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참 길지요. 전시회를 열었던 미술관 이름이 좀 깁니다. 三菱一号館美術館, 미쓰비시이치고칸 미술관. 이걸 들어가기 전까지 구글지도에서 찾을 때마다 매번 미쓰코시로 검색해서 헷갈렸습니다.
하여간 여기는 긴자와 도쿄역, 히비야역 근처 어드메에 있습니다. 홈페이지에서는 니쥬바시마에(二重橋前) 역에서 가는 것이 가장 가깝다고 하네요. 앞에 올렸던 북스피어 이벤트(링크)랑 묶어도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아마 허리가 남아나지 않았을 겁니다.

미쓰비시이치고칸미술관은 모리미술관과 비슷한 시기를 다룬 The Beautiful전을 합니다. 일본어로는 자 뷰리후루.... 하여간 ザ·ビューティフ 英國 唯美主義 1860-1900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고요. 유미주의라고는 하는데 한국에서는 아마 탐미주의라고 번역할 겁니다. 그래서 유미주의가 아니라 탐미주의로 통일해서 적었습니다.

제목: The Beautiful 영국 탐미주의 1860-1900(ザ·ビューティフ 英國 唯美主義 1860-1900)
기간: 2014. 1. 30 - 2014. 5. 6
장소: 미쓰비시이치고칸미술관

원래는 라파엘전파를 보려고 했던 거라 이쪽은 갈 생각이 없었는데, 전시 발표 하고 나서 작년 9월부터 11월까지였나, 그 사이에 양쪽 티켓을 묶어서 2천엔으로 할인하는 이벤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차피 라파엘전파만 1500엔이나 하니까, 500엔 더주고 그냥 탐미주의전도 같이 보자고 해서 이쪽을 선택했습니다. 둘 다 보고 나온 지금 생각하면 잘 했지요. 탐미주의전이 더 마음에 들었으니까요.

지금은 당일 관람한 티켓을 들고 가서 보여주면 다른 곳의 요금을 200엔 할인해준다네요. 라파엘전파전을 보고 당일에 탐미주의전에 가서 티켓 구입할 때 보여주면 200엔 할인을 해주고, 그 반대도 성립한다는 겁니다. 대신 다른 종류의 할인과 중복 할인은 안된답니다. 그리고 한 사람에 한해 1회 할인한다고요.
참고로 탐미주의전이 1600엔, 라파엘전파전이 1500엔입니다. 200엔이면 2천원 정도 할인되니까 상당하죠.'ㅂ'


저는 C님께 부탁해서 선행발매 티켓을 구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다시 한 번 감사를..;ㅁ;


모리미술관을 나와 A1출구로 들어가면 히비야선으로 연결이 됩니다. 히비야선을 타고 몇 정거장 타서 히비야역에서 내리면 걸어서 미쓰비시이치고칸미술관에 갈 수 있습니다. 저는 방향을 헷갈려서 조금 헤맸는데 그리 멀지 않아요. 걸어서 4분이라는데 충분히 가능합니다. 아무래도 갈아타지 않고 한 번에 움직이는 것이 편하고, 비용도 덜 들어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어떤 선을 타느냐에 따라 다르긴 합니다.



건물 찾기는 아주 쉽습니다. 그 근처까지 와서 어디에 있나 이리저리 두리번 거리다보니 탐미주의전을 알리는 깃발이 펄럭이는데, 그 와중에 붉은 벽돌로 지은 눈에 확 들어오는 건물이 한 채 있습니다. 주변은 전부 고층 빌딩인데 그 건물 혼자 고고하게 서 있습니다. 그게 미쓰비시이치고칸미술관입니다.
문제는 길에 면한 쪽이 정문이 아니라는 것. 그쪽은 출구더군요. 건물 옆을 통해 정원으로 들어와야 정문이 있다는데, 정원으로 들어가고서 굉장히 놀랐습니다. 장미도 피어 있는 유럽풍(으로 추정되는;) 정원이 있더군요. 그 정원 안쪽에 ㄱ자 모양 건물의 입구가 있습니다.

입구에 짐을 맡길 수 있는 곳이 있던데 이번에도 그냥 들어갔습니다. 여기는 3층 건물인데, 들어가면 먼저 3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로 안내합니다. 3층으로 올라가 한 층을 다 보고 나면, 그 다음에는 2층으로 내려오고, 1층으로 내려오면 마지막에 관련 상품 판매소를 거쳐 밖으로 나가는 구조입니다. 그러니까 그 건물 전체를 천천히 다 둘러보는 셈입니다.

