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빌릴 책이 뭐 없나 떠올리다가 문득, 이전에 첫비행님이 옆구리 퍽퍽 찔러주시던 책이 생각났습니다. 건축 책이었는데 작가가 누구더라 싶어 찾아보니 나카무라 요시후미의 책이었습니다. 역시 도서관은 큰 것이 아름다운게, 예상하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나온 책이 다 있더군요. 한꺼번에 다 빌리고 싶었지만 그날은 가방 무게가 참으로 아름다워 눈물을 머금고 일곱권만 빌렸습니다. 이 중 나카무라 요시후미의 책이 네 권, 다른 종류의 책이 세 권이었지요. 나머지 세 권 중에는 『핀치의 부리』도 있었습니다.

어떤 책부터 읽을까 하다가 나카무라 요시후미의 책이 네 권이나 되니 이것부터 보자 싶어서 지난 일요일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 정도면 분량이 충분하겠거니 했는데 일요일에 의외의 일이 생기는 바람에 책이 부족했지요. 차라리 『핀치의 부리』를 들고 갈 걸 그랬습니다.

본론으로 돌아가, 맨 처음 읽기 시작한 것이 『집을 순례하다』이고 그 다음은 『다시 집을 순례하다』입니다. 어떤 책을 먼저볼까 하다가 먼저 출간된 책부터 보아야 할 것 같아 출간년도를 확인하고는 집순례를 먼저, 내마음의건축을 나중으로 돌렸습니다. 그리고 지금 살짝 후회중입니다. 제 취향은 집순례입니다. 하하하.
(라고 적어놓고 지금 『내 마음의 건축』을 읽고 있는데, 정정합니다. 몇몇 건축물이 제 눈을 휘어잡았습니다.;;)

『집을 순례하다』는 말 그대로 세계 각지에 있는 이런 저런 집들을 돌아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보통 집이 아닙니다. 세계의 명작을 골라서 보고 다녔으니까요. 보통 이런 류의 건축기행은 유명 건축가의 기념비적 작품을 들여다보기 때문에 어디어디 미술관이나 어디어디 회사 건물 등을 보게 마련인데-한국으로 따지자면 선유도 공원이나 강남 교보타워 등을 들여다보는-이 책은 제목 그대로 집을 들여다봅니다. 유명 건축가들이 만든 사람 냄새 나는 집을 말입니다. 그래서 더 반하고, 그래서 더 집이 가지고 싶어집니다.

집에 대한 애착은 꽤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내 집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정주할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 초등학교 때였으니까요. 그 이유도 분명 기억합니다. 그리고 제 집을 그리기 시작한 것도 그 때였고, 고등학교 때는 잠시 건축학과를 갈까 고민도 했습니다. 성적만 두고 보자면 건축학과 가는데는 무리가 없었지만 더 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고, 도저히 수학을 버틸 자신이 없었습니다. 물리도 엉망이고, 성격이 급하고 덤벙거려 도면을 그리면 항상 어딘가에서 비뚤어집니다. 그리하여 마음을 접었지요.
그럼에도 이 책을 보면 그 때의 기억이 아련하게 떠오르며 ..... .... 아니, 나, 「건축학개론」 안봤는데? ㄱ-;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그런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 정도로 집에 대한 생각이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대부분의 집이 작다는 것도 마음에 들고요. 어디까지나 대부분이고 몇몇 집은 규모가 상상이 안될 정도입니다. 특히 필립 존스의 집은 규모로 따질 수 있는 것이 아니죠.;
마음에 드는 집도 있고 도면도 있습니다.
- 집을 엉망을 지어~ 라는 소리가 『행복의 건축』에서 나왔다고 기억하는데, 그런 사람이 이런 예쁜 집도 짓나 싶은 정도로, 르 코르뷔지에 어머니의 집은 멋집니다. 부모님을 위한 집이라고 하는데 작지만 아담하고 또 편안하고 아늑한 집입니다.
- 루이스 칸이 여동생을 위해 지은 집은 살아보고 싶습니다. 2층 건물인데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딱 그 크기입니다. 1층에는 식당과 거실, 부엌이랑 세탁실(다용도실)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식당이랑 부엌을 분리할 필요가 딱히 없으니 붙이거나 하면 될 것 같고, 식당을 거실로 만들고 거실을 서재로 만들면 딱 좋겠다 싶네요.  2층은 정말 개인 공간입니다. 근데 정말 이 집 마음에 들어요.
- 마리오 보타의 집은 패스.
- 아스플룬드의 집은  벽난로 부분이 마음에 드는데, 살 집이라기 보다는 별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잠시 머물며 휴가를 즐기는 집 같네요.
- 낙수장은 패스.
- 필립 존슨의 타운 하우스도 멋집니다. 근데 중간에 그리 중정이 있으면, 왠지 습기가 차고 모기가...(하략)
- 알바 알토의 집은 2층에서 내려본 모양이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다만 2층에 침실이 있으면 여름엔 덥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미묘하군요. 하지만 그 아늑함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어렸을 때 꿈꾸었던 산장이었지요. 하하하;
- 슈뢰더 하우스는 전위적이고 복잡해보이는데다 2층에서 각 가족의 사생활이 엄격하게 구분되지는 않는 것 같아 마음은 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런 현대적인 집이 저리도 오래된 것이라 생각하니 대단하다 싶네요.
- 르 코르뷔지에의 작은 별장은 패스. 너무 작아요.OTL

