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인지 불행인지 실제 여행을 가게 된 두 사람-각각 MC, SC로 지칭-은 교토여행이 처음입니다. 그러니 여행 코스는 상대적으로 편하게 짤 수 있지요. 업무 폭탄이 떨어져 여행을 못간 DB는 교토를 돌아본 적이 있어 주요 유적지는 갔다고 하지만 다른 둘은 그렇지 않으니 명승지를 골라 가면 됩니다. 사실 DB는 그래서 여행을 상대적으로 쉽게 포기할 수 있었을 겁니다. 이미 가본 곳이고, 안 갔다고 해도 그 다음에 가도 된다는 생각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건 키의 짐작일뿐이고 진짜 어떤지는 모릅니다. 추측이니까요.


어쨌건 키는 여행을 준비하면서 주요코스를 이틀로 나눴습니다. 도착한 첫날은 일단 아라시야마. 점심 즈음 교토에 도착할 것으로 생각하면 아라시야마에 가서 두부를 먹고 구경하면 되겠다 싶습니다. 그러고 시간되면 교토역 둘러보고요.

이틀째는 동산에 있는 유명한, 자살희망자가 많기로 유명한 곳에 갔다가 그 아래 언덕 두 개를 지나 기온으로 나와, 유명한 시장에 가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설렁설렁 가는 거죠.

사흘째는 그보다 북쪽에 있는 유명한 은색 절을 갔다가 산책로를 걷고, 기독교계 대학교에 들렀다가 그 다음 일정을 결정하자 싶었습니다. 하여간 여행 일정은 대체적으로 느슨하게 잡고 다른 분들이 어디를 가고 싶어하는지 맞춰 가기로 했습니다.


네. 이번에도 집사는 자기 무덤을 스스로 팝니다. 일정은 그 때 그 때 유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 생각보다 스트레스 많이 받습니다. 그 때마다 대응을 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그 당시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습니다. 혼자 다닐 때는 내킬 때 숙소 들어와 쉬고, 내킬 때 카페 들어가고 하면 되니까요.





빌린 모뎀을 들고 기다려 만나서, 셀프 체크인을 하고 제 가방만 수화물로 부칩니다. 다른 사람들은 기내용 가방을 가져왔더군요. 아침 일찍 출발하는 건데도 사람이 많습니다. 오전 6시. 아직 잠자고 있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 왜이리 북적북적한가요. 하여간 키는 정신 없는 분들을 이끌고 일단 롯데면세점에서 상품을 인도 받고 신라면세점에 들릅니다. SC님의 동생이 향수를 부탁했는데 그게 이 매장에만 있는 모양입니다. 그냥 온라인으로 구입하는 것이 편하지 않나 생각하지만 그런 것에 익숙한 분이 아니니까요. 눈이 좋다는 평을 가끔 듣는 키는 면세품 인도장에서 신라면세점에서 사용할 수 있는 쿠폰을 발견하고 건넵니다. 100달러 이상이라 그 자리에서 1만원 할인 받을 수 있어요.

이차저차 면세점에서 구입하는데 시간이 걸려 시계를 보니 탑승 시작 20분 전입니다. 빵집에 줄을 서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주문하고 얻어먹습니다. 지금까지 고생했으니 두 분이 집사를 긍휼히 여겨 사주는 것쯤은 얻어먹어도 됩니다. 맛은 딱 파리빵집맛이네요. 하지만 탑승 시작이 된 터라 서둘러 먹고 서둘러 마시고는 항공기에 탑승합니다.



항공기는 자리배치가 2-4-2입니다. 가운데 4에 셋이 나란히 앉습니다. 면세점 카탈로그가 굉장히 두껍네요. 살 것은 없지만 언젠가는 사고 싶다 생각한 것이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그것이랑 관계 없고요. 나중에 발렌타인 30년산은 한 병 사보고 싶습니다. 부모님 드릴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몫으로요. 술 마시지도 못하면서 괜히 그런 생각을 하며 키는 들뜹니다. 사실 키뿐만 아니라 그 누구라도 여행 전, 공항에서는 살짝 들떠 있지 않나요. 음, 뭐라고 해야하나. runner's high나 sugar high처럼 살짝 머리가 도는 겁니다.




그 와중에 한국에서 구입하는 것보다 저렴하나 싶어서 찍은 사진. 하지만 키는 스타워즈의 팬이 아니니 그냥 사진으로 만족합니다.






마음이 급해 기내식 사진이 흔들렸습니다. 아주 차가운 샌드위치네요. 오른쪽의 T 얼굴에 가려진 부분에는 작게 자른 감자를 익혀 버무린 감자샐러드가 있습니다. 으깬 감자가 아니라 감자의 아삭거림이 살아 있습니다. 샌드위치는 오이와 토마토, 햄치즈였다고 기억합니다. 오렌지 주스는 단번에 들이켰지요. 물도 챙기고 커피도 마십니다.

