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다 소지, <용와정 살인사건 1-2>, 두드림, 2008


신간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와 보게된 소설입니다. 교보에서는 평이 달랑 별 3개인데, 저는 그보다는 높게 주고 싶습니다. 다섯 개까지는 아니지만 상당히 재미있게 보았거든요.

시마다 소지의 책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앞서 나온 마신유희나 점성술 살인사건은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아마 그냥 넘어간 모양인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다른 책들도 읽고 싶어집니다. 대출중이니 예약을 걸어두면 이번 달 안에는 볼 수 있을겁니다.

추리소설이니 이모저모 이야기를 하면 내용 폭로가 될테니 피하고, 1-2권 합쳐 1천페이지가 넘음에도 굉장히 빨리 넘어갔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음에도 굉장히 세세한 묘사-1인칭시점-덕분에 제가 직접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건만 아니었다면 저 용와정을 홀랑 구입해다가(1천만엔이랍니다.;) 별장으로 쓰고 싶은 심정까지 들었습니다. 용와정은 굉장히 운치 있는 멋진 여관이더군요. 그런 사건에 휘말렸다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말입니다.
링컨 라임 시리즈와 비슷하게 엽기 살인이 등장하지만 링컨 라임쪽보다는 이쪽이 훨씬 취향에 맞습니다. 그것 참 묘하죠. 같은 살인마인데도 링컨 라임쪽은 피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링컨 라임이 너무 현실적이라서인가요? 아니, 그보다 용와정쪽이 적어도 피해자가 심적 고통은 덜 당해도 된다는 점에서일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팔묘촌을 비롯해 긴다이치 시리즈를 읽으신 분이라면 분위기가 굉장히 닮았다고 느끼실 겁니다. 하지만 막판 반전은 긴다이치보다 이쪽에 점수를 더 주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기대하지는 마세요. 읽고 나면 "인생사 다 그런거지"라며 담배를 한 대 피워물고 싶어지니까요. 하하핫.



추천 대상은 긴다이치 시리즈(하지메의 외할아버지;)를 재미있게 읽으신 분, 엽기 살인 사건도 괜찮다는 분, 책이 길어도 그정도는 충분히 참아낼 수 있다는 분입니다. 단, 모방범 쪽과는 분위기가 좀 많이 다릅니다. 그리고 배경이 그렇다 보니 태평양 전쟁과 관련되어 불편한 부분도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
     

요시모토 바나나, <암리타>, 민음사, 2001
제프리 머서,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 시공사, 2008


암리타는 도서관 서가에서 발굴했습니다. 지하철 안에서 읽을 책을 고르기 위해 서가를 둘러보다가 출간당시에 한 번 읽고는 기억 저편으로 밀어둔 암리타가 보이길래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어져서 집어 들었습니다. 시간~은 표지와 제목과 소개에 낚여서 구입한 책이고요. 낚였다라는 표현에 잘 드러나있지만 구입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암리타는 대체적인 구조만 기억하고 있고 나머지는 다 잊고 있었습니다. 기억하는 것은 남녀 주인공의 관계 정도. 그것도 간단히만 기억하고 있었고 세부적인 것은 모두 잊었나봅니다. 새 책을 읽는 기분으로 새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하기야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들은 한 번 읽으면 그걸로 족한 경우가 많으니까요. 엊그제 키친을 탐독하면서 요시모토 바나나의 다른 책이 읽고 싶어져서 골랐는데 일단 시간 때우기에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작가 책 중에서는 가장 두꺼운 책이라 남는 시간 동안 모두 다 읽을 수 있었으니까요.(지하철 안에서 보낸 시간이 길기도 했고 대기 시간이 길기도 했고..)

며칠 전 일본 소설 중에서 가장 취향이라는 키친을 다시 읽었습니다. 처음부터 한 글자 한 글자 다시 읽은 것은 굉장히 오랜만의 일입니다. 대강 훑듯이 줄거리만 따라간 경우가 많았으니까요. 이번에 다시 읽고서는 내용이 낯설게 느껴져 굉장히 당황했습니다.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아마도 번역체가 문제였을까요. 문단 문단이 끊어지는 느낌, 이어지지 않는 느낌을 받은데다 비문을 읽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이 드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집에 원서 사다 놓기를 잘했다고,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고요.(원서 두께를 보면 민음사판은 옥수수 강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허허;) 요즘은 요시모토 바나나 책이 나온다고 해서 바로 달려가 찾아보지 않게 되는 이유가 그래서인가봅니다. 현실과는 조금 떨어져 있는 이야기에 자주 볼 수 없는 관계 설정, 그리고 담담함. 하기야 일본 소설들의 분위기가 상당히 그렇기도 하죠. 에쿠니 가오리보다는 조금 취향이다라고 생각하지만...

