 있습니다. 부엌일 하는 사람들이 잠시 쉬며 거기서 간식을 나눠먹기도 하고 수다를 떨기도 했겠지요. 애들이야 마루보다는 부뚜막에 올라가는 것을 좋아했을 겁니다.

... 글이 길어지니 이정도에서 적당히 접고, 이 책의 감상기는 2탄으로 이어집니다.
겨냥하는 분은 첫비행님, 키릴님, 티이타님, 아이쭈님, 빙고님. 티이타님이랑 키릴님이 흥미롭게 보시지 않을까 합니다.'ㅂ'
도서관에서 빌려봐서 가격은 미처 확인을 하지 않았는데 높은 편입니다. 책에 실린 사진들이 흑백이고, 책이 두껍긴 하지만 판형이 작고 쪽당 들어가는 내용이 많지 않다는 걸 생각하면 조금 아쉽네요. 하지만 나카무라 요시후미의 책이니 꼭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내용은 만족했습니다.

책의 크기는 한국판 문고책 정도의 크기입니다. 그러니까 라이트노벨과 같은 크기지요. 활자가 크고 행간이 넓어 읽기는 좋지만 조금 빽빽하게 해도 좋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래도 한 손에 들고 읽기 좋은 책이란 건 변함 없지요.

본론으로 돌아가, 이 책은 집을 짓는 모습을 다루고 있습니다. 앞서 읽은 『집을 순례하다』 등의 책이 건축물 순례기라면 이 책은 본인이 집을 짓는 과정에서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추었고, 집을 지을 때 어떤 부분이 필요한가 등의 이야기를 가볍게 다루고 있습니다. 가볍게라는 것은 읽기에 가볍다는 뜻이고, 내용을 찬찬히 뜯어보면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언젠가 '내 집'을 가지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집은 어때야 하는가에 대해 이모저모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것도 집의 세부적인 구조-벽난로라든지, 진입로, 계단 손잡이 등등-물에 대한 고민도 하게 합니다. 한국에서라면 벽난로는 둘째치고 일단 온돌을 얼마나 깔아 둘 것인가 고민할텐데, 난방을 위해 벽난로를 쓰고 그 주변에 아늑한 공간을 만든다거나 하는 건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온돌을 깐다면 벽난로는 실용적인 용도보다는 장식물에 가까울 수도 있으니까요.-ㅂ-;

하여간 집을 설계하고 지을 때, 건축주와 건축가 사이에 오가는 논의와, 그렇게 나온 결과물, 그리고 그 오가는 과정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 앞서 본 다른 책들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집을 지을 때 무엇에 대해 고민하나 등 말이지요. 그게 세세하게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맛보기는 됩니다. 대체적으로 수필에 가깝게, 읽기 편하지만 내용을 꼼꼼히 뜯어보면 생각할 거리는 많지요.


가끔 은퇴해서 살 집은 어땠으면 좋겠는가 생각하는데 여기서 얻은 짤막한 아이디어들을 스케치로 남겨둔다면 나중에 의뢰할 때 조금은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네요.+ㅅ+



나카무라 요시후미. 『집을 짓다』, 이서연 옮김. 사이, 2012, 13900원

감상문 올렸다고 생각했는데 빼먹고 있었군요. 이런.;
이 책은 첫비행님 여행 가시기 전에 올리려 했는데 늦었습니다. 아마 제가 이 리뷰 올렸으면 첫비행님의 여행비용은 상당한 수준으로 증가했을 것이란 생각이 폴폴~ ;;; 그도 그런 것이 이 책 감상은 첫비행님을 노리고(!) 올리는 겁니다. 나카무라 요시후미랑 비슷한 계통이거든요.

일본에서는 이런 측량형 여행기(?)가 종종 출판되는데, 한국에서는 별로 못봤습니다. 번역 나온 것만 해도 셋이나 되는데 한국에는 비슷한 책을 못 보았네요. 일단 세노 갓파의 『펜끝으로 훔쳐본 세상』, 『작업실 탐닉』, 『유럽낭만 산책』이 먼저 떠오르고, 첫비행님이 먼저 옆구리 찔러 주신 나카무라 요시후미의 책도 많지요. 그리고 이 책이 있습니다.
세 사람의 공통점은 건축계통 종사자라는 겁니다. 세노 갓파는 건축가는 아니지만 무대미술가랍니다. 한국에는 책이 몇 권 소개되지 않았는데 저서도 상당히 많고요. 그 중 한국에도 나온 『유럽낭만 산책』이 이 책의 모델인가 싶은 생각도 들더라고요. 『펜끝으로 훔쳐본 세상』에도 등장하지만 하는 짓(..)이 닮았습니다. 하하;

『여행의 공간』은 건축가인 저자가 세계 각지를 여행 다니면서 머물렀던 호텔 측량기입니다.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줄자와 필기도구를 들고 여기저기 측량을 해야 마음 편히 쉴 수 있었다네요. 측량하는데는 대략 두 시간이 걸린답니다.(...) 신혼여행 가서도 그랬다는데 아내가 동종업계 종사자여서 다행이었지, 아니었다면 신혼여행 시작하면서부터 싸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머물렀던 호텔이 다 '유명한' 호텔이라는 점도 특이합니다. 세노 갓파는 내키는 대로 돌아다니며 머물렀다는 느낌이 강한데, 우라 가즈야는 유명 디자이너나 건축가가 만들었거나 리모델링에 참여한 호텔, 소설이나 영화 등의 배경이 된 호텔, 고급 호텔 등을 일부러 골라 갑니다. 건축가니까 공부가 된다는 핑계도 있지만 이런 평면도와 그림, 그에 따른 자세한 설명과 감상을 읽고 있노라니 비용이 들더라도 머물러볼만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비스부터 배치 형태나 동선, 물품이나 호텔에서 보이는 경관 등에 대해 자세히 쓰고 있거든요. 덕분에 읽고 나니 가고 싶은 여러 호텔들이 생기는 바람에..-_-;
지역 비율로 따지자면 뉴욕이 제일 많은 것 같군요. 일일이 세어보진 않았습니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스케치북에 그린 그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호텔에 비치된 전용 메모지를 썼더군요. 거기에 스케치할 생각은 해본 적 없는데, 거기에 그린다면 나름의 제한(?)도 있고, 호텔이 어디였는지 적을 필요도 따로 없겠네요. 종이 상단에는 로고가 떡하니 박혀 있고 아래에는 주소까지 친절하게 찍어 두었으니 말입니다.
저도 종이니 뭐니 핑계대지 말고 도전해볼까요..-ㅁ-;;;


우라 가즈야. 『여행의 공간: 어느 건축가의 은밀한 기록』, 송수영 옮김. 북노마드, 2012, 16000원


덧붙여. 그림 중 몇가지는 흑백으로 나왔습니다. 아니, 몇가지가 아니라 꽤...군요. 기왕 싣는 김에 전체를 다 채색으로 실어도 좋았을텐데 말입니다. 아쉽네요.
나카무라 요시후미의 건축책 중 가장 마지막으로 본 것이 『집을 생각한다』입니다. 한국 발간일을 따지자면 앞에 나온 책인데, 저작권 연도를 보고는 제일 뒤로 미뤘더니 그러길 잘했더군요. 앞서 읽은 건축기행이나 집기행 책에 등장했던 유명 주택과 건축물이 다시 한 번씩 등장하는군요. 먼저 보아서 어떤 집들인지 파악하고 있다보니 예시로 등장할 때도 쉽게 이해가 됩니다. 알아보기 좋았어요.'ㅂ'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옛날부터 생각하고 있던 '집'에 대해 다시 한 번 되새겼습니다. 내가 원하는 집이 어떤 집이냐는 거지요.

