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야마 시치리의 소설은 한국에 번역된 음악 시리즈를 읽고는 고이 손에서 뗐습니다. 이 작가를 좋아하는 B님 덕에 다른 소설 정보도 얼핏 듣긴 들었지만 그 내용이 제가 견딜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하시더군요. 앞서 읽었던 작품도 결말이 매우 취향이 아니었던 터라 얌전히 포기하고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단, 올해 나온 『시즈카 할머니에게 맡겨줘』는, 결말 부분만 확인하고 매우 중요한 마지막의 반전을 보았던 터라 무난한 이야기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오늘 이 책을 완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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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묘. 매우 미묘.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기가 매우 미묘합니다.
초반에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상당한 호기심과 긍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제가 결말을 미리 보아서 이 책의 트릭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챕터의 제목이었습니다. 후기에 언급은 없지만, 챕터 제목은 길버트 체스터튼의 브라운 신부 시리즈 제목입니다. 오마쥬라고 봐도 될거고요. 열린책들에서 최근에 새로 번역해 냈지만, 북하우스 판으로는 지혜, 결백, 의심, 스캔들, 비밀의 순입니다. 집에 소장하고 있는 것도 북하우스판이라서요. 물론 원형은 북하우스책이 아니지만.(...)
따라서 이 소설도 브라운 신부 시리즈와 유사한 구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일본에서 자주 보이는, 남성 경찰과 머리 좋은 어린 여성의 조합이라 해도 틀리진 않습니다. 이 어린 여성의 뒤에 안락의자 탐정이 있다는 점이 아주 조금은 차이가 나지만, 이런 조합도 최근에 종종 보았습니다. 그러니 익숙하다면 익숙하지요. 제목에 적었던 불쾌감도 여기서 하나 시작됩니다. 그러니까 정의롭고 순수하며 올곧은데다 경찰같지 않은 경찰에, 법학부 재학의 어린 대학생. 그것도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마도카의 이미지는 청순하고 아름다우며 머리도 좋고 수줍은 여성입니다. 그리고 집밥도 잘합니다. 요리하는 장면도 여러 번 등장하니까요. 집 정리를 하지 않아서 시즈카 할머니에게 잔소리를 듣지만, 그래도 굉장히 만화 속에서 등장하는 것 같은 아가씨입니다. 그리고 이 경찰과 아가씨 사이에 감정이 흐르는 것도 당연한 수순입니다. 나이 차이는 꽤 있지만 그래도...(먼산)
하지만 본격적인 불쾌감을 불러 일으키는 건 이 소설 속의 경찰 조직 자체입니다. 읽고 있노라면, '그래, 한국 경찰은 얘들보다는 조금 나아.'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좋지 않아요. 또 이 소설의 검찰과 사법부 역시 최악의 조직입니다. 일본의 법조계가 亡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소설은 그런 문제점을 직접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래요, 이웃나라의 이야기이고 다른 곳에서도 들어 알고 있었으니 그냥 넘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폭 스위치를 누른 건 소설 속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정치 문제입니다.
남미 모 국가의 군부 독재자가 일본에 왔다가 살해당합니다. 그 사건을 보면서 시즈카 할머니가 말합니다.
"결국 나라는 통치자가 아니라 그 나라 국민이 만드는 것이란다. 지금까지 세계 정보를 차단당하고 독재자의 의중대로 움직인 사람들이 그 그늘에서 해방되었다고 해서 바로 사태가 호전될 것 같지는 않구나."
(마도카의 답변 생략)
"아니. 독재자가 사라진 것 자체는 나쁘지 않아. 문제는 암살이라는 수단을 취했다는 점이란다. 유혈 속에서 생겨난 것은 어떤 대의 명분이 있어도 올바르지 않아."
