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선에 있을 때 가장 무섭습니다. 그러니까 아예 미국 배경인 공포영화들은 저것이 다른 나라의 상황이기 때문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반쯤은 강건너 불처럼 볼 수 있는 거죠. 하지만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받아 들이는 반응은 다릅니다. TV나 핸드폰과 같은 것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소설, 아니면 학교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한 영화 등이 무서운 건 그래서입니다. 감정이입의 농도가 짙거든요. 그래서 더 무섭게 느껴지는 겁니다.


잔예는 사실 공포소설로서의 완성도도 꽤 높지만 사람을 공포로 끌고 들어가는 완성도가 더 높습니다. 솔직히 공포를 조성하는 그 자체보다 아주 자연스레 공포로 끌고 들어가는 모양새가 참 대단합니다. 게다가 그 조사와 그 연구는 단순히 괴담을 수집한다는 수준을 넘어서거든요. 그래서 읽다보면 오노 후유미의 다른 소설과는 궤를 달리하는 그런 공포감을 맛볼 수 있습니다. 괴담을 넘어선 공포를 창조합니다. 어헉;ㅂ;

그렇다고 읽고 나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은 안드니 안심하세요. 다만 귀가 얇거나 잘 속는 분들은 읽지 않으시길 권합니다. 자칫하면 동티납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괴담을 수집하고 있다는 아주 예전의 글을 보고 어느 독자가 보내준 편지입니다. 편지에는 자신의 집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는 쿠보라는 사람의 경험담이 있습니다. 지금은 괴담을 수집하지 않지만 그래도 흥미가 생겨서 연락을 주고 받고 직접 만나기도 합니다. 이야기는 작가인 나와 쿠보라는 사람의 두 사람의 시점에서 왔다갔다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내가 정보를 찾고, 쿠보에게 조언하고, 쿠보는 그 조언에 따라 이리저리 조사하고 하는 상황으로 넘어갑니다.


흐름은 이렇습니다.

1.쿠보가 괴이를 경험했다.

2.이웃에 그런 현상을 경험한 사람이 없나 확인한다.

3.그러다가 내가 수집한 괴담 중에 예전에 같은 아파트(빌라)에 살던 사람이 보내준 내용이 있었다.

4.이웃에게서 괴담을 수집하면서 그 괴담 혹은 괴이가 발생한 시점을 추적한다.

5.추적 (그리고 다시 4-5 반복)


이야기를 듣고, 괴이를 겪은 사람과 인터뷰를 하고, 다시 다른 괴이를 겪은 사람을 찾고하는 과정에서 그 지역의 역사를 쫓아갑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쿠보와 비슷한 사건을 겪은 사람을 쫓는 것이었는데 판이 점점 커집니다. 같은 아파트뿐만 아니라 같은 단지에서도 괴이를 겪은 사람이 있고, 그 시점이 처음에는 몇 년 단위로, 그 다음에는 그 이전 세대로, 그 다음에는 전쟁 직후로, 그 다음에는 전쟁 전으로. 이렇게 시기가 왔다갔다 합니다. 30%쯤 지났을 때, 나는 교토에서 남편과 함께 살기 위해 집을 짓느라 바빠 움직이지 못하고(00년대 중반) 그 사이 쿠보는 신사나 절, 그리고 지역에서 오래 살았던 토박이들을 통해 아파트가 있었던 지역의 역사를 추적합니다. 쿠보도 원래 글을 쓰는 사람이라 그런지 추적하는 것이 꽤 익숙하더군요.'ㅂ'



그리고 저도 그 즈음부터 눈치챘습니다. 같은 직업을 가진 남편. 하지만 스타일이 달라서 서로 따로 집을 가지고 살고 있다가 교토에 땅을 사고 집을 짓습니다. 그리고 같이 살기 시작하지요. 여러 조사를 할 때는 대학 동아리 후배에게 부탁합니다. 그 중에는 작가도 있고 괴담수집가나 연구가로 유명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쯤되면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 이상하지요. 아니, 애초에 서술자는 작가입니다. 시작할 때부터 괴담을 수집한다고 밝혔잖아요? 하하하하하......

그렇습니다.-_- 야마모토 슈고로 상을 수상했다는 이 작품은 처음에 후보에 올랐을 때 '왜 소설이 아닌데 후보에 올랐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하하하하하하......;



중반이 넘어가고 70%쯤 되면 왜 이 책의 제목이 잔예인지 이해할 수 있고, 이전의 미쓰다 신조 책처럼 뒷맛이 씁쓸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끝까지 읽고 나면, 사람 마음 가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같은 괴이를 만나더라도 어떤 사람은 괜찮고 어떤 사람은 그 속에 빠집니다. 쿠보는 이걸 보균자라고 하더군요. 같은 상황에 놓여도 특별히 어떤 사람이 괴이를 만나고 빠지는 것은 그 사람이 괴이나 공포에 빠질 어떤 인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요. 궁지에 몰렸거나, 같은 상황을 겪어서 공포에 몰릴 사람인거라고요.

그러니까...

아기 울음소리와 발정기 고양이 우는 소리가 비슷하다는 것은 아는 사람만 압니다. 보통은 잘 모르더군요. 같은 소리를 들어도 어떤 사람은 아기 울음소리로 들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고양이 우는 소리로 들을 겁니다. 만약 이게 괴이였다면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상황일 수도 있고요. 그와 유사한 이야기가 소설 속에서도 등장합니다.(먼산)



따라서... 영향을 잘 받는 분께는 그리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꽤 재미있게 보았고, 괴담을 추적해나가는 과정 자체가 연구자들이 연구 주제를 탐구하는 것-특히 민속학의 필드 연구방법으로 보였기 때문에 흥미로웠거든요. 연구자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도 그렇고요. 그런 의미에서 B님은 상당히 재미있게 보실 겁니다. 이미 『시귀』도 읽으셨고 하니.. 음훗훗훗훗.



역자 후기를 읽고 알았지만 괴담을 수집하고 있다는 내용은 실제 오노 후유미가 적었던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나온 것이 고스트 헌트랍니다. 음..; 이것도 다시 읽긴 해야하는데 무서워서 손 못대고 있습니다. 공포영화도 못보는 주제에, 어렸을 적에는 추리소설 표지가 무섭다며 가위눌렸던 주제에 지금은 어떻게 이런 소설 보나 싶습니다만. 하하하.


하여간 보실 때는 주의가 필요합니다.'ㅂ';



오노 후유미. 『잔예』, 추지나 옮김. 북홀릭(학산문화사). 2014, 12000원.



번역은 조금 걸리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매끄럽게 번역하긴 했지만 현재 표기법으로는 쿠보가 아니라 구보죠. 최근에 나온 책이지만 현재의 일본어 표기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つ를 쓰가 아니라 츠로 표기한 것도 그렇고요. 그리고 198쪽에는 핫코다 산의 이야기에 옮긴이 주석을 달면서 주석에는 핫코'타'로 적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토요토미로 적은 곳도 있군요. 그런 부분이 걸리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매끄럽게 읽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중간의 특정 사건은 서래마을 쪽에서 일어났던 어떤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데..(먼산)




읽으면서 굉장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공포소설이지만 충분히 추리소설 요소도 있어서 올해의 소설로 올려도 될법하다 싶은 정도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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