원래 미술관으로 설계된 곳이 아니기 때문에 작고 어두운 분위기더군요. 사람이 바글바글하면 못 견디겠다 생각했는데, 이날이 개관 당일이라 그런지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평일 낮인 것도 있을 테고요.


관람자의 대부분이 여자였다는 것도 신기하고.ㄱ-;


쓰다보니, 메모지에 순서를 기록하지 않아서 어느 쪽이 먼저인지 뒤죽박죽입니다. 공작 접시가 먼저 나왔는지, Foregone Conclusion이 먼저인지 헷갈리네요. 기억이 맞다면 접시가 먼저, 그림이 나중이었던 것 같군요. 그러니 공작 접시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공작이 그려진 접시도 꽤 인상 깊었습니다.



제목을 적어두지 않아서 못 찾을거라 생각했는데, 다른 그림을 찾는 도중 발견했습니다. VAM에서 따로 전시 기획을 하면서 만들었던 페이지 같은데, Aestheticism을 다룬 페이지가 있습니다.(링크)

William De Morgan. Charger. 1888.

하여간 넓은 것이 거기에 샐러드를 듬뿍 담아도, 아니면 공작 요리(..)를 담아도 재미있겠다 싶습니다.
돌아보니 방 제목이 Art Workman입니다. 탐미주의의 시작은 역시 크래프트 운동 쪽인가보군요.

저도 이쪽 지식은 그리 깊지 않습니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 공장의 대량생산품에 반기를 들고 수공업craft으로 생산한 물건이 더 좋다고 주장하는 운동이 있었다는 정도만 압니다. 그런 운동의 시작점은 존 러스킨이었고, 러스킨과 관계가 있던 여러 예술가들이 참여했고, 그와 관련이 있는 부호들이 후원했다는 정도만 알고 있지요. 라파엘전파도 이쪽과 상당히 관련이 깊다고 알고 있습니다. 양쪽에 발을 걸친 예술가들이 여럿 있었으니까요. 에드워드 번 존스랑 윌리엄 모리스가 대표적이겠지만요.


그래서인지 탐미주의전에는 윌리엄 모리스와 관련 있는 물품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게 제가 라파엘전파전보다 탐미주의전을 더 재미있게 본 이유이기도 하고요. 게다가 그림보다는 물건이 많으니 보는 재미가 더 좋습니다.


윌리엄 모리스의 데이지 벽지도 있던데 그림이 큼직큼직한 것이, 한국의 집에는 잘 안 어울리겠다 싶었습니다. 이런 건 그야말로 큰 집의 큰 벽에 잘 어울릴 것 같아요. 그게 아니라면 띠로 두르거나 해서 포인트로 써야겠지요.

로세티는 여기에도 있습니다. 걸려 있었던 것은 보르지아 가(The Borgia Family: 링크)인데 생각보다 굉장히 작습니다.


VAM의 컬렉션 설명은 조금 더 자세하네요. 테이트 미술관의 갤러리도 어차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지만.'ㅂ';



Burne-Jones, Edward Coley (Sir), born 1833 - died 1898 (maker). The Garden of the Hesperides. 1882. (링크)

그림이긴 한데 템페라화입니다. 실물을 보면 굉장히 화려합니다. 헤스페리데스의 정원은 황금사과가 열려 있는 정원이지요. 그리스 신화에서도 몇 번 등장했다고 기억합니다. 그 왜, 세 여신의 싸움-트로이 전쟁의 시작이 되었던 그 황금사과도 이 나무 것이지요. 근데 용이 너무 귀엽게 생겼네요. 하하하.;
그림 크기가 커서, 이런 걸 걸어 놓을 정도의 집이면 얼마나 커야 하나 싶었습니다.


로제티의 그림을 두고 톤 다운이 되었다고 적었는데 어떤 그림인지 모르겠네요.-ㅁ-;


프레데릭 레이턴(Frederic Leigton)은 그림이 굉장히 취향입니다. 아무래도 테이트미술관보다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 쪽이 작품 검색하기가 쉽지 않습니다.=ㅅ= 구글에서 검색해서 VAM의 주소를 달고 있는 그림을 찾는 쪽이 빠릅니다.;



Frederic Leighton, Pavonia. 1858-1859. (링크)

이 그림이었을 겁니다. 이에 이어진 것이 공작 깃털 습작인데, 이건 조지 프레데릭 와츠(George Frederic Watts)의 그림입니다. 차마 블로그에 올릴 수 없는 야릇한 그림..(읍읍읍)
Valentine Cameron Prinsep의 그림도 있었다고 기억하는데 메모에는 남녀 구분이 안되는 묘한 그림이라고 적어두었습니다. 확실히 전 번 존스 그림이 취향에 맞습니다. 그 뒤에 나오는 자는 소녀 그림(아마도 스케치, 습작)도 부드러운 그림이라 말이지요.