그 와중에 키 옆에 있던 MC가 중얼거립니다. '이런, 또 샌드위치네.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샌드위치 안 먹을걸.'

파리빵집에서 산 것이 샌드위치였거든요. 오랜만에 타는 비행기라 잊고 있었는데 샌드위치가 이렇게 나올줄은 몰랐습니다. 기내식으로 간식빵이 나올 거라 말할 걸 그랬나요.(키무룩)



여행 가기 전에 M님이 팁을 주셨습니다. 간사이공항에서 녹색창구 2층에 외국인 전용창구가 따로 있다고요. 이코카하루카를 사려면 2층으로 가야한다고 합니다. 가방 들고 올라가기는 어려우니 아래에 캐리어를 두고 올라가라 이야기도 하셨지요.

일단 간사이공항 입국수속의 줄은 길었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뛰어서 생각보다는 빨리 입국수속을 받습니다. 수화물은 얌전히 기다리고 있더군요. 그걸 끌고 입국 수속하고, 다시 또 열심히 뛰어서 녹색창구에 닿습니다. 11시 조금 전. 음, 하루카는 한 시간에 한 대 정도만 있고 오래 기다려야 하니까 가능한 빨리 처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하여 키는 두 분께 캐리어를 맡기고 2층으로 뛰어 올라가 카드 세 장을 구입해 옵니다. 미리 물어서 키티를 받을지 일본 전통 그림으로 받을지 확인했습니다. 중국인 관광객들을 지나 카드를 무사히 구입하고는 내려옵니다. 11시. 휴우. 11시 16분 열차는 놓치지 않겠네요.




자유석 칸도 사람이 많습니다. 일단 되는대로 자리에 앉아 기다립니다. 키는 와이파이 모뎀을 켜고 일행에게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가르쳐줍니다. 인천공항에서 미리 일러둔 덕분에 두 사람은 로밍 없이 와이파이를 사용하기로 합니다. 음, 근데 제대로 썼는지 모르겠어요. 핸드폰 설정을 바꿨으니 그랬을 거라 믿는 수밖에 없지요.

하여간 메일 보낼 때 와이파이 모뎀 들고 간다는 이야기도 썼지만 그게 뭐였는지 모른 모양입니다. 자동 로밍이 되느냐 물었으니 말입니다. 키는 기억을 더듬어 데이터가 문제고, 그건 와이파이만 사용하는 것으로 설정을 바꾸면 되고, 그러면 문자와 통화요금만 챙기면 된다고 가르쳐 줍니다.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여행 갈 때 키가 자기 핸드폰을 로밍해서 들고 간 것은 기억에 없습니다. 여행만 나가면 핸드폰을 꺼두니까요. 핸드폰은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이코카하루카를 사겠다고 결심한 것은 하루카 왕복권에 이코카, 즉 한국의 티머니카드 같은 것을 주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찍어보니 카드에는 1500엔이 들어 있더군요. 여행 다니는 동안 버스 1일권도 안쓰고 카드를 유용하게 잘 썼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뒤에 다시 다루지요.



숙소에 체크인합니다. 숙소 사진은 미처 찍지 못했지만 교토역 바로 앞에 있는 호텔입니다. 뉴한큐, 혹은 신한큐. 도착 시각이 오후 1시 경이어서 일렀던 지라 아직 체크인은 안된다길래 짐을 맡깁니다. 그리고 아마존에서 주문해 호텔에 도착한 짐들도 확인합니다. 아마존 주문 중 날짜가 간당간당해서 키를 걱정하게 만들었던 것도 다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키는 도착해서 체크인할 때도 분리 주문되어 날아온 물건들이 어떤 건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어질어질합니다. 그도 그런 것이 주문자는 셋, 주문품은 주문자에 따라 G1+J(1+1)+P(1+1+1+1)로 나뉘었거든요. 부탁받은 것이 하나 더 있었고, 각각을 수령지에 따라 나누면 M1+(G1+J1)+(J1+P1+P1+P1)입니다. P1 중 하나는 주문품이 여행 기간 중에 도착할 것 같지 않아서 취소해서 사라졌습니다. 키가 여행 전에 물품 주문 건으로 머리를 싸맸던 것도 저 복잡한 상황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건 괜찮은데 P의 주문품은 총 15종에 네 곳에서 주문 확인 메일을 받았습니다. G는 두 곳, J는 두 곳. M님의 몫은 아예 따로 주문을 하셔서 저는 찾는 것만 했습니다.


하여간 호텔에서 받아야 했던 J1+P1×3은 전부 도착했습니다. 네 개의 택배 상자를 확인하고 짐을 맡긴 뒤, 잠시 쉬었다가 점심을 먹으러 갑니다. 멀리 가지 말고 그냥 교토역 쪽에서 해결하자 싶어 교토역 앞 지하, 포루타로 갑니다.