이 책에서는 집이 갖춰야할 풍경을 열 두 가지로 말합니다. 목차에 나와 있으니 고스란히 긁어보지요.

1. 풍경_ 풍경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집
2. 원룸_ 건축가는 원룸으로 기억된다
3. 편안함_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는 안락한 공간
4. 불_ 집의 중심에는 불이 있다
5. 재미_ 재미와 여유, 그리고 집
6. 주방과 식탁_ 아름답게 어질러진 주방
7. 아이들_ 아이들의 꿈이 커가는 집
8. 감촉_ 손에서 자라나는 애착
9. 장식_ 적당한 격식, 효과적인 장식
10. 가구_ 가구와 함께 살아가는 집
11. 세월_ 오래도록 함께할 수 있는 집
12. 빛_ 두 가지 의미의 빛

음, 그렇긴 한데, 제가 이상향으로 그리는 집은 여기서 몇 가지가 빠집니다. 일단 한국에서 대부분의 집은 아파트입니다. 아파트에서도 불을 못 쓰는 것은 아닌데 그래도 벽난로는 무리죠. 화로까지는 어찌어찌 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것도 재의 처리 문제가 골치아픕니다. 애초에 화로에 담는 불은 가라앉은-사그라드는 불이므로 피워서 담아야한다는 문제도 있지요. 단독이 아니면 힘들다라는 이야깁니다. 뭐, 부엌의 가스렌지는 저도 반드시 필요하다 생각하니 불이 없진 않겠지요.

아이들도 독신이 많은 현재의 가족 모습에서는 꼭 필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의 꿈이 커가는 집이라면 재미가 있는 집이라는 이야기인데, 그건 5번하고 겹치잖아요. 아니면...
제가 피터팬증후군에 걸려 있는걸 어떻게 알았지요?(탕탕탕!)

그리고 오래도록 함께할 수 있는 집도 지금은 확신할 수 없지요. 제가 집을 지을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최소 20년은 지나야할테고, 제가 얼마나 그 집에서 생활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습니다. 독신으로 산다면 자식들이 그 집을 이어서 사용할거란 생각도 안 들고. 이 부분은 지금으로써는 미지의 영역이네요.

최근 쓴 소설(단편) 때문에 그 집의 구조를 손에 잡힐듯이 그리게 되었는데, 실제로도 가능한 집일지는 모릅니다. 대강 여기에 이런 것이 있겠거니 생각하는 집인데, 그 집을 보니 중요한 것이 침실과 공용공간의 분리인가 싶네요. 2층은 오롯이 침실, 1층은 거실과 부엌. 거실이긴 하지만 들어가면서 바로 보이는 것은 아니고 좁은 공간을 지나야 거실이 나옵니다. 거실에는 햇살이 환하게 들어오고, 좌식 공간입니다. 넓은 탁자가 놓여 있고요. 그 근처에서 항상 뒹굴거나 탁자를 밀어 놓고 뒹굴거나. 그런 느낌입니다. 역시 공부하는 공간이 아니라 뒹구는 공간이 중심이라니. 하기야 공부는 도서관에서 하니 집은 쉬는 공간입니다.
애초에 제가 살 집이라 생각하지 않고 만들어 놓은-상상한 공간인데 그 곳에서 등장인물들이 노는 것을 보니 저 역시 익숙하게 느껴집니다. 의외로 제가 살 공간을 떠올리라고 하면 그게 또 어렵고. 다만 앞서 다른 네 권의 책을 읽으면서 생각한 건 작아야 한다는 겁니다.; 청소를 좋아하지 않는 특성상 큰집은 내키지 않네요. 혼자서 산다고 하면 25평 내외? 아니, 뭐, 일본의 땅콩집을 떠올린다면 25평도 큰 셈입니다.-ㅂ- 보통은 10평 남짓이니까요.

지난번에 읽은 『일본의 땅콩집』도 제대로 리뷰를 다루지 않았는데, 그것도 조만간 정리하겠습니다. 그것과 합해서 정말 내가 사고 싶은, 짓고 싶은 집을 그려봐야겠네요.+ㅅ+


책을 읽으면서 기억에 남은 집을 적어둔 것이 있습니다. 긴 공간에 침실부터 손님맞이 공간까지를 차례로 배치한 히아신스 하우스. 미타니 류지의 오두막, 단 가즈오. 거기에 추억의 보물상자. 이건 애들에게는 그야말로 보물상자겠다 싶습니다. 이거 모 만화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등장했지요. 우연히 발견한 가방 속에 이런 '보물'이 들어 있었다는 건데, 그 장면이 굉장히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지진 재해 방지용 미닫이 찬장이랑 패치워크 서랍장. 상당히 재미있는 책이었습니다.>ㅅ<


나카무라 요시후미. 『집을 생각한다』, 정영희 옮김. 다빈치, 2008, 18000원



홍대 카네마야 제면소 근처에 새로 들어선 건물입니다.
근데 이거 어디서 많이 본 타입이야...ㄱ-; 기시감도 아니고 이런 걸 뭐라 해야할까요.;; 설마하니 안도 다다오가 한국에 와서 만들었을 것 같진 않고?;
먼저 읽은 『집을 순례하다』가 더 마음에 와 닿았던지라 『내 마음의 건축』은 상대적으로 밀렸습니다. 상권 마지막의 마티스랑 하권의 기쿠게쓰테이만 아니었다면 말입니다. 물론 중간에 저를 낚을 만한 곳-스톡홀롬 도서관이 있지만 도서관의 규모나 존재에 대해 저랑은 약간의 의견 차이가 있어서 말입니다. 이렇게 원형 공간에 자연광 아래서, 수 많은 책들을 마주하고 서 있는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하겠지만 말입니다, 이게 간접 조명이라 책이 덜 상한다한들 조금 걱정은 된다고요. 게다가 이렇게 배치하면 책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대규모 도서관들은 책의 보관에 애로사항이 꽃 필 겁니다.

헉! 지금 사진을 보니 몇몇 책들이 쓰러져 있어! 안돼! 이러면 책이 망가져! (....)


흠흠.

하여간 스톡홀롬 도서관에 홀리지 않은 것은 여기 꽂힌 책들이 제가 읽을 수 없는 책이라 그렇습니다. 전 스웨덴어를 모르니까요.(먼산) 그렇다보니 시큰둥하게 책을 넘기는데, 막판에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습니다.

그 이야기는 뒤에 꺼내고; 간단 감상부터 적어보지요.

- 타와라야 료칸은 한 번 묵어보고 싶습니다. 게다가 교토네요.;ㅁ; 다다미와는 상성이 잘 안 맞는데 그래도 이런 료칸이라면 하룻밤 머물면서 하나하나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거든요. 사진만 봐서는 단층건물이겠거니 싶은데, 교토시청사 근처에 있는 3층 건물이랍니다. 옥상에도 정원을 올려서 3층 방에도 딸린 정원이 있더군요. 앉은뱅이 책상이 아니라 아래에 다리를 넣게 되어 있는 책상이라니, 고정이라는게 조금 걸리지만 그래도 책상다리 오래 못하는 사람에게는 좋습니다. 거기서 정원을 내려다보며 종이에 끄적대는 것도 해보고 싶군요.

- 케이스 스터디 하우스는 앞서 『집을 순례하다』에서도 언급했는데 여기서는 조금 더 자세하게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그리고 사람이 살고 있는 케이스 스터디 하우스를 소개하고 있네요. 그것도 거의 변한 것이 없이, 약간의 개축만 거친 집입니다. 오래된 집인데도 별 위화감 없이 현역으로(?) 활약하고 있다는 것도 재미있고, 거기 사는 사람들이 집의 역사를 알고 나서는 관련 자료들을 찾는다는 점도 재미있고요. (여러 가지, 특히 전공의 의미를 듬뿍 담아) 역시 미국이군요.