로세티의 그림 중에는 그림 삽화가 아닐까 싶은 작은 판화도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시메온 솔로몬(Simeon Solomon). 이 사람에 대한 설명도 있었습니다. 글 작성하면서 검색해보니 에쿠니 가오리의 『반짝반짝 빛나는』에서 언급된 모양이군요. 그 당시에는 검색해도 이 사람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았나봅니다. 전시회에 나온 설명을 보니, 유대계 집안에서 자라 미술학교에 들어가서 두각을 나타내고 굉장히 뜨던 시점에서 동성애자로 고발을 당하고 체포됩니다. 그리고는 화가로서의 모든 지위를 상실하고 결국 구빈원에서 가난하고 쓸쓸하게 죽어갔답니다. 그 당시 영국에서 동성애는 죄악이었지요.
왜 갑자기 이 이야기를 꺼내냐면, 솔로몬의 그림 중 세 청년(혹은 소년)이 서 있는 그리스풍의 스케치가 있는데 굉장히 에로틱하더랍니다. 그림을 보는 순간 라파엘전파전에서 본 설명이 주르륵 떠오르더군요. 분명 이정도의 나체 그림은 그 시대에도 종종 있었는데 왜? 이렇게 보는 순간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돌리고 싶어지는지.;

(테이트 미술관에서 시메온 솔로몬으로 검색해보니 이사람 확신범이지 않나 싶은게, 그림 중에 다윗과 요나단(링크), 사포(링크) 그림이 있습니다.-ㅅ-;)


줄리아 마가렛 카메론(Julia Magaret Cameron)의 세피아톤 사진(링크)은 순간 사진인지 그림인지 헷갈릴 지경이었습니다. 허허허. 사진 맞습니다. 굉장히 아련하면서도 라파엘전파의 분위기를 잘 살린 것 같은 그런 사진이더군요.


그 다음 방에는 쟈포니즘이 있었지만 패스. 그리 기억에 남는 것은 없습니다. 그림보다는 인테리어 디자인 스케치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아일랜드의 리머릭에 있는 어느 성을 위한 벽장식이라는데, 그 뒤에 다른 인테리어 스케치를 보고서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건축하는 사람들의 그림은 참 무섭습니다. 허허허. 매우 섬세한 장식, 세밀한 그림, 거기에 채색까지. 보고서 손이 근질근질해지더라고요. 저는 이런 그림도 참 좋습니다.


Classic Ideals. 그 공간의 주제였습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로 돌아가자는 그런 분위기?


Sir Lawrence Alma-Tadema. A Foregone Conclusion. 1885. (링크)
그림검색을 했더니 VAM이 아니라 Tate에서 나오네요. 의외로 탐미주의 전시의 그림들이 큼직큼직합니다. 이것도 꽤 큼직하고요. 그리스로마시대의 분위기를 잡았습니다. 재미있네요.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아래의 의자.


원본 그림은 너무 커서 링크만 달아 놓습니다. 위의 공작 접시 링크랑 동일합니다.(링크) 그림 크기가 1.5메가나 되어서 작은 걸로 올립니다. 너무 작지만 큰 걸로 올리기는 부담 되니까요. 꼭 큰 사진으로 보세요. 실물을 보면 앉아보고 싶습니다. 엉덩이를 딱 붙이고 앉아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참 행복할 것 같습니다. 그 때 조금 많이 피곤했지요.



습작이나 대작을 위한 밑그림(study)들도 훌륭합니다. 하지만 그 뒤에 나오는 앨버트 무어의 그림이나 다른 그림들도 노먼 록웰의 그림이 떠오르는, 계몽사 삽화같은 그림들이로군요. 세밀하고 빛이 들어오는 느낌이고, 사진을 찍은 것처럼 특정 시점의 사진을 찍은 것 같고.



위의 링크에서도 나온 Aestheticism Movement and the Gravenor Gall. 이 주제에서 가장 깊게 남은 그림은 탐미주의 전시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그림으로 한 손에 꼽을 작품입니다.


