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먹으면서 읽는 책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영혼의 음식-머릿 속 깊이 각인된 음식의 기억을 불러 오는 내용의 책입니다.-ㅁ-

이 책은 옛 동화와 고전을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리뷰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리뷰의 중심에는 음식이 있습니다. 아주 간단히 말하면 e가 붙은 앤양이 처음으로 레이어 케이크를 만들었다가 대박 실패한 사건 등을 다루는 거지요. 그게 아니라면 세라 크루의 미트 파이나 로러가 가지고 놀았던 돼지방광 축구공(!)을 떠올리며, 각각의 소설이 담고 있는 그 당시의 문화와 그 음식이 무엇인가에 대해 언급합니다. 가장 감명을 받았던 것은 소금에절인라임의 정체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탐구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정말, 저도 그 소금에 절인 라임이 궁금했다니까요. 물론 지금 이라면 제이미 올리버가 사랑해마지 않는 소금절임레몬 비슷한 절임이겠거니 하겠지요.-ㅂ-; 실제 만드는 법도 소개가 되어 있던데 여기서는 키라임을 이용합니다. 한국에서 가끔 구할 수 있는 라임보다는 더 작은 종이라네요. 하지만 저는 키라임이라고 하면 가장 최근에 접한 걸로는 『키라임파이 살인사건』이 떠오르지 뭡니까. 슬레이더라는 멋진 별명을 가진 한나가, 키라임을 써서 레몬파이 계통의 파이를 만든 거였지요. 한국에서는 아예 구할 수 없지만 미국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나봅니다. 플로리다였나, 그 쪽에서는 구하기 쉽다고 했던 것 같지요. 지금 책이 옆에 없어서 확인은 못합니다.

하여간;
앞부분은 제가 알고 있는 책이 많았지만 뒤로 갈 수록 모르는 책이 많이 나옵니다. 여행자의 식탁, 모험자의 식탁, 탐식가의 식탁, 치유자의 식탁, 생존자의 식탁 중에서 치유자나 생존자의 식탁은 안 본 책이 많습니다. 권정생 씨의 책은 내용의 무게 때문에 차마 건드리지 못했지요. 『몽실 언니』의 암죽과 치킨은 지금도 생각납니다만. 그러고 보니 이 책도 두 번까지는 읽었지만 그 이상은 읽을 수 없었습니다. 『토지』도 그렇지만 시대의 막막함을 제가 견뎌낼 수 없더라고요. 분명 친구 B양도 『토지』는 신분차이를 극복하는 로맨스다라고 했지만 시대가...가...;ㅂ;
위다의 『뉘른베르크 스토브』는 제목은 기억 못했지만 그 대강의 내용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어디서 본 건지는 전혀 모르겠네요. 아마 금성이나 계몽사 등에서 나온 옛 세계문학전집 중 섞여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른 건 다 몰라도 그 스토브를 아버지가 팔았다는 건 확실하게 기억합니다.

아래는 각 편을 읽다가 떠오른 것에 대한 잡다한 이야기입니다.

- 앤과 길버트. 번역본을 읽으면서 제일 불만이었던 것은 어투였습니다. 분명 결혼 약속 하기 전까지는 서로 말을 놓았던 두 사람이 약혼하자마자 당장 존대 + 반 하대로 바뀝니다. 앤은 길버트에게 해요체를 쓰고, 길버트는 앤에게 하오체를 씁니다. 이거 상당히 차이 나지요.-_-; 아, 미묘해.
앤의 아이들 중에서 가장 앤을 닮은 것이 막내인 마릴라라는 것이 제일 웃깁니다. 이건 앤의 사소한 복수?

- 『작은 아씨들』...이 아니로군요. 그 후편인 『착한 아내들』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은 의외로 포도젤리입니다. 메그가 시집가서 만드는 걸 실패하는 에피소드가 있었지요. 조가 결혼하지 않았어야 한다는 것도 저는 동의합니다. 그리고 로리가 왜 에이미랑 결혼해야 했냐는 점도. 하지만 조는 그 성격 때문에 기회를 놓쳤고, 그 기회를 잡은 것은 에이미였으니까요. 그리고 대고모님과 함께 있으면서 사교공부도 많이 했을 걸요.
베스가 죽은 것은 참..ㅠ_ㅠ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베스가 살아 있었다고 하면 현숙하고 차분한 가정주부나 수녀(...)가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왠지 테레사 수녀 같은 이미지라...

- 청량음료 사이다 말고 사과주스 사이다를 처음으로 안 것은 『초원의 집』 시리즈인 『소년 농부』입니다. 거기서 사이다 만드는 법도 함께 소개하더군요. 겨울날 난로가에 모여 팝콘을 튀기며 시원한 사이다와 함께 ......;ㅠ; 그 때는 영화가 없었으니 신문을 낭독했지만 요즘이라면 영화나 TV겠지요. 아, 부럽다.
『초원의 집』에서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났는가에 대해서는 굉장히, 참, 그래요. 일단 로라는 대책없이 낙천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지요. 남편이 서부를 동경했기에, 동부 상류층(혹은 중산층 이상) 출신이었던 엄마는 고생을 엄청나게 했지요. 딸들도 그랬습니다만. 덕분에 로라는 생활력이 강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떠올려보면 부모님 사이에서는 네 명의 딸이 나왔지만 손자(녀)는 한 명만 있었으며, 증손자는 단 한 명도 없답니다. 맏이 메리는 시각장애가 있어 결혼을 하지 않았고, 캐리나 그레이스도 결혼을 안했던가, 했는데 아이가 없었던가 그랬다네요. 로라한테만 딸 하나가 있었는데 로즈라는 그 딸은 미혼.OTL
그러고 보면 그 작은 마을에는 알만조의 형제 넷 중 셋이 있었습니다. 로라와 사이가 나빴던 이지, 알만조의 형 로열. 앨리스만 부모님 곁에 남아 있었던 걸까요. 그 건 알 수 없습니다.(먼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것은 『큰 숲 작은 집』, 『소년 농부』입니다. 그 기준은 가장 맛있는 것이 많이 나오는 책...(...)