- '집의 변주곡'에서 나온 단지는 겉만 봐서는 그냥 평범한 미국의 주택단지 같아 보이는데 속을 들여다보고 그 유래를 들여다보니 또 달리 보입니다. 게다가 단지 사람들이 일심단결하여 그 형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니까요. 한국의 아름다운 마을로 꼽혔던 어떤 주택단지가 문득 떠오릅니다. 거기 재개발한다고 하더니만 어찌 되었을라나요. 그런 집들이 점점 사라지는게 안타깝습니다. 아파트가 전부는 아닐텐데 말입니다. 물론 편하긴 하지요.(먼산)

- 상권 맨 마지막에 등장한 로사리오 예배당. 마티스가 직접 건축에 참여하여 만들었다고 합니다. 두말할 필요 없습니다. 마티스가 말했던 것처럼 겨울의 오전 11시, 햇살이 들어올 즈음에 가서 멍하니 느껴보고 싶습니다. 물론 마티스의 그림은 제 취향이 아니지만, 햇살이 환하게 들어오는 사진을 보니 낚일 수 밖에 없더라고요. 흑흑흑;


- 하권에서 가장 먼저 홀린 것은 기쿠게쓰테이-掬月亭입니다. 저 (국)자는 다음 한자사전에 안나오는데, 당나라 시인 우량사(于良史)의 시 춘산야월에서 掬水月在手라는 부분이 있어 따온 거라합니다. 손으로 물을 뜨니 손 안에 달이 있다는 뜻이라나요. 연못 위로 살짝 튀어나온 정자인데 사진을 보고 홀딱 반했습니다. 눈 내린 은각사의 사진을 보고 홀딱 반한 뒤로는 오랜만에 이렇게 반해보네요.-ㅂ-

- 카스텔베키오 미술관은 이탈리아에 가면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폴폴 듭니다. 아우. 미술관 건물에 반해서 미술관 찾아가겠다는 생각은 이번에 처음 해보네요. 홀딱 반해서 그 안에서 못 나올지도 모릅니다.;

- 속 나의 집은 재미있지만 이런 장치(?)가 있는 집은 그닥 취향이 아닙니다.

- 아스플룬드가 설계한 숲의 장례식장은 반짝반짝 빛나는 햇살 아래서는 멋지지만 우울하게 구름낀 날에는 어떨지 모르겠네요. 비석 없이 그냥 수목장이어도 괜찮지 않았을까요. 저는 비석 없이 그냥 묻히는 것이 좋습니다. 하기야 뒤에 찾아올 사람들을 위해서는 비석이 안내판 역할을 할테니 있는 것이 좋은가요.
그러고 보니 유언장에 적어야 하는 것 중에 장례방식도 있었구나. 전 화장 후에 수목장을 하는 쪽이 좋습니다. 납골당에 들어가는 건 갇히는 느낌이라 싫어요. 그게 아니라면 그냥 들이나 산에 뿌리는 것이 좋네요.

- 도요타마 감옥이나 뒤에 나오는 하타노다이역은 이젠 만날 수 없으니 이 책으로만 볼 수 있을테고..

- 오타니에미 예배당은 신교 예배당일텐데, 신교든 구교든 상관없이 저 안에서 사색하고 싶습니다. 역시 멍 때리고 있어도 좋을 공간이군요.

- 셜록 홈즈 박물관은 그 앞부분의 창작에서 포복절도했습니다. 이야, 본편의 소개보다 이게 더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맨 마지막에 적은 작가의 첨언은 '일본인'이기에 가능한 발상이라고 봅니다. 한국에서는 무리죠. 일본에서는 어디에 가든 상상한 것보다 괜찮은 기념품을 만나는데 한국에서는 상상한 것 이하의 물품을 만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진짜 그런 기념품을 판다면 당장에 티켓 끊어서 런던 날아갈지도 모릅니다. 하하하;

- 오키나와의 집은 패스.

- 솔크 생물학 연구소는 앞서 루이스 바라간의 집 기행에서도 잠시 등장합니다. 루이스 칸이 솔크 생물학 연구소를 설계하다가 루이스 바라간에게 SOS를 쳤다는 이야기지요. 그게 어떻든 간에 생물학 연구소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갑자기 생물학 책이 마구 읽고 싶어지는게..-ㅁ-/

읽다보니 이 책을 먼저 보고 『집을 순례하다』를 읽고, 『집을 생각하다』를 읽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합니다. 저작권 연도를 확인하고는 이 순서로 보았는데, 읽다보니 그쪽이 읽기 수월하겠다 싶네요. 지금 읽고 있는 『집을 생각하다』는 『집 순례』랑 『마음건축』에 등장한 여러 건축물이 다시 나오니 앞서 두 권을 다 읽고 보는 쪽이 이해가 쉬울거라 생각합니다. 오늘부터 읽기 시작했으니 확신하긴 어렵지만 말입니다.


나카무라 요시후미. 『내 마음의 건축 상-하』, 정영희 옮김. 다빈치, 2011, 18000원



그러고 보니 역주에서 걸리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안동 하회마을 기행에서 다루었던 다다미 한 장의 넓이 말입니다. 한 장이 1.8 × 9미터라고 나와 있는데 1.8 × 0.9아닌가요.-ㅂ-;
도서관에서 빌릴 책이 뭐 없나 떠올리다가 문득, 이전에 첫비행님이 옆구리 퍽퍽 찔러주시던 책이 생각났습니다. 건축 책이었는데 작가가 누구더라 싶어 찾아보니 나카무라 요시후미의 책이었습니다. 역시 도서관은 큰 것이 아름다운게, 예상하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나온 책이 다 있더군요. 한꺼번에 다 빌리고 싶었지만 그날은 가방 무게가 참으로 아름다워 눈물을 머금고 일곱권만 빌렸습니다. 이 중 나카무라 요시후미의 책이 네 권, 다른 종류의 책이 세 권이었지요. 나머지 세 권 중에는 『핀치의 부리』도 있었습니다.

어떤 책부터 읽을까 하다가 나카무라 요시후미의 책이 네 권이나 되니 이것부터 보자 싶어서 지난 일요일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 정도면 분량이 충분하겠거니 했는데 일요일에 의외의 일이 생기는 바람에 책이 부족했지요. 차라리 『핀치의 부리』를 들고 갈 걸 그랬습니다.

본론으로 돌아가, 맨 처음 읽기 시작한 것이 『집을 순례하다』이고 그 다음은 『다시 집을 순례하다』입니다. 어떤 책을 먼저볼까 하다가 먼저 출간된 책부터 보아야 할 것 같아 출간년도를 확인하고는 집순례를 먼저, 내마음의건축을 나중으로 돌렸습니다. 그리고 지금 살짝 후회중입니다. 제 취향은 집순례입니다. 하하하.
(라고 적어놓고 지금 『내 마음의 건축』을 읽고 있는데, 정정합니다. 몇몇 건축물이 제 눈을 휘어잡았습니다.;;)

『집을 순례하다』는 말 그대로 세계 각지에 있는 이런 저런 집들을 돌아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보통 집이 아닙니다. 세계의 명작을 골라서 보고 다녔으니까요. 보통 이런 류의 건축기행은 유명 건축가의 기념비적 작품을 들여다보기 때문에 어디어디 미술관이나 어디어디 회사 건물 등을 보게 마련인데-한국으로 따지자면 선유도 공원이나 강남 교보타워 등을 들여다보는-이 책은 제목 그대로 집을 들여다봅니다. 유명 건축가들이 만든 사람 냄새 나는 집을 말입니다. 그래서 더 반하고, 그래서 더 집이 가지고 싶어집니다.