George Frederic Watts. Love and Death. c.1885-7.(링크)

이 작품이 나올 당시 20대였던 오스카 와일드에게 찬사를 받았다는데 말입니다. 그럴만 합니다. 그림 크기가 2476-1168. 절로 올려다 볼 정도의 크기입니다. 박력이 넘치더군요. 근데 그 옆에 걸린 그림은 같은 작가의 프시케.(링크) 보통 사랑은 그리스 신화의 에로스가 상징하니까 사랑과 죽음의 사랑도 에로스라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게 본다면 옆에 프시케를 놓은 것은 유머로 보입니다. 남편이 저렇게 주눅들어 있다니.-ㅂ-;
프시케는 굉장히 소녀 같은 분위기라 차마 못 올리겠더랍니다. 메모에도 적었군요. 아청아청.(...)


물건 중에는 장신구도 몇 있었는데, 새의 날개를 작은 터키석을 박아 표현한 것도 재미있더군요.




Thomas Armstrong. Hay field. 1869. (링크)

바닥의 풀과 건초 때문인지, 메모에다 크빈트 부흐홀츠가 생각난다고 적었습니다. 이 그림도 상당히 큽니다. 분위기가 아련한 것이 이 그림도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물론 저 그림을 보고 있노라니 "너 애 있다고 유세떠니?"라고 항의하는 이야기가 저절로 떠오르네요.


Frederic Leighton의 Mother and Child는 마음에 드는 그림파일이 안 보입니다. 테이트나 VAM이나 둘다 그림이 안 보이는데, 구글에서 찾은 그림도 그 생생함을 전하지 못하네요. 그림 보면서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어린 여자아이와 그 엄마가 같이 체리를 나눠 먹는데, 그 체리가 정말로 맛있어 보이더군요. 그림의 떡이 아니라 그림의 체리입니다. 근데 아무리 찾아봐도 그런 생생함을 전하는 그림파일이 없네요. 게다가 그거 카펫 부분이 정말 보들보들해보였는데! 카펫에다가 얼마나 신경을 쓴건가 생각하면서 보았는데.;ㅁ;




William Blake Richmond. Mrs Luke Ionides. 1882. (링크)

그림인데도 얼굴에 손을 대고 싶었습니다. 부드럽고 말랑말랑할 것 같은, 손에 착 달라 붙을 것 같은 그런 피부. 그림인데 보고 있는 동안 그런 망상이 들었습니다. 허허허허. 게다가 허리 장식도 사진을 찍은 것처럼 섬세하지요. 지금 그림파일로 보는데도 마치 그림이 살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 뒤에는 에드워드 고드윈하고 휘슬러(1834-1903)가 있었는데 에드워드 고드윈이 방 구조 그린 것을 보고 홀랑 넋이 나갔습니다.


Edward Godwin. Design. (링크)
이거랑 그 옆에 있는 다른 그림(링크) 둘 다 멋지더군요. 그러고 보니 VAM의 홈페이지에서는 PDF 다운로드가 가능하네요. 하지만 받아 놓아도 다음에 볼 일이 있을까.




James Abbott McNeill Whistler. Nocturne: Black and Gold - The Fire Wheel 1875. (링크)

그림을 얼핏 보고는 이게 뭔가 했는데, 보고 나서 깨달았습니다. 마치 노이즈 없이 야경을 찍은 것 같은.(...) 그런 분위기의 묘한 그림입니다. 스쳐 지나가든 보고는 모릅니다. 뚫어지게 몇 번이고 바라보아야 톤이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저 멀리에는 불빛이 보이고, 어렴풋하게, 아스라히 밤 풍경이 보입니다. 그걸 밝히는 것은 오른편에 있는 밝은 불이 아닐까 생각이 들고요.

참고로 『Papa told me』를 떠올리시면서 설마하시는 분들, 설마가 아니라 맞습니다. 저도 설마설마 하면서 글 쓸 때 확인했는데 거기 등장하는 휘슬러 맞습니다. 치세가 물었던 그림이 연작 몇 번이었는지는 잊었는데, 테이트에서는 일단 심포니 연작 2의 그림이 있습니다.(링크)



시대가 그래서 그런지, 비어즐리의 삽화도 있었습니다. 이쪽은 제 취향이 아니라 패스. 라지만 살로메의 화장(toilet of salome)은 굉장히 선이 섬세하면서 재기넘치는 그림이었습니다. 살로메가 너무 늙었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죠.;


제임스 휘슬러(James Abbott McNeill Whistler)의 에칭-동판화는 섬세합니다. 보고 있으면 이게 영국, 이게 런던이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런던 버클리 스퀘어 15번지인가, 그곳의 앞 라인을 그린 그림도 앞의 벽장식과 비슷하게 굉장히 편집증적인...;


My lady's chamber(링크)도 책 삽화 같더군요. 푸른 계통 옷을 입은 부인이 방에 있는데, 그 분위기가 굉장히 취향입니다. 작은 소품들이 방 안에 있는데 목퐌화가 섬세하더군요.


