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 요약: 씨받이, 씨내리는 조선시대에 있을 수 없는 풍속입니다.
이번 글은 두괄식입니다. 보통은 미괄식으로 썼지만, 이번은 제목의 씨받이나 씨내리가 지금 기준으로는 인권 침해적인 요소가 강한, 만들어진-조작된 전통이라 강하게 썼습니다.
며칠 전 트위터에서 갑자기 씨받이가 한 번 휘몰아 쳤습니다.
https://twitter.com/hanbok_duckjil/status/1718660551524733322
인용된 트윗이 8월 10일 것이라, 한창 전의 내용임에도 왜 갑자기 다시 이야기가 떴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제가 보았던 씨받이 관련 트윗 중에서는 이게 제일 눈에 들어왔지요. 이 외에도 여러 한국사 덕질, 연구 계정들이 나서서 설명을 했겠지만요. 일단 확인한 트윗들을 보면 이렇습니다.
https://twitter.com/woochick2/status/1718880725586600241
https://twitter.com/EfTrpg/status/1718798261413429261
https://twitter.com/HanbokPantry/status/1718771987873661320
한데, 저는 씨받이가 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위의 정리된 트윗을 보면서 왜 내가 그런 생각을 가졌던가를 곰곰히 되짚었습니다. 머리를 굴린 결과, 어릴 적 보았던 단막극 때문인 것 같더라고요. 그 단막극 때문에 씨받이, 씨내리가 있었던 문화라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해당 내용을 끄적여서 올렸더랬습니다.
https://bsky.app/profile/esendial.bsky.social/post/3kczzhqovsn2e
고려장은 뒤늦게라도 없는 걸 알았으니 둘째치고, 씨받이는 한국의 고유 풍습까지는 아니더라도 실제 있었을거라 철썩같이 믿었거든. 근데 이번에 트위터에서 한바탕 돌면서 등장한 이러저러한 사례를 보니 가능성이 매우 떨어지더라. 그럼 왜 있다고 생각했을까 했더니만 임권택의 영화와 KBS로 추정되는 공영방송에서 방영한 전설의고향류 단막극이 뇌리에 박혀 그런 듯. 임권택의 영화는 몇몇 스틸컷으로 남았는데, 저 단막극은 세부적인 부분도 꽤 남았음.
KBS로 기억하는데, KBS3(..)일 가능성도 약간 있고. 줄거리를 요약하면 이러함.
-산골에 사는 양반네는 몇 대 독자인데, 아들놈이 씨가 없음. 며느리를 들였지만 후사를 못보니, 고민하던 차에 -지나가던 소금장수가 그렇게 씨가 좋아서 아들만 줄줄이 낳았다고 자랑하는 소리를 들음.
-그래서 논의 하에, 소금장수를 아들부부 방에 들임. 그리고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아들을 얻기 위한 여러 비방을 수행함
-아들놈은 소금장수가 다시 길 떠나는 걸 기다렸다가 쫓아가서 단칼에 해치움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며느리는 순산하였고, 아들을 낳았음. 고생한 며느리에게 시아버지가 어깨를 두드리며 선물 보따리를 주고 나감. 며느리는 기쁜 마음으로 열어보았고, 그 안에 은장도가 있는 걸 알았음.
-며느리는 목을 매달음. 그리고 그 뒤에 그 집안도 망함.
-그 이야기를 지나가던 다른 이에게 누군가가 말을 전하듯이 하는 것이 단막극 내용이었다고 기억함.
임권택의 씨받이와는 전혀 다른 쪽의 이야기인데, 지금 생각하면 한국적인 이야기라기 보다는 일본적인 분위기가 물씬. 일단 산골짝에 양반이 들어가 산다는 이야기가 지금 생각하면 조금 희한하다는 거고. 몇 대 독자라서 들일 양자가 없었던 건가 싶기도 하고. 지금 뒤섞인 이야기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기무라 타쿠야 주연으로 나왔던 NHK 드라마인 화려한 일족 속의 주인공의 설정이고 다른 하나는 요코미조 세이시의 다른 소설에 등장하는 그 이야기. 하나 더 추가한다면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중 하나에도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_-a 확실히, 씨받이 관련 이야기는 전래동화에서도 본 기억이 없다. 야사에서도 민담에서도 그렇고. (끝)
그랬더니 다른 분이 짚어주시더라고요. "아들, 장남이 제사를 모셔야 한다는 풍습은 17세기 중반이나 자리를 잡기 시작하고, 퇴계 이황도 처가살이하고 아들 손자 모두 처가/외가에서 성장했다. 대를 잇는다는 강박은 조선에서도 후기에서나 자리 잡았고 일부일처제가 당연한 나라였다." 라고.
생각해보니 그렇습니다. 씨내리나 씨받이 모두 본처에게서 자식을 보지 못했을 경우를 가정한 풍습입니다. 조선시대는 첩의 자식, 서자에 대한 취급이 매우 박했지요. 서자는 벼슬길에도 오를 수 없었고, 없는 듯이 살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정식 결혼에서의 자식을 보는 걸 중시 여겼다면 씨내리나 씨받이 같은 풍습은 자리잡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주변 친척들이 가만히 있을리가요. 양자를 자기 집에서 들여간다면 덕볼 텐데, 그런 걸 취급하려 할리가요.
그러면서 백과사전을 뒤지는데, 씨받이나 씨내리 관련 논문 자체가 거의 안 보입니다. 보인다면 임권택의 영화 씨받이에서 나온 정도고요.
그 사이에 다른 분이 인용으로 알려주십니다.
"한국사에 있기 어려운데 한국의 전통이라고 주장되는 것 중 많은 것이 조선일보 기자 이규태가 쓴 것이 출처인 것이 많다."고요. 그리하여 구글에다가 '이규태 코너 씨받이'로 검색했더니 당장 칼럼 하나가 나옵니다.
"씨받이와 씨내리(이규태코너)" 1993.01.22.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1993/01/22/1993012270503.html
이 분이 아예 더 오래된 다른 자료도 하나 찾아주셨네요. 1971년에 이규태가 쓴 기사.
"우리의 것을 아는 大連載(대연재) 奇俗(기속) ⑩ 「아들至上(지상)」이 낳은 悲劇(비극)「移動(이동) 人間(인간)공장」" 1971.01.24. 조선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로 볼 수 있습니다. 기사 내용을 보면 아들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애를 낳아주고 다니는 씨받이 여인을 5년 전에 전라도에서 만난 적이 있다는 내용입니다. ... 아니, 그럼 더더욱 전통이라고 말하기 어렵지 않나요. 아들 선호 사상이 나오기 시작한 건 조선시대 500년에 비하면 비교적 최근의 일이고, 거기에 맞춰 애를 낳아주고 다니는 씨받이 여인을 1960년대 후반에 만났다는 거잖아요. 허허허허허. 그게 무슨 전통문화야. 만들어진 문화지.
하여간 이런 연유로 씨받이에 대한 고민은 싹 씻어내고 마음 편히 넘어갔다는 이야기입니다.-ㅁ-
뭐, 로맨스 판타지 속에서는 자주? 종종? 일어나는 사건이니까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