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앞서 올렸던 미라클 스티치: 오랜만에 바늘을 잡아볼까요 와 이어집니다. 그 댓글에서 오갔던 이야기, 그러니까 전공과 직업 측면에서 보는 몇 가지 지적입니다. 따라서 해당 작품을 읽지 않았다면 내용 폭로를 당할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합니다.
그러니 아예 해당부분은 접어 놓고 이야기를 풀어 봅니다.
『미라클 스티치』를 보고 결말 부근에서 조금 시큰둥했던 것은 왜 그게 기록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거지?라는 작은 의문에서
시작됩니다. 아니, 애초에, 기록관리학에서 말하는 여러 기록물에는 태피스트리가 포함됩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기록학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그리고 고대의 중요 기록물 중에 11세기의 바이외 태피스트리가 포함된다는 겁니다.
한참
전의 일이긴 하지만 무슨 기록 관련 전시회 때문에 한국에도 바이외 태피스트리의 일부가 전시된 적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
'기록화'도 기록물에 포함되는 겁니다. 옛 기록을 남기는 그림 자체도 기록에 포함된다는 것이지요. 국가기록원에서 관리하고 있는
기록물중에는 행정박물도 있습니다. 물건까지도 모두 기록물에 포함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고 보면 정조대왕능행반차도 같은 그림도 분명 기록물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기록학의 관점에서는 '글자 형태인 스티치 때문에 기록/기록물'이 아니라, '아르티 티엘의 작품이기 때문에 기록물'이 성립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아르티 티엘의 작품은 아카데미에 매우 많으니 그 중 하나를 집어 내는 것은 어렵겠지만, 그래도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겁니다.
아르티 티엘은 이미 그 시점에서 아카데미의 유력인사이고 유명인이며, 또 예술가이자 장인, 그리고 학자입니다. 그런 인물이라면
그의 인생과 관련된 모든 것이 기록물이 됩니다. 여러 도서관이나 박물관, 기록관에서 수집하는 민간기록물, 아니면 그의 공적 인생을
보고 공적 기록물로 수집될 수도 있겠군요. 특히 아카데미 내 의상학 분야는 아르티 티엘을 빼고 논할 수 없을 것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미라클 스티치'가 기록으로 잡혀서 이동할 수 있었다는 설정은 기록학의 관점에서는 기록을 문자로만 해석한 이야기로 볼 수 있습니다.
자아.
그러면 또 문제가 생기지요. 모든 기록을 정리한다는 기록관리자. 이미 인쇄혁명과 출판혁명을 한참 지나친 세계관입니다. 아카데미에
도서관이 다섯 개 이상 있고, 그 중에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한적한 도서관'이 존재한다고 하면 이 세계에서 생산되는 기록물은
어마어마할 겁니다. 자동으로 정리되는 마법이 있다고 해도 그 수많은 기록물을 기록관리자 혼자서 감당하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도서관이나 사서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덜 묘사된 점도 아쉽습니다. 마법이 있다고는 하지만 과연 어떻게 도서관에서 책들을 관리할까라는
생각도......(먼산)
간단히 요약하면 『미라클 스티치』의 문제점은 두 가지입니다.
1.기록, 기록물이란 무엇인가?
2.아무리 마법으로 관리한다고 하지만 그 방대한 기록을 1인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인가?
마법이 발전한 세계에서 도서관리를 어떻게할지에 대해서는 제 나름의 설정을 만들어 논 것이 있으니 아마 정리해서 조만간 풀어 놓겠지요. 퇴고가 빨리 끝나야 그 다음 진도가 나갈 건데. 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