집에 대한 애착은 꽤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내 집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정주할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 초등학교 때였으니까요. 그 이유도 분명 기억합니다. 그리고 제 집을 그리기 시작한 것도 그 때였고, 고등학교 때는 잠시 건축학과를 갈까 고민도 했습니다. 성적만 두고 보자면 건축학과 가는데는 무리가 없었지만 더 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고, 도저히 수학을 버틸 자신이 없었습니다. 물리도 엉망이고, 성격이 급하고 덤벙거려 도면을 그리면 항상 어딘가에서 비뚤어집니다. 그리하여 마음을 접었지요.
그럼에도 이 책을 보면 그 때의 기억이 아련하게 떠오르며 ..... .... 아니, 나, 「건축학개론」 안봤는데? ㄱ-;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그런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 정도로 집에 대한 생각이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대부분의 집이 작다는 것도 마음에 들고요. 어디까지나 대부분이고 몇몇 집은 규모가 상상이 안될 정도입니다. 특히 필립 존스의 집은 규모로 따질 수 있는 것이 아니죠.;
마음에 드는 집도 있고 도면도 있습니다.
- 집을 엉망을 지어~ 라는 소리가 『행복의 건축』에서 나왔다고 기억하는데, 그런 사람이 이런 예쁜 집도 짓나 싶은 정도로, 르 코르뷔지에 어머니의 집은 멋집니다. 부모님을 위한 집이라고 하는데 작지만 아담하고 또 편안하고 아늑한 집입니다.
- 루이스 칸이 여동생을 위해 지은 집은 살아보고 싶습니다. 2층 건물인데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딱 그 크기입니다. 1층에는 식당과 거실, 부엌이랑 세탁실(다용도실)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식당이랑 부엌을 분리할 필요가 딱히 없으니 붙이거나 하면 될 것 같고, 식당을 거실로 만들고 거실을 서재로 만들면 딱 좋겠다 싶네요.  2층은 정말 개인 공간입니다. 근데 정말 이 집 마음에 들어요.
- 마리오 보타의 집은 패스.
- 아스플룬드의 집은  벽난로 부분이 마음에 드는데, 살 집이라기 보다는 별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잠시 머물며 휴가를 즐기는 집 같네요.
- 낙수장은 패스.
- 필립 존슨의 타운 하우스도 멋집니다. 근데 중간에 그리 중정이 있으면, 왠지 습기가 차고 모기가...(하략)
- 알바 알토의 집은 2층에서 내려본 모양이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다만 2층에 침실이 있으면 여름엔 덥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미묘하군요. 하지만 그 아늑함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어렸을 때 꿈꾸었던 산장이었지요. 하하하;
- 슈뢰더 하우스는 전위적이고 복잡해보이는데다 2층에서 각 가족의 사생활이 엄격하게 구분되지는 않는 것 같아 마음은 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런 현대적인 집이 저리도 오래된 것이라 생각하니 대단하다 싶네요.
- 르 코르뷔지에의 작은 별장은 패스. 너무 작아요.OTL

『다시 집을 순례하다』에 등장하는 집 중에서는,
- 안도 다다오의 집은 덥다는 말에 두 손 들었습니다. 그건 좀.; 하지만 작고도 아담하고, 겉은 현대적이라 전시용일 것 같아보이지만 속은 살아 있는 그런 집이었습니다.
- 임스 부부의 집이나 시 랜치는 눈으로 보기에 좋았습니다. 시 랜치는 멋지지만 사는 집보다는 잠깐 머물다가 가는 집 같아 보이는군요. 펜션 같습니다. 다른 것보다 해변창(베이윈도)가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햇살이 반짝반짝 드는 긴 의자에, 그 아래 깔린 융단. 거기서 해변을 내려다보며 뒹굴거리고 싶네요. 하지만 외관은 그리 취향에 안 맞습니다.;
- 피에르 샤로의 유리집, 루이스 바라간의 집, 안젤로 만자로티와 브루노 모라스티의 까사 그랑데는 패스.
- 키에르홀름의 집은 두 권 모두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집 한 손에 듭니다. 월출이라는데서 휙 갔군요.
- 필립 존슨의 글라스 하우스는 .... .... 이건 직접 책을 보셔야 합니다.; 뭐라 말할 수 없네요. 물론 작은 집을 좋아하는 저는 이런 집을 지을 것 같진 않지만 이쯤 되면 건축도 하나의 놀이가 됩니다.(먼산)

적고보니 1권의 집이 더 마음에 들었나봅니다.
도면이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것이 보기에 좋습니다. 도면을 보고 사진을 보며 실제 모습이 어떤지 왔다갔다 하는 것도 좋았고요. 이걸 보며 언젠가는 작고 아기자기하고 마음에 드는 그런 집을 짓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실제 살고 싶은 집으로는 루이스 칸의 에시에릭 하우스랑 키에르홀름의 집, 르 코르비지에 어머니의 집을 꼽습니다. 다만 르 코르뷔지에의 집은 서가가 부족하다는 것이 단점이고, 에시에릭 하우스는 혼자 살기에는 조금 규모가 큽니다. 도면들을 보면서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이 청소라; 더욱 그렇네요. 설거지는 좋지만 청소는 싫어하기 때문에 그런가봅니다. 키에르홀름의 집은 서가가 부족하고 집 크기도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크군요.

아마 제가 가진 자금을 생각하면 나중에 지을 집은 여기 등장한 집보다 훨씬 작을겁니다. 물론 아무리 작다한들 나중에 본 르 코르뷔지에의 작은 별방보다는 클겁니다.; 하지만 작아도 아늑하고, 원하는 건 거의 다 갖추고 있는 그런 집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과연 그런 집을 지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읽고 나면 정말로 집을 짓고 싶어지는, 집을 부르는 그런 책이니까요. 아마 다음 책들까지 다 읽고 나면 도면을 슬슬 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집은 워낙 큰 물건이라 지름신이 쉬이 오시진 않겠지요. 하하. 대신 지름을 대비한 저축신이 오실 것 같으니..;


나카무라 요시후미. 『집을 순례하다』, 정영희 옮김. 사이. 2011, 19500원
『다시 집을 순례하다』, 황용훈, 김종하 옮김. 사이, 2012, 2만원

첫비행님은 이미 보셨고, 빙고님과 아이쭈님은 보시고 나면 집을 지르시고 싶어지실테고(...), 티이타님은 아마 다른 눈(...)으로 이 책을 보실테고 ... -ㅁ-;


저런 제목을 달아보고 싶었습니다.

지난 주말인가 지지난 주말인가 시청쪽에 나갔더니 이런 건물이 자리하고 있더군요. 파도, 아니 한강물이 넘실대는 걸 형상화한 것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하지만 『포세이돈 어드벤처』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고. 예쁘고 아리땁고 멋진 시청 건물은 어디 두고 저런 괴상망측한 건물을 가져다 두어야 하나 싶고.ㄱ- 건물 쓰기 싫었으면 그냥 그거 다른 곳에 이전하지?
고전적인 분위기를 좋아하는 내게는 절대 취향에 안 맞는 건물... 게다가 난 유리건물 질색이란 말이닷! 기왕 건물 세울 것이라면 좀 주변 분위기와 맞추지, 그 건너편 덕수궁하고는 분위기도 안 맞잖아! 혹시 런던의 거킨이라도 참조했던 거야?


취향의 건물이 아니라고 투덜댑니다. 이전에는 건물 때문에 저 쪽으로 일부러 돌아가기도 했는데 앞으로는 그냥 한국은행쪽으로 가야겠군요. 
수전 데니어. 「베이트릭스 포터의 집」. 갈라파고스, 2010, 15000원

제목에 낚여 산 감이 없지 않아 있는데 결과적으로는 만족했습니다.'ㅂ'

베아트릭스 포터는 피터 래빗의 창조자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저는 그보다는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의 전개자로 더 기억하고 있습니다. 존 러스킨을 비롯한 당대의 유명인들에게 감화를 받아 자연보호와 중요 유산들, 공예들, 전통들의 계승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걸 실천한 사람이니까요. 보통 그렇게 감화를 받으면 받는 것으로 끝나기 마련인데, 피터 래빗 시리즈가 생각보다 잘 팔려서 그걸 통한 수익으로 가능했지요. 덕분에 지금의 레이크 디스트릭트-영국의 호수지방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엉망진창으로 파괴되지 않았을까요.

