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고가 있던 자리」는 청소년 소설쯤 됩니다. 주인공은 중학교에 다니는 미아. 망고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기르고 있는 여자아이입니다. 부모님과 언니, 그리고 남동생과 함께 살고 있으며 집안 분위기는 자유롭습니다. 언니가 하는 몇몇 행동만 봐도 대강 집 분위기가 짐작이 가는군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얼마 안되어 들어온 오렌지 털빛(한국식으로는 노랑태비)의 고양이가 망고란 이름을 얻은 것은 그 털색 때문이라고들 생각하지만 실은 비밀이 있습니다. 미아는 평범하지 않거든요. 공감각(synensthesia)인 이거든요. 단어가 어렵지만 간단합니다. 미아는 시각과 청각이 연결되어 있어서 청각적 자극을 받으면 그걸 시각과 동시에 받아들입니다. 그 자세한 설명은 책을 읽다보면 아주 자연스럽게 이해하실겁니다.
이 이야기는 자신이 다른 사람과 틀리다고 생각한 소녀가 그것이 틀린 것이 아니라 다름이고, 자신이 고립되어 있지도 않음을 깨닫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소중한 것을 놓치게 됩니다. 제목에서 느껴지겠지만 자세한 이야기는 넘어가지요. 작가 본인은 공감각인이 아니라는데 읽다보면 미아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는 게 재미있습니다. 책을 보고 있는 동안에는 세상이 화려해보이는 느낌이더군요. 미아가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 눈 앞은 한 폭의 움직이는 그림이 될 것 같으니, 미아의 시점에서는 로빈 윌리엄스가 등장한 모 영화가 진짜 천국 같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장 마음에 드는 묘사는 고양이 망고의 움직임에 대한 겁니다. 노란색의 잔상이 남는다고 하니 달팽이도 아니고 말이죠. 하지만 실제 보고 싶습니다. ... 나중에 뇌를 어떻게 자극하면 간접적으로 나마 체험할 수 있을까요.;




「라블레의 아이들」은 먹는 것이 주제입니다. 표지에 보면 왜 제목이 「라블레의 아이들」인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 속에는 먹을 것들이 풍성하다.(중략) 역사를 뒤돌아보면 수 많은 예술가들이 음식을 탐하는 먹보들이었다. 그건 단순히 식욕의 차원을 넘어 그들이 선천적으로 품고 있던 세상에 대한 탐욕스러운 호기심과 균형을 이루고 있다. (중략)그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두 라블레의 아이들인 것이다. 이 책은 과거에 쓰여진 책을 읽는 것과 미지의 요리가 눈앞에 있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기쁨이라고 여기는 한 평론가에 의해 쓰여진 실험보고서이다.

그래서 제목을 그리 붙인 것이지요. 먹을 것을 좋아하는 저이니만큼 책 소개를 보고는 덥석 집어 들었더랍니다. 하지만 생각만큼 먹을 것 이야기가 맛있게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책이 본격적인 보고 + 분석서에 가까웠거든요.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오스 야스지로의 카레 전골',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돼지고기 요리', '이사도라 던컨의 캐비아 포식' 같은 제목을 보시면 내용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감이 오려나요.

몇 가지 음식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메이지 천황 무쓰히토의 대 오찬회에 나오는 아이스크림 말입니다. 아래는 말차 아이스크림, 위에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올려 후지산 모양으로 대강 다듬은 디저트입니다. 이 디저트 이름을 후지야마라고 적었는데 그냥 후지산이라고 하는 쪽이 더 알아보기 쉬웠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몇몇 번역에서 걸리긴 했는데 이 부분이 제일 마음에 안 들더군요. 게다가 맛차라고 쓰고는 괄호 안에다가 대강 설명을 적었는데 이것도 그냥 말차라고 한자어 독음을 쓰는 쪽이 낫지 않을까요. 어쨌건 말차 아이스크림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의 조합이라 맛있어 보이지만 이 오찬회에 참석한 인물 중 이토 히로부미가 있습니다. 왠지 먹다가 소화불량에 걸릴 것 같습니다. 하하하.

그 외에 시부사와 다쓰히코의 반대로 된 일장기 식빵. 이건 일장기 식빵을 떠올리면 됩니다. 식빵 한 가운데 동그랗게 딸기잼을 올리면 일장기 식빵이지요. 반대로 된 일장기 식빵은 가운데를 동그랗게 비우고 나머지는 다 딸기잼을 바르면 됩니다. 그리고 가운데는 흰색을 더하기 위해 연유를 붓습니다.(...) 음, 쓰고 있는데도 혈당치가 올라가는 느낌이 듭니다. 무진장 달겠지요.

그리고 덧붙이자면 「그늘에 대하여」(원제 음예예찬. 눌와)를 읽고 다니자키 준이치로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이미지가 이 책을 통해 홀랑 날아갔습니다. 이런 사람이었군요.(먼산)




웬디 매스, 「망고가 있던 자리」, 궁리, 2007, 9800원
요모타 이누히코, 「라블레의 아이들: 천재들의 식탁」, 양경미, 빨간머리, 2009, 1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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