나중에 MC가 언급한대로 교토역 지하의 포루타는 교토나 간사이 지역에서 먹을만한 음식을 편하게 모아 놓은 곳에 가깝습니다. 돌아다니며 괜찮은 것을 고르자고 합의했는데, 그 때까지 밀가루만 먹었으니 이번에는 밥을 먹자고 MC가 말합니다. 충실한 집사답게, 키는 지하의 음식점 안내 그림판을 보고 하나 하나 통역합니다. 여기는 함박스테이크, 여기는 라멘, 여기는 가격이 조금 비싸고요, 여기는 돈가스. 근데 여기 도요테가 있네요. 코요테가 아니라 도요테. 물론 실제 발음은 다르지만 오사카에서 유명한 그 가게말입니다. 키가 여기 괜찮을 것 같다고 함박스테이크와 밥이 나올 거라 추천하자 다른 곳은 적절한 대안이 안된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이동합니다.





그러고 보면 포루타에서 밥을 먹은 것은 한 번 정도라 여기가 들어와 있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사람이 많아 기다리면서 음식 모형을 보고 각각을 설명하고 안내합니다. 이것이 집사의 자세! 세트메뉴와 단품이 어떻게 다른지도 설명합니다. 하지만 모시는 분들이 묻는 모든 것에 대답할 수는 없습니다. 키도 도요테는 처음이니까요.



3명이라고 이야기하고 조금 기다리니 자리로 안내합니다. 10-15분? 그 정도 기다렸나봅니다. 자리 잡고 앉아 각각의 주문을 확인하고, MC와 SC가 도요테 정식을 고를 때 토마토찜함박을 선택합니다. 피곤해서 그런지 조금 스튜 같은 것이 먹고 싶었거든요. 직원을 불러 주문하는 것도, 그리고 빵과 밥 사이에서 선택하는 것도 키의 몫입니다. 일행은 한자를 읽을 줄은 알지만 일본어를 할 줄 아는 것은 키뿐입니다. 키의 일본어 수준이 얼마냐고 MC가 묻기도 했는데 솔직히 잘 모릅니다. 그냥 중간 정도라고 생각할뿐이지요.






일본어를 듣고 해석해서 대응하는 것은 총무이자 가이드인 키의 몫입니다. 공동비용도 모두 키가 사전에 환전해서 쥐고 있고, 각각의 개인비용만 들고 왔으니 문제 없습니다. 넉넉하게 엔화를 들고 가 혹시 더 필요하다면 환전도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다행히 그 사이 엔화가 올라서 개인 환전을 해도 손해보는 일은 없었습니다. 950 고정 환율로 바꿔줬거든요. 그래봐야 MC만 두 번 환전했습니다.






런치 세트를 주문한 터라 토마토가 나옵니다. 이게 전채인데 구성이 참 재미있습니다. 바닥에는 참치를 넣은건가 싶은 마요네즈샐러드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껍질 벗긴 차가운 토마토를 앉히고 케찹과 마요네즈를 섞은 소스를 뿌립니다. 근데 이게 아주 맛있네요. 토마토가 찰진 것이, 입에서 차갑게 사르르 녹아내립니다. 충분히 입맛을 돋우는 역할을 합니다.





잠시 뒤 나온 도요테 함박. 구운 감자와 채소, 포일로 포장한 고기가 나옵니다. 내오는 직원이 뜨거우니 포일을 칼로 자르라는 것도 잊지 않고 번역해 알려줍니다. 그 뒤에도 내내 키는 음식점 통역을 맡았지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주문도 도맡습니다. 들어갈 때 몇 사람인지, 들어가서 메뉴 결정한 것 직원 불러 전달하고, 음식 나오면 누구 음식인지 정리하고, 마지막의 계산까지. 아, 물론 계산 후에는 영수증 모아 수첩에 적어두었다가 정산용 엑셀파엘에 정리합니다. 뭐, 혼자 여행할 때도 하는 일이니 가이드가 되어서도 합니다. 총무 겸 집사니까 당연히 하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조금은 씁쓸합니다.






그래도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행복합니다. 다른 두 분은 밥을 시켰지만 키는 빵을 시킵니다. 나온 음식을 보고 다른 분은 '또 빵?'이냐며 놀라는데 키는 밀가루를 선호합니다. 그런 고로 빵을 무시하는 어느 혼자미식가™의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토마토소스에 넣고 찐 함박 스테이크는 당연히 맛있습니다. 새콤한 토마토 소스, 그리고 한 면만 익힌 달걀프라이. 이 둘의 조합은 최고입니다! 참 맛있게 잘 먹었지요.




그리고는 여기서 느긋하게 수다를 떨다보니 두 시를 훌쩍 넘겼습니다. 이제 슬슬 다음 장소로 이동할 시간이니 집사인 키는 두 분을 안내하여 교토역으로 들어갑니다.



(계속)




덧붙임.

읽어보시면서 대강 느끼시겠지만 키는 집사니까 당연히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즉, 동행인이 말하지 않아도 먼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겁니다. 그게 사실은 포인트이자 문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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