이 책에서는 베아트릭스 포터가 꿈꾸었던 '나의 집'을 이룬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 글과 그림으로 남긴 '꿈의 집'을 어른이 되어 차근차근 꾸며 나가는데, 이건 피터 래빗의 작가로서 외부에 보여주기 위한 집이었던 모양입니다. 실제 살았던 집은 따로 있다더군요. 사후에는 그쪽 가구들을 가져와서 더 꾸몄던 모양입니다.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19세기 한국 고가구들을 사다가 한옥에 실제 사는 것처럼 꾸몄달까? 오래된 집을 한채 사서 여기저기 고쳐가며 방 하나하나를 완성해가는 모습이 재미있습니다. 조각상 하나, 가구 하나도 그냥 들어온 것이 아니더군요. 친척에게서 받은 것이나 친구에게서 받은 것, 어디 경매에서 구한 것, 벼룩시장에서 찾은 것까지 다양합니다. 그 당시에도 고가구였고 빅토리안 시대의 가구들이었으니, 지금 수준에서 보면 영국 안티크지요.^^;

집을 꾸밀 때 어떤 기준으로 하는지에 대해 차근차근 나와 있는데다 베아트릭스 포터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도 보여줍니다. 피터 래빗의 출판과정과 그 판매 상황도 나오고 주변의 집을 어떻게 매입했는지도 보여주고요. 결혼 사정에 대해서도 조금 알고 있었는테 미스 포터를 보신 분이라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만년에는 피터 래빗 시리즈를 더 그리기 보다는 농부로 살아가는데 만족했나 봅니다. 특히 지역에 독특한 품종의 양이 있어서 그걸 되살려 내고 나중엔 출품까지 했다니까요.-ㅁ- 그 협회장에도 선출되었지만 취임식 전에 사망해서 공식 인정(?)은 못 받나봅니다.


하여간 사진이 풍부하기도 한데, 읽으면서 계속 떠오른 두 사람이 바로 타샤 튜더와 윌리엄 모리스입니다. 윌리엄 모리스는 같은 시대 사람이지만 타샤 튜더는 그보다 더 뒤의 사람이지요. 성이 튜더라 왠지 이쪽이 더 오래된 사람 같지만 말입니다.(튜~더스~) 이광주 씨의 「윌리엄 모리스, 세상의 모든 것을 디자인하다」와도 비슷한 구성이기도 하고, 월북에서 나온 타샤 튜더 시리즈도 비슷한 느낌이니까요. 타샤 튜더 시리즈는 뭐랄까, 코스프레 + 다큐멘터리 느낌?; 인형 놀이의 느낌도 조금 받긴 합니다만...; 타샤 튜더는 지금 시대 사람이지만 혼자만 저 멀리 역사속 생활을 끄집어 내어 살았으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현실감이 덜하다는 느낌입니다. 유명한 작가라서 용인된 것이지 보통의 할머니였다면 왠지, '세상에 이런 일이'같은 곳에 등장할 것 같은...ㄱ- 뭐, 시대를 100년 쯤 늦게 태어난거죠.;


「윌리엄 모리스, 세상의 모든 것을 디자인하다」와 타샤 튜더 시리즈를 재미있게 보셨다면 추천합니다. 그게 아니라 하더라도 빅토리아 시대의 고가구들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볼만 하고요. 피터 래빗을 좋아하신다면 각각의 캐릭터들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도 보실 수 있으니 재미있을 겁니다.


건축법에 의한 미술품 설치였던가요. 하지만 이 때문에 놓인 전시물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흥국생명 앞의 망치 든 남자. 본명은 모르지만 하여간 그게 제일 마음에 듭니다. 겨울에는 산타모자를 눌러 쓰는 유머를 발휘하는 것도 좋고요.

하지만 위의 전시물은 꿈에 나올까 무섭습니다. 역광이라 사진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는데 네 방면으로 사람이 걷고 있고 그 어께에는 그보다 조금 작은 사람이 매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 위에 그보다 작은 다른 사람이 .. 식으로, 공룡의 척추뼈처럼 보이는 저 작은 조각 하나하나가 다 사람입니다. 기분 나빠요.;ㅂ; 왜 기분 나쁜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내 어깨에도 저런 사람이 매달려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하하.

직접 눈으로 보고 싶으신 분들은 영등포 타임스퀘어에 가시면 됩니다. 교보문고 올라가는 쪽 출구에 있더군요.




여기부터는 잡다한 이야기.

단순하고 간소한 삶을 원하지만 그 반대쪽에서는 지름신이 손짓해 부르십니다. 어느 분의 집 상차림을 보았다가 그릇에 홀라당 눈이 가서, 최근에 야후 옥션을 들락날락하고 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남의 집 그릇은 예뻐보이지만 제가 직접 쓸 그릇이라면 그런 세트는 버겁습니다. 무엇보다 아직 독립을 못했잖습니까. 내 집이면 그릇살림이 늘어도 괜찮지만 부엌 살림을 관리하는 것은 어머니이시니 제가 손댈 여지가 없습니다. 뭐, 그렇다보니 작은 세트라도 모으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지난번에 그나마 있던 츠바벨무스터도 방출한 것을 떠올리면 그닥.;

어머니가 어제 쇼핑나가시더니 컵을 올려 놓겠다며 작은 식기건조대를 하나 사들고 오셨습니다. 분명 찬장에도 컵이 한가득 올라가 있음에도 번갈아 가며 쓴다고 밖에 내 놓은 컵들이 왜이리 만은지.-ㅁ-; 제가 홀랑 꺼냈다가 마르면 홀랑 챙겨 넣는 컵까지 하면 정말 많습니다. 식구는 넷인데 건조대에 올라간 컵은 지금 대강 헤아려보아도 열 개가 넘는군요. 아하하. 그래서 더욱 못지르는 겝니다.
(통장 잔고의 문제가 있지만서도 뭐...;)



어제 프로젝트가 90% 달성되었습니다. 나머지 10%는 시간인거라 제가 손 쓸일은 이제 없겠지요. 시원 섭섭하기도 하지만 더 달려볼까라는 생각이 조금 남아 있어서 말입니다. 문제는 비용. 시간은 음...(먼산) 하여간 끝나가는 와중에도 이모저모 생각만 많아지네요.;ㅅ;



2010. 6.16. 덧붙임.

해당 법규가 뭔가 찾아보았더니 법령이 아니라 서울시 조례입니다. 따라서 타 시도는 해당되지 않더군요.-ㅁ-;
국가법령정보사이트(링크)에 들어가서 자치법규 중 서울특별시문화예술진흥에관한 조례에 나와 있습니다. 해당 조례 규칙을 보면 조금 더 자세히 나와 있고요.

책 읽은 것들 정리하기가 정말 싫어서 그냥 한 번에 몰아 쓰렵니다. 요 며칠 지뢰를 계속 밟아서 그런가봅니다.