- Anne's 시리즈로 나온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다른 책에서는 버터가 굉장히 강렬하게 남았습니다. 꼬꼬마 아가씨가 별 생각 없이 만들었던 버터는 최상질의 버터였습니다. 허허.

- 자우어 크라프트, 혹은 슈크르트는 맛있습니다.-ㅠ- 예전에 어떤 모임에서 호텔 뷔페를 먹으러 갔다가 굴라시(구야쉬) 비슷한 음식에 자우어 크라프트를 곁들여 먹었습니다. 시큼시큼한 양배추를 섞어먹으니 정말 한도 끝도 없이 먹겠다 싶더군요. 이 맛이 어떤가에 대해서는 신이현의 『알자스』를 보시면 리얼하게 체험하실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책을 보면 오밤중에 지갑을 들고 간식 사러 나가게 되니 주의가 필요합니다.

- 『장미의 이름』은 소설가인 움베르트 에코보다 번역자인 이윤기 씨가 먼저 떠오릅니다. ;ㅅ; 대한민국 번역대상이었나, 1회 수상자가 이윤기 씨였지요. 2회는 이세욱 씨.

- 그 외에 몇 가지 음식과 관련된 책이 더 있습니다. 그러니까 『용감한 선장』. 이거 계몽사에서 나온 『世界의 文學』 전집 중 한 권입니다. 저자가 누구인지 찾으려면 소파 뒤를 들여다 봐야하는지라 패스. 하여간 이 책의 내용은 아주 간단합니다. 한창 미국에 철도가 놓여 동부와 서부가 철도로 연결될 때의 이야기지요. 그 당시 백만장자를 아버지로 둔 하비라는 꼬마는 유럽에서 미국으로 돌아가는 여객선에서 온갖 추한 꼴을 다 보이며 거들먹 거리다가 바다에 홀랑 빠집니다. 정신차려보니 대구잡이 어선에 타고 있었고요.ㄱ-; 새우잡이 어선이 아니라 다행인가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배는 만선이 되어야 항구로 돌아가거든요. 그리하여 하비는 밥을 얻어먹기 위해 대구잡이를 거듭니다. 그리고 몇 개월 뒤, 하비는 훌륭한 어부가 됩니다.(...)
성장소설에 모험소설인데, 아이가 정신적으로 커 나가는 모습이 참 멋집니다. 게다가 대구예요! 대구! 하비가 탄 배는 아주 운 좋게도 훌륭한 요리사가 타고 있어서 식사도 아주 훌륭합니다. 그렇다 보니 절로 군침이 돌아요.-ㅠ-

- 『구리와 구라』에 등장하는 팬케이크 혹은 달걀 케이크는 참 좋습니다.-ㅠ-

- 질 버클렘의 찔레꽃 덤불은 들장미잼이라든지, 빵이라든지, 기타 등등의 음식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백미는 역시 그림이지요.

- 다얀이 등장하는 『와치필드』시리즈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고등어 태비) 다얀의 친구인 (턱시도 고양이) 지탄은 다얀의 생일에 맞춰 친히 돌화덕을 만듭니다. 그리고 거기서 구운 빵은...(이하 생략)
고양이인 다얀이 친구인 윌(쥐)을 볼 때마다 사냥 충동을 느끼다못해 생쥐빵을 만들지요. 그 맛은...(이하 생략)

- 『반지의 제왕』에서 갈라드리엘 마님께서 호빗에게 선물하신 과자는 어린 마음에 참 맛있어 보였습니다.;ㅠ;

- 미하일 엔데의 책은 두말할 필요가 없지요. 『모모』의 코코아, 『마법의 수프』에서 만들어내는 수프, 『짐 크노프』 시리즈에 등장하는 커다랗고 아름다운 케이크. 지금 생각하면 구겔호프가 아닌가 싶습니다. 가루 사탕(설탕)을 듬뿍 뿌렸다고 했거든요.

- 『폭풍우 섬 오누이』는 마치 캠핑하는 것 같아서, 거기서 등장하는 딸기 사탕도 인상 깊습니다.

- 『바렌랜드 탈출작전』, 『로빈슨 크루소』, 『15소년 표류기』. 모험기지만 왜 먹는 장면만 떠오르는 거지요.ㄱ-; 심지어 『15소년 표류기』에서는 단풍나무 설탕도 만들었어요.



...
이 이상 쓰다가는 글 쓰다 말고 지갑 챙겨 뛰쳐나갈 것 같습니다. 하하; 여기서 멈춰야겠네요.;ㅠ;

정은지. 『내 식탁 위의 책들』. 앨리스(아트북스), 2012,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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