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SF라도 분위기는 매우 다릅니다. 제가 좋아하는 SF는 대체적으로 밝고, 긍정적이며 한없이 낙천적인 무언가입니다. 지금까지 읽은 중에 가장 추천하는 SF는 『대우주시대』이며 『Tear&Dear』도 좋아하지만 이건 19금이니까요. 그렇다보니 SF 단편집은 높은 확률로 실패합니다. 이전에 과학소설상 수상작품집도 그렇고 이 책도 그렇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SF와는 거리가 있더군요.


각 이야기는 서로 다르며 SF라는 주제 아래 다른 색으로 모였습니다. 어떤 소설은 유머러스하며, 어떤 소설은 절박하고, 또 어떤 소설은 철학적 질문을 던지며, 어떤 소설은 강합니다. 어떤 소설은 읽지 못하고 고이 건너 뛴 것도 있습니다. 워낙 제각각이라 읽고 난 뒤의 감정을 뭐라 정리하지 못하고 맨 마지막의 해설을 읽고 나니, 그제서야 소화가 된 듯 모든 이야기들이 정리됩니다. 어떤 이야기는 해설을 읽고 나서야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이해가 되기도 했습니다....(먼산) 이건 제 이해력이 부족했기 때문일 겁니다.


색이 각각 다르지만 또, 어느 날 문득 떠오를만한 그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야기 전개는 절대 취향이 아닌데도 문득 떠오를 것 같은 이야기도, 딱 그 장면만 남아서 언젠가 머릿 속에 떠올라 그 소설 뭐였더라 생각날 법합니다. 그럼에도 여기서 제일 마음에 든 소설은 무엇이냐 묻는다면, 없었다고 답할 겁니다.(먼산2)


파출리, 박애진, 전혜진, 권민정, 양원영, 남유하, 아밀, 이서영, 전삼혜, 박소현, 심완선. 『여성작가 SF단편모음집』. 온우주, 2018, 15000원.


그래도 다양하게 읽는다는 것은 좋은 것이니까요.=ㅁ= 반쯤은 '읽어 주어야 해!'라는 의무감으로 읽었습니다.

김초엽. 「관내분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선호. 「라디오 장례식」

김혜진. 「TRS가 돌보고 있습니다」

오정연. 「마지막 로그」

이루카. 「독립의 오단계」


총 다섯 편의 작품이 실려 있습니다. 가장 궁금했던 것은 대상 수상작이었던 「관내분실」. 도서관에서 장서가 어디 있는지 확인할 수 없는 경우 서가부재도서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서가의 원래 자리에 없는 책이란 뜻이지요. 그리고 그 책은 관내, 그러니까 도서관 내부에서 분실되었다고 보는 겁니다. 즉, 배경이 도서관이기는 하나 SF인만큼 특이한 도서관이 배경입니다. 망자를 기억하기 위해 망자와 관련된 여러 데이터를 모아 구성한 것이 '마인드'이고, 마인드를 모아 놓은 곳도 도서관입니다. 마인드는 개인의 기억을 기반으로 죽기 전의 모습을 구성한 것이고, 접속하여 마인드를 만나는 것은 살아 있는 상태의 죽은 사람을 만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아마 사람보다는 반려동물을 대상으로 하면 더 실감나게 느낄 분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만... 하여간 어머니의 마인드를 만나기 위해 도서관에 간 지민은 마인드가 관내분실되었다는 통보를 받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가작을 수상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어느 우주정류장을 배경으로 합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시작으로 기술의 발전과 비용 문제, 그로 인한 단절을 이야기합니다. 아니, 더 자세히 쓰면 내용 폭로가 되어 쓸 수가 없습니다.


