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무라 요시후미의 건축책 중 가장 마지막으로 본 것이 『집을 생각한다』입니다. 한국 발간일을 따지자면 앞에 나온 책인데, 저작권 연도를 보고는 제일 뒤로 미뤘더니 그러길 잘했더군요. 앞서 읽은 건축기행이나 집기행 책에 등장했던 유명 주택과 건축물이 다시 한 번씩 등장하는군요. 먼저 보아서 어떤 집들인지 파악하고 있다보니 예시로 등장할 때도 쉽게 이해가 됩니다. 알아보기 좋았어요.'ㅂ'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옛날부터 생각하고 있던 '집'에 대해 다시 한 번 되새겼습니다. 내가 원하는 집이 어떤 집이냐는 거지요.

이 책에서는 집이 갖춰야할 풍경을 열 두 가지로 말합니다. 목차에 나와 있으니 고스란히 긁어보지요.

1. 풍경_ 풍경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집
2. 원룸_ 건축가는 원룸으로 기억된다
3. 편안함_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는 안락한 공간
4. 불_ 집의 중심에는 불이 있다
5. 재미_ 재미와 여유, 그리고 집
6. 주방과 식탁_ 아름답게 어질러진 주방
7. 아이들_ 아이들의 꿈이 커가는 집
8. 감촉_ 손에서 자라나는 애착
9. 장식_ 적당한 격식, 효과적인 장식
10. 가구_ 가구와 함께 살아가는 집
11. 세월_ 오래도록 함께할 수 있는 집
12. 빛_ 두 가지 의미의 빛

음, 그렇긴 한데, 제가 이상향으로 그리는 집은 여기서 몇 가지가 빠집니다. 일단 한국에서 대부분의 집은 아파트입니다. 아파트에서도 불을 못 쓰는 것은 아닌데 그래도 벽난로는 무리죠. 화로까지는 어찌어찌 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것도 재의 처리 문제가 골치아픕니다. 애초에 화로에 담는 불은 가라앉은-사그라드는 불이므로 피워서 담아야한다는 문제도 있지요. 단독이 아니면 힘들다라는 이야깁니다. 뭐, 부엌의 가스렌지는 저도 반드시 필요하다 생각하니 불이 없진 않겠지요.

아이들도 독신이 많은 현재의 가족 모습에서는 꼭 필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의 꿈이 커가는 집이라면 재미가 있는 집이라는 이야기인데, 그건 5번하고 겹치잖아요. 아니면...
제가 피터팬증후군에 걸려 있는걸 어떻게 알았지요?(탕탕탕!)

그리고 오래도록 함께할 수 있는 집도 지금은 확신할 수 없지요. 제가 집을 지을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최소 20년은 지나야할테고, 제가 얼마나 그 집에서 생활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습니다. 독신으로 산다면 자식들이 그 집을 이어서 사용할거란 생각도 안 들고. 이 부분은 지금으로써는 미지의 영역이네요.

최근 쓴 소설(단편) 때문에 그 집의 구조를 손에 잡힐듯이 그리게 되었는데, 실제로도 가능한 집일지는 모릅니다. 대강 여기에 이런 것이 있겠거니 생각하는 집인데, 그 집을 보니 중요한 것이 침실과 공용공간의 분리인가 싶네요. 2층은 오롯이 침실, 1층은 거실과 부엌. 거실이긴 하지만 들어가면서 바로 보이는 것은 아니고 좁은 공간을 지나야 거실이 나옵니다. 거실에는 햇살이 환하게 들어오고, 좌식 공간입니다. 넓은 탁자가 놓여 있고요. 그 근처에서 항상 뒹굴거나 탁자를 밀어 놓고 뒹굴거나. 그런 느낌입니다. 역시 공부하는 공간이 아니라 뒹구는 공간이 중심이라니. 하기야 공부는 도서관에서 하니 집은 쉬는 공간입니다.
애초에 제가 살 집이라 생각하지 않고 만들어 놓은-상상한 공간인데 그 곳에서 등장인물들이 노는 것을 보니 저 역시 익숙하게 느껴집니다. 의외로 제가 살 공간을 떠올리라고 하면 그게 또 어렵고. 다만 앞서 다른 네 권의 책을 읽으면서 생각한 건 작아야 한다는 겁니다.; 청소를 좋아하지 않는 특성상 큰집은 내키지 않네요. 혼자서 산다고 하면 25평 내외? 아니, 뭐, 일본의 땅콩집을 떠올린다면 25평도 큰 셈입니다.-ㅂ- 보통은 10평 남짓이니까요.

지난번에 읽은 『일본의 땅콩집』도 제대로 리뷰를 다루지 않았는데, 그것도 조만간 정리하겠습니다. 그것과 합해서 정말 내가 사고 싶은, 짓고 싶은 집을 그려봐야겠네요.+ㅅ+


책을 읽으면서 기억에 남은 집을 적어둔 것이 있습니다. 긴 공간에 침실부터 손님맞이 공간까지를 차례로 배치한 히아신스 하우스. 미타니 류지의 오두막, 단 가즈오. 거기에 추억의 보물상자. 이건 애들에게는 그야말로 보물상자겠다 싶습니다. 이거 모 만화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등장했지요. 우연히 발견한 가방 속에 이런 '보물'이 들어 있었다는 건데, 그 장면이 굉장히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지진 재해 방지용 미닫이 찬장이랑 패치워크 서랍장. 상당히 재미있는 책이었습니다.>ㅅ<


나카무라 요시후미. 『집을 생각한다』, 정영희 옮김. 다빈치, 2008, 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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