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 리쿠는 한국의 첫 번역작인 밤의 피크닉을 보고 홀랑 반한 케이스입니다. 도서관에서 빌려다 보고는 반하다 못해 구입하게 되었지요. 24시간 동안 벌어진 일을 두 주인공(남, 녀)의 시선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데 그 한 권이 지루하지 않게 펼쳐져 있습니다. 자칫하면 지루해질 수 있는 이야기임에도 있을 수 있을 법한 관계 설정과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너무 길어지는군요.;

하지만 굽이치는 강가에서는 취향에서 조금 벗어났습니다. 읽지는 않았는데 엔딩 부분만 살펴봤을 때는 미묘했거든요. 대신 책을 읽힌 가클은 괜찮았다고 하긴 합니다. 가클의 혀만 고생하는 것이 아니라는게 여기서 들통나는군요. 케세라. 잘못 만난 것을 어쩌리.

지난 1월 초, 여행 가기 직전에 질러둔 책의 목록은 아래와 같습니다.
온다 리쿠, <빛의 제국>, 국일미디어(권영주)
온다 리쿠, <삼월은 붉은 구렁을>, 북폴리오(권영주)
온다 리쿠, <여섯 번째 사요코>, 노블마인(오근영)
온다 리쿠, <네버랜드>, 국일미디어(권영주)
미야베 미유키, <스텝 파더 스텝>, 작가정신(양억관)


미야베 미유키의 스텝 파더 스텝은 예전에 포스팅한 적이 있으니 넘어갑니다. 아, 그래도 이건 잊지 말고 올려야지요.

나머지 네 권은 모두 온다 리쿠 작품입니다. 밤의 피크닉이 나오고 굽이치는 강가에서가 나오더니 이제는 온다 리쿠 책도 마구 쏟아내는군요. 그래도 괜찮다 싶은게 역자가 거의 같습니다. 여섯 번째 사요코만 오근영씨 번역이고 나머지 세 권은 권영주씨가 번역 했습니다. 앞으로도 온다 리쿠 책의 상당수는 권영주씨의 번역으로 나오지 않을까 싶군요. 빛의 제국이나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나 연작의 첫 번째 이야기이니 말입니다.

이 네 권 중 가장 무난한 것을 꼽으라 하면 여섯 번째 사요코를 들겠습니다. 네버랜드 역시 사요코와 비슷하게 학교 배경 청소년 소설(이라고 뭉뚱그리기엔 무리가..)이지만 양쪽의 분위기는 사뭇 다릅니다. 사요코는 한 학교의 1년을, 네버랜드는 일본 고등학교의 겨울 방학이 시작된 크리스마스 직전부터 1월 1일까지가 시간상 배경입니다. 공간적 배경도 학교와 학교가 속한 마을이 전체적으로 들어간 느낌의 사요코와는 달리 네버랜드는 주 무대가 기숙사입니다. 학교라기 보다는 기숙사의, 그것도 거실룸이 소설 공간이 되지요. 등장 인물의 남녀 비율도 꽤 차이가 납니다. 하하하;

사요코는 학교 축제와 전설을 소재로 삼은 이야기입니다. 학교의 전설적 존재인 사요코와 동명인 여학생이 학교로 전학을 옵니다. 공부도 잘하고 전에 다녔던 학교도 명문고라 시골의 이 학교로 전학을 오는 것보다는 원래의 학교에 다니는 것이 좋았을 것인데 왜 전학을 왔는지, 거기에 "사요코"라는 존재의 전설도 이야기와 얽혀 있습니다. 하지만 최종 보스를 추리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뭐, 맨 마지막의 사건 하나는 조금 동떨어진데다가 왜 사요코가 그런 행동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다뤄져 있지 않아서 아쉽더군요.
분위기는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포스팅은 여기)와 닮아 있습니다. 작가도 다르고 출판사도 전혀 다름에도 이상하게 읽는 동안 그 책 생각이 났습니다. 네버랜드도 닮아 있고요.
덧붙여서, 출판사인 노블마인은 웅진출판의 임프린트입니다. 도착한 책들을 목록에 적다보니 노블마인의 ISBN 출판사 코드가 01이더군요. 01은 웅진입니다. 아직 한국에는 한 자릿수 출판사 코드는 없고 두 자릿수 중에서 가장 빠른 것이 웅진입니다. ISBN 코드가 이상하다 생각해서 책 뒷부분을 보니 임프린트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자회사보다야 이쪽이 관리하기 좋겠지요, 뭐.