이쪽 방은 Art Maufacturer. 카펫디자인도 있었는데, 모눈을 기준으로 해서 그림 그린 것이 옛날에 G랑 함께 십자수 디자인 한 것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이쪽은 그보다 훨씬 섬세하지요. 엡, 누가 했더라. 이것도 번 존스였던가.


하지만 보고서 폭소한 것은 다른 그림입니다.



Walter Crane의 Swan. 왜 이걸 보고 폭소했냐면,




얼마 전에 이런 쿠션을 선물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걸 받고 나서 감탄했는데 그 원본 그림을 직접 보고 왔어요! 이런 우연이! >ㅁ<
그 때문에 그림 앞에서 괜히 피실피실 헤실헤실 웃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에 나온 것은 이번 전시 최고의 작품이었습니다. 엉엉엉엉엉.


에드워드 번 존스의 포모나. 태피스트리 작품입니다. 윌리엄 모리스의 태피스트리도 궁금했지만, 에드워드 번 존스도 좋습니다. 윌리엄 모리스 Co.의 태피스트리를 본 셈이니 정말 꼼짝도 못하고 이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손이 근질근질 한 것이 뭔가 만들어야 할 것 같고 말입니다. 오필리어보다도 이 작품이 훨씬 좋습니다. 취향이 확 튀어나오는 셈이지만 그림보다는 공예품이 좋아서 그런 걸요. 영국에 가기 전에는 못 볼 줄 알았는데, 이렇게 볼 수 있다니 정말로 속으로 감격의 눈물만 줄줄 흘렸지요.


그 옆에는 윌리엄 모리스의 타일 판넬, 그리고 벽지. 이것도 볼 수 있을 지 몰랐지요.
하여간 이 작품들은 모두 큰 집을 위한 거지, 작은 집에 쓰기에는 무늬가 부담스럽더군요. 하기야 이런 걸 소화할 수 있는 재력을 가질 정도면 그 당시에도 저택을 보유하고 있었을테니까요.


그 다음 방은 오스카 와일드랑, Glorious Sunset- 대영제국의 황혼을 중심으로 다룹니다. 앨버트 무어의 그림은 이 방에 있었는데 역시 큽니다.


탐미주의전시회의 포스터 그림이기도 하지요. 생각보다 굉장히 큽니다. 벽 하나를 통째로 차지할 정도로? 정사각에 가까운 그림인데 이쪽 그림도 굉장히 좋아요.



마지막에 한여름을 걸어 놓은 것은 아마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서 일겁니다. 마지막에 강렬한 한 방을 날리듯. 하여간 전 라파엘전파 전시회보다 탐미주의 전시회가 훨씬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제 취향의 전시물이 많아서 그랬을 거라 생각합니다. 사람이 적기도 했고, 전시관인 미쓰비시이치고칸도 마음에 들었고요. 중간 중간 잠시 정원을 보며 쉬어갈 수 있는 공간도 있었는데, 시간만 넉넉하다면 거기서 멍때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니까 넋을 놓고 늘어지고 싶었다는 거죠. 시간 문제로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습니다.



다만 여기도 도록은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조명이 어두워서 도록과 색감이 다를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그래도 너무 색이 차이나다보니 고이 내려놓게 되더군요. 덕분에 지금 감상기 작성하면서는 고생하고 있지만 어쩌겠습니까. 제가 자초한 것을요.

탐미주의전의 상품은 물건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것은 여기서도 복제 원화고, 복제 원화 가격은 기본이 다섯자리(엔)이기 때문에 고이 마음을 접었습니다. 엽서는 탐미주의전보다 라파엘전파전이 훨씬 많고 다양하게 있더군요. 하지만 색이 다른 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형태를 기억하고 싶은 몇가지만 구입해왔습니다. 나중에 엽서책으로 만들까 생각은 하는데, 만든다고 자주 보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하하하;

그래도 6300엔짜리 윌리엄 모리스 Co. 패턴의 우산은 붙잡고 고민했습니다. 그 옆의 천도 그랬지만 단호하게 저버리고 나왔습니다. 뭘 안 산 것은 아니긴 하지만요.



일요일 오후 반나절을 홀랑 다 날려서 간신히 작성했습니다. 월요일 오전에 다시 한 번 검수하고 올리는데 그림파일을 더 많이 넣을 걸 그랬나 후회도 조금 되네요. 하지만 탐미주의전의 작품은 그림파일 찾기가 쉽지 않았어요. 테이트는 그래도 작품이 DB로 구축되어 있는데.;ㅁ;



하여간 이걸로 길고 긴 감상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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