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저녁에 도착한 책 두 권. 얌전히 봉인했다 읽어야지라고 생각했던 것은 인과지평의 저 너머로 던져버리고 타샤의 집부터 붙잡고 신나게 읽어내려갔습니다. 집지기~쪽은 그래도 좀 묵혔다가 읽으려 했는데 그 다음날 출근길에 들고 나가서 흐뭇하게 읽어갔지요.

타샤 튜더, <타샤의 집>, 월북, 2007

은근히 기대를 하고 샀는데 생각에는 못미친 책입니다. 저는 좀더 자세한 이야기-그러니까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한 것이 보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그냥 타샤 튜더가 19세기에 멈춰서서 이런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제 기대보다는 수박 겉 핥기로 지나갑니다. 시리즈 책들 중에서는 가장 두껍지만 내용은 오히려 아쉬웠다고 할까요. 사진도 전작들이 더 좋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꽃 사진의 화려함이 덜해서 그렇겠지요.
다만 중간에 등장하는 퀼트 이불은 패턴이 꽤 마음에 들어서 도전해볼까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화살깃 모양 패턴인데 별모양이 나와서 취향이었다는거죠. 하하하하하;
다른 건 몰라도 아마를 재배해서 그걸 가공해서(아마 처리는 대마처리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국 단편소설 중에 삼 삶아서 실로 만들 때는 온 마을 아낙네들이 다 모여서 작업한다는 식으로 시작하는게 있었는데 뭐였는지 기억이 안나네요) 섬유질 뭉치로 만들어서, 그걸 물레에 돌려 실을 만들고 염색도 해서 체크무니 린넨을 직접 짠다는 데서는 뒷목잡고 쓰러졌습니다. 이런 이야기 하기는 그렇지만 사서 고생.....;;;
아, 옷만들기 스킬도 굉장히 부러웠습니다. 마비노기에서는 1랭일지라도 패턴은 사서 해야하는데(...) 타샤 할머니는 옷을 한번만 보면 패턴 제도할 필요 없이 그냥 슥슥 옷감을 잘라서 스슥 꿰매서 옷 한 벌을 만든다지 않습니까. 아무리 복잡한 옷이라도 그리 만든다는 것을 보면 대단합니다. 덕분에 저도 불붙어서 다시 퀼트 붙잡고 있다니까요.


나시키 가호, <집지기가 들려주는 기이한 이야기>, 손안의책, 2005

귀엽습니다.
첫 감상이 이 한 단어라니 황당하실지도 모르지만 정말 귀엽습니다.
집지기라 해서 나이가 좀 있는-중년에서 노년 사이-집 관리인 할아버지 이야기인가 했더니 20대로 추정되는 젊은 남자가 주인공입니다. 친한 친구가 호수에서 행방불명이 된 이후 그의 아버지에게 부탁을 받아서 친구 집의 집지기로 오게된 남자지요. 원래 글 쓰는 것으로 생계를 근근히 유지했지만 그것도 잘 벌리는 편은 아니라 집도 주고 약간의 돈도 준다는데 어찌 마다하겠습니까. 덥석 가서 집지기를 맡은 것이겠지요.
하지만 기묘한 페로몬이 있는 것인지 이상한 게 잘 꼬이는 체질입니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주인공의 후배가 터키 황제가 일본 학자를 특별히 유적발굴하라고 초청해서 터키에 건너 갔다고 하니... 언제쯤인지는 대강 짐작하실 수 있을겁니다)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그냥 그런가~라고 생각하며 받아들이는게 귀엽지요.
그러나 그 무엇보다 귀여움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이름입니다.
앞부분에 이름이 나왔길래 그냥 슥 훑어 보고 나가다가 뭔가 걸려서 다시 돌아가 보았다는 그 이름.
와타누키 세이시로입니다.
아무리 보아도 와타누키 기미히로의 고조 할아버지 쯤으로 보이는군요. 하는 짓이나 잘 홀리는 짓이나 이상한 것을 잘 본다는 것이나, 옆에 그런 친구를 하나 두고 있다는 점이나. 거기에 홀려도 저 곳에는 가지 않는다는, 현실에 발을 딛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지요.

음양사를 번역한 김소연씨가 미야베 미유키의 책 몇 권을 번역했길래 손안의책에서도 다른 책을 더 번역했나 궁금해서 찾아봤다가 걸린 책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2005년에 나온 책을 이제야 볼 일은 없었겠지요. 아마 까맣게 잊어버리고 넘어갔을 터.
각 편이 10장 내외로 짤막하다는 점, 각 장의 제목이 식물 이름으로 되어 있고 그게 소재가 된다는 점도 독특합니다. 생각날 때마다 좋아하는 편을 골라 읽어보겠군요. 간만에 슬슬 웃음을 흘리게 만드는 책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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