『다시 집을 순례하다』에 등장하는 집 중에서는,
- 안도 다다오의 집은 덥다는 말에 두 손 들었습니다. 그건 좀.; 하지만 작고도 아담하고, 겉은 현대적이라 전시용일 것 같아보이지만 속은 살아 있는 그런 집이었습니다.
- 임스 부부의 집이나 시 랜치는 눈으로 보기에 좋았습니다. 시 랜치는 멋지지만 사는 집보다는 잠깐 머물다가 가는 집 같아 보이는군요. 펜션 같습니다. 다른 것보다 해변창(베이윈도)가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햇살이 반짝반짝 드는 긴 의자에, 그 아래 깔린 융단. 거기서 해변을 내려다보며 뒹굴거리고 싶네요. 하지만 외관은 그리 취향에 안 맞습니다.;
- 피에르 샤로의 유리집, 루이스 바라간의 집, 안젤로 만자로티와 브루노 모라스티의 까사 그랑데는 패스.
- 키에르홀름의 집은 두 권 모두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집 한 손에 듭니다. 월출이라는데서 휙 갔군요.
- 필립 존슨의 글라스 하우스는 .... .... 이건 직접 책을 보셔야 합니다.; 뭐라 말할 수 없네요. 물론 작은 집을 좋아하는 저는 이런 집을 지을 것 같진 않지만 이쯤 되면 건축도 하나의 놀이가 됩니다.(먼산)

적고보니 1권의 집이 더 마음에 들었나봅니다.
도면이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것이 보기에 좋습니다. 도면을 보고 사진을 보며 실제 모습이 어떤지 왔다갔다 하는 것도 좋았고요. 이걸 보며 언젠가는 작고 아기자기하고 마음에 드는 그런 집을 짓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실제 살고 싶은 집으로는 루이스 칸의 에시에릭 하우스랑 키에르홀름의 집, 르 코르비지에 어머니의 집을 꼽습니다. 다만 르 코르뷔지에의 집은 서가가 부족하다는 것이 단점이고, 에시에릭 하우스는 혼자 살기에는 조금 규모가 큽니다. 도면들을 보면서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이 청소라; 더욱 그렇네요. 설거지는 좋지만 청소는 싫어하기 때문에 그런가봅니다. 키에르홀름의 집은 서가가 부족하고 집 크기도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크군요.

아마 제가 가진 자금을 생각하면 나중에 지을 집은 여기 등장한 집보다 훨씬 작을겁니다. 물론 아무리 작다한들 나중에 본 르 코르뷔지에의 작은 별방보다는 클겁니다.; 하지만 작아도 아늑하고, 원하는 건 거의 다 갖추고 있는 그런 집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과연 그런 집을 지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읽고 나면 정말로 집을 짓고 싶어지는, 집을 부르는 그런 책이니까요. 아마 다음 책들까지 다 읽고 나면 도면을 슬슬 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집은 워낙 큰 물건이라 지름신이 쉬이 오시진 않겠지요. 하하. 대신 지름을 대비한 저축신이 오실 것 같으니..;


나카무라 요시후미. 『집을 순례하다』, 정영희 옮김. 사이. 2011, 19500원
『다시 집을 순례하다』, 황용훈, 김종하 옮김. 사이, 2012, 2만원

첫비행님은 이미 보셨고, 빙고님과 아이쭈님은 보시고 나면 집을 지르시고 싶어지실테고(...), 티이타님은 아마 다른 눈(...)으로 이 책을 보실테고 ...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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