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4일의 십자수 진도. 거기에 화분들 잔뜩)

 

 

질문.

"웹소설에 자수가 등장하는 경우가 있나요?"

 

답변.

넵, 있습니다.

 

 

일요일 저녁, 열심히 십자수 바늘을 놀리다가 떠올라 적어봅니다. 십자수를 하다보니, 소설 속에서 십자수가 등장하는 일이 있었나 싶었던 거죠. 멀리 안가도 미래나비 作 『황후님의 바늘』에서도 자수가 조금 등장합니다. 이 소설은 재겸 作 『여왕 쎄시아의 반바지』와 비슷하게 판타지세계 속 의복혁명을 다룹니다. 다만 양쪽의 방향이 다릅니다. 전자는 주인공이 황후님이니 위에서 아래쪽으로 흐르는 혁명선이고, 후자는 주인공이 평민이니 일상에서의 의복혁명이 한 차례, 그 뒤에는 여왕님께 스카웃되어 다시 위에서부터의 의복혁명을 다룹니다. 빨간맛혁명을 원하신다면 후자가 좋습니다.

 

전자는 초반에 자수와 관련한 이야기가 조오금 나옵니다. 후자는 자수 이야기는 없었다고 기억하고, 양쪽 모두 자수가 메인은 아닙니다. 전자는 천의 재질, 그리고 중세풍에 가까운 박스형 옷들이 어떻게 활동적이고 편한 것으로 바뀌는가를 중심으로 다룬다면 후자는 의복혁명과 함께 가는 사회혁명을 다룹니다. 후자가 빨간맛이라고 한 이유도 그 때문이지요. 더 ... 혁명적입니다.

 

 

그렇지만 자수하면 떠오르는 소설은 아주 옛날 옛적의 소설인 『엘샤 꽃나무 아래에 앉아서』입니다. TS가 주요 소재라 가끔은 이거, BL로 바꿔도 괜찮지 않나라는 망상을 하지만. 작가님께 죄송한 일이므로 얌전히 입다물고 있겠....(읍읍읍)

이 소설은 병약 미소년이 미소녀가 되었다가 소꿉친구와 결혼하는 이야기입니다. 주요 골자는 그렇고, 결혼까지 가는데는 매우 험난한 여러 여정들이 펼쳐집니다. 그 여러 사건들 중에는 자수와 바느질과 관계된 건들이 몇 있습니다. 초반에 주인공인 엘시가 제국의 수도에 이름을 떨치게(..)된 이유도 저 바느질입니다. 원체 영지민들이 바느질을 잘하긴 하지만, 주인공은 영지에서도 손꼽히는 장인입니다. 손이 빠르기도 하거니와 완성품도 매우 훌륭합니다. 수도에서 자리를 잡게 된 사건 중에도 저 자수가 있지요. 옛 풍속이긴 하나, 결혼 예단 중에 신부가 직접 만든 손수건과 이불 등의 일체가 있었던 겁니다. 모 영애는 기사로 자라, 바느질이 매우 서툽니다. 그래도 해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터라 시도는 했지만 그 완성도가 매우 떨어집니다. 우연히 손수건을 주운 엘시가 자수 과외를 해주는 내용이 있었지요.

2014년에 전자책으로 나왔다고 뜹니다만, 실제 조아라 연재는 그보다 훨씬 앞이었습니다.

 

 

십자수가 등장하는 다른 소설은, 그 장면에서 헛웃음만 나왔습니다. 조아라 연재소설로, 개인지로만 출간하고 정식 출간은 안되었다고 기억합니다. 『캐릭명 다공일수』였던가요. 저쪽 서가에 책이 있어, 제목을 확인하면 되지만 거기까지 가기가 참 춥습니다. 침실은 보일러를 덜 돌렸거든요. BL이고, 수위가 상당히 높지만 주인공의 직업이 블랙스미스라 매우 즐겁게 보았습니다. 이 소설 때문에 마비노기 하면서 블랙스미스 스킬을 올릴까 진지하게 고민했을 정도로요. 진짜 다시 마비노기를 잡으면 블랙스미스부터 올릴지도 모릅니다. 마비노기를 다시 할 가능성이 한없이 0에 수렴하니 가능성은 낮지요. 다시 마비노기를 붙잡을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모바일 마비노기가 나올 때까지도 아마, 붙잡지 않을 겁니다. 절대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ㅁ- 저 소설에서 등장한 십자수 관련 에피소드는, 지금까지 읽은 장르소설 중에서 십자수 관련으로는 거의 유일하다고 기억합니다. 아마 로맨스판타지에서는 가끔 십자수하는 이야기가 나올지 모르지만, 구입하거나 읽은 소설 중에는 기억하는 내용이 없습니다. 대개는 십자수보다 일반 자수를 하니까요. 십자수는 생활용품을 위한 가벼운 자수지만, 옷에 사용한다거나 장식품, 예술품으로 쓰는 쪽은 고오급 자수입니다. 그런 자수는 로판의 여주인공 옷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합니다. 십자수는 소품 만드는 정도로 언급될까 말까 한데, 그마저도 기억에 없고요.

 

그러니까 옛날 옛적의 매우 대단한 영웅님은, 겉보기와는 다르게 매우 예민한 성격이라 십자수가 취미였답니다. 그래서 큰 전투를 앞둔 어느 날 밤에는 바늘을 놀려 대형 전투화-가 아니라 전투십자수화를 완성했다는 겁니다.

 

 

까지 쓰고 나니 떠올랐습니다. OTL

 

그보다 훨씬 더, 옛날 옛적의 소설이고, 지금 검색해보니 전자책으로도 나오지 않았지만-그리고 나올 가능성도 낮지만, 라그돌ragdoll님의 소설 중에 십자수 공방이 배경인 소설이 하나 있었습니다. 십자수를 비롯해 뜨개질과 같은 수예도 함께 다루는 '오후의 정원'이라는 공방에, 웬 조폭처럼 생긴 남자가 찾아오면서 시작되는 BL소설입니다. 그건 아예 배경이 수예점이고, 선물로 줄 십자수 작품을 직접 제작하는 내용이다보니 십자수 이야기가 메인이 될 수밖에 없지요. 하여간 이 소설에도 등장하지만 십자수 대형 작품은 하룻밤에 완성할 수 있는 수준이 절대 아닙니다. 절대, 절대로요.

아 물론, 그 영웅님께서는 (다크)엘프이기도 하고 물의 정령왕과 계약할 정도로 뛰어난 분이니 정령과 함께 십자수 작품을 완성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실이 딸려 있기 때문에 도트 찍기보다 더 번거로운 십자수 대작을 하룻밤, 길게 잡아야 12시간 만에 완성하기란 무리입니다. 그래요, 이것 역시 소설적 허용으로 둡시다. 그런 내용까지 일일이 검수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즐겁게 읽으면 되는 겁니다.-ㅁ-/

 

 

그런 고로 저는 다시 십자수로 돌아갑니다. 실 잘라서 풀어 놓은 것까지는 해놓고, 올해의 제 생일 선물을 저 십자수 완성작으로 받겠다는 야심이, 야심으로 끝나지 않게 노력해야지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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