암리타는 날려가며 읽었기 때문에 그런 느낌까지는 받지 않았지만 작가 답게 쉽게 볼 수 없는 관계 설정, 작품 설정이란 것은 변함없습니다. 가볍게 읽으면 그것으로 끝. 예전에는 굉장히 좋은 느낌으로 받아들였는데 지금은 또 다른 느낌입니다. 정확하게 제 느낌을 표현하자면, "그래서?"정도. 한 발짝 뒤로 물러서 팔짱을 끼고 삐딱한 자세로 바라보는 겁니다. 흠흠;
결국 암리타에 대한 한 줄 요약은 "마음 편히 볼 수 있는 심심풀이 땅콩".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은 평이 상당히 박합니다.
제목에 낚이고, 표지에 낚이고, 출판사에 낚였습니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읽다가, 중간 부분 왕창 건너뛰고 맨 뒤로 넘어가 조금 더 읽고 끝냈습니다. 더 이상 읽을 필요도 없군요.
일반적인 장기여행객의 서점 숙박기라든지 서점 돕기 정도로 생각하고 집어든 책이었는데 완전 배신당했습니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그 내용이라니. 그러니까 캐나다의 어느 기자가 책 하나 썼다가 관련된 사람의 협박을 듣고는 지레 겁먹고 파리에 날랐는데 하도 방종한 생활을 해서 돈이 없어서 어쩔까 싶다가 우연한 기회에 셰익스피어&컴퍼니라는 고서점에서 숙소를 제공받아 거기서 지내게 된다는 데서 이야기가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중간은 서점내에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의 부대낌, 생활을 그렸지요. 제가 생각했던 낭만이라고는 전혀 없습니다. 허허. 어떤 분위기인지는 말로 표현이 안되니 직접 읽어보세요. 조금만 읽어보시면 아실겁니다.

실은 이 서점에 대해 조금 환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파리의 스노우캣에서 소개가 되기도 했고 고서점이라는 말에 낭만적인 환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게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입니다. 어이쿠..;
그런 고로, 이 책 가져가서 보실 분은 손들어주세요. 그냥 드리겠습니다.-_-a
  

아리스가와 아리스, <월광게임>, 시공사, 2007
미야베 미유키, <쓸쓸한 사냥꾼>, 북스피어, 2008

최근 갑자기 책 지름신이 내려오셔서 책 여러 권을 주문했을 때 함께 들어온 책입니다. G가 회사 문화비로 구입할 책을 추천해 달라 했을 때 북 리뷰를 보고는 호기심이 생겨 부탁한 것이 월광게임-하지만 정작 문화비로는 다른 책을 구입하고 이것은 개인적으로 샀습니다-, 책 구경하러 갔다가 미야베 미유키 신간이 나왔고 배경이 서점이라는 말에 홀딱 넘어가 구입한 것이 쓸쓸한 사냥꾼입니다.



월광게임은 Y의 비극 '88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습니다. 작가인 아리스가와 아리스(필명)가 이 소설을 맨 처음 쓴 것은 78년으로 그 때는 Y의 비극 '78이라 했다가 다른 버전을 몇 번 거쳐 개작해 나온 것이 이것입니다.
구성은 셜록 홈즈와 엘러리 퀸의 혼합이랄까요. 주인공 이름이 아리스가와 아리스이며, 1인칭 주인공 + 관찰자 시점쯤 됩니다. 탐정은 따로 있고 아리스는 왓슨의 역할에 가까우니까요. 학생 아리스 시리즈도 꽤 여러 권이 나와 있다 하니 앞으로 계속 더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리즈가 지날수록 아리스도 성숙해진다 하니까요. 이번 권에서는 아직 어린 좌충우돌 대학 1학년 학생입니다.
구성이 엘러리 퀸과 닮았다고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도전입니다. 그 때까지의 힌트를 주고는 이 안에서 범인을 찾으라는 엘러리 퀸의 도전. 이 책에서도 작가가 주는 힌트(?)만 잘 따라가면 풀 수 있다고 합니다. 어디까지나 작가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일단은 그렇습니다. 저야 그런 도전은 무시하고, 맨 뒤를 먼저 확인해 범인이 누군지 볼까 말까 계속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하하; 제가 추리소설을 볼 때 좀 인내심이 약해서..

