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달걀™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삶은 달걀은 좋아하지만 추리소설 장르인 하드보일드, 삶은 달걀™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드보일드는 강퍅한 남성이 도시의 외로운 한 마리 늑대가 되어 그 밑바닥을 훑고 다니는 이야기라 그렇습니다. 많은 경우 하드보일드에는 여성이 등장하지 않으며, 등장하더라도 밑바닥 인생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이 외늑대 혹은 차도남은 나쁜 남자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매우 싫어하는 K모국의 K모 감독의 영화에 나오는 그런 남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입니다.

 

 

생태학 책을 보다보면, 그리고 늑대의 생태를 공부하다보면, 늑대도 사자들처럼 암컷 중심의 무리 사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도시의 외로운 한 마리 (수컷) 늑대는 하드보일드에서 추구하는 남성의 이미지와는 다를지도 모릅니다. 도시의 주류 사회에서 떨어져 나와 무리에 속하지 못하고 혼자서 거닐다보면 쉽게 도태되고 죽기 마련이니까요. 뭐, 인간은 야생 늑대와는 다르니 어느 정도 살아남기는 하는 모양입니다.

 

 

음주 포스팅도 아닌데 잠시 헛소리를 주절거렸군요. 오랜만에 하드보일드 느낌의 미국추리소설을 읽어 그럴 겁니다. 이런 소설은 아주 오랜만에 읽습니다. 최근의 독서는 거의 전자책이고, 종이책을 읽더라도 대부분 일본소설이었습니다. 그렇다보니 미국소설은 굉장히 오랜만입니다. 그것도 읽고 나서 하드보일드 느낌이다 싶은 것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하드보일드일 수도 있고, 아니면 패트리샤 시리즈나 니암 링컨 시리즈와도 닮았습니다. 이 소설을 아마도 하드보일드라고 모호하게 언급한 것은, 동료가 있지만 그래도 고독하며 아직도 혼자인 것처럼 보이는 주인공 때문입니다.

 

『괴물이라 불린 남자』는 시리즈의 두 번째입니다. 첫 번째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이고, 세 번째는 『죽음을 택한 남자』입니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는 결말부분의 약 10%를 확인했고, 『괴물이라 불린 남자』는 전체를 다 보았습니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는 에이머스 데커가 자신의 문제를 딛고 일어서는 이야기를 담았고, 두 번째 편인 『괴물이라 불린 남자』는 에이머스 데커가 본격적으로 사건에 뛰어드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세 번째 이야기는 아직 못 읽었지만 이것도 꽤 기대중입니다.

책 뒷면의 줄거리만 보면 그리 취향은 아닐 것 같은데, 왜 손이 갔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괴물이라 불린 남자』의 결말 부분을 확인하고는 조금 흥미가 생긴 상태에서,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의 결말 부를 읽고, 그게 굉장히 마음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거든요. 아니, 개인적인 취향 문제이기도 했지만 정말로, 『괴물이라 불린 남자』의 결말부는 제 취향의 스트라이크존에 들어갑니다. 정확히 맞았어요.

 

결말을 알고 봄에도 이야기를 읽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읽은 결말 부분은 데커 말고,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인 멜빈 마스가 정상적인 삶을 찾기 위해 새로운 출발을 하며 데커와의 끈끈한 우정을 남기고 떠나는 장면입니다. 혹시 모르니 이 부분은 슬쩍 가려 놓지만, 알고 보더라도 큰 문제는 없습니다. 책 뒷면의 줄거리를 보아도, 에이머스 데커와 비슷한 상황이 멜빈 마스가 어찌 될 것인지는 대강 짐작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 소설 역시 그러한 기대를 크게 배신하지 않습니다.

물론 배신 당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소설 내에서 뒤통수는 세 번쯤 맞았나봅니다. 반전의 반전이라기보다는 사건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일어난 여러 일들이지만, 그게 전개를 심각하게 해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전개를 해치는 부분은 주인공인 에이머스 데커 자신입니다. 이번 소설을 읽으며 생각했지만, 대체적으로 데커는 만능입니다. 소설의 전개와 실마리는 모두 데커가 끌고 나가며, 데커는 구글신을 포함한 각종 자료들을 읽고 파악하고 분석하여 진상에 접근합니다. 고전부 시리즈의 사토시가 자신은 데이터베이스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 적 있지만, 데커는 데이터베이스이며 그걸 분석하는 오레키 호타로적 능력도 지녔습니다. 아니, 고전부 시리즈의 팬이라서 읽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일단 말리겠습니다. 이건 일상 추리가 아니라 미국식 범죄수사물입니다. 그것도 FBI 계통의 스릴러, 경찰소설, 탐정소설이요. 첫 번째 이야기인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는 여는 장면 때문에 더 읽는 것을 포기했지만, 그리고 결말의 모습을 보고서 다음 권은 읽겠다고 생각했지만, 일본의 잔잔한 추리소설하고는 매우 거리가 있습니다. CSI나 NCIS보다는 덜 잔혹하지만 그래도 미국적인 추리 요소가 많습니다. 읽다보면 그렇게 생각하게 되더군요. 거기에 동료들과는 아직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어떻게든 살아 나가기 위해 애쓰는 데커가 안쓰럽기도 합니다. 완벽한 인물이 아니라 애초에 바닥까지 떨어졌던 사람이고, 어떻게든 일어서서 걸어 나오다가, 자기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이의 사연을 듣고 움직입니다.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 그리고 전개에 해당하는 이야기로는 매우 적절했네요.

 

결말부가 취향 직격이라는 건 그래서이기도 합니다. 마지막까지 약자와 뒤에 남은 자에게 손을 내미는 듯한 그 모습이 좋았거든요. 그리고 끈끈한 우정이란.... 그래요. 읽고 나면 판도라 상자 맨 바닥에 남은 희망을 엿본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듭니다.

 

오랜만에 집어든 미국추리소설이 입맛에 맞아 다행입니다. 이제 다른 책들도 더 읽을 수 있겠어요.

 

 

 

 

 

 

 

 

데이비드 발다치. 『괴물이라 불린 남자』, 김지선 옮김. 북로드, 2017.

 

서점 목록 확인하고는 깨달았습니다. 이거 네 번째 이야기가 올 7월에 나왔습니다. 내용을 보고 궁금한 김에 앞 시리즈 검색하면서 알게되었나보네요.'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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