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맛』은 표지부터가 사람을 홀립니다. 동그랗고 살짝 도톰하지만 옆구리를 보면 폭신해서 그런건지 가라앉은 것 같은 포동포동한 핫케이크 여덟 장을 쌓은 모습은 그 위에 버터 한 조각을 올리고, 메이플 시럽 한 단지를 준비하여 나이프와 포크로 비장하게 덤벼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표지의 그림과 같이 폭신폭신한 핫케이크를 구워야 합니다. 거기부터가 시작이지요.


표지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 책은 먹을 것에 대한 작가 개인적인 이야기를 잔뜩 담았습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식재료와 음식, 그걸 담아내는 그릇과 부엌 도구들을 다 다룹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당히 제 취향일 수 있지만 한 장 한 장 읽어 나가면서는 읽는 것이 고행이었습니다. 과거의 저라면 매우 행복하게 읽으며 지름목록에 추가했을 것이지만 지금의 저는 공감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많습니다.


책 부제에 나오는 것처럼 이 책은 각 주제에 대한 짧은 글들을 아침, 점심, 저녁, 차라는 네 가지 큰 주제로 나누었습니다. 아침은 이상적인 아침식사부터 시작해 수프나 에코백, 점신에는 식재료, 말린식재료, 도구, 바구니, 그릇 등을 다루고 저녁은 술, 보데가 컵, 빵, 기름, 수세미 행주 등등, 차는 커피와 과자, 티타임, 주전자, 차의 종류 등등을 소개합니다. 각각의 주제에 대해 짧게 쓴 글인 걸 보면 블로그 등에 올린 글이거나, 어딘가에 연재한 글을 모아 책으로 엮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읽기 어렵지 않으며 쉽게 넘어가는데다 자칫하다가는 글에 홀려 이것저것 사들기 쉽습니다. 읽는 동안, 예전에 읽었던 오하시 시즈코의 『멋진 당신에게』가 떠올랐습니다. 계절의 식재료나 다양한 소재의 음식, 생활방식 등을 다루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그 부분이 지금의 저와 결정적으로 다릅니다.

예전에는 마음에 드는 것이면 일단 모으고 봤습니다. 수집벽이 있었던 건지, 버리지 못하고 이것저것 잔뜩 모아 놓았고 여행지에서 구한 포장지나 종이봉투, 비닐봉투도 추억이라며 남겼습니다. 그걸 그만둔 건 짐이 점점 증식하면서였고요. 미니멀라이프니, 생활가이드니, 굉장히 다양한 책을 보며 미련과 집착을 버리려 애쓰고 급기야는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가 아니라, 몇 년 동안 두어도 돌아보지 않는 것이면 버려야 한다는 것과 사놓고 쓰지 않으면 애물단지라는 것을 가슴 깊이 새기고 정리를 했습니다. 충동구매로 사들인 것들도 그렇게 다 떠나 보내니 손에 남은 것은 가끔이라도 꺼내 쓸 것들이더군요. 그런 것만 남았습니다. 그나마도 마음이 떠나면 자연스레 품에서 내보낼 것들입니다. (물론 책은 예외입니다.) 바자회에 내놓거나 재활용품 바구니에 넣어두면 누군가 집어갈 테니 쓰던 것이라도 처분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렇다보니,


-에코백을 이런 저런 이유로 모아 놓는다.

-여러 가게들을 다니며 눈에 들어오는 그릇을 다양하게 구입한다.

-벼룩시장에서 잡동사니를 구입한다.

-흰색 그릇도 여러 브랜드의 것을 섞어 구입한다.

-보데가Bodega도 마음에 드는 것마다 구입한다.


