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베 미유키, <화차>, 시아출판사, 2006

2006년판이긴 하지만 화차라는 제목으로 검색을 하니 같은 출판사에서 2000년에 다른 제목으로 책을 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기 전에 앞판의 책을 검색하지는 말아주시길. 그 책은 제목이 내용폭로입니다. 그러니 책의 제목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하는 미야베 미유키의 책 특성상 그 제목은 정말로 어울리지 않는다라는 생각입니다. 모방범이 꽤 인기를 끌자 출판사에서 같은 책을 다른 편집을 거쳐 재 출판했나봅니다. 출판계에서 그런 것은 흔한 일이죠. 대표적이라고 하기는 이상하지만 최근 장 자크 상뻬의 책이 미메시스에서 나오는 것을 봐도 그렇지 않습니까. 미메시스는 예전에 열린책들에서 냈던 번역관련 연간지(라고 하기도 그렇군요. 딱 두 번 나오고 말았으니)의 이름이자, 최근에 생긴 열린책들 자회사입니다.

서론이 너무 길었군요.

어제부터 무시무시한 속도로 책들을 읽어나가기 시작해 지금은 달랑 한 권만 남겨두고 있습니다. 스텝 파더 스텝, CSI 뉴욕 첫번째 이야기인 겨울의 죽음(이 책은 맥스 알란 콜린스의 책이 아니군요. 그래서 분위기가 앞서 이야기들과 꽤 달랐습니다), 9월의 4분의 1, 검은 고양이 네로. 스텝 파더 스텝은 따로 리뷰를 올렸고 다른 세 권은 한 꺼번에 모아서 다음 포스트에 올릴 예정입니다. 이제 세상의 그늘에서 행복을 보다만 남았네요.

화차는 오늘 아침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뒹굴거리다 책을 집어들고 차근 차근 읽어나갔습니다. 2시에 다 읽었다는 것은 평소 제 속도로 보면 굉장히 느린 것이지만 중간에 청소기 돌리고 수프 만들고 기타 등등의 잡다한 일들과 마비노기를 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빠릅니다. 책에 집중한 시간은 한 시간 넘는 정도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몰입도는 좋은 편이지만 한번에 읽어내리기가 아까워서 중간에 딴 짓을 많이 한 것이지요.

이야기의 시작은 굉장히 간단합니다.
자동차 사고로 인해 아내가 사망하고 자신도 다리가 불편하게 된 한 형사가 있습니다. 도쿄 경시청에서 근무하고 있지요. 아들과 단 둘이서 살고 있지만 지금은 휴직을 하고 있습니다. 몸의 문제가 아무래도 크다고 할까요. 많이 걷거나 돌아다니거나 하면 굉장히 피곤합니다.
그런 주인공에게 오촌 처조카가 찾아옵니다. 아내 사촌의 조카. 따지자면 굉장히 먼 촌수이기도 하고 아내가 죽었을 때도 찾아오지 않았던 박정한 녀석입니다. 찾아온 이유도 갑자기 사라진 자신의 약혼녀를 찾아달라는 것이었지요. 휴직하느라 경찰수첩도 다 반납한 주인공은 난감했지만 반쯤은 호기심에서, 반쯤은 그 인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조사해주기로 합니다. 하지만 점입이경. 파고 들어가면 들어갈 수록 뭔가 이상한 광경이 눈 앞에 펼쳐집니다.

이 책을 소개하는 글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개인파산과 신용카드의 문제입니다. 그 약혼녀가 사라졌던 계기도 그런 것이었고, 이 이야기의 중심부를 흐르고 있는 것은 개인파산제와 그 사회적인 영향, 그리고 신용카드의 문제점 등이지요. 책에서 잠시 등장했던 것처럼 이야기를 읽다보면 사회에 막 발을 들이려는 여러 학생들, 사람들에게 신용카드의 장점과 해악을 동시에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그런 류의 살아 있는 경제 교육을 해야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듭니다. 저도 신용카드를 쓰고는 있지만 이 책을 보고는 잠시 바라보면서 "5% 할인 혜택을 포기하고 그냥 잘라버릴까."란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마법의 도구이기 때문에 더더욱 신뢰할 수 없는겁니다. 제가 가진 마력을 모두 고갈시키고도 모자라 제 기력을 뽑아갈지도 모르는 무서운 도구이니까요. 잘 쓰면 좋다라고는 하지만 쓰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는 문제가 없습니다.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해야하는 정도니까요.
다만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주문한다든지, 온라인상으로 거래를 할 때 카드는 굉장히 편리합니다. 유용하다라고는 할 수 없지요. 유용이 종종 남용이 되어 통장잔고가 바닥나는 일도 발생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거기에 카드가 계좌와 직접 연결되어 있는 체크카드가 아닌 이상 통장 잔고를 과신하고 일주일 뒤에 나올 월급을 믿게 만드니까요. 신용카드가 빚이라는 것은 어느 새 머릿 속에서 사라지고 말입니다.

읽고 나서 진지하게 카드를 잘라야 하나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결심이 서지 않지만-현금을 들고 다녀야 한다는 것도 무섭기는 하지요-고심하렵니다. 부디 제게 좋은 쪽으로 결론이 났으면 하는군요.


덧. 엔딩이 조금 미묘하지만 독특하고 깔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디까지나 제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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