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에 이 책 읽다가 체했습니다. 가볍게 체한 것이라 그냥 속이 안 좋고 마는 걸로 끝났지만 저녁 때 몸 컨디션이 안 좋아지면서 감기에 제대로 걸렸습니다. 열이 올라 반쯤 들떠 있는 상태가 된 것도 참 오랜만이네요. 허허허.



제 블로그에 자주 오시는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제가 소설 읽으면서 절대 피하는 코드가 강간입니다. 그것이 집단 강간, 즉 윤간이면 읽는 도중 더더욱 멘탈이 부서집니다. 그런 코드가 있음에도 보는 소설이 있지만 예외적인 것이고, 대체적으로 이 소재를 사용하면 소설을 피합니다. 절독하는 경우도 있지요. 그 대표적인 예가 『초룡전기 카르세아린』인데, 이건 연재 도중 제가 제일 싫어하는 코드가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고 고이 소설을 접었습니다. 뭐, 그 앞서도 조짐이 있긴 했지만 등장인물 중 한 명이 그런 일을 당하는 걸 보고는 더 읽을 수 없더군요.


앞 부분까지는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역시 시마다 소지, 역시 미타라이 기요시라고 생각했는데 읽으면서도 설마설마한 부분이 있긴 했습니다. 만, 정확하게 예상했던 그 상황이 제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 위가 멈추더군요. 아오.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읽고, 다 읽고 나니 과연 있을 법하다 생각했지만 말입니다. 그 부분은 시마다 소지의 창작일 겁니다. 증거가 전혀 없거든요. 하지만 충분히 있을 법하고 가능한 이야기라는 점이 더 무섭습니다. 그래서 읽고 나서는 어디까지가 역사적 사실인지, 어디까지가 가상인지 헷갈릴 지경에 몰렸습니다. 허허허.




이야기의 발단은 『어둠 비탈의 식인나무』와 이어집니다. 따라서 이 소설을 먼저 읽는 것이 좋으며, 그리고 가능하면 사전에 올리버 색스의 책을 읽는 것이 좋습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현재 절판이지만 .. 이라고 적고 다시 검색하니 2015년에 재출간되었는데, 하여간 이 책을 사전에 읽으면 도움이 됩니다. 소설 중반부에 등장한 미타라이의 추리는 읽는 내내 올리버 색스의 책을 인용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참고서적에는 다른 책들이 올라 있습니다. 다른 어려운 책보다는 올리버 색스의 책 한 권을 보는 쪽이 이해하기 더 쉬울 겁니다. 그에 대해서는 권말의 저자 후기에 자세한 이야기가 나와 있으니 참고하시면 되고요.


시간의 흐름상 『마신유희』는 이 이야기의 뒤에 있습니다. 앞부분에 등장하듯 이 소설의 사건이 있은 1년 뒤에 미타라이 기요시는 유럽으로 건너갑니다. 일본을 버리고 건너갔다고 투덜대는데 거의 마지막에 참여한 사건이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하여간 아는 사람의 연락을 통해 받은 어느 편지에는 이미 사망하고 없는 어떤 미국인에게 보내는 사죄의 글이 있었습니다. 사죄의 글 말미에는 하코네의 호텔 후지야 매직룸에 있는 사진을 보여주고 싶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호기심이 동한 미타라이는 이시오카를 끌고 후지야에 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호텔에서 오랫동안 보관하고 있었다는 사진과 만나지요. 사진은 1919년에 찍은 것으로, 유리건판 사진이라 딱 한 장만 남아 있습니다. 거기에는 후지산 근처의 이시노코 호수에 정박한 러시아 군함이 찍혀 있습니다. 그 군함은 다음날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고 하고, 내륙의 호수에서 찍힌 러시아 군함은 수수께끼로 남아 유령 군함으로 불립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군함에 대한 이야기는 미타라이가 풀어냅니다. 그날의 주변 상황이 왜 그래야 했는지, 어떻게 내륙 호수에 러시아 군함이 있었는지는 아주 손쉽게 풉니다. 그리고 그걸 읽으면서는 정말로 폭소했습니다. 이렇게 간단한 트릭일 줄은 미처 몰랐거든요. 이 트릭 자체가 아마 B님과 C님의 취향에 맞을 겁니다.


그리고 소설 속에 등장하는 어떤 일이 발생할 확률을...


"김일성과 노태우가 악수할 확률이고…."


애초에 미국 저널리스트가 저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신기합니다만.



시마다 소지. 『러시아 유령 군함 사건』, 김동주 옮김. 영상출판미디어, 2016, 12000원.


상당히 마음에 들어서 아래 올린 『영선 가루카야 기담집』이랑 같이 주문하고 싶지만, 과연 주문하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허허허허. 앞에서 언급한 그 코드가 심히 좋지 않은 곳을 스쳐서 말입니다.;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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