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오늘 루피시아 메일링으로 받은 어머니의 날 선물용 패키지 사진. 음... 저거 합성한게 그리 매끈하지 않군요.
민음사는 아무래도 세계문학전집이 유명하지요. 표지의 디자인 특이성 때문에 표지로 사진 합성하는 놀이가 유행한 적도 있었고요. 판형이 독특해서 손에 잘 잡히는 것도 그렇고, 다른 출판사의 문학전집보다 상대적으로 손에 잘 잡히기도 합니다.
민음사가 세계문학전집을 처음으로 낸 것은 아니지만, 그 전에 나온 세계문학전집은 굉장히 고루한 이미지였습니다. 그 이미지에 가장 가까운 현재의 문학전집을 꼽으라면 아마도 을유문화사. 음. 고리타분한 이미지가 있었지요. 기억하는 걸로 90년대의 문학전집이 큰 판형으로는 대강 두 곳이었을 겁니다. 작은 문고판은 90년대 지나면서 아마 IMF와 함께 휩쓸려 지나갔나 싶고요.
본격적으로 문학전집 붐이 인 것도 민음사가 다른 출판사에 비해 세련되게 뽑았기 때문일겁니다. 그 첫 출간이 1998년이었을 거예요. 아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뒤져보면 1권이 언제 나왔는지 나올 건데, 98년보다 앞일 수도 있습니다. 하여간 이 책등이 하양색에다가, 판형도 작고 나란히 꽂았을 때 보기 좋았습니다. 물론 이 판형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로를 짧게 만들었기 때문에 다른 책들이랑 같이 꽂아두면 책이 안으로 쑥 들어갑니다. 판형이 다르면 내 서재에 꽂았을 때는 불편하죠. 하지만 저야 워낙 다양한 판형의 책이 있다보니 그러려니 하는 것도 있고, 집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이 단 한 권도 없다는 점도 있긴 합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은 도서관에서 보았을 때 좋아요.(...) 이 책은 워낙 특이하다보니, 다른 책들 사이에서도 바로 눈에 들어옵니다.
도서관에서 좋은 이유 중 하나는 흰색 표지에, 코팅이라 훼손이 덜하다는 점입니다. 비교 대상이 되는 책들이 몇 있는데, 문학동네의 양장판이나 반양장판은 코트를 입었습니다. 코트. 벗겨지는 책 표지 말입니다. 이중책표지는 독서자 입장에서는 진짜 불편합니다. 멋지긴 하지만 실제 손에 잡고 책을 읽을 때는 겉표지가 벗겨질 것 같아서 따로 벗기고 속 알맹이만 들고 다니거나, 아니면 별도의 안 벗겨지는 커버를 씌웁니다. 도서관은? 겉표지를 다 벗깁니다. 겉표지를 벗기면 속의 책 표지는 책날개 없는 상태가 되어, 가장자리부터 쉽게 파손됩니다. 책 날개가 있는 소프트커버책은 책 날개 없는 소프트커버-그러니까 유유의 책들보다 파손이 늦습니다. 들고 다니며 손에 쥐고 읽으면 더더욱 그렇고요. 그래서 파손이나 오염에서 상대적으로 튼튼한 민음사를 좋아하는 거죠.
말은 그렇게 하지만, 집에 세계문학전집은 없습니다. 부피도 크고, 세계문학은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기 때문에 안삽니다. 집에 모셔두는 책은 장기적으로 두며 참고할 책이거나, 두고두고 반복해서 읽을 책입니다. 아니면 언젠가 참고할지도 몰라, 읽을지도 몰라라고 분류하는 책이고요. 그런 의미에서 세계문학은 집에 둘 필요가 없습니다. 도서관에서 구해도 되고, 필요하다면 전자책으로 구매해도 됩니다. 읽을 책이 아니라 참고할 수 있지만 언제든 손에 넣을 수 있는 책에 가깝습니다. 그러니 구매를 안 할 수밖에요.
나중에 L이 세계문학을 읽어야할 때가 되면 어떤 출판사의 책을 사줄거냐.
아마도 민음사는 도서관에서 빌려보라고 할 것 같습니다. 종이책을 쥐어준다면, 여러 출판사의 여러 번역을 놓고 본문 1쪽을 읽어보고 취향에 맞는 번역을 고르라고 할 거고요. 취향에 맞는 번역을 찾으면, 그 번역자가 번역한 다른 세계문학이 있는지 찾아볼 겁니다. 작가나 출판사가 아니라 번역자를 선택하는 셈이지요. 편집이나 책의 물리적 성질은 버릴 수 있지만, 그 책을 구성하는 문장과 글투, 그리고 독자에게 그걸 읽도록 끌고 가는 힘은-세계문학, 그러니까 번역서적에서는 번역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세계문학처럼 '읽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책이라면 아마도 그러할 거예요.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문학 대상인거고, 문학 아니라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이나 철학 등등이라면 또 다르겠지요. 그건 그 뒤에 고민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