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설에는 한남문학이니 어쩌니 하는 소리가 들리던데.. 아니, 그쪽은 양남입니다. 양남이든 한남이든 어쨌건 편향적인 가치관으로 쓴, 현재의 인권 수준에는 올바르지 않은 소설과 글들이 꼭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우리에겐 다양한 읽기 방법이 있습니다. 이름하야,




비판하며 읽기




이 말이 싫다면 비판적으로 읽기라는 것도 있습니다. 비판하며 읽기는 그 때 그 때 올바르지 않은 부분을 지적하며 읽는 방법이라 보고, 비판적으로 읽기는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읽는 것...이라고 제멋대로 생각합니다. 어쨌건, 그 문헌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시각과 가치관을 갖고 올바르지 않음을 지적하고 따져가며 볼 수 있으니까요. 따라서 고전은 고전이기 때문에 그 나름의 가치를 갖습니다.



블라디미르 나바코프의 『롤리타』도 그렇지요. 비뚤어지고 자기중심적인 시각을 가진 자가 화자이므로 이 소설의 이야기는 그대로 믿어서는 안됩니다. 애초에 작가도 저런 놈은 되지 맙시다라는 의도에서 썼다는데 엉뚱하게 저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하는 독자들이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읽는다면, 화자가 가진 자기 중심적인 생각과 사고방식, 행동을 하나하나 조목조목 따져가며 범죄행각을 봐보자고요. 그리고 롤리타의 입장에서 화자인 작가는 어떻게 보일까도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여러 모로 밈이 된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목 자체가 아이러니, 모순을 말하고 있지요. 그리고 김첨지의 말과 행동도 제목처럼 서로 따로 놉니다. 그런 아이러니를 두고 김첨지를 해석한다거나 그 사회에 비춰 다시 본다거나, 현대에도 이런 일이 벌어지는 가 등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고전은 많은 경우가 그 시대상과 사회를 반영하기 때문에 고전이 됩니다. 그 시대가 살아 있는 문헌인 겁니다. 그러하니 시대나 사회상, 배경을 빼놓고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문헌만 단독으로 들고 오면 이게 뭐? 소리를 듣기 쉽고요. 게다가 유행하던 문체도 매우 다릅니다. 문체를 두고 싸우다보면 정조의 실책으로 보기도 하는 그 문체반정 같은 사태도 벌어진다고요. .. 아니, 여기까지는 아닌가.

하여간 책만 덩그라니 들고 오면 안됩니다. 텍스트는 컨텍스트 속에서 읽는 겁니다. 그러니까, 작품은 그 전후맥락을 파악하고 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반쪽 이해밖에 안된다고요.




아침부터 주저리주저리 떠들고 있지만 요점은 하나입니다.


"빻은 텍스트라 비난하지 말고, 어디가 빻았는지 분석하자."


요즘 말로 그렇다는 겁니다. 고상하게 표현하면


"문제가 있는 텍스트라 비난하지 말고, 어디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조목조목 따져 분석 비판하며 읽자."




입니다.


독서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쪽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걸 제대로 하려면 읽기 능력과, 올바른 가치관, 그리고 그에 따른 체계적인 분석, 마지막으로 이 분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쓰기 능력이 필요하니까요.'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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