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보다 더 짧은 이야기를 말하는 단어 중에 掌편, 葉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손바닥만한 글, 잎사귀만한 글을 말하며 단편이라 부르는 글보다 더 짧은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 책은 작가가 아닌 어느 남자가 쓴 다섯 편의 짧은 글을 쫓는 것이 기둥 줄거리입니다. 하나의 글을 찾을 때마다 그 글도 책에 소개가 되는데 굉장히 기묘한 이야기입니다. 결말이 없는 이야기, 리들(riddle) 스토리라 부르더군요. 다만 이 소설을 쓴 사람은 각각의 결말을 딱 한 줄로 결정해서 적어두었으며, 적은 결말만 남겨 놓고 사망합니다.

글은 전체적으로 굉장히 어둡고 무겁습니다. 끝까지 다 읽고 나면 허무함, 그리고 무상함, 거기에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추천할 수 밖에 없는 책이네요. 글이 어두운 것은 배경이 어둡기 때문입니다. 90년대 초, 버블이 막 꺼지기 시작한 시점의 일본이기에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대학에 돌아가지 못하는 청년이나, 부동산 경기의 침체로 같이 가라앉는 남자나, 가장을 잃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여자나 다 어둡기 마련입니다. 호황기였다면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텐데 그렇지 못하지요.


읽으면서 감탄한 것은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짧은 이야기들의 존재입니다. 짧지만 일상적이지 않고 환상적이며, 그렇지만 그 안에 함축된 뜻은 여러 가지로 읽힙니다. 게다가 딱 한 줄을 덧붙임으로써 그 이야기가 완결된다는 것도 굉장히 신기합니다. 역시 달라요...
그리고 요네자와 호노부의 다른 작품을 생각하면 이 작가 자체에도 감탄하게 됩니다. 『빙과』도 이 작가 작품이고, 『봄철한정딸기 파르페』도 이 작가 작품입니다. 이 둘은 일상 추리물이고 개그와 유며가 담겨 있습니다. 심각한 이야기도 있지만 어찌보면 무난하고 평범합니다. 그럴진대, 『부러진 용골』은 정통 중세 판타지 추리소설이며 묵직합니다. 『인사이트 밀』은 어떤 의미로는 엽기에 가까운 정통 추리소설입니다. 『덧없는 양들의 축원』은 『추상오단장』에 실린 장편과 분위기가 상당히 닮아 있으며 전체적으로 환상소설입니다. 흔히 생각하는 판타지가 아니라, 아련하고 무섭기도 하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느낌의 환상입니다.
이런 소설을 모두 한 사람이 썼지요.-_-; 그래서 무서운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허허허..


요네자와 호노부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았다면 이 책도 추천합니다. 읽어보지 않았다고 하면 상대적으로 접근하기 쉬운 다른 책들을 먼저 읽고 나서 보기를 추천합니다. 그냥 보아도 상관없지만 다른 책들과의 연계 속에서 읽으면 이 책에 더 감탄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아... 이렇게 글 잘 쓰는 사람들이 정말로 부럽습니다.T-T;


요네자와 호노부. 『추상오단장』, 최고은 옮김. 북홀릭, 2011. 12000원.


의도적으로 이 소설의 한 축만 밝히고 다른 축은 빼놓았습니다. 그 축은 직접 찾아서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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