는 내용을 보면 집 정리하기 괜찮냐는 생각이 들더군요. 포장지나 과자상자를 보관한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이런 생활이 가능한 건 푸드스타일리스트라 남겨두면 어디에든 쓸 상황이 되기 때문일 겁니다. 보통 사람들이 따라하기에는 벅찹니다. 갖가지 식재료를 구해서 먹어보는 것도, 여러 회사와 여러 생산지의 다양한 그릇을 구입하고 쓰는 것도 직업과 관련되어 있으니 가능하겠지요. 그럼에도 이래도 되는 걸까 싶은 정도로 수납공간 걱정이 되더랍니다. 허허허허..


딸기잼을 비롯한 잼 만들 때의 비율 계산이나, 검은콩 졸이기, 스콘의 재료별 비율 계산은 좋습니다. 스콘은 제 취향의 비율이 아니지만 보통의 스콘을 만들 때는 이정도 비율이 좋을 겁니다.



책 편집도 상당히 마음에 듭니다. 걸리는 것은 번역 쪽인데, 여성어와 일본어 번역투가 뒤섞여 있어 읽다가 피로함을 느꼈습니다. 단어나 구절, 어구, 일본어가 아닌 여러 외국어들은 매우 잘 번역했고 모르는 단어에 대한 주석도 좋습니다.

또 걸리는 부분이 몇 있었습니다. "핫 비스킷을 '긴급 비스킷'이라 표현한 레시피(p.233)"가 있다는 부분. 저 다음 문장에는 "빠르다는 의미기도 하지만 시간이 없을 때 금세 만들 수 있는 구세주 같은 비스킷"이라는 언급이 있어 뒷부분의 번역 때문에 일부러 긴급이란 단어를 쓴 것이 아닌가 추측하지만 원래는 퀵 비스킷이 아니었을까 싶거든요.

또 걸리는 부분은 생지라는 단어입니다. 이 책에서는 生地를 모두 다 생지라고 그냥 번역했습니다. 문맥에 따라 반죽, 또는 베이스 등의 단어로 골라 바꿔 쓸 수 있었을 것인데 일괄적으로 다 생지라 적었습니다. 한국어사전에는 생지라는 단어가 아예 없습니다. 분명 바꿔 옮길 수 있는 단어가 있음에도 그대로 둔 것을 보면 번역자의 이도로 보이는데, 이 부분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걸린 덕에 책 자체에 대한 점수가 왕창 깎였습니다. 다른 언어에 대한 번역은 훌륭한데 왜 그랬을까요.(먼산)



나가오 도모코. 『하루의 맛』, 임윤정 옮김. 앨리스. 2017, 14800원.



음식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신다면 추천합니다. 아마 T님은 재미있게 보실 겁니다.



분명 쩐주나이차=진주버블차를 마시고 있는 모습이지만 지금의 제게는 사진의 떡입니다. 이 모든 것은 감기가 원흉이고요.



지난 주 중반부터 조짐을 보이던 감기는 이상한 방향으로 튀어갑니다. 분명 목 안쪽, 가장 깊은 곳에 낀 것 같던 가래는 급기야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점차 위쪽까지 닿아오고, 참아보겠다며 버티던 금요일을 넘어 토요일 새벽에는 사람 잡는 수준까지 발전합니다. 가래가 지나치게 퍼지는 바람에 새벽에 기도를 막아, 순간적으로 호흡곤란이 온 겁니다. 기침을 해도 소용이 없어, 자다 깨서는 숨통 조절하느라 애먹었습니다. 꺽꺽거리며 목 부여잡고 있다보니 간신히 숨은 돌아왔지만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병원에 가기로 결정합니다.


어머니도 자주 다니시는 병원이라 그래도 괜찮겠거니 생각했는데 왠걸. 가래가 다 없어진 건 아니고, 그래도 살만한 수준까지 오고 나니 목이 쉽니다. 그리고 병원 다녀오면서 찬바람을 강하게 쐰 지금은 양쪽 귀에 미미하지만 통증까지 옵니다. 이거 귀까지 번지지 않을까 걱정되네요. 하기야 귀 아픈 건 감기 걸릴 때마다 매번 그랬지요.



