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밤의 일입니다.
그날은 아주 정신없이 돌아다녔기 때문에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이날 오후에 고속터미날에서 결혼식이 있었고 점심 때는 코엑스의 차 페스티발을 다녀와야 했습니다. 퇴근한 뒤 바로 코엑스로 가서 페스티발을 훌쩍 돌아보다가 차선을 하나 사고, 사발을 살까말까 고민하다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어 그대로 고속터미날로 향했습니다. 버스도 아니고 지하철도 아니고 걸어서 말이지요.
미리 지도로 위치를 파악했기에 설렁설렁 걸어가면 1시간 반 정도겠다 싶었는데 실제로도 그정도 걸렸나 봅니다. 강북이 강남보다 걷기가 훨씬 편하다라는 생각을 하게 해줬지요. 운동 삼아 걸어다니는 곳이 사대문 안인데, 모 대사님이 서울의 터를 잡아 사대문을 세웠으니 이쪽은 확실히 평탄합니다. 굴곡은 그리 심하지 않고요. 걷기 코스에서 오르막 내리막이 있는 곳은 창경궁 주변 부분만입니다. 그 외에는 다 평지라니까요.
한데, 지하철로 약 4정거장 거리인 삼성역↔고속터미날 사이는 그런 평지와는 딴판입니다. 오르막 내리막이 연속으로 나타나 사람을 지치게 만들더군요. 짐이 조금 많기는 했지만 평소 드는 것보다 심하게 많지 않았는데도 고속터미날에 도착했을 때는 완전히 지쳐 있었으니까요. 그러고 나서도 꽤 돌아다녔으니 집에 와서 일찌감치 뻗었던 것도 당연합니다.
날도 더운편이라 그날 밤엔 자면서 방문을 열어두었습니다. 한참 잠에 빠져드려고 하는데 어디선가 왜애애애앵~하는 소리가 들리는군요. 모기입니다. 나 물지 말고 그냥 가라라고 생각하고는 반쯤 잠이 들었는데 팔이 가렵고 다리가 가렵습니다. 벅벅 긁으면서 왜이러지라고 생각해보니 모기로군요. 이대로 놔두면 밤새 모기에게 시달릴 것이 뻔합니다. 숙면은 저 편 어딘가로 날아가겠지요. 그리하여 있는 힘을 다해 동생에게 SOS를 쳤습니다. 모기 좀 잡아줘!
잠에 취해 있었으니 있는 힘을 다해 소리 질러봤자 간신히 거실에 닿을 겁니다. 알았다는 동생의 대답을 듣고 뻗어 있는데 비몽사몽간에 동생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잠깐만. 불킬게."
(불켜고 모기 위치 확인. 침대 바로 옆 벽에 붙어 있었던듯)
"헉? 에프킬라!"
(현관 옆 수납장에 들어온 에프킬라를 들고 옴. 뿌림. 모기가 약을 맞고 쓰러짐. 휴지로 수거)
"와아, 엄청 빨았나보네. 빵빵해."
그리고 그 10초 뒤 암전. 기억이 없습니다. 아마 모기가 잡힌 뒤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나 봅니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동생이 웃으면서 생존본능이라 하더군요. 보통 잔다고 들어가면 10분도 걸리지 않아 그대로 잠이 드는데 들어간지 꽤 시간이 지난 제가 모기 좀 잡아달라고 잠결에 소리를 질렀으니 말입니다. 하하하;
제 손으로 직접 잡지 못한 그 모기에 대한 복수는 일요일 저녁에 다른 모기 한 마리를 잡음으로써 해소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가렵군요.(긁적긁적)
생존본능
2007. 7. 2. 09: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