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바늘땀-쯤으로 번역할 수 있을 건데, 이 단어 자체가 주제이기도 하고 소재이기도 합니다.
로맨스 판타지로 블로그 연재 당시 재미있게 보아서 출간되기만을 간절히 기다렸는데, 이차저차한 사정으로 알라딘 출간이 매우 늦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제야 볼 수 있었네요.
이 소설을 기다린 이유는 바느질 때문입니다. 주인공은 손재주가 좋고 눈썰미도 좋아 초반부터 이것저것 만드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이쪽 취미를 가진 사람이라면 모두 공감하겠지만 창고 한 가득 재료 쌓아 놓는 것도 그렇고, 만든 작품을 쌓아 두는 것도 그렇고, 흥미가는 분야면 그게 얼마나 되는 중노동이든간에 달려들고 보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감정이입이 되는 걸 넘어서, 아예 손 놓고 있던 여러 물건들을 도로 만들고 싶어지더군요. 물론 그 마음은 푸쉬식 꺼졌지만, 가끔 들여다보고 싶은 생각에 덥석 집어 들었습니다.
아르티 티엘은 아카데미 재학생입니다. 그리고 소설의 첫 머리에서, 아르티는 제5도서관에서 목놓아 통곡중입니다. 그간 자신이 어장관리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거꾸로 어장관리를 당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기숙사에서 통곡을 하면 방음 때문에 다들 알아챌 것이라 인적이 드물다 못해 사람이라고는 사서 한 명뿐인 제5도서관에 와서 통곡을 한답니다. 그리고 이 여학생이 도서관에 와서 통곡하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던 사서, 리비어 톰스는 달래기 위해 말을 걸다가 오히려 아르티에게 낚입니다. 미끼는 아르티의 삼촌인 유명 작가 카봉디 디엥 티엘의 사인본이었습니다.
아르티를 어장관리한 인원은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을 좋아한다며 다가오는 사람들이라 자신에게 뭔가 뇌쇄적인 것이 있나 착각했지만 착각은 착각으로 끝났습니다. 그리고 아르티는 자신을 좋아한다고 다가와서 자신에게서 단물만 쏙쏙 빼먹고 간 이들을 응징하고자 합니다.
소설은 아르티의 응징기와, 그와 거의 동시에 시작되는 연애담을 다룹니다. 반하기도 잘 하지만 이번만큼은 사람 잘 고른 아르티는 매우 저돌적으로 구애하며 연애를 시작합니다. 나이 차이는 어차피 의미없다고 외치며 밀어 붙인 것이지요. 리비어가 버틴 것은 그 자신의 비밀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이야기는 슬쩍 접어둡니다. 가장 중요한 곳에서 펑!하고 등장하는 이야기라 미리 풀어 놓으면 재미가 없습니다.
다만 이 트릭은 조금 걸리는 부분이 있어, 제 다른 종류의 창작욕을 조금 불러 일으켰다는 이야기만....; 사서가 남자주인공인 소설임에도 도서관 업무의 이야기가 상대적으로 덜 등장한다는 것도 아쉽고요. 아르티가 주인공이라 아마 그럴 겁니다.
그러고 보면 정연주의 단독작품은 이번에 처음 읽었습니다. 『헤스키츠 제국 아카데미』와 『차아제국 열애사』, 그리고 『허니 앤 베어』는 일찌감치 읽었지만 단독작은 이번이 처음인게, 로판은 동양판타지보다 서양판타지를 선호하다보니 그렇습니다. 대체적으로 동양판타지나 역사소설, 현대 로맨스가 많더군요. 이쪽은 서양판타지라 즐겁게 보았습니다.
(취향의 문제라고 볼 수도 있고, 로맨스 중 현대나 동양판타지는 감정이입이 강하게 되는 문제와 설정의 문제로 드물게 봅니다.)
2권에는 블로그에서 연재 안되었던 외전이 여럿 붙었습니다. 결혼하기까지의 이야기, 가장 궁금했던 모 조교님의 연애사, 그 뒤의 이야기도 더 나옵니다. 하지만 역시 가장 좋았던 건 조교님의 이야기입니다. 멋집니다, 이 분....! 조교님 외에도 아르티를 도와주는 샐리나 다른 친구들도 매력적입니다. 무엇보다, 알고 보니 아르티가 허브™였다는 것도 재미있었고요. 이 허브는 향신채가 아니라 네트워크의 허브를 의미하는 겁니다. 일반 허브가 아니라 주요 노드들이나 주요 허브들과 직링크가 가능한 무서운 허브입니다. 게다가 백업 능력이 뛰어나 자체 디펜스 시스템도 갖추고 있습니다. 이 건은 외전을 보시면 아실 겁니다.
정연주. 『미라클 스티치 1-2』. 오드아이, 2018, 각 2500원.
그리하여 바느질이 하고 싶다 생각은 했지만 실천으로 옮기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겁니다. 게으름 퇴치가 문제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