기침은 짜먹는 시럽을 처방받아 먹으니 두 번 먹는 동안 가라앉았습니다. 남은 건 목과 가래뿐인데 무사히 가라앉을지는 일단 두고 봐야 하겠네요. 흑흑. 그러니 바깥 걸음 하지 않고 얌전히 지내겠습니다. 흑흑흑. 다들 감기 조심하시어요.;ㅁ;

북스피어 책은 나오는대로 장바구니에 담아둡니다. 취향에 맞든 아니든 일단 담아두고 읽는데, 『고서 수집가의 기이한 책 이야기』는 장바구니에 담아 결제하려고 두니 친절하게 '이미 구입한 책입니다'라는 메시지가 뜹니다. 난 구입한 기억이 없는데! 라며 책나무를 뒤져도 안 보이더군요. 이 책을 어디에 두었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사무실 업무용 책장에 잠시 꽂아 둔 것이 기억나 회수해왔습니다. 책 구입한 뒤 홀랑 까먹는다는 이야기를 반쯤 흘려 들었는데 제가 그러고 있습니다. 하하하. 하지만 다른 책 한 권은 어디 두었는지 아직 못찾았습니다.ㅠ_ㅠ


첫 번째 이야기는 '나'라는 사람이 술집에 갔다가 우연찮게 아는 사람을 만난데서 시작합니다. 세도리라는 독특한 칵테일을 주문하는 걸 보고 옛날에 잠시 알고 지낸 이라는 걸 깨닫고 말을 걸어보니 나름 큰 건을 치루고는 기분이 좋아져 있었던 터라 흔쾌히 같이 어울리고는 급기야 집에 초대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큰 건'과 관련한 이 사람의 일대기를 얻어 듣습니다. 옛 귀족 출신으로 작위를 이어받았기에 별명과 이어서 세도리 남작이라 불리는 사람은 고서수집에 얽힌 여러 괴이한 이야기를 풀어 놓습니다.

작가인 가지야마 도시유키는 1930년생으로, 이야기들도 모두 옛날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오일쇼크를 다루는 부분을 보면 책의 배경은 70년대지만, 세도리 남작의 경험담은 패전 전부터 시작되며 미국 점령하의 일본 이야기도 상당히 등장합니다. 기왕이면 역사적 배경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보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45년 8월 15일에 일본의 항복 선언 뒤 일본은 어떻게 되었는가 등등.



기이한 이야기라는 제목답게 책에 미치면 사람이 어디까지 막장이 될 수 있는가를 철저하게 보여줍니다. 다만 등장인물들이 대부분 남자다보니 남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술자리에서 튀어나오는 자신들의 모험담을 약간 과장한 느낌도 들고요. 그게 극에 달하는 것은 마지막의 장정가 관련 이야기입니다. 세상은 넓고 미친놈은 많다지만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헛웃음만 나오더랍니다. 아니, 하지만 이렇게 이상한 방향으로 책에 미친 사람도 있을 법합니다. 없지 않을 것 같아 더더욱 그렇고요.


이상한 감상이라는 자각은 있지만 읽으면서 80-90년대 한창 유행했던 『인간시장』이라는 소설이 떠올랐습니다. 자신이 경험한 것을 중심으로 쓴 덕에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은 일본/한국에 대한 감상이라는 점에서 그게 더 떠올랐는지도 모르고요. 남성 중심의 이야기라는데서도 그랬는지 모릅니다.



물리적 의미로서 책을 좋아하는 분께 추천하고 싶습니다. 읽고 나면 나는 이런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라는 반면교사로서의 작용이 상당히 크게 작용합니다. 이야기의 발상도 재미있고, 역사적 배경도 작용하다보니 아직 진보쵸와 고서 시장이 활발하게 살아 있던 때의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편한 부분이 있다는 건 감안하고 보셔야 할 겁니다.




가지야마 도시유키. 『고서 수집가의 기이한 책 이야기』, 이규원 옮김. 북스피어, 2017,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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