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자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호텔 매스커레이드』 시리즈와도 비슷합니다. 시리즈 세 권이 각각 다른 시기를 다루고 있고, 연작은 아닙니다.  전작 『시즈카 할머니에게 맡겨줘』에 바로 이어지는 소설은 아니고, 그저 시즈카 할머니가 나오긴 하나 파트너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책 뒷면에서도 나오지만, 파트너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폭군입니다. 그것도 시즈카 할머니보다 연하에, 성격 더러운 남성이요. 굳이 이미지를 표현하자면.... FGO의 이스칸달입니다. 모르신다고요? 그냥 모르시는 쪽이 속 편하실 겁니다.

 

 

고엔지 시즈카는 일본 법조계에서 20명 째의 여성 판사로 유명합니다. 그만큼 여성 판사가 드물다는 이야기겠지요. 지금은 퇴직하고도 시일이 좀 지났고, 지금은 나고야에 노인 범죄 등등의 강의를 하러 왔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추리소설이 그렇듯 강의 하러 왔다가 살인 사건에 휘말립니다. 정확히는, 강의 도중에 있었던 사건으로 시체가 발견되어, 거기에 고개를 들이민 나고야의 이스칸달(...)에게 끌려 갑니다.

 

이미지를 두고 이스칸달이라 표현한건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고즈키 겐타로 씨는 휠체어 탐정입니다. 휠체어를 탄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온순하고 얌전하고, 게다가 배리어 프리의 문제로 이동이 제한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나고야 내에서 고즈키(혹은 이스칸달)가 가지 못하는 곳은 없습니다. 건설업체 사장인데다 성격도 괄괄하고, 지역 정치인들과도 친하며 무엇보다 지역명사입니다. 시골에 사는 사람 중에 이 '지역명사'의 파워를 모르는 분은 없겠지요. 일본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지역 내에서 강한 영향력과 권력과 재력을 갖고 있는 사람을 두고 지역명사라고 부른다면, 이 고즈키는 그걸 주무르고 휘두르는데도 대단한 재능이 있으니 더 문제입니다. 막무가내로 공권력을 휘두르기도 하니까요. 민간인인데, 공무원을 자기 발 아래 두고 부립니다.

 

시즈카 할망은 또 거기에 휘둘립니다. 원래는 어쩌다보니 목줄로 고즈키 옆에 붙어 있게 되었지만, 서로 상극입니다. 정확히는 시즈카 할망은 매우 싫어하지만 고즈키는 의외로 이 깐깐하고 앞뒤 꽉꽉 막힌 나이 지긋한 할망에게 약합니다. 원래 연상의 여성에게 약하다더니, 진짜 그렇더라고요.

 

 

여기 실린 다섯 편의 이야기는 소소하고 또 있을 법 하지만, 사회적 약자가 끼어 있습니다. 하지만 약자의 슬픔을 이야기하는 것과 또 반대로, 이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방법은 사회적 안정망이나 건강한 방법이 아닙니다. 왜 제가 고즈키 할배를 두고 이스칸달이라 부를까요. 힘도 있고 머리도 있고 권력도 있으며 그걸 휘두를 줄 아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네 글자로 표현하면, 막무가내. 그리고 그 막무가내를 실현시킬 조건도 모두 다 있습니다. 시즈카 할망은 브레이크가 될 수 없고, 감정적으로는 이스칸달에게 동조합니다.

 

이 소설이 불편한 이유도 그 부분입니다. 소설 속에서 이지와 정의, 규칙, 질서를 담당하는 시즈카 할망은 고즈키의 억지 소리를 듣고는 침묵하는 때가 많습니다. 감정적이고, 자기 주장이지만 그게 감정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자기도 휘둘린다고요. 재판을 하면서, 판사로 근무하면서 내부의 부조리를 보고 법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접했기 때문에, 쾌도난마 식으로 휩쓸어 버리는 고즈키의 방식에 내심 동조하는 겁니다. 통쾌하다고요. 하지만, 이건 양날의 검입니다. 고즈키의 억지는 선의를 바탕으로 한 감정이고 약자를 돕기위한 움직이기 때문에 마음을 움직입니다. 바꿔 말하면, 같은 억지가 악의를 바탕으로 한 누군가의 억지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걸 두고 요즘 진상이라 부르지요. 진상고객, 진상손님.

악의와, 억지와, 진상은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통쾌할 수 있으나 그것이 정당하지 않은 정경유착과 지역 내 유착에 바탕을 두고 있으므로 개운하지 않습니다.

 

 

가볍게 읽는다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주인공인 유쾌한 추리소설이지만, 담고 있는 소재가 사회적이기 때문에 가볍게 읽을 수 없습니다. 이 소설의 패인이라면, 패인인 셈이지요.

 

 

나카야마 시치리. 『시즈카 할머니와 휠체어 탐정』, 강영혜 옮김. 블루홀식스, 2020, 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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