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소설에서도 불로장생의 꿈은 여럿 보입니다. 엘프나 드래곤이 인간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건 힘을 가졌기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종종 엘프는 인간보다 약한 존재로 등장하기도 하니까요. 외모 자체가 빛난다고 설정되어 있기도 하지만 더 큰 것은 인간의 입장에서는 불로장생에 가까운 정도로 늙지 않고 오래 살기 때문일겁니다. 둘다 소설 속에서 어떻게 설정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엘프는 인간의 두 배 이상의 수명을 지니며 드래곤은 그보다 훨씬 더 오래 삽니다. 인간이 늙어 죽을 때에도 같은 나이의 엘프는 애송이 수준에 지나지 않으며 드래곤은 애송이가 아니라 어린이더라고요. 어쩌면 불로장생을 이루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이런 판타지적 존재들을 만들어낸 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문제는 종종 불로와 장생을 헷갈린다는 것. 현대 의학은 수명을 늘리고 있지만 이 수명은 불로보다는 장생쪽입니다. 장생은 2세기 전에 비해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했지만 불로는 그보다는 덜한 것 같습니다. 나이를 먹으면 수 많은 병과 싸우며 건강한 몸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지요. 건강한 몸으로 산다는 것은 불로와 관련된 이야기고, 오래 산다는 것은 장생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평균수명이 늘어난 건 후자고, 전자하고도 관련이 있긴 하지만 미약합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것은 수명 자체보다도 노화, 늙는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왜 인간은 늙고, 왜 생물은 늙어가는가에 대한 이야기지요. 노화의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수 많은 설이 있고, 수 많은 연구가 있지만 어느 하나가 딱 그 원인이나 이유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생물이란게 그렇게 단순한 물건이던가요. 거기에 하나의 조건만 통제해선 노화를 늦춘다거나 방지할 수 없습니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여러 노화 조건이나 노화방지 조건들은 양날의 검입니다. 장단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지요.


글이 부드럽게 읽히고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날잡고 보면 하루만에도 다 볼텐에 아침 출근시간에만 짧게 보다가 어제 저녁에서야 다 읽었습니다. 나온지는 꽤 된 책이라 지금은 더 많은 이론이 나왔을 테지만 기존의 여러 연구에 대한 오해를 풀고 편견을 부수는데는 충분합니다. 무엇보다 장수마을의 비밀을 읽고는 허탈해서..-_-;


책 내용 중 기억에 남는 것만 모아 적어봅니다.


과거에 의학이 발달하지 않은 문화권에서는 대개 유아와 소아 사망률을 과소평가하여 기대수명이 증가했다.(중략) 생태학자 에드워드 디비는 이러한 요인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왜곡하여 높게 추정한 기대수명(고대 그리스와 로마는 30대, 중세 유럽은 거의 50세로)을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수없이 발표했다. 그 문제를 면밀히 연구한 사람들은 모두 디비가 추정한 기대수명이 너무 높다고 했지만, 그가 발표한 내용은 교과서와 유명 언론에 자주 실렸다. (p.72 하단)


고대 그리스와 중세시대의 평균 수명이 저기 적힌 것보다 더 낮았다니..ㄱ-;

그래서 그 뒤에 언급이 됩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그 당시 평균 수명 생각하면 젊었을 때 죽은 것이 아니라고요. 다만,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 같은 사람들, 혹은 이집트의 파라오 등은 유명한 사람들이고, 관리를 잘 받은 인물들이니까요. 보통 사람들보다는 오래 살았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뒤에는 완경-월경이 끝난다는 것이 다른 생물들과 어떻게 다른 모습을 보이는가를 이야기 하네요. 수컷(...)은 그렇지 않지만 암컷은 월경, 즉 번식 가능한 시기가 지난 뒤에도 꽤 오래 삽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월경을 한다는 것은 에스트로겐이나 프로게스테론의 분비로 인한 여러 암의 발생 확률을 높이는 것이고,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런 호르몬의 장점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이것 역시 양날의 검입니다.



뒷부분에는 전자파와 암의 발생률에 대한 연구도 나오네요. 연구 설계가 쉽지 않은 이유도 여기 나옵니다. 이 당시의 연구는 전화 인터뷰를 했던 모양인데...



사회경제적 지위가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를 보기는 쉽다. 환자 전화번호의 마지막 뒷자리를 무작위로 섞어 대조군을 결정하고 이 거주자들에게 전화를 한 후, 그 집에 적당한 성과 연령의 어린이가 있다면 연구에 참여해달라고 부탁을 한다. 낮 동안에 집에 전화를 받는 사람이 있는지 자동응답기가 있는지 그 사람들이 다시 답신을 하는지 등은 대조군이 될 수 있는지 여부에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그들이 이런 연구에 참여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십중팔구 사회경제적 지위와 관련이 있다. (p.265 상단)


그래서 연구 설계가 참 어렵습니다. 모든 변인을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 외에 기억에 남았던 것은,

-실험실 쥐의 먹이 배급은 자유 배급. 원하는 먹이를 무제한으로 먹다가 일부 제한한다고 해도 .. 먹이 제한을 하면서 생리적으로 많은 것이 변하기 때문에 그 중 어느 것이 노화의 원인인지 집어내기가 쉽지 않음.

-집쥐와 생쥐도 생리적인 차이가 나는데, 인간과는.....

-먹이 제한으로 노화가 더뎌진다는 것은 틀리지 않지만, 스트레스 호르몬은 증가함. 이러한 스트레스가 건강에 도움이 되는가 아닌가는 그 때 그 때 따라 달라요.

-원숭이에 대한 먹이 제한 실험은 종마다 다른 반응을 보임. 실험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오래 걸림. 그리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실험예산이 확보되느냐의 문제도 있음.




하여간 노화 관련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으니 관심있으시다면 볼만 합니다. 전 재미있게 봤습니다.:)



스티븐 어스태드. 『인간은 왜 늙는가: 진화로 풀어보는 노화의 수수께끼』, 최재천, 김태원 옮김. 궁리, 2005, 12000원.



위에 빼먹고 안 적은 것. 장수마을의 비결 말입니다. 100세 이상의 노인이 많다는 곳들 중 일부는 출생년도를 공식기록 등으로 확인할 수 없답니다.(...) 출생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 한에서는 일본 오키나와가 확실히 장수마을이 맞다는 군요.


왜 늙는가, 즉 노화에 대한 세 가지 이론은 직접 확인하시어요.:) 실은 적는다는 걸 까맣게 잊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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