쓸쓸한 사냥꾼은 단편집입니다. 그것도 90년대 초기의 작품들을 모았군요. G가 저보다 먼저 이 책을 보았는데 제게 주면서 모방범의 원형 소설이 있다 언급했습니다. 과연. 보고 나니 그렇군요. 모방범이 아니라 하더라도 미야베 미유키의 다른 작품에서 몇 번 보았던 구성이 여기에도 있습니다. 마술은 속삭인다의 분위기가 나기도 하고 지갑은 알고 있다가 생각나기도 하고 모방범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 익숙한 느낌이 마음에 듭니다. 거기에 만담(?) 콤비가 할아버지와 손자라 재미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배경이 헌책방입니다. 그게 제일 좋아요.(웃음)





아주르와 아스마르는 한 줄 감상으로 끝내겠습니다.

역시 그 감독답게 색채가 화려합니다! 무엇보다 언니들 파워. 그리고 공주님, 최강이십니다.ㅠ_ㅠb
 

가이도 다케루, <나이팅게일의 침묵>, 예담, 2008
도로시 R. 세이어즈, <시체는 누구?>, 시공사, 2008


제목과 같은 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양쪽을 적절히 섞어 쓴 겁니다. 나이팅게일의 침묵과 시체는 누구.


갑자기 책 지름신이 오시면서 두 권을 한 번에 구입했습니다. 작년 말부터 책 배송은 편의점 택배로 받고 있는데 하도 많이 드나들다보니 편의점 주인 아주머니가 얼굴을 기억하시는군요.;; 이제는 신분증 안 보여줘도 된다 하십니다. 아주머니를 본 것이 몇 번 안된다 기억하는데 말입니다.;;

두 권의 책 중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 고르라면 단연 가이도 다케루 쪽입니다. 앞서 나온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도 하얀거탑과 섞이면서 굉장히 재미있게 보았는데 이 소설은 그 후속편입니다. 글도 맛나고 번역도 좋고-권일영씨 번역. 미야베 미유키 작품을 꽤 많이 번역하셨지요-, 거기에 하나 더 덧붙이자면 미소년이 주인공입니다.(웃음) 병원 내에서 간호사 투표 미소년 순위 1위에 당당히 등극한 성질 나쁜 미소년 말이죠. 성격도 마모루(마술은 속삭인다의 주인공)과 닮아 있어서 양쪽을 비교하며 읽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역자 후기에 이 책의 후편이 곧 나올 예정이라는 이야기가 있어서 총알 준비해두고 대기하고 있습니다. 나오면 바로 주문 넣어야지요.


시체는 누구는 번역이 좀 걸립니다. 나이팅게일만큼 매끄럽게 읽히지 않아서일까요. 제목도 원래는 <Whose body?>라는 재기 넘치는 것이었는데 시체는 누구?라고 의역을 하니 좀 아쉽습니다.
그래도 피터 윔지 경 첫 번째 이야기인데다 멋진 집사님도 나와주니 넘어갑니다. 알프레드 못지 않게 다재다능한 집사님이 등장하시는군요. 윔지경도 열심히 휘둘리고 있습니다. 귀족 탐정이라는 점에서는 다아시경과 비슷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윔지경은 아직은 미숙하고 재미로 추리에 뛰어드는 아마추어 탐정이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파일로 반스와 비슷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영국과 미국의 차이인건지, 파일로 반스 쪽은 좀더 잔혹하고 사건 전개가 복잡합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쪽은 윔지경쪽이지요.
피터 윔지 경의 다른 시리즈는 동서 미스테리 북스(DMB)로 두 권이 나와 있습니다. 작가 이름이 도로시 세이어스로 나와 있으니 찾아보세요. 지금 교보에서는 둘다 35% 세일중입니다. DMB시리즈는 그냥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국내에 미발표된 작품을 찾아 읽는다는 의미 정도이니 몇 권만 찾아 보시면 됩니다. 긴다이치의 할아버지가 등장하는 것으로 유명한 혼징살인사건이나 반 다인의 필로(파일로) 반스 시리즈, 지금 이야기한 도로시 세이어스의 시리즈 정도. 집에 가지고 있는 것도 그게 전부입니다. 아, 아이작 아시모프의 흑거미 클럽도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시공사에서 최근 미번역 추리소설들을 조금씩 내주고 있는데 책 사양이나 가격에 대해서는 불만의 여지가 좀 있습니다.
(지금 검색해보니 일본 소설이 압도적(?)으로 많군요. 하지만 일본 추리소설은 잔혹한 감이 있어 취향에서 꽤 벗어나는 통에..=_=)