온다 리쿠, <금지된 낙원>
온다 리쿠, <구형의 계절>
우에다 아키나리, <우게쓰 이야기>
아사다 지로,<월하의 연인>
카리야 테츠, <한 권으로 읽는 맛의 달인 특강 1-2>
케이트 케리건, <완벽한 결혼을 위한 레시피>
데이비드 제롤드, <화성아이 지구 입양기>
여성건축기술자회, <행복을 연출하는 다이닝 & 키친>
아사쿠라 다쿠야, <눈의 야화>
모리오카 히로유키, <달과 어둠의 전기>
김영하, <여행자: 도쿄>
김영하, <여행자: 하이델베르크>
제프리 초서, <켄터베리 이야기>


음, 이것말고도 또 있었던 것 같은데 나머지는 기억이 안납니다. 그러니 넘어가고.

달과 어둠의 전기. 읽다가 던져버리고 싶은 것을 참고, 끝까지 가보자 싶어서 읽었는데 읽고 난 뒤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뒷 권이나 관련 시리즈도 손대지 않았습니다. 제 취향에는 전혀 맞지 않더군요. 영감은 있으나 능력은 없는 10대의 방약무인한 소년이 무전취식을 노리면서 사기를 치려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거든요. 퇴치할 능력도 없으면서 퇴치하겠다고 한 것이 사기 치는 것이지 뭡니까. 하여간 도서관에서 망설이다가 집어 들어 피본 경우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달과 어둠의 전기보다 더 지독했던 것이 완벽한 결혼을 위한 레시피입니다. 이건 읽다가 던졌습니다. 도서관에서 빌린 그 다음날인가 다다음날인가, 앞에 몇 장 읽어보고는 더 읽다가는 속 터지겠다 싶어 반납했습니다. 뉴욕에서 잘 나가는 어느 푸드 스타일리스트가 충동적으로 결혼하고는 그에 대해 후회를 할까 마음 편히 살까 고민하는 이야기인데 외할머니의 이야기와 번갈아 가며 진행됩니다. 앞 부분만 읽고는 도저히 공감이 안가서 읽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레시피라도 잔뜩 있을까 싶었는데 각 장 앞에 하나씩 소개 되어 있어 5-6개 남짓만 있더군요.
느낌은 할리퀸 로맨스의 뒷 이야기랄까..? 공주님과 왕자님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가 아니라 결혼해서 이렇게 마음 고생하고 있습니다.

김영하의 여행자 시리즈 두 권도 그럭저럭 읽을만 했지만 제 취향은 아닙니다. 앞부분은 해당 도시를 배경으로한 소설, 뒤는 사진 위주입니다. 짤막한 에세이 같은 것도 있는데 전 에세이 쪽이 더 좋더군요. 그러고 보니 김영하는 소설을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네요. 예전에 랄랄라 하우스만 빌려 읽었던가요.

아사다 지로는 프리즌 호텔만 좋은가봅니다. 특히 몽환적이고 알 수 없는 단편집들은 정말 책이 없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손 대지만 읽고 나서는 항상 후회합니다. 사고루 기담은 그럭저럭이었지만 아야시~는 뒤끝이 안 좋았고 월하의 연인은 쓰다가 만 것 같은 느낌의 단편이 몇 있습니다. 지금 읽고 있는 중이긴 한데 다 읽는다 해도 평이 올라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는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서해문집에서 나온 것인데 책 판형이나 글씨 크기, 편집, 그림 등은 다 마음에 들었지만 캔터베리 이야기 자체는 재미없었습니다.

아사쿠라 다쿠야의 눈의 야화는 이전에 새틀라이트 크루즈를 괜찮게 봐서 빌려왔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미묘. 책이 두껍지만 안 읽히는 책은 아닌데 몇 군데서 묘하게 늘어집니다. 특정 부분의 묘사, 주인공의 심리적 독백 같은 곳이 지나치게 길어서 소설의 맥을 가늘게 만듭니다. 요약하자면 별 생각 없이 미술을 시작했다가 꽤 잘나가던 주인공이 좌절하고 다시 손대기까지의 이야기인데, 거기에 눈과 관련된 설화가 하나 들어가 있습니다. 무난하게 볼만하지만 중간에 그 늘어지는 부분에서 지겨워질 수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그리고 주인공이 답답한 성격입니다. 무심에 소심을 더하면 이런 성격일거예요.;

행복을 연출하는 다이닝 & 키친은 일본에서 나온 책을 번역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상황과 다른 부분도 많고요. 한국은 아파트를 선호하는데다 단독주택도 한 집에서 오래 사는 경우가 드문데, 일본은 아파트나 빌라보다도 정원 가꾸기가 가능한 단독주택을 선호하는지 단독주택에 대한 개조 사례가 많습니다. 그것도 오래된 집에 대한 개축이 많더군요. 제목에서 나오는 것처럼 주로 거실과 부엌을 개조하기 때문에 이쪽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찾아보세요.
부엌을 배치할 때 햇살이 잘 들거나 전망이 좋은 곳에 둔다는 발상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우게쓰 이야기는 에도 시대에 나온 유명한 설화문학이랍니다. 신간을 둘러보다가 내용 소개에 흥미가 끌려서 도서관에 주문해 빌려다 보았습니다. 내용은 그럭저럭 괜찮군요.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이야기가 많은데 각 이야기의 뒤에 실려 있는 해설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에도 시대의 이야기를 좋아하신다면 추천합니다. 하지만 많이 기대는 하지 마세요. 요재지이였나, 하여간 그런 류의 이야기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한 권으로 읽는 맛의 달인 특강은 맛의 달인 스토리 작가인 카리야 테츠가 쓴 책입니다. 맛의 달인을 쓰기 위해 취재하는 동안 일어난 이야기들이 있는데 이 작가 성격이 나쁘다는 것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엊그제 초록불님이 편집자와 작가의 차이는 자뻑기질 차이라고 했는데 이걸 떠올리면 금방 납득하실 수 있습니다. 정말 제 멋에 사는 작가예요.
맛의 달인에 등장하는 여러 음식 그림들과 함께 먹는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데 1권은 주로 음식 재료와 관련된 이야기가, 2권은 프랑스 요리, 이탈리아 요리 등 국가별 요리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국가별 요리라고는 해도 프랑스 요리 때는 푸와그라 이야기가 나오는 등 재료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작가가 두서 없이 늘어 놓는 음식 이야기이니 그런 걸 좋아하신다면 읽어보세요. 맛의 달인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두말없이 추천합니다. 읽고 있자면 카이바라(번역판에서는 우미하라. 카이바라라고 읽는 것이 맞답니다)나 지로의 나쁜 성격이 어디서 나왔는지 단번에 아실겁니다.

화성아이 지구 입양기는 어느 작가의 이야기입니다. 독신으로 살아오던 어느 작가가 문득 아이를 입양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온갖 문제아로 낙인 찍힌 아이를 데려오겠다고 결심하는데, 이 아이는 자신이 화성인이고 언젠가 화성인들이 자신을 데리러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아이가 화성인에서 지구인이 되기까지의 이야기가 주 내용입니다. 이게 순위가 높은 것은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그게, 작가가 스타트랙 작가라고 해서 홀랑 낚였거든요. 이 책을 읽기 직전에 Happy SF를 봤고, 그래서 여러 SF 소설에 구미가 당기던 차에 별 생각 없이 빌린 책이 SF 작가가 쓴 책인겁니다. 그것만 해도 우연의 일치라 할텐데 번역자는 Happy SF 2호에 실린 단편의 작가였습니다. 이름이 익숙하다 했더니 같은 분이더라고요. 그래서인지 SF관련 여러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넘어갑니다. 책은 작고 얇지만 여운도 그렇고 느낌도 좋았습니다. 가볍게 읽을 만한 책입니다.