「라디오 장례식」은 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 한 로드무비에 가깝습니다. 클리셰적이고 전체 흐름도 다 그렇지만 마치 영화 한 편을 감상한 것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TRS가 돌보고 있습니다」는 미묘한 감정을 이끌어 내는 이야기입니다. 연명치료와 간병, 그리고 그에 따른 제반 비용까지. 심사평을 보면 이 단편을 두고 심사위원들도 잠시간 토론을 하게 만들었다(배명훈)는 언급이 있습니다.


「마지막 로그」는 죽음을 선택한 뒤의 일주일간을 다룹니다. 안락사까지 남은 기간 동안의 이야기가 담담하게 흘러가지만 거기에 안락사까지의 편의를 봐주고 죽음을 집행하는 안드로이드의 이야기가 섞입니다.


「독립의 오단계」는 로봇을 어디까지 독립인격체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자식도 자신의 소유물로 보는 어머니는 사고로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아들의 인격을 로봇, 안드로이드에 연결합니다. 그리고 안드로이드는 자신이 독립된 개체임을 주장하며 주인이자 어머니와 법정에서 만납니다.




워낙 기대가 커서 그랬던 건가 곰곰히 따져보았는데, 아닙니다. 실망이 컸던 것은 그 때문이 아니라 소설들 자체가 저와 맞지 않아서 그랬던 겁니다.

비단 SF-과학소설뿐만 아니라 판타지, 로맨스, 추리까지, 제가 좋아하는 소설은 하나같이 마음 편한 소설입니다. 복잡한 소설도 읽지만 대체적으로 결말이 평온한 소설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소설을 읽는 목적 자체도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SF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여기 등장한 소설 중에서 행복한 결말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둘. 애매한 것도 있지만 좋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읽고 나면 허탈하기도 하고, 심장에 안 좋기도 하고요. 한국소설에 손을 안 댄 것도 그런 이유였지만 SF에 손을 덜 대게 된 것도 그래서였던가 다시 생각하게 되더군요.

그러기에는 최근에 읽었던 SF들이 마음에 들어서 단언하기는 어렵고. 『대우주시대』나 『별의 계승자』는 매우 재미있게 보았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이 책들은 그 해의 책으로 손에 꼽을 정도로 마음에 든 책이기도 하니 직접 비교하면 안되겠지요.


결국 읽고 나서 뒷맛이 씁쓸했기 때문에 감상도 덩달아 쌉쌀합니다. 하하하.;ㅂ; 설마하니 이 다음에 읽을 『사소한 정의』도 씁쓸한 맛일까 걱정 중인데. 우우움. 일단 도전하고 보렵니다.



김초엽, 김선호, 김혜진, 오정연, 이루카.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허블, 2018, 12000원.



그리고 추가.

1. 어떤 작품은 읽다가 왜 그 장면이 들어가야 했나 싶었습니다. 특별히 필요한 장면도 아니고 특별히 필요한 장치도 아닌데 왜? 물론 분노 폭발 장치로 선택할만 하나, 과했다 생각했습니다. 그 부분보며 갑자기 조아라가 떠오른 것은 왜인가..=ㅅ=


2.AI는 인간인가. 몸을 일부를 사이보그로 대체했다면 어디까지가 인간이고 어디까지가 사이보그, 인조인간, 로봇인가.

제게는 진부한 질문입니다. 인류 멸망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바, 인간을 구성하는 가장 근원적인 부분은 몸이 아니라 사상, 생각, 그 모든 것을 포괄하는 정신적인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뇌를 포함한 모든 것이 기계라 해도 그 사상이 인격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라면 인간입니다. 당연히 AI도 일정 수준 이상을 넘어가 인격체라면 사회에서 인간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경계를 정하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항상 그래왔잖아요. 인간 사회는 그렇게 진화해왔으니 시간이 지나면 그런 경계 또한 해결되리라 봅니다.

