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 리쿠, <흑과 다의 환상>, 북폴리오, 2006

온다 리쿠 작품 중에서는 굽이치는 강가만 제외하고 다 읽은 셈입니다. 굽이치는~은 엔딩 부분만 훑어보고는 엔딩이 제 취향이 아니었기에 피했습니다. 아무래도 뒤 끝이 남는 느낌이라 말입니다. 깔끔하기로 말하자면 가장 먼저 출판되었던 밤의 피크닉이 가장 깔끔하고, 끈적하기로 말하자면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 가장 심합니다. 삼월은~은 비슷한 연작 소설들의 기반이 되기 때문에, 그리고 실험적인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더욱더 알기가 어렵다는 것이겠지요.

따지고 보면 흑과 다의 환상도 삼월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보리의~가 직접적으로 연장선상에 있다면-3장을 떼어서 확대해 썼습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예고살인과도 비슷할지도요? 하지만 엔딩이 다릅니다-흑과 다는 보리보다는 앞서 나왔으면서 미묘하게 연장선에 있습니다. 출간 순서대로 읽었다면 아마 보리를 읽을 때의 느낌이 굉장히 달랐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흑과 다의 환상은 마흔을 앞둔 네 친구들(남자 둘, 여자 둘)의 여행으로 시작합니다. 보통 남자 둘 여자 둘, 그것도 30대 후반의 사람들이라면 부부동반 여행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들은 각자 자신의 배우자들을 놔두고 모였습니다. 참 독특하지요. 한국에서도 이루어지기 힘든 여행이라 생각하지만 일본에서도 쉽지는 않을거라 봅니다. 이들 네 사람이 각각의 장에서 주인공이 되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시선도 옮겨 갑니다. 순서는 리에코, 아키히코, 마키오, 세쓰코의 순입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엔 이 순서가 약→강으로 밖에 안 보이는군요.OTL
참으로.... 이들의 관계는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부럽습니다.(개작의 소지도 다분합니다. 음하하;)
아직은 책을 막 읽어낸 시점이라 뭐라 정리해아할지 감이 잡히지 않지만, 제 자신에게도 상당히 의미있는 소설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뭐랄까, 저 자신을 안에서 들여다 볼 수 있게 한-그리고 제 남성취향을 꽤 재미있는 방향으로 되새길 수 있게 한 소설이지요.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의 저는 리에코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제가 원하는 것은 마키오의 상태입니다. 그런 제가 친구, 혹은 파트너로 두고 싶은 것은 아키히코나 세쓰코입니다. 읽어보시면 쓴웃음을 지으실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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