(마도카의 답변 생략)
"그런데 무조건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단다. -의 경우는 우연히 독재자가 이 남자였기에 이렇게 된 걸지도 몰라. 정치학자 중에는 멍청한 사람 여럿보다 우수한 정치가 한 사람이 더 낫다고 딱 잘라 말한 사람도 있으니까. 시대를 거꾸로 가냐,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거냐고 호된 반론을 들었지만 그 사람의 주장도 일리 있단다. 독재라고 하면 히틀러나 무솔리니가 바로 떠오르지만 고대 로마에는 독재자였지만 하드리아누스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같은 명군도 있었어."
"요컨대 독재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야. 독재자의 통치권이 정당하냐 아니냐. 말을 바꾸면 국민의 뜻이 그 독재를 인정하느냐 아니냐에 달렸단다. 독재 국가가 종종 문제가 되는 이유는 만은 독재 국가에서는 국민의 권리를 보장한 뒤에 자유로운 선거를 치르지 않으니까."
("그럼 드물게 보이는 명군이라면 독재라도 상관없다는 말이야?")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렇지. 하지만 물론 명군 이외에도 조건이 있는데 독재자는 언제나 국민의 감시를 받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국민에게 그를 파면할 권리가 있어야 하는 것."
("그게 독재라고?")
"말했잖니. 근래 변변치 않은 사람이 독재 정치를 하니까 이상한 선입견이 생겼을 뿐, 진짜 우수한 지도자인지 체크하는 기능이 완비되어 있으면 독재도 단순히 정치 형태 중 하나일 뿐이란다. 국가를 통치하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도 마찬가지고."
("가장 필요한 자질?")
"뭐 이것은 정치가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니지만 결코 자신의 권력을 자신을 위해 쓰지 않는 것.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다 마찬가지야. (중략) 그런 것에 털끝만큼이라도 사욕이 생기면 바로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단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마음을 조율해야 해. 그것이 사람 위에 서는 자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조건이야."
... 나 여기에 대고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진짜, 레이의 심정으로, 참담함 마저 올라옵니다....... 왜, 지난 탐라에서 본 은영전 감상기가 떠오르는 거죠.
https://twitter.com/peachpig0929/status/1195631766393905152
그 은영전 소설판 감상기 타래는 저기. 하여간 저 부분의 대화를 읽고 있는 동안 위화감과 불쾌감이 동시에 올라오더군요. 암살로 독재자를 죽여본 적 있는 국가의 국민이, 1인 독재 혹은 그 비슷한 것으로 국가가 망가지는 중인 옆나라 국민이 저 소리 하는 걸 보고 있노라니 위화감이 들고, 저게 자학개그는 아니고 진짜로 하는 소리라 생각하니 불쾌감이 올라오는 겁니다. 와아. 진짜 어디서부터 지적해야할지 답이 안나옵니다. 아니, 저건 성선설이잖아요. 우리는 기본적으로 성악설을 깔고 가야합니다. 특히 정치권은요. 권력이 있는 공간에서는 인간이 선을 행한다가 아니라 악을 행한다고 전제하고 갑니다. 그래야 방어를 할 수 있고요. 그걸 넘어서 독재라는 정치체재가 단순히 1인이 통치하는 정치체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1인 통치체재가 망가진 형태를 가리킨다는 건 왜 생각치 않나요. 저런 논리가 독재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도 있고요. 아니... .. ... 이 부분은 조금 더 제정신일 때 다른 곳에서 찬찬히 다뤄봅시다. 졸리고 흥분한 상태에서 다룰 주제가 아니니까요.
하여간 그런 연유로 이 작가 책은 앞으로도 죽 손대지 않는 것이 현명하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개구리 남자는 아주 조금 흥미가 돌지만, 이미 여러 모로 경고 받은 책이라 기대는 하지 않을 테니, 이번처럼 실망할 일도 없겠지요. .. 아마도 그럴 겁니다.
나카야마 시치리. 『시즈카 할머니에게 맡겨 줘』, 강영혜 옮김. 블루홀식스, 2019, 1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