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 모음입니다. 워낙 옛날 글이다보니 지금 분위기하고는 사뭇 다르지요. 이 수필에 실린 글들은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를 쓰기 전의 글이랍니다. 그러니까 시기상으로 『먼 북소리』에 언급되는 몇몇 기고글이 이거라는 거죠. 유럽 가기 전에 몇 달치를 한꺼번에 써주었다고 했던 것 같은에 여기 실린 글도 그런지 모릅니다. 시기가 안 맞는다고 밝힌 것도 있으니까요.
83년에서 88년까지 쓴 글이라 그런지 글에 조금 날이 섰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느낌이냐 하면 PMS에서처럼 뭔가에 대해 불만이 많고 괜히 신경이 날카로워서 괜히 툭툭 말을 던지고 내뱉는 사람인 것 같은 느낌.; 『먼 북소리』에서는 그걸 마흔전증후군(...)이라 부르는 것 같은데 그 분위기가 글 전체에 묻어 있습니다. 그러니 시코쿠 우동 먹기 기행에서 볼 수 있는 그런 느긋함은 덜합니다.
그래도 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이니까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지하철 안에서 스르륵 훑어 보고 내려놓으면 될 정도의 이야기지요. 그 속에서도 건질 것은 분명히 있고요.

레이몬드 챈들러의 방식은 저도 보고서 좀 배워야겠습니다. 보고서를 써야할 때면 지금 당장 처리해야하는 일도 아닌데 다른 일들을 꺼내다가 이리저리 뒤적이는데, 여기에서처럼 멍하니 있더라도 글에 대해 몰입하는 시간을 만드는 겁니다. 딱 그시간 동안은. 그런 방식은 본받아야지요.


다만 정말로 동의할 수 없는 내용도 하나 있었으니, 제복 말입니다.
무라카미가 고등학교 때, 제복에 대한 찬반 논란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투표를 했는데 제복에 찬성하는 학생들이 70%였다나요. 어떻게 제복에 찬성할 수 있냐며 성토하던데, 저는 찬성합니다. 어른의 입장이 아니라 제복을 입는 학생의 입장에서도 말입니다.
왜냐하면, 편하거든요.
아침에 무슨 옷을 입을지 고를 필요 없이 교복을 집어 입고 나오면 됩니다. 다시 말해 이것은 '옷을 고르기 귀찮아 하는' 게으름뱅이의 입장에서 제복을 찬양하는 겁니다. 사복의 구입으로 인한 소득 격차 어쩌고 하는 것은 다 집어 치워요. 제가 원하는 것은 아침에 옷 고를 필요 없는 자유(...)입니다. 가격이 비싸다지만 입고 다니는 시간을 생각하면 아주 비싸다고 할 수 없지 않나요.-ㅂ-;

하여간 그런 생각에서 저는 교복을 찬성합니다. ...만 요즘의 교복은 그리 입고 싶지 않네요. 스키니 바지와 스키니 치마 따위...ㄱ-;



무라카미 하루키.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김난주 옮김. 문학동네, 2012. 11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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