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R. 애증의 그 이름. 정시 운행으로 유명하다고는 하나 1년 전의 운행 사고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사고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작년 1월에 키가 겪은 운행사고는 시간이 부족하지 않은 때라 괜찮았습니다. 그 때는 고베에서 교토가는 사이 길목 어드메에서 화재가 났지요. 그 때문에 신칸센을 포함한 모든 열차가 지연운행되었습니다. 고베에서 출발해 교토역에 들어가고 보니 외국인을 포함해 교토역에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한가득이었습니다. 정말 그날은 종일 간사이 JR역들이 붐볐을 겁니다.


키가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여행 마지막 날에 운행사고를 두 건이나 겪었기 때문입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체크인은 7시 전에 했습니다. 키는 일행을 끌고 교토역에서 7시 10분 조금 넘어 출발하는 하루카를 탑승하려고 했지요. 그 전에 몇 번 교토역에서 아침에 출발하는 하루카가 30번 승강장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출발하는 것을 봤기 때문에 이번에는 확인하겠다며 전광판을 봅니다.

...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하루카는 7시 49분에 출발하는 것이 가장 빠른 것으로 나옵니다. 당황해서 역무원에게 물어보니, 역무원도 뭔가 지친 모양새로, '트러블이 일어나서 결행이다.'라는 답을 돌려줍니다. 출발 승강장은 일단 7번홈입니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7번 홈으로 일단 이동합니다.


그 당시 키가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호텔에서 조금 일찍 나올 걸 그랬다는 후회입니다. 그 직전의 열차는 6시 45분이었고, 이건 문제 없이 출발했을 것 같거든요. 전날 저녁에 열차 시간을 확인하면서는 15분과 49분 열차 둘 중 어느 쪽을 탈까만 물었지 그보다 일찍 나간다는 생각은 안했습니다. 아침에 서둘렀으면 6시 45분 차를 타는 것도 가능했을 건데, 그럼 시간이 너무 많이 남을 것 같아 말았거든요. 캐리어 끌고 돌아다니는 것도 일입니다.

(그보다는 다들 6시에 일어나는 것도 버거워 하는데다 준비하는데 1시간은 아니더라도 꽤 걸리니 6시 45분 열차를 타려면 6시 전에 일어나야 한다는 부담이 더 컸지요.)



한국은 혹한이었으니 교토는 한국보다 따뜻합니다. 그럼에도 승강장은 그늘이라 춥습니다. 뭐라도 사올까 생각했지만 일행들은 아침을 안 먹어 그러는지 안 먹어도 된다고 합니다. 뭔가 사올까 했지만 사오면 어차피 나눠 먹어야 할 것 같아 고이 포기합니다. 커피라도 마시고 싶은데 그럴 여유도 안되네요.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이 같이 여행을 가면 이런 문제도 발생합니다. 이런 때는 집사인 키가 조금 참아야지요.



7시 49분에 열차가 출발하는데 열차는 사람으로 가득합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래서 교토에서 출발하는 시점에서 이미 입석이었습니다. 신오사카에서도 사람이 더 탔고, 텐노지에서도 더 탑니다. 그랬는데, 트러블은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텐노지를 출발한 뒤였나. 하루카가 정차하지 않고 지나치는 역 하나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그 뒤처리 때문에 열차는 25분 지연. 아마 시간 맞춰 7시 15분 차를 타려 했던 사람들은 낭패도 이만저만한 수준이 아니었을 겁니다. 아주 여유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사람들보다는 조금 더 낫다고 생각하며 역에서 내립니다. 에스컬레이터의 줄이 길어서 계단을 캐리어 들고 오르고, 체크인하러 올라가니 9시 40분. 항공기는 11시 이륙입니다.


무사히 체크인하고, 출국 수속도 한참 걸려 하고 나니 10시 20분. 이정도면 무난한가요. 스트레스가 쌓였던 건지 키는 로이스 매장에 들어가 여러 초콜릿을 담습니다. 일행 중 한 명은 여기서 여행 선물을 모두 사겠다며 로이스 파베를 쓸어 담는데 결국 환전해온 엔화가 부족해 키에게 재환전 합니다. 애초에 출발할 때부터 키는 엔화를 넉넉히 가져가니 환전할 거면 950원으로 환전하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 분은 그 앞서도 1만엔, 공항에서도 1만엔 환전했지요. 원화는 바로 받았습니다.


로이스 계산대도 사람이 많아 한참 줄을 서서 기다립니다. 계산을 끝마치고 나오니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같이 여행 오기로 했다가 못온 그분. 아마 여행 다녀오고 나면 한 번 얼굴 보자고 할 건데, 여행 선물 챙기는 걸 그 직전까지는 기억했으면서 로이스 매장에서는 홀랑 잊었습니다. 다른 일행들도 그 전날까지는 기억했으면서 선물 사는 사이에는 살짝 잊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다시 사러 들어가기에는 계산대 줄이 깁니다.

집사답게 키는 본인이 여분으로 구입한 퓨어초코와 먹으려고 챙긴 아몬드초콜릿을 고이 바치기로 합니다. 어차피 이건 공동경비로 뺄거니까요. 막판에 로이스에서 충동구매한 감도 있으니 오히려 이익이라 생각해봅니다.




항공기에 탑승하고 나니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키는 짐을 정리하고 일행이 준 센베를 우물거리며 기내식을 기다립니다.






기내식은 오히려 인천공항 것보다 이쪽이 키의 마음에 듭니다. 입맛에 따라 다르지만 저기 보이는 저 빵은 달걀부침이 들어간 샌드위치입니다. 소스를 겨자소스로 해서 살짝 코 끝이 찡한 것이 맛있습니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다른 소스보다 겨자소스를 써서 샌드위치를 만들어 보렵니다. 마요네즈나 케찹보다는 칼로리가 낮으니까요.

...

이 상황에서 키가 칼로리를 따지는 것은 여행 내내 수면 부족과 저녁 식사에 시달려 몸이 부었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수분 섭취도 잘 안되었지요. 평소 2리터를 마시다가 하루 물 두 컵 정도로 확 줄었으니 몸이 피곤하고 감기 기운이 있는 것도 당연합니다.




이차저차 다사다난했던 여행도 끝이 보입니다. 입국장을 나가니 드디어 집이라는 안도감과 해방감이 동시에 몰려옵니다. 이제 집에 들어가서 씻고, 가방 정리하고 쉬겠다고 생각하는데 키를 일행이 붙잡습니다.


"이제 밥 먹으러 가자."


엄, 아니되옵니다. 월요일 새벽같이, 아니, 새벽에 출근해야 하고요. 월요일은 내일입니다.


"어, 그럼 차라도."


아니, 솔직히 피곤합니다. 체력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키가 그렇게 말하자 일행들은 아쉬운 듯이 다음에 모이자고 약속을 잡고는 각자의 집으로 가는 버스를 찾아 갑니다.




이리하여 3박 4일의 여행은 끝을 맺.........나요?




덧붙임.

끝이 아닌 것은 분명 다음 모임 때 여행 뒷 이야기와 '키가 엄청 고생했어요!'라는 말이 나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이번에 못 갔으니 다음엔 나도 같이 해서 가자'라는 말이 나올 수 있고, 그러면 저는 혼신의 힘을 다해 G4를 방패로 빠질 겁니다. 과연...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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