요코미조 세이시, <악마의 공놀이 노래>, 시공사, 2007

공놀이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코난 극장판 6편. 핫토리 헤이지의 첫사랑이 시작되는 것이 바로 어떤 여자아이가 공을 튀기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었지 않습니까. 표지도 그런 류의 공이다보니 연상이 되었습니다. 뭐, 이야기가 그런 아이들이 죽어나가거나 하는 것은 아니고 앞서의 시리즈와 비슷한 연쇄살인사건입니다.
더벅머리의 김전일(金田日:긴다이치)은 여기서도 명탐정 기질을 발휘합니다. 하지만 연쇄살인사건이 다 일어나고-다시 말해 죽을 사람 다 죽고 나서 범인을 밝혀내니 그 손자가 똑같다고 해도 뭐라 할 게 아니군요. 그저 할아버지는 출연작이 적은데다 편당 사망자가 적어서 그런 것이고 손자는 한 번 사건이 터졌다 하면 상당히 많이 죽고 출연편인 은근히 많으니 문제인 거죠. 그러다 보니 누적 사망자를 비교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문득 듭니다.
(하지만 최근 취향은 아케치라서 그쪽 시리즈를 조금씩 모아볼까 싶기도 합니다.;)

생각보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고, 이 책한테 고맙다고 해야하는 일이 있었던지라 더 마음에 듭니다. 수요일 오후에 펑펑 울어서 기분도 완전히 엉망이 되어 있었는데 그 꿀꿀한 기분을 활짝 개게 해줬습니다. 추리소설에 푹 잠겨서 아무런 생각도 안하고 있다보니 취침시간을 훨씬 넘겼더군요. 그렇게 즐겁게 봤습니다.

지금보면 그냥 그런 수준의 소설이지만 이 책이 나왔을 당시에는 좀 잔혹하지 않았을까 싶은 느낌도 있습니다. 손자 시리즈에서 소품을 사용해 일부러 꾸민 것도 할아버지 시리즈를 보면 꽤 이해가 갑니다. 읽다보니 손자 시리즈를 다시 보고 싶어진달까요. 원작을 알고 나서야 패러디가 이해되는 느낌에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아. 진짜 템레르 읽으러갑니다.
          

나카무라 코우,<이력서>, 문학동네, 2007,
이이지마 나츠키, <천국에서 그대를 만날 수 있다면>, 이너북, 2005


일본소설을 한동안 멀리하겠다고 결심한지 어언 며칠. 그러다 나카무라 코우의 이력서를 보고는 호기심이 동해 다시 집어 들었습니다. 일본소설을 멀리하고 싶어질 정도로 좌절하게 만든 책은 아오야마 나나에의 <혼자 있기 좋은 날>이었습니다. 취향에 안 맞는 건 둘째치고 뭘 말하고 싶은지 알 수 없더군요.-_-;;

그러다가 비슷한 내용의 책 소개를 기억하고 있던 이력서를 보고는 한참을 망설이다 집어 들었습니다. 대개 인터넷 서점의 책 소개는 낚시에 가까울 정도로 순화(포장)해서 제공되기 때문에 그것만 보고 고르다가는 미끄러지기 쉽상인데, 이력서도 조금은 그런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책 소개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리뷰를 쓴다면 거기에는 그렇게 이야기를 둘 수 있습니다.