과격한 사상일까요.'ㅂ'

앞서 『별의 계승자』는 타임라인에서 하도 베스트 SF로 꼽는 바람에 흥미가 덜해 뒤늦게 보았다고 언급했습니다.(링크) 모종의 이유로 1권을 빌려와서는 한참 미적대다가 보고, 30쪽 넘기기까지 애를 먹다가 그 뒹는 단 숨에 씹어 삼키고는 다음 권을 외쳤는데, 마침 3권이 나온 시점이었습니다. 1권은 2016년, 2권은 2017년, 3권은 2018년 1월에 막 나온 상태니까 정말로 운이 좋았습니다. 1권 마지막을 보고 절규한 뒤 뒤이어 2권과 3권을 볼 수 있었으니까요.


시리즈를 볼 때는 아예 전체가 다 나오기를 기다려 보는 것도 좋긴 합니다만 기다리는 것이 어렵다는 단점도 있지요. 저는 주로 참는 쪽입니다. 연재소설을 많이 봐서 그런지 완결나기를 기다렸다 보는 경우가 훨씬 많은데, 아닌 것들은 주로 좋아하는 작가들입니다. 그러니까 아는 작품은 함께 달리지만 모르는 작품은 완결난 뒤 전체를 보고 파악하는 겁니다. 연재소설로 보았을 때와 완결소설로 보았을 때가 사뭇 다른 작품도 여럿 있지요. 그리고 연재처를 옮겨서 뒤를 못본 소설은 높은 확률로 폭탄이 됩니다. 하하하.



취향으로 따지면 1권 > 2권 > 3권의 순입니다. 1권과 2권은 상대적으로 학회SF에 가까우나 3권은 갑자기 이야기가 스페이스오페라계통으로 흘러갑니다. 희한하지요. 뒷 권에 계속이라 되어 있으니 이야기는 더 나올 것이고, 그 때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가 참 궁금합니다만, 3권은 보는 도중에 『은하영웅전설』이 떠올랐다는 걸 부인 못합니다. 정말로요. 덕분에 설명하다보니 B님을 본의아니게 낚았습니다. 하하하. 아마 C님이 B님에게 대출처리 해주실 거라 믿습니다. 전 아직 2권 배송중이고 3권은 주문을 기다립니다.


2권에서 대립하던 두 사람은 상관의 간계(?)로 2권에서 우정을 쌓습니다. 학회SF는 대립형에서 협동형으로 바뀌며, 순식간에 이야기가 쑥쑥 나갑니다. 그리고 2권의 마지막은 상상을 초월하는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이야기로 말입니다. 2권의 수수께끼는 거인들은 누구인가이며 3권의 수수께끼는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입니다. 이 수수께끼를 푸는 것은 당사자들이기도 하고, 외부인이기도 합니다. 3권보다는 2권이 더 지식추구형 이야기에 가깝고요.


2-3권도 1권 읽은 직후에 도서관이 신청해 빌려다 보았습니다. 신청한 뒤 여행 직전에 빌렸는데, 모처의 모임에서 이야기하다가 3권을 읽은지 얼마 안되었다는 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마지막의 한 방이 대단하다 하시더군요. 저 역시 기대했지만 제게는 조금 못미쳤습니다. 음, 읽고 나서 동시에 떠오른 작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한국 게임계에 길이 남을 모 게임이며, 다른 하나는 ㅂ모 출판사에서 나온 판타지소설입니다. 양쪽 모두 동일 트릭을 쓰고 있기 때문에 그것과 같은 건가 싶어 김이 빠졌더란..-ㅁ-a 솔직히 전자보다는 후자가 더 가깝군요.


뭐라 해도 굉장히 재미있는 SF입니다. 여러 등장인물이 있긴 하지만 메인 주인공이 헌터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헌터와 그 친구들의 스페이스 오페라로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니 4권을 기다리며 조용히 통장 잔고를 채웁니다.



제임스 P. 호건. 『별의 계승자 2: 가니메데의 친절한 거인』, 최세진 옮김. 아작, 2017, 14800원.

제임스 P. 호건. 『별의 계승자 3: 거인의 별』, 최세진 옮김. 아작, 2018, 14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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