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다른 소설들 감상기 적다가 시간이 부족해서 못 적었습니다. 따로 올리겠다고 하고 기억의 저편에 묻어둔 소설이 한둘도 아니지만, 이 소설은 꼭 챙겨서 리뷰를 적어야겠더군요. 제게는 충분히 그럴만한 소설입니다.

 

 

로맨스소설도 판타지소설도 취향을 많이 탑니다. 같은 소설을 읽더라도 감상이 서로 다르고, 좋아하는 방향성이나 소재, 관계성 등도 제각각일겁니다.

제 취향은 대체적으로 온건한 쪽입니다. 주인공이 고생하는 일보다는, 고생하던 이가 작은 도움이건 큰 도움이건 받고서 자립하는 이야기가 좋습니다. 피폐물은 대개 모든 고생이 끝나고 행복이 시작하는 부분부터 읽기 시작하며, 고생이나 오해가 끝까지 가는 피폐물은 손대지 않습니다. 삶이 고달픈데 고달픈 소설을 읽어 정신을 괴롭을 이유가 없습니다. 특히 그런 종류의 정신공격에 취약하기도 하고요.

로맨스소설도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지지하거나 기대는 쪽보다는 양쪽이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가 좋습니다. 유머가 있다면 좋지만, 그런 유머가 차별이나 학대 등에 기반하지 않은 소설이 좋습니다. BL소설의 공은 완벽한 쪽이 좋지만, 로맨스소설은 남자주인공이 완벽할 필요는 없습니다. 외려, 여자주인공에게 기대는 쪽이거나 여자주인공이 남자주인공을 돌봐주는 쪽이 좋습니다. 대등해도 좋지만, 구원서사라면 여자주인공을 남자주인공이 구원하는 방향보다는 여자주인공이 남자주인공을 구원하는 방향이 취향입니다. 드레스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면 더 좋고요. 드레스나 보석 소재는 종종 판타지소설에서 재력을 과시하게 되나, 지나치게 과해서 사람을 질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서문이 길었습니다.-ㅁ-a

『신데렐라는 내가 아니었다』는 조아라에서 앞부분이 연재되었습니다. 앞을 읽은 기억이 있거든요.

테릴은 후작가 후계자와 사귀면서 신데렐라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차입니다. 공작가의 고명딸과 약혼발표를 했거든요. 그간 보았던 황궁관리 시험에서도 내내 떨어지고, 어머니와 단둘이 살면서 고생도 많이 했던 테릴은 좌절합니다. 후작저에서 옛 연인에게 결별 선언을 듣고 집에 돌아오니, 낯선 사람들이 집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어머니를 붙잡고 있던 거칠고 난폭해 보이는 남자는 자신이 테릴의 친부라고 이야기 합니다. 어머니가 이야기 했듯 매우 거친 성정에 난폭하고, 심지어 애 같은 건 만들지 말라고 협박했으며, 어머니에게 구혼하는 다른 남자를 테라스 밖으로 던지고는 구혼했다는 그 친부말입니다.

고물차나 폐차장에 보내야할 차로도 언급하기 민망한 전 남친과 결별한 그날. 테릴은 친부를 따라 북쪽으로 갑니다. 그날에야 알았지만, 친부는 황제 앞에서도 당당히 서서 삐딱하게 바라볼 수 있는 수준의 권력자인 리한 공작이었습니다. 와아아아아아.....

 

이 이야기는 1권 앞까지만 나옵니다. 그 뒤의 내용은 테릴의 복수극과, 거기에 뒤얽힌 후작가의 후계사정, 그리고 황제들의 뒷사정, 반란 등등이 줄줄이 딸려 나옵니다. 단순히 복수를 위해서 전 남친이 소중히 여긴 후계자리를 빼앗겠다고 시작했는데, 그게 영지전으로 이어지고 반란 사정과 섞여서 암살 시도와 기타 등등이 아주 복잡하게 이어집니다. 3년 만에 수도에 돌아온 테릴은 그 사이에 업그레이드를 했고, 4권까지의 재능 수준만 보면 리한 공작가 혈통 중에서 거의 최고 수준입니다. 그런 테릴은 전남친을 괴롭히겠다는 일념으로 전남친의 형 세시오에게 계약을 제의합니다. 후작이 될 수 있게 해줄 테니 계약 약혼을 하자고요. 후작이 아직 결혼하지 않았을 때 입적한 장남은 말을 할 수 없는데다 다리도 쓸 수 없습니다. 후작은 방치하고 있었드니 주변사람들에게 냉대를 넘어 학대를 당하는 중이었지만, 테릴은 우연히 세시오의 비밀 하나를 알게 됩니다. 그 뒤로 세시오와 테릴은 운명공동체가 되었다고 할까요. 처음에는 필요에 의해 손을 잡았지만 한쪽의 마음이 이미 기울어져 있으니 그 뒤의 이야기는 로맨스소설대로 흘러갑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여러 부분에서 감탄했습니다. 특히 세시오의 사정과 관련해, 위선적인 행동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질문이 계속 튀어나옵니다. 목적이 있어서 선하지 않은 의도로 행동했다면 그건 위선이지 않은가. 위선으로 행한다면 그건 선행이 아니지 않은가. 악당을 죽이는 것은 선행인가, 등등. 살짝 능글맞지만 자존감은 거의 땅집고 헤엄치는 수준인 세시오는 매력적인 주인공입니다. 어릴 적부터 이어진 육아방기와 방치, 학대, 심리적 고립, 자기학대 등은 잘생긴 외모를 두고도 자존감 낮은 남자주인공을 만들어 냅니다. 여주에게 '나 좀 주워가 키워주세요'라고 하는 남자주인공은 많지만, 그런 여우 같은 놈들과 세시오를 비교하면 안됩니다. 이쪽은 수 틀리면 세계 멸망을 시킬 인간이라 더더욱 그렇고요. 농담이 아니라 진담입니다. 진짜 제국은 멸망 직전까지 흘러갑니다. 로판이니 멸망할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눈 돌아간 남주를 보는 게 왜 이리 즐거울까요. 이들 둘의 공방-티키타카를 보는 재미도 상당합니다. 무력으로는 세계 최강에 가까운 테릴이나, 능력으로는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세시오의 조합이 좋습니다. 하... 그래요, 로맨스소설은 이래야 제맛입니다.

 

 

 

 

라고 신나게 읽어내리면서, 저자 이름이 매우 익숙하다며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하지만 읽는데 바빠서 확인할 생각을 못했고요. 어제 주간 독서기 적으면서야 검색하고 확인했습니다. 하하하하하하. 『매리지B』 작가님이시더라고요. 그리고는 확신했습니다. 『매리지B』도 전자책 나온 한참 뒤에야 종이책이 나왔으니 이 책도 그럴 수 있다고요. 그러니 언젠가는 종이책으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당장 두 세트를 구입해, 하나는 소장용으로 두고 다른 한 질은 포교용으로 뿌릴 겁니다. 하...

 

소설 속에는 절절한 사랑을 하는 이들이 매우 많습니다. 사랑의 깊이를 따지는 건 의미가 없지만, 질척거림을 따지면 아마 아노비스 공작 부부가 가장 심각하지 않을까합니다. 그래요, 그 쪽은 심각한 수준이라니까요.-ㅁ-a

 

 

과앤. 신데렐라는 내가 아니었다 1~4. 블라썸, 2021, 각 4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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