<이력서>는 말하자면, 풀 코스의 전채입니다. 애피타이저. 아니면, 풀 코스에서 전채와 디저트를 뭉텅 잘라내고 주요리만 갖다주는 격이라고도 할 수 있군요. 앞 뒤 이야기가 모두 빠진 채 몸통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지더군요. 앞 사정도 모르고, 뒤에도 이야기가 잔뜩 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작가가 원하는 부분만 보여주는 그런 모습이 나름 재미있었습니다. 물론 제가 쓰는 단편들도 앞 뒤 맥락을 제게 듣지 않은 사람이 읽는다면 그런 느낌을 받지 않을까요. 하하;

<천국에서 그대를 만날 수 있다면>은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한 번 읽었고 이번에 문득 제목이 눈에 들어와 다시 집었습니다. 예전에 읽었는데도 다시 읽는 동안 이게 이런 이야기였던가라고 생각하며 읽었지요. 기억력 감퇴인건지, 오래 기억할 정도의 내용이 아니었던 건지는 저도 모릅니다.
암병원을 무대로 해서, 전직 미용사 현직 정신과 햇병아리(레지던트)인 주인공이 자신의 이야기와 자신이 어떻게 편지 가게 주인장이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전개되고 있습니다. 앞부분의 편지는 '내'가 편지 가게 손님인 슈지씨를 위해 쓴 것으로 이 편지는 끝부분에 나오는 슈지씨의 아내에게 받은 편지로 또 다시 이어집니다. 츠지 히토나리의 <편지>를 읽으면서 이런 타입을 어디서 봤는데라고 생각했더니만 이 책이었군요. <천국에서~>를 먼저 보고 1년 쯤 뒤에 <편지>를 읽었다고 기억하는데 그래서 익숙했던 겁니다. 마음에 드는 것은 좀더 가벼운 느낌의 <편지>쪽. 하지만 <천국에서~>도 만만치 않습니다. 암병원이 주 무대이기 때문에 마지막 이야기들을 살짝 엿볼 수 있거든요.

어제 퇴근길부터 시작해 오늘 출근길까지해서 두 권다 마무리 지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몇 주 동안 내내 붙들고 있는 원서로군요. 빨리 해석해야지.;;
 

오기와라 히로시, <벽장속의 치요>, 예담, 2007

미야베 미유키, <나는 지갑이다>, 랜덤하우스코리아, 2007



안 좋은 것부터 쓰는 것이 낫겠지요. <벽장 속의 치요>부터.
읽을 때 첫 번째 이야기까지 읽고 꽤 마음에 들었는데 두 번째 이야기는 동 떨어져 있습니다. 뭔가 하고 봤더니 이거 단편집이었군요. 전혀 모르고 읽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두 번째 이야기는 이해가 안 가서 다시 읽어야 했지요. 앞 이야기와 연결시켜 보려 했으니 이해가 안 가는 것도 당연합니다. 흠흠.
교보에서는 책 소개에 펑키호러 소설이라고 해놨는데 읽고 나면 "이런 것이 딱 일본소설이야"라는 느낌이 확 옵니다. 다른 소설들은 일본소설이 아니냐면 그건 또 다르죠. 뭐랄까, 일본색이 물씬 나고 일본의 정신세계는 이런 것이구나라고 맛볼 수 있는 소설입니다. 그러니까 한국인의 시점에서는 뜨악하다 못해 경악에 가까운 반응을 보일 수도 있는 독특한 소설들이 나와 있군요. 처음 몇 편은 그럭저럭 괜찮게 봤는데 고양이가 등장하는 이야기는 특히 혐오감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기분 나빴습니다.
어머니의 러시아 수프는 아마 보르시치를 말하는 것 같은데, 암울하군요. 대강 짐작은 했지만 이런 사태까지 건드릴 줄은 몰랐습니다. 냉혹한 간병인도 그렇고 예기치 못한 방문자도 그렇고. 사람을 기분나쁘게 만드는데 일가견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취향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고 꼭 집어 말하자면,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기도 난감한 정도의 책입니다.


<나는 지갑이다>는 간만에 행복하게 본 미야베 미유키 소설입니다. <스나크 사냥>은 롤러코스터를 탄 느낌에 엔딩의 미적지근함이 아쉬웠지요.
이 책의 형식도 꽤 독특합니다. 단편 연작 소설이고 하나하나의 단편들이 다른 이야기들과 유기적으로 연계를 가지며 이어집니다. 연재 당시에는 단편으로 나온 모양인데 책으로 읽으니 그냥 구성이 특이한 한 권의 장편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습니다. 물론 각 단편들이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따로 뽑아내어 본다 해도 문제는 없겠지요. 뒷편일수록 사전 지식이 조금 부족할 수 있다는 것을 빼면 말입니다.