마지막이 온다 리쿠의 금지된 낙원과 구형의 계절인데, 사실 둘다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구형의 계절은 처음 시작은 도시괴담이더니 어느 순간 판타지 소설로 넘어가더군요. 아이쭈님이 네크로폴리스랑 구형의 계절을 보다가 맨 마지막 부분에서 화냈다 하시던데 이해가 갑니다. 구형의 계절보다는 네크로폴리스가 조금 더 낫긴 합니다. 구형의 계절은 60%가 넘어가면서부터는 이야기가 왜 이리 전개되는지, 엉뚱하게 마구 흘러버립니다. 굽이치는 강가에서나 여섯 번째 사요코에서처럼 학원물을 기대했는데 뒤통수를 퍽 맞은 느낌일까요. 열린 엔딩이라 더 그렇습니다.
캐릭터들은 마음에 들지만 내용은 마음에 안듭니다.
금지된 낙원도 막판 뒤집기에서 빈대떡을 홀랑 다 태워먹은 느낌입니다. 긴장감을 잘 조성하면서 공포물로 나가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오컬트가 됩니다. 두 사람이 막판 뒤집기를 할 거란건 알았지만 그쪽이 막판 뒤집기를 한 것은 소설의 전체 분위기를 흐린다 싶었고, 다른 한 쪽은 최종보스 치고는 너무 약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디서 구원투수로 등장한 엘프가 매그넘샷 한 발에 글라스기브넨을 날려버린 듯한 느낌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하하하.


묵혀둔 책이 몇 권 안 남았는데 이것 다 읽고 나서 뭘 보나 싶습니다.ㅠ_ㅠ

         

김진애, <이 집은 누구인가>, 샘터, 2006, 12000원
조안 해리스, <블랙베리 와인>, 문학동네, 2006, 11000원, <오렌지 다섯 조각>, 문학동네, 2004, 11000원


조안 해리스의 음식 3부작 시리즈가 초콜릿, 블랙베리 와인, 오렌지 다섯 조각 순서라고 생각했는데 오렌지 쪽이 먼저였군요. 아놔.......................;


이 집은 누구인가는 건축 이야기입니다. 본격적인 건축이야기라기보다는 부담없이 접할 수 있는 건축이야기고, 중심되는 것은 집에 대한 기억, 집의 모습, 집의 형태 등 다양한 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뭐, 사람이 가장 처음으로 접하는 건축물은 집 아닐까요. 병원을 제외한다면 말입니다. 요즘 애들은 집이 아니라 병원에서 태어나잖아요. (저도 물론 병원 출신입니다;)
언젠가 내 집을 지어보겠다고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면서 내 집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보아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 느낌의 책입니다. 그러고 보니 집 짓기와 관련해서는 이전에 한 번 소개한 강화도에 내 집짓는 이야기와, 행복한 집인가 그 비슷한 제목의 4권 시리즈가 있습니다. 내 집에 대한 계획을 구체적으로 잡아보시려면 한 번 읽어보세요. 하지만 전 집 지을 땅도 없기 때문에...(먼산)


음식 3부작은 쿠켄 10월호에 책 속 음식 이야기가 실려서 엉뚱하게 옆구리를 찔렸습니다. 조안 해리스의 초콜릿을 재미있게 읽기도 했고, 그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저 앞에 썼듯이 순서를 헷갈려서 오렌지가 마지막 권인줄 알고 그쪽을 나중에 읽었습니다. 블랙베리를 나중에 읽었더라면 평가가 더 올라갔을텐데요.
제 취향에는 초콜릿>=블랙베리>>오렌지입니다. 오렌지 다섯 조각은 배경도 그렇고,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도 취향에서 벗어납니다. 배경은 독일군에게 점령 당했을 때의 프랑스 작은 시골마을이고 과부의 막내딸이 훨씬 나이를 먹은 뒤에 옛 일을 회상하며 그 일이 다시 수면에 떠오르는 것에 대해 번민하고 고민하고 싸우면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초콜릿에서도 옛날 일과 지금 일이 번갈아 등장하며 소설이 전개되는데 블랙베리나 오렌지나 그런 면이 더 강조됩니다. 특히 오렌지의 절정에서는 폭탄이 터지는 것과도 같은 사건이 터지니까 훨씬 강렬한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역시 좋아할 수 없는 것은 배경 때문입니다. 전 이런 배경에는 굉장히 약하거든요. 요즘 그렇지 않아도 일제치하와 관련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이 되어서 읽으면서 난감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부분은 음 ... 이야기 하고 싶지 않군요. 훗.-_-

블랙베리는 또 다르게 굉장히 취향이었습니다. 도입부는 피터 메일의 <호텔 파스티스>가 떠오르는데 블랙베리는 그쪽하고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릅니다. 뭐, 오히려 피터 메일이 그 주인공이라 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도 들던걸요.
그러니까 젊었을 적에 쓴 소설 하나가 히트작이 되는 바람에 엄청나게 뜬 소설가는 지금 매너리즘 비슷한 것에 빠져 있습니다. 동거인에게 치이고 있기도 하고요. 그러다가 아주 충동적으로, 프랑스의 어느 시골집에 대한 부동산 안내 광고전단을 보다가 홀린 듯이 전화를 걸어 당장 계약을 하고 프랑스로 날아갑니다. 그는 거의 다 버려진 집이었던 그곳에 들어가 마을 사람들과 조금씩 섞여가며, 마을의 작은 비밀과도 만나고, 무뚝뚝한 이웃집을 기웃거리며 자신의 밭을 가꿉니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농사입니다. 소설가의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시골집이었다면, 그 기억을 되살리게 하는 것은 집 주변의 밭을 가꾸고 정원을 다듬고 과일나무를 정돈하는 일들입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서 뮤즈도 돌아와서 열심히 소설도 씁니다. 뭐, 제가 홀린 것도 이 농사일 때문이었지 말입니다. 흑흑, 저도 조그만 땅뙈기 하나 있어서 호박 심고 키워보고 싶어요. 허브도 화분이 아니라 밭에다 심어보고 싶고, 고구마나 감자 수확도 해보고 싶다고요. 아우우우우우~
앞서의 소설에서처럼 여기서도 마을의 비밀과 본인의 비밀이 교차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단, 이 마을은 저도예전에 살짝 들렀던 곳입니다. 읽다보면 어딘지 아실겁니다.


리뷰 올리는 것을 잊은 모 책은 바로 이어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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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 초콜릿 - 블랙베리 와인 - 오렌지 다섯 조각 순이 맞습니다. 출간 순서가 99년, 00년, 01년이군요.


이광식, <시골에 집짓고 삽시다>, 브레인스토밍, 2008, 17000원

17000원이라는 가격이 아깝지 않은 책. 사실 15000원이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읽었고 이것저것 알기도 많이 알았으니 만족합니다.

역시 도서관에 신청해다 본 책입니다. 어쩌다가 눈에 들어왔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못하지만, 아마 교보문고 새책 안내를 보다 그랬을겁니다. 빌려가는 사람이 없어, 책이 들어오고 나서 며칠 뒤에 갔는데도 고이 모셔져 있군요.

부제는 '강화도 현장에서 생중계되는 '시골에 내 집짓기' 프로젝트'입니다. 부제가 이 책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다 요약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글쓴이는 오래 전부터 서울 말고 교외쪽에 살만한 곳을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전원주택인거지요. 경기도 저편은 너무 멀고 해서 여기 저기 찾아다니다가 강화도 쪽에 마음에 드는 땅을 발견하고는 덥석 계약합니다. 용도는 대지였고, 팔기 위해 집 한 채를 지어둔 땅이었습니다. 판매자 입장에서는 땅을 팔기 위해 대강 집을 지어둔 것이었지요. 그러다 보니 사는 동안 비가 새고 이런 저런 문제가 생겨서 아내의 강력한 주장으로-본문에도 그리 나옵니다. 본인은 번거로운 것을 싫어해서 끝까지 미루고 싶었다고요;-집짓기를 시작합니다. 기존 집은 철거하고 그 자리에 2층 주택을 올리게 됩니다.

