쎄시아 폐하의 이야기는 전자책으로 이미 보았던지라, 왜 뒤늦게 종이책이 나오나 싶었습니다. 하기야 『비 매리지』도 종이책이 한참 늦었지요. 지금 다시 읽으면 다른 감상이 들겠지만, 하여간 쎄시아 님이 반바지를 입기까지의 여정은 매우 다난합니다.

 

 

최근 자발적 비혼모 혹은 비혼모 관련 이야기가 많지요. 보고 있노라면 쎄시아 님도 여건만 괜찮다면 비혼모를 생각할법도 합니다. 어차피 낳아만 놓으면 애 키워줄 사람은 많으니 나쁘지는 않은데, 주변에 그 수많은 정자제공자 중 마음에 차는 놈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 문제죠. 그나마 좀 나은 인물은 이미 약혼자가 있고, 그 약혼자는 자기가 한 때 남편감으로 생각했던 이라 차마 건들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고민은 종이책 3권 후반부, 외전에도 그대로 묻어납니다.

얼굴은 참 미남이지만 얼굴과 업무 능력 외에는 쓸 곳 없는, 그러니까 남자로서는 툭툭 쳐서 분리수거 해야할 인간과 술친구 하면서 보이는 반응이 그렇더군요. 세상에 쓸만한 남자 하냐 없냐는 한탄이 절로 나오는 시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나마 쓸만한 남자는 이미 다 주인이 있더라고요. 예시로 나오는 이들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본편은 유리의 분투기라면, 외전은 유리 외 여러 여성들의 분투기입니다. 로맨스요? 연애도 상대가 있어야 하는 겁니다. 이 책에서 쓸만한 남자라고 하나 남아 있던 놈은 유리 거고, 남은 남자들은 모두 쭉정이인 모양입니다. 유리의 여동생인 플럼이 연애하는 이야기를 슬쩍 엿들으면 그렇습니다. 물론 플럼의 주변에 있는 남자들이 하나 같이 대단하다보니 그 시대의 보통 남자들은 그에 비할 바가 아니죠. 비하기 미안합니다. 날마다 업무에 찌들어 잠도 안자고 일하는 레스타, 지고 지순하게 유리만 바라보는 에넌, 아내와 번갈아가며 육아를 도맡는 밴딧. 게다가 앞의 둘은 얼굴도 최고입니다. 밴딧은, 어떤지 모르지만 평균은 가지 않을까 합니다. 외모 언급은 주로 아름다운 이들에게만 붙다보니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는 기억에 없습니다. 밴딧의 외양 묘사는 있지 않았나 싶지만 외모 설명은 기억이 안납니다.

 

하여간. 간만에 종이책으로 붙잡고 읽으니 매우 유쾌합니다. 유리와 에넌은 마음고생을 매우 심하게 하지만, 쎄시아 폐하가 나타날 때마다 일어나는 일들은 독자를 포복절도하게 만듭니다. 특히 폐하의 탈주사건은 대단했습니다. 여기서 가장 안타까운 건 마리아가 아니라 일렉사 백작부인입니다. 어쩌다가 폐하의 고삐를 잡아 챈 덕에 이리도 고생하시나요. 산장에서 휴가를 즐기다가 끌려 나왔다는 이야기에 눈물을 흩뿌리며 달렸습니다. 그게, 한 번도 아닙니다. 최소 두 번. 아니, 소설에 등장한 이야기만 두 종이니 실제 따지면 그보다 더 많을 겁니다. 심지어 한 번은 탈주 장소가 너무 멀어서, 게다가 너무도 긴급한 상황이라 미트 파이를 자르다 말고 뛰쳐 나왔다는데....... 그 장면 읽으면서 한참을 웃었습니다.

 

 

따끈따끈한 식사 마련하고 느긋하게 먹으려는 찰나, 갑자기 업무가 떨어졌다면. 그 원한은 깊고도 싶습니다, 폐하. 부디 자중해 주시길.-ㅁ-

 

재겸. 『여왕 쎄시아의 반바지 3』. 위즈덤하우스, 2020, 15000원.

 

종이책 구입도 진지하게 고민중입니다. 하지만 집에 둘 공간이 없어요.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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