네버랜드는 앞서 이야기 했듯이 겨울방학 때 귀가하지 않고 기숙사에 남게 된 세 학생과 깍두기(...) 한 학생을 포함한 네 학생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귀가하고 싶지 않은 상황의 학생들인지라 기숙사에서의 생활도 꽤 익숙한(불편하지 않은) 편이더군요. 거기에 그렇게 요리 잘하는 사람이 있다면야, 집에 갈 필요도 없지 않습니까. 다만 깍두기를 포함한 네 학생들이 그 짧은 기간 동안 서로를 자세히 알아가는 과정에서 서로 부딛히고 자신의 비밀과 자신의 진짜(감추지 않은) 모습을 드러내고 하는 것이 굉장히 사실적이었습니다. 다들 문제를 하나 이상 씩 가지고 있더군요. 물론 털어서 먼지(문제) 안나오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다만...;
순수한(...) 소년들이라 그런지 읽는 맛은 꽤 좋았습니다. 훗훗훗. 특히 요리 잘 하는 그 누군가는 굉장히 탐이 나던걸요. 현실계에 존재하기 어려운 캐릭터라는게 문제지요.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란 책은 총 4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각의 장이 전혀 다른 내용으로 톡톡 튀는 기묘한 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1-2장은 직접적인 관계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3-4장은 느낌이 다릅니다. 1-2장이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환상 속의 책(실은 저도 1장을 보고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면 3장은 다른 차원에서 ≪삼월은 붉은 구렁을≫를 다루고 있고 4장은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 씌어진 과정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굉장히 기묘해요. 이 책이 온다 리쿠의 첫 작품이라던가요? 이 책을 시작점으로 해서 여기 등장하는 몇몇 이야기들이 장편으로 확장된 것이 <흑과 다의 환상><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입니다. 이 두(실은 셋) 권은 이번에 주문이 들어갔어야 했지만 리뷰에 걸리는 것들이 상당히 많아서 다음으로 보류했습니다. 그리고 온다 리쿠 근간들 중에 기대하고 있는 것들이 몇 가지 있어서요.

기대하고 있는 것은 도코노 이야기 시리즈의 뒷 권들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가 빛의 제국, 그리고 그 뒤에 다른 책들이 두 세 권 정도 근간으로 잡혀 있습니다. 도코노라는 것은 역사의 변방(혹은 길 옆 덤불)에서 역사의 흐름을 바라보고 있던 일족입니다. 평범한 일족은 아니고 대대로 독특한 능력들이 전해져 왔다는 군요. 예지능력(먼눈)도 그렇고 무엇인가를 담는 능력, 멀리 듣는 능력(먼귀), 빠른 걸음등이 그렇답니다. 이들이 어떻게 멸족하다시피 사라졌는가에 대해서는 빛의 제국에 잘 나와 있습니다. 근간 중 한 권이 이 이야기에 대해 자세히 다룰 모양이더군요. 멸족 이유가 바로 그들이 가진 특수 능력이라는게 참 아이러니합니다.
태평양 전쟁 중에 엉뚱하게 끌려간 것은 교고쿠도만은 아니었고, 이들 도코노 일족도 특유의 능력 때문에 일본군에 끌려가 전쟁에 협조할 것을 강요당했다고 합니다. 거부했던 이들이 어찌되었는지는 빛의 제국에 나와 있으니 읽어보면 아실겁니다.
원래는 같은 주인공을 둔 짤막짤막한 이야기로 만들려 했다는데 어쩌다보니 주인공도 다 다르고(대신 전작의 주인공이 다른 이야기에 등장합니다) 도코노라는 일족에 대한 소재만 다루게 된 시리즈물이 탄생했다는군요. 일족이 은근히 마음에 들어서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과연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요.


그전에 넘어야 하는 것은 미야베 미유키. 브레이브 스토리는 주문할까 말까 하다가 넘어갔는데 역자의 유혹이 큽니다. 김소연씨가 아니었다면 그냥 넘어갔을 텐데..;ㅂ;


딴소리 하자면...
이번에 완역되어 나온 겐지 이야기. 볼 마음이 안듭니다. 겐지 이야기는 다니구치 누군가가 번역(일역)한 다니구치겐지가 유명하다고 하던데 다른 사람의 일역본으로 나왔더군요. 거기에 역자가....OTL 도서관에 신청할까 말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왠지 도서관에 신청하기도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혹시 보신 분 있으면 어떤지 가르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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