다음에 구입할 미야베 미유키씨 책은 이쪽으로 해야겠네요.
그러고 보니 온다 리쿠 컬렉션 절반도 장기 대출로 치워야 하는데. 앞부분 가지고 계신 분께 옆구리를 또 찔러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온다 리쿠, <유지니아>, 비채, 2007


유지니아를 다 읽고 나서 가장 무서웠던 것은 책 뒷날개.
근간 목록을 훑어보고는 오한이 들었습니다. 교고쿠 나츠히코의 다른 시리즈물을 비롯, 온다 리쿠의 다른 책들까지 목록에 확 올라있는데 스나크 사냥의 후기를 읽을 때보다 한층 더한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올 여름은 정말 총알 장전에 장전을 거듭하게 만들더니 내년 초까지도 안심은 무리일겁니다. 게다가 비채에서 낸다고 하는 블랙앤화이트 시리즈가 거의 추리소설계라 취향에 상당히 맞을 것으로 예상되니 그렇습니다. 목록만 봐서는 취향인데 막상 읽고 나서는 손안의책에서 나온 광골의 꿈 시리즈처럼 고이 처분할지도 모릅니다. 이건 뚜껑을 열어봐야 아는지라.
(근간에 오른 시리즈가 만만치 않던데, 비채도 어딘가의 임프린트나 자회사일까요?)

첫 장을 읽는 순간 하도 섞어 읽어서일까,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가 먼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까지 다 읽고 나서는 슬슬 혈압이 올라가면서 <삼월은 붉은 구렁을>과 같은 라인이라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시리즈가 아니라 비슷한 느낌이라는 의미입니다. 미야베 미유키가 떠올랐던 것이나 <삼월~>이 떠올랐던 것이나 둘다 형식 때문에 그렇습니다. 읽어보면 무슨 의미인지 아실겁니다. 지금 보니 <호텔 정원>과도 닮았군요.
앞서 읽었던 <불안한 동화>와는 내용적인 면에서 닮아 있습니다. 옛날에 일어났던 어느 살인사건에 대해 쫓아가는 것은 불안한 동화와 닮아 있지만 이 이야기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조금 다릅니다. 뒤통수를 때리는 것도 닮았지만 그 아픔은 차이가 있습니다. <불안한 동화>는 때린 즉시 아팠지만 <유지니아>는 맞은 뒤에 시간이 좀 흐르고 나서야 굉장히 아프다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대신 <유지니아>가 2005년작, <불안한 동화>는 초기작이라고 하니 불안한 동화보다 훨씬 진화했다고 할까요? 진상은 없습니다.

이 미적지근한 결말을 보고 나면 뫼비우스의 띠처럼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읽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듭니다. 아니, 사실 다시 읽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래야 앞서 깔려 있던 여러 복선들을 이해할 수 있거든요. 아, 이래서 여기가 그랬구나라는 식으로. 하지만 불편하게 느껴졌던 부분이 한 두 군데가 아닌데다 엔딩의 모호함으로 인해 고이 접어두고는 서가에 꽂아 두었습니다.

소설의 배경에 대해서는 역자가 따로 언급해두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에 대해 조금 아시는 분이라면 금방 눈치채실겁니다. 배경에 대한 세부적인 묘사가 정확해서 실제 무대가 되었던 집이 지금 찾아가도 있지 않을까란 생각도 듭니다.

책이 두껍지만 굉장히 여러 챕터로 나뉘어 있어서 중간 중간 끊어 가며 읽어도 좋습니다. 끊어 읽으면서 되새김질을 해보는 것도 좋겠군요. 읽고 나서 보니 연대표를 작성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러면서 다시 읽을 마음은 들지 않습니다. 이번에도 상당한 배신감을 느꼈기 때문에-불안한 동화와는 좀 다른 의미로-두 번 손 대고 싶지 않거든요. 제 취향에는 좀더 깔끔하고 쌈박한 것이 맞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면서 엊그제 구입한 화차는 소장하고 싶다면서 구입한 것은 변덕 때문인건지, 소설가 취향 차이 때문인 건지.