이야기는 집을 짓게 된 계기부터 시작해 집 짓는 과정 하나하나를 다 보여줍니다. 중간에 집짓는 것과 관련된 건축법, 건축 기술, 새로운 자재, 집 짓는 사람들의 이야기 등 집짓는 것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요. 날짜별로 진행되어 집 한 채가 다 올라가는데 걸린 기간은 90일-세 달이 채 안됩니다. 집을 철거하면서부터 세우기까지가 그정도이고 건축 설계 도면 등은 그 전에 작업하지 않았을까 싶고요.
다 보고 나면 나도 강화도에 집 한 채 짓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필이면 강화도인가, 여기 소개된 일꾼들만 만나면 속 썩이지 않고 근사한 집을 지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보통 집을 짓다보면 설계도면의 변경 문제, 시공 문제, 건축 업체의 말썽, 건축 자제의 문제, 비용 증가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 책에서는 그런 잡음이 거의 없이 잘 올라갑니다. 글쓴이 본인이 집에 대한 큰 욕심 없이 짓자는 대로 간 것도 그 이유겠지만 인복도 상당했습니다. 와아. 다들 멋집니다.


언젠가 내 집을 짓겠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남의 집 짓는 일에 관여해야한다거나(부모님의 시골집이라든지) 하시면 한 번 읽어보세요. 집 짓기의 전체 과정이 차례대로 나와 있어 이해하기 좋습니다. 책이 조금 무겁고 판형이 큰 편이지만 활자가 큰데다 사진도 많고 훌훌 넘어가는 책입니다.


아가와 사와코, <수프 오페라>, 랜덤하우스, 2007
임혜지, <내게 말을 거는 공간들>, 한겨레출판사, 2007


수프 오페라는 저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제목에 홀렸구나?라고 웃을만 합니다. 부정을 못하니 아쉬울 따름...;
처음 몇 장을 읽어보니 먹는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앞 뒤 가리지 않고 도서관에서 빌려왔습니다. 이날도 원래는 예약도서 찾으러 갔던 것인데 정신을 차려보니 대출 권 수에 간당간당할 정도로 꽉꽉 채워 빌리고 있었습니다. 주로 빌리는 것은 일본 소설인데 사서 보기에는 많이 아깝거든요. 그러니 도서관을 애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내용은 무난합니다. 그냥 무난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죽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남는 것은 그리 많지 않군요. 닭수프 요리법 정도? 내용 타입은 에쿠니 가오리와 유사하지만 그보다는 덜 공허합니다. 타입이 유사하다고 한 것은 진한 혈연으로 엮이지 않은 사람들의 동거기이기 때문입니다. 음식 만드는 법과 먹는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좋았지만 대체적으로 무난한 수준입니다.


내게 말을 거는 공간은 한겨레출판사의 도서 목록을 보다가 빌리게 되었습니다. 책이 두껍고 무거워서-345쪽. 본드제본인데 지질 때문에 책이 무거운 편입니다-볼까 말까 망설이다가 어차피 G는 안볼테니 먼저 보고 반납하자는 생각에 읽기 시작했습니다. 우와. 간만에 재미있는 건축 책을 만났습니다. 예전에는 건축 관련 책도 꽤 많이 빌려보았는데 어느 순간 손이 안가더군요. 아마 손이 갈 정도로 재미있는 책을 만나지 못해서일건데 이 책은 제 취향에도 맞고 글도 굉장히 쉽게 읽힙니다.
고등학교 때 독일로 이주해서 거기서 내내 지내다보니 한국어가 서툴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글 속에서는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받기도 전에 죽 읽어내려가서 그럴까요. 내용은 집 이야기, 도시 이야기, 현장 이야기로 나뉘어 있습니다. 본인이 살고 있는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뮌헨을 중심으로 한 독일 서민들의 집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냅니다. 전세가 아닌 월세 타입이란 것, 집 주변 가꾸기와 관련된 이야기, 그리고 주변 이웃들과의 이야기, 집의 단열 이야기부터 시작해 환경 건축으로 넘어가 마무리 짓기까지 하나하나 다 재미있었습니다.
도시 이야기에서는 뮌헨과, 작가의 연구 주제였던 칼스루에의 도시 계획, 그리고 여러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가 함께 나옵니다. 건축사적 이야기는 그 뒤의 현장 이야기에서도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책 판형도 마음에 듭니다. 표지 때문인지 다른 책보다 세로가 길게 느껴지는군요. 세로가 긴 판형의 책-카오산 로드 같은 타입-은 책이 튼튼하기도 하고 보기에도 편합니다. 글이 많지만 보기 부담스러울 정도도 아니고 좋아하는 내용이다보니 글이 많은 것이 오히려 호감이 갑니다. 아아. 이런 편애모드라니...;;

건축 이야기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세요.
이화여대의 정문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운동장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들어가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왜 갔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마지막으로 갔을 때도 들어서자마자 운동장이 있었다는 것은 기억합니다. 하지만 이대 정문이 원래 땅을 넘어서 있어서 문제가 되어 정문 공사가 시작되고 그것이 몇 년간 끌더니만 이제는 정문 안쪽도 다 공사판이 되었습니다. 한참 동안의 공사가 끝나고 생긴 묘한 건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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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을 들어서면 시멘트 바닥의 넓은 광장 옆에, 예전 운동장 자리를 파내고 뭔가가 들어선 것이 보입니다. 지하 4층으로만 이루어진 묘한 건물입니다. 지상층은 없습니다. 운동장 자리를 더 파내고 양 옆에 언덕을 조성한 뒤 지하건물로만 만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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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주변 공사가 진행중이지만 건물 공사 자체는 다 끝났습니다. 한 가운데 있는 길을 중심으로 양 옆에 건물이 있는 형태입니다. 길은 들어설 때는 약간 내리막이고 가장 안쪽은 계단입니다. 가장 낮은 층이 지하 4층이라 하니 계단도 4층 정도의 높이라 보시면 됩니다. 물론 맨 위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도 따로 설치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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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막과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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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쪽에 들어가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해질녘이라 사진이 어둡게 나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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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낮은 곳에 서 있으면 양쪽 벽이 상당히 위압적인 느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압박은 아닌데, 굉장히 익숙한 느낌. 맨 처음 이 길을 걸어가면서 낯익은 이 감상을 뭐라 표현해야하나 고민했습니다. 그 때는 돌아 나가는 입장이어서 계단에서 걸어 내려와 정문쪽으로 걸어가면서 생각에 잠겼습니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만든 건축물임이 분명한데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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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을 찍은 자리에서 정문쪽을 바라보고 찍었습니다. 역시 위압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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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쪽은 모두 유리입니다. 그냥 유리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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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판과 판 사이에 약간 돌출된 틀이 있습니다. 유리로만 만들었다면 조금 밋밋했을 것인데 튀어나온 부분이 있으니 나름 재미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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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은 이런 느낌.



긴가 민가 했지만 바닥까지 보고 나서야 쓴웃음을 지으며 의도를 확실하게 이해했습니다.
모세의 기적.
홍해를 갈랐던 그 모세의 기적을 건축으로 재현한 겁니다. 파도가 양쪽으로 갈라지고 아직 물기가 남아 있는 바닥을 서둘러 지나가는 유태민족. 양쪽에서 언제 파도가 덮칠지 몰라 조마조마하지만 그보다는 등 뒤에서 쫓아오는 이집트 군대가 더 무섭습니다. 라는 이야기. 양쪽의 유리 판넬은 파도를 상징하고 있고 바닥의 돌은 아직 물기가 남아 있는 바다 밑바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하, 역시 종교색은 못 버리는 겁니다.
(이대인의 선언인지 뭐시기인지도 참 그랬지만.....)

나중에 날 좋은 때 다시 사진을 찍어보겠습니다.'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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