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딩 맛있는 지역은 여럿 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먹었던 푸딩 중 손에 꼽을만한 푸딩은 거의 홋카이도 제품입니다. 지금까지 먹어본 푸딩 중 기억에 남는 건 몇 안됩니다. 크림 같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질감보다는 약간 굳어 있는 쪽을 선호하거든요. 한국에서 만나는 푸딩은 크림타입이 많습니다. 진한 달걀맛과 거기에 지지 않는 우유맛, 그리고 연두부나 순두부 같이 뭉그러지면서도 부드러운 푸딩. 거기에 캐러멜 소스의 쌉쌀한 맛이 추가되면 환상의 맛을 자랑하지요. 하여간 그런 푸딩은 만나기 쉽지 않습니다. 가격의 문제도 없진 않을 겁니다.

 

그래도 최근 여행에서 기억에 남은 푸딩이라 하면 규슈 본거지의 닭농장에서 가져온 식자재를 사용한다는 체인 형태의 주점에서 먹었던 후식입니다. 이전에 센다이 여행 때 들어가보고는 홀딱 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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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요 미야기: 첫 끼니는 엉뚱하게 규슈의 닭 먹기

여행 수첩을 뒤지다가, 첫날 저녁의 음식점 이름을 안 적어 두었다는 걸 깨닫고 구글과 타베로그를 한참 뒤져 찾아냈습니다. 방문 당시에는 규슈 쪽 토종닭(地鷄, 지도리) 전문점이었다고 기억했는데 본 농장이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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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이 맛있으니 푸딩도 맛있을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우유가 맛있어도 푸딩의 품격이 올라갑니다. 품질이라 쓰려다가 질을 넘어 격의 수준으로 올라간다는 생각이 들어 감히 격이라는 글자를 들어봤습니다.

 

 

 

 

첫날 신치토세공항에서 구입한 과자들은 그날 저녁에 못 먹고 다음날 아침, 조식 후 간식으로 꺼냈습니다. 위장이 안 좋으니 여행의 재미가 덜하네요. 어디가서 뭘 먹어도 소화가 느릿느릿되니, 여행 동안 제대로 챙겨먹은 건 많아야 두 끼였습니다. 저녁은 커피와 함께하거나 건너 뛰었네요. 커피 안 마시면 위장장애도 사라질 거란 의견은 안 받습니다. 실험해보고 싶은 생각도 없거니와 커피 마셔도 저녁에 잠 잘 자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 아니, 잠 자체는 깊지 않은 것 같지만?

 

 

 

잠시 이야기가 엉뚱한 데로 흘렀으니 다시 돌리지요. 이 푸딩은 삿포로역 북쪽 출구에 있는 작은 매장에서 구입했습니다. 이름하야 아베 양계장. 이름이 마음에 안 들지만 그렇게 따지자면 아베노 세이메이도 같은 아베집안이니 멀리해야 맞습니다. 그러니 이름쯤은 눈감고 넘어갑니다.

 

푸딩과 달걀이 주력상품인 가게더랍니다. 달걀 살 생각은 못하고, 푸딩 세트가 매우 귀여워서 푸푸푸세트를 구입해봅니다. 이름 그대로, 3종류의 푸딩을 하나씩 구입하는 세트입니다. 기본 푸딩과 하얀커피푸딩과 치즈푸딩의 3종입니다.

 

 

둘째날 외출했다 사온 푸딩이고, 그날 저녁에 뜯었습니다. 맛만 보고 냉장고에 넣어도 괜찮으니 푸딩 하나를 한 숟가락씩 맛보는 호사를 누리겠다고 야심차게 외쳤지요.

 

 

푸딩 떠먹는 저 숟가락은 언젠가의 여행에서 사둔 걸 챙겨뒀습니다. 언제더라. 여행 갈 때마다 플라스틱 포크와 숟가락을 받아오다보니 아예 여행용 수저를 준비할까 싶더군요. 그래서 여행 갈 때마다 무지에 들러 하나씩 사오다가, 거의 풀세트를 만들었습니다. 젓가락은 아직 안 샀으니 다는 아니고, 그나마도 아예 여행용으로 알라딘 커트러리를 구입할까 고민중이니 바뀔지도 모릅니다. 젓가락만 알라딘으로 추가해도 좋지만 괜히 세트 구입을 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단 말입니다.

 

그래도 티스푼과 포크는 알라딘에 없으니, 키노토야 푸딩 사진에도 있는 그 숟가락과 포크는 여행 사진에 종종 등장할 겁니다. 참고로, 숟가락은 괜찮을 테지만 포크는 반입 금지라고 알고 있습니다. 젓가락은 어떨지 모르지만요.

 

 

집도 도구 이야기는 이쯤하고, 맛은 키노토야가 더 취향이었습니다. 아베양계장의 푸푸푸들은 대체적으로 진하더군요. 양계장에서 만든 푸딩임에도 크림 맛이 강합니다. 제 입엔 느끼하더군요. 아무래도 키노토야의 푸딩을 먼저 먹어 그런 것이 아닌가 싶은데.... 키노토야의 우유병 모양 푸딩은 기적과도 같았습니다. 연두부보다는 순두부에 가까운 질감, 그리고 그걸 떠 먹는 순간 달달한 크림맛이 입을 감돕니다. 그리고 파고 들어가 바닥에 닿으면 아래에서 올라온 캐러멜 소스가 기다립니다. 캐러멜 소스의 맛은 쌉쌀함. 달달함이 아니라 중후한 쌉쌀함-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쓴맛이라, 적절한 굳기와 질감의 푸딩과 잘 어울립니다. 섞어먹으면 그야말로 천상.....

 

 

그래서.

마지막 날 트렁크에 키노토야의 저 푸딩을 하나 넣고 왔습니다. 밀폐봉지에 넣고 잘 들고 와서 바로 G에게 넘겼고, G는 "어마무지하게 맛있다"는 표현으로 제 노고에 답했습니다. 저 빡빡하고 무거운 트렁크에 푸딩 하나 챙겨서 갖다 줄 정도의 맛이었습니다.

 

 

삿포로 여기저기에 신기한 푸딩이 많은 건 알고 있으니, 언제 G와 함께 간다면 푸딩 도전도 해보고 싶네요. 커피 도전만큼이나 궁금합니다.

 

 

커피 이야기가 나온 김에, 다음 편에는 커피 이야기를 써보지요.'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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