최근에 대량으로 구입한 미야베-온다 라인 중에서는 이 책을 제일 마지막으로 읽었으니 설렁설렁 평가를 해보지요. 개인적인 취향으로 말하자면 미야베 미유키가 온다 리쿠보다는 한 수 위입니다. 하지만 온다 리쿠의 몇몇 소설은 계속 소장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럴 예정입니다. 계속 소장하려고 하는 것은 <네버랜드>(대출중), <빛의 제국>(대출중), <여섯 번째 사요코>(대출중),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 <밤의 피크닉>, <엔드게임>. <삼월은 붉은 구렁을>은 보류, 삼월라인 책들도 보류입니다. <흑과 다의 환상>, <보리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 <황혼녘 백합의 뼈>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민들레 공책>이나 <라이온 하트>도 취향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방출, 혹은 장기 대출보낼 생각입니다. <유지니아>도 장기 대출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온다 리쿠 컬렉션에서 빠진 책은 <굽이치는 강가에서>와 <도서실의 바다>, <구형의 계절> 세 권입니다. 하지만 이 세 권을 채우지는 않을 겁니다. 지금 있는 책도 버거운걸요. 같은 작가 안에서도 취향이 꽤 극명하게 갈리고 있습니다. 같은 작가 안에서의 편식이라, 무라카미 하루키도 수필집만 보고 있으니 그게 그거죠.;; 미야베 미유키도 판타지 소설 계는 손을 안대고 있고.

자아. 슬슬 총알 재충전에 들어가야겠습니다. 조만간 표적들이 뜰 것 같으니 총알을 모아둬야 쏘기라도 하죠. 빚맞든 말든 모아두는 것이 먼저입니다. 돈 생각을 한다면 원서를 사보는게 훨씬 싸지만 그래도 한국어가 좋아요.;


온다 리쿠, <불안한 동화>, 랜덤하우스코리아, 2007

어제 다 읽은 유지니아 리뷰를 쓰다가보니 불안한 동화 리뷰도 안 올렸더군요. 서둘러 먼저 쓰던 글은 멈춰두고 불안한 동화부터 쓰기 시작합니다. 하하하하하;


불안한 동화 역시 뒤통수 후려치기의 귀재 온다 리쿠 다운 면모를 볼 수 있습니다.(먼산)
너무 자세히 이야기를 하면 내용폭로가 될 위험이 있으니 일단 가려두자면 <굽이치는 강가에서>랑 닮았습니다.
살짝 보이나요? -_-a

이것도 성대한 떡밥과 거대한 낚시 찌를 가져다 놓고 풀어나가는 이야기라 꽤나 당황스럽습니다. 엉킨 실을 마당에 놓고 여기저기 삐져 나와 있는 실들을 뽑아 풀어나가다 보면 이건 여기서 뚝, 저건 저기서 뚝 끊깁니다. 그러다 막판에 이거다 싶어서 줄줄 잡아당겼더니 그나마 잘 풀어지는 듯하더니 막판에 또 뚝. 그 안에서 나온 진상이란건 참으로 진상입니다. 요즘 많이 쓰는 "그 ** 참 진상이네"라는 의미로의 진상. 막장과도 일맥상통합니다. (...)
뭐, 최근 읽은 온다 리쿠 책의 상당수가 그런 느낌을 줬지요.

20 여 년 전에 발생한 살인 사건을 이제야 조사한다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도 이 작가답거니와 다 조사해서 진실에 근접했다, 이제 수수께끼는 다 풀렸다라고 외칠 즈음 나타난 이야기는 또 뒤통수를 칩니다. 음, 그러고 보니 긴다이치 하지메가 온다 리쿠의 세계에 들어온다면 나름 재미있겠네요. 하지메는 미야베 미유키의 세계보다는 온다 리쿠의 세계에 잘 어울린다는 생각입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세계에는 브라운 신부님 같은 분이 더 잘어울려요. 긴다이치 코우스케는 미야베 미유키 계라고 생각하지만요.


중구난방, 횡설 수설.
추리소설은 소재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가 다 내용폭로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감각만으로 잡아 나가다보니 이런 이야기가 됩니다. 안 좋아요오..;


온다 리쿠의 전체적인 분위기로 봤을 때는 앞서 언급한 그 소설, 그리고 엔드 게임과도 약간은 닮아 있습니다. 그래도 엔드 게임이 훨씬 제 취향에 가깝습니다. 그런 고로 집 서가에서 퇴출될 가능성이 높은 책이지요.


