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서가를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발견한 책입니다. 빌리기 전에 훑어보니 사진 화보가 꽤 많더군요. 게다가 여러 남성복 장인들의 인터뷰도 실려 있어 덥석 빌렸습니다.

만. 정작 읽어보니 기대하던 것과는 책이 조금 다른 방향입니다.
읽기 전에는 남성복의 각 부분에 대한 유래 설명, 그리고 세부적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등장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읽다보니 설명이 있긴 있지만 그게 체계적이라기 보다는 재미있게 읽을 거리에 가깝고, 무엇보다 그림이나 사진이 없습니다. 책에 실린 화보는 책 맨 뒤에 소개한 것처럼 여러 사진작가들이 찍은 양복입은 남자들의 사진입니다. 젊은 남자뿐만 아니라 중년, 장년, 노년까지 나잇대도 다르고 스타일도 다른 것이 보는 재미가 있더군요. 하지만 그게 책에 소개된 수트의 각 부분별 차이를 세부적으로 확인할 수 있냐 하면 아닙니다. 보면서 헷갈리더군요. 몇몇은 가능하지만 몇몇은 또 아니라 수트를 원래 좀 알던 사람이 아니면 읽는 것만으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항상 캐주얼로만 입는 사람의 한계인 거죠. 그 부분이야 다른 수트, 양복정장 관련된 책을 추가로 봐서 확인하면 됩니다.

이 책의 묘미는 수트나 수트와 짝을 이루는 여러 소품을 제조하는 장인 인터뷰입니다. 영국에서 수트가 유래했지만 이탈리아나 미국 등에서는 각각의 취향에 맞게 다른 형태로 변화했다고 말하며, 이탈리아는 같은 국가 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또 다른 맛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소개하는 것이 나폴리 수트의 장인 체사레 아톨리니의 인터뷰입니다. 간략한 이력, 소개와 함께 대화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그 다음은 또 다른 테일러로 샤맛Sciaat의 오너이자 테일러인 발렌티노 리치. 이쪽은 첫 번째 인터뷰어보다는 젋습니다. 이 둘은 수트와 맞춤복 설명이었고, 거기에 이어 수트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셔츠와 타이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니 세 번째 인터뷰는 피렌체 스타일의 타이 브렌드 타이 유어 타이, 프랑코 미누치. 이 분 인터뷰가 재미있었습니다. 나폴리나 피렌체, 밀라노 수트의 차이를 세세하게 설명하더군요. 그 다음은 구두. 볼로냐의 구두 장인인 엔조 보나페. 그 뒤에는 여러 클래식한 브랜드의 운영자 등을 인터뷰합니다. 잘 모르는 분야의 인물들이지만 인터뷰가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클래식, 수트, 그리고 거기에 담긴 철학, 장인 정신 등등. 후르르 넘겨도 좋지만 곰씹어 볼 부분도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프랑코 미누치의 인터뷰였습니다. 모 마녀님이 보시면 고개를 끄덕끄덕하시지 않을까요. 아니, 시오노 나나미도 피렌체를 매우 좋아했으니까요.


p.153
N: 피렌체 스타일이란 어떤 것일까요?
F: 피렌체는 살면 살수록 피렌체만의 스타일과 아름다움을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 도시 자체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말입니다. 30~40년 전에는 피렌체 남성들이 이탈리아에서, 아니 세계에서 가장 멋지게 옷을 입는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피렌체는 수준 높은 수트와 구두를 만드는 장인들이 정말 많았고, 남자들은 그것을 우아하게 소비했습니다.(하략)


읽고 있노라니 시오노 나나미가 『남자들에게』에서 묘사한 마상창시합같은 결혼식 수트 대결이 떠오릅니다. 영국 vs 피렌체. 그거 다시 찾아 읽어봐야겠네요.


이 사람의 인터뷰는 그 뒤에도 재미있는 포인트가 하나 더 있습니다.


p.165

N: (중략) 혹시 선생님께서 좋아하시는 여성 브랜드가 있는지요.

F: 과장된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만약에 내가 여성이었다면, 나는 항상 샤넬만을 입었을 겁니다. 샤넬은 아주 시크하고, 아주 예쁩니다. 심플하면서도 자기주장이 분명합니다. 아르마니 여성복도 좋은 옷이라고 생각하는데 시크하면서도 심플하다는 면에서 그렇습니다. 샤넬에도 캐주얼이 있는데 항상 그 우아한 분위기나 스타일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나는 정말 샤넬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구두든 가방이든 샤넬의 모든 것이 좋습니다. 샤넬은 과장하지 않아요. 코코 샤넬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지금의 샤넬도 아주 멋지게 유지되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사이에 있던 나폴리와 피렌체의 수트 스타일 차이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그러고 보면 인터뷰가 유쾌한 것은 인터뷰이도 상대를 잘 알고 자주 만나서 안면이 있던 사이라 그랬던 걸까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데다 읽고 있다보면-저 역시 한 벌쯤, 한 켤레쯤, 한 세트쯤 장만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처럼 우아하게 늙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책입니다.:)



남훈. 『멋을 아는 남자들의 선택 클래식』. 책읽는수요일, 2016, 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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