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마 유스케라는 청년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건축 공부를 하고, 더 많은 것을 보고 싶어 독일 유학을 선택해, 몇몇 건축사무소에 신청했다가 근 4년간 독일에서의 건축 경험을 쌓습니다. 그리고는 일본으로 돌아와 건축사무소를 차리게 되었지요. 일본에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마작 모임에 초대됩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대학시절의 인연으로 알고 있던 야마모토 고지 화백이 마작 모임에 초대를 해준 겁니다. 그 자리에, 고시마 유스케가 오랫동안 팬이었던 연구자이자 저술가 우치다 다쓰루가 온다면서요. 평소 흠모하던 분이 온다는 말에 고시마는 덥석 초대를 받아 들여 마작 모임에 갑니다. 그리고는 거기서, 우치다 다쓰루의 집을 짓게 됩니다. ... 정말로요.


집짓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굉장히 뜬금없습니다. 마작 모임에서 친구가 데리고 온 젊은 건축가, 그것도 햇병아리에 햇콩 수준인 신예에게 자신이 은퇴 후 살 집을 지어달라고 한 겁니다. 그것도 아주, 매우 복잡한 용도의 집입니다. 그게 가능한가 싶은데 읽다보면 가능했던 모양입니다. 거기서 집짓기를 맡겨달라, 그러겠다는 이야기가 오갑니다. 토지를 구입하면 연락하겠다고 하더니, 정말로 집 지을 땅을 찾았다는 메일이 오고 그렇게 집을 짓게 됩니다.

...

농담 같지만 정말입니다. 다 읽을 즈음에야 건축주인 우치다 다쓰루-책 표기는 우치다 다츠루. 다른 곳에서는 우치다 타츠루-가 한국에도 상당히 알려진 학자라는 걸 알았습니다. 유명한 저술가라 알았다는 이야기가 책 머리에도 있었지만 그냥 넘어가다가, 몇몇 책의 제목이 익숙한 것 같아 트위터에 검색을 해보니 꽤 유명한 모양입니다. 트위터에 검색을 한 건 제 주변 사람들 중에 혹시라도 이 작가를 언급한 사람이 있을까 해서였는데 아닌 모양입니다. 하기야 책 내용이나 기타 등등이 제 팔로워들이 읽을 것은 아니었지요. 으음. 제일 가능성이 높은 ... 아냐. 그 분도 이런 쪽은 안 보실거야.


하여간 이 책은 그렇게 시작해, 땅을 확인하고 건축주의 의향에 맞춰 설계를 하고, 설계 안을 확정한 다음, 집을 짓는 이야기입니다. 집도 일반적인 공법이 아니라 일본 전통건축 방식을 섞습니다. 나무를 주로 사용하는 목조건축이고 거기에 흙을 사용해 미장을 합니다. 이전에 다른 책 리뷰할 때 언급했던 공무점이라는 단어도 여기서 계속 등장합니다. 사실 이건 공무점이 아니라 한국에도 해당되는 다른 단어로 바꿔도 좋지 않을까 싶었는데, 일본건축과 한국건축은 또 다르니까요. 완전히 같다고 할 수는 없으니 섞어 쓰는 것이 옳지 않은지도 모릅니다.


집을 짓는데는 나무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나카지마 공무점은 골조를 포함한 시공 전체를 담당하고, 나중에 방화문제로 나무벽이 아니라 흙벽을 사용하기로 하여 업체를 수배합니다. 또 기초 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하중이나 기초를 위해 구조 설계를 전문 업체에 맡기기도 하고요. 구조설계를 단단히 하고, 목골조를 올리고, 흙벽을 올린 뒤에는 내장도 봐야지요. 커튼은 텍스타일 전문가에게 맡기고, 가구도 들입니다. 거기에 앞부분에도 나왔던 야마모토 고지가 다시 등장합니다. 집에 있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였지요. 무얼 그렸냐고 하면, 오이마츠. ... ... 그러니까 우치다 다쓰루의 집은 단순한 주택이 아닙니다. 1층은 우치다 다쓰루가 합기도 도장으로 사용하며 그 부인이 노 공연을 올리기도 할 도장과 노 공연장의 겸용 공간이고, 그 위에 서재를 겸해 서생들도 함께 쓸 공부 공간이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공간도 있긴 합니다. 이런 곳이기 때문에 노 공연장에 있는 그 소나무 그림을 야마모토 고지가 그린 거랍니다.


그림 이야기를 끝으로 이 책의 짧지 않은 이야기도 끝납니다. 아니, 하나 더 있습니다. 집이 완성된 4개월 뒤에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이 집을 방문합니다. 우치다 다쓰루와도 여러 번 만났던 모양이군요. 그리하여 건축가인 고시마 유스케와, 건축주인 우치다 다쓰루, 그리고 손님인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집을 둘러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슬램덩크』나 『베가본드』의 연재와 관련된 이야기도 다수 등장합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역시,

P.279

고시마 유스케: 건축에서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을 향한 상상력을 발동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노우에 씨가 만화를 그릴 때는 누구를 향하여 또는 무엇을 향해 그리는지요? 구체적인 독자의 모습이 머릿속에 들어 있는지요?

이노우에: 누구를 향하여? 글쎄....

우치다: 염두에 둔 독자가 있나요?

이노우에: 있다면 그것은 제 자신인데요.

우치다: 아, 그래요? 나도 그런데요.(웃음)

이노우에: 그렇습니까?(웃음)

우치다: 예상 독자라고 할까, 자신이 읽고 싶은 것을 누구도 써주지 않으니까 어쩔 수 없이 내가 쓸 수밖에요. 이노우에씨는 어떤가요?

이노우에: 슬램덩크는 바로 그거였어요. 농구 만화가 없는 게 좀 억울해서요.

(하략)

이 부분이었습니다. 읽고 싶은 것이 없으면 본인이 쓰는 수밖에 없군요. 허허허허허.



맨 마지막의 대담도 재미있었고, 글도 전체적으로 재미있습니다. 일본건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재미있게 볼 수 있었고요. 이전에 읽었던 야마시타 카즈미의 ‘지어보세 전통가옥!’은 건축주 입장에서의 좌충우돌이라면, 이쪽은 건축가 입장에서의 이야기입니다. 이 집도 전통기법을 사용해서 그런지 이 책이 떠오르더군요.

고시마 유스케. 『모든 이의 집』, 박상준 옮김. 서해문집, 2014, 15000원.

앞부분은 컬러지만 책 중간은 다 흑백이라 사진이 아쉬웠습니다. 가격이 더 올라가더라도 컬러였다면 더 자세히 볼 수 있었을 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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