온다 리쿠, <엔드게임>, 국일미디어, 권영주, 2007


빛의 제국-도코노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랍니다. 온다 리쿠가 이 책 이후에 다른 책은 더 쓰지 않아서 일단 빛의 제국 시리즈는 이 3권이 전부입니다.

도코노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것은 1권 빛의 제국의 가장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길을 찾는 두 사람의 이야기지요. 가장 가볍고 밝은 분위기인데다 빛의 제국을 관통(?)하는 도코노의 분위기를 가장 잘 맛 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해서 말입니다. 민들레 공책은 온다 리쿠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책이 되었으니 넘어가지요. 그리고 이 엔드게임은, 빛의 제국에 등장했던 앞 이야기를 단 칼에 날려버리는 이야기입니다.

역자인 권영주씨도 후기에 그렇게 썼더군요. 무기질적인 이야기라고요. 네, 딱 그런 느낌입니다. 무기질적인, 무채색같은, 기계도시 같은 느낌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런 느낌이 의외로 마음에 듭니다.
이야기의 실마리는 앞서 나온 단편 오셀로 게임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완전히 이야기가 맺어지는데 맨 마지막의 반전이 참...; 온다 리쿠도 반전을 꽤 좋아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번 편도 그렇습니다. 반전이 있을 타입의 이야기라 그렇게 생각하고 봤는데 이런 식의 반전이 나올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뭐, 워낙 주인공들에게 반해 있어서 쓴웃음 정도로 끝나고 말았지요.

도코노 일족과의 연계는 거의 없습니다. 그 일족 안에서도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정도만 언급된다 할까요. 이전의 두루미 선생님이나 앞서 등장했던 사람들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재미있었지요.


이 책도 현재 대출중입니다. 대출이 끝나고 돌아오면 또 대출 나가겠지요.; 최근에 하도 온다 리쿠 책을 많이 사서 아마 한 번쯤은 더 단체 대출을 나가지 않을까 합니다. 하하하;



슈노 마사유키, <가위남>, 노블마인,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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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난, 간만에 가이시안을 불러내 이야기를 한다.)

G : 간만에 왜?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끌어갈 마음이 든거야. 혹시 어제 그 복권 때문에?
K : 복권을 긁었더니 옛 기억이 떠올라서 문득 쓰고 싶어졌달까. 하여간 어제와 오늘의 연이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더 그래.
G : 하기야. 마지막으로 이런 대화를 한 게 언제였더라. 기억도 안난다.
K : 아마 리포트 쓸 때가 마지막이었을걸.
G : 그래, 복권은 그렇다 쳐. 그럼 오늘의 충격에 해당되는 이 책이 그렇게 견디기 힘들정도로 문제였어?
K : 아아. 떠올리고 싶지 않을만큼 뒤통수를 맞았어. 그러니까 이 책을 사게 된 계기가 된 것이 어느 블로거의 리뷰였거든.
G :응
K : 맨 마지막의 반전을 보고는 앞서 나왔던 이야기의 위화감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했어. 반전이 궁금해서 산 책이었는데 대박이었지.
G : G는 꽤 마음에 들어한 것 같던데.
K : 괜찮았대. 좋았다고 하던데 마음에 들었나봐. 하지만 난 어제의 타격에 이은 연타석이었다고! 젠장, 그렇게 돌아갈 줄 누가 알았어!
G : 보니 쇼크 받을만 하다.
K : 그치, 그치!
G : 이거 보니 한동안 소설은 손 안댈 것 같은데. 스나크 사냥이나 불안한 동화나 유지니아나 사두고 아직 손도 안댔잖아.
K : 손대고 싶은 생각도 싹 사라졌어. 그만큼 불안한 정신상태에서 타격이 너무 컸달까.
G : 그런데 이런 식으로 날라리 리뷰를 써도 되는거냐.
K : 말하고 싶은 것은 이거야. 불안한 정신상태에서 읽지 말 것, 반전에 대비할 필요가 상당히 있다는 것도. 평상시라면 별 문제없이 읽었을 내용인데 말야.
G : 알았어, 알았어. 이만 들어가서 쉬라고. 홍차라도 한 잔 줘?

(가이시안, 키르난에게 주는 홍차에 슬쩍 라벤더를 집어 넣는다. 이정도라면 치사량, 아니 치면량일 것이다. 부디 푹 잘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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