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심각한 재앙이 일어났을 때 조직적으로 신속하고 효율성 있게 대응하는 시스템이 일본에는 없습니다.


p.350, 신슈대학 의학부장 야나기사와 노부오와의 인터뷰 제목.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두 번째지요. 아니, 세 번째인지도 모르지만, 여튼 처음 읽는 것은 아닙니다. 이전에 1998년에 열림원에서 나온 버전으로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때도 역자는 양억관씨였는데 재번역인지 아니면 재출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번에 나온 판은 1-2권으로 나눠 나왔더군요. 2권은 아직 손대지 않았고 1권은 한참 읽는 중입니다. 재미있기는 하지만 서글프기도 하네요. 게다가 읽기 시작한 것이 5월이었는데 한참 도호쿠 대지진에 원전 사태 이야기가 나오던 때라 겹쳐 보이더군요.

옴진리교라는 종교가 아직도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종교라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순화했음) 그런 종교에 몰두하는 사람이나, 이상한 쪽으로 나가는 사람을 보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 등장하는 옴진리교 관계자-사린가스테러의 실행자들을 보면 이런 사람들이 왜 그런가 싶더군요. 초 엘리트들이 여럿 있었으니 말입니다.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서울대 의대 출신이라든지, 카이스트 석박사 출신이라든지. 그런 사람들이 옴진리교의 신자였고 그 사건의 실행자-테러범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이해가 안되는 건 일본 정부입니다. 아놔. 고베 대지진 때도 같은 모습을 보였다는데, 고베 대지진과 같은 해에 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고베 대지진이 1월에 있었고 이건 그 해 3월에 있었지요. 마쓰모토시 사린살포 사건₁은 그 전해 있었던 모양인데 이 사건과 관련해 1월쯤 옴진리교 본부를 조사할 예정이었지만 고베 대지진으로 일정이 밀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3월에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테러가 일어났고요. 일본경찰(정부)의 대처가 조금 빨랐다면 이 사건은 없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 때의 대응 상황을 보면 참 .... (먼산)
사린사건이 일어난 것은 95년 3월 20일이고, 이 인터뷰는 96년 1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도호쿠 대지진이 일어난 것은 사린 사건 발생 시점부터 따지면 거의 16년입니다. 그 16년 동안 대처 방식은 전혀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 책을 읽고 있다보면 기시감에 데자뷰가 팍팍 느껴집니다. 아, 이 대처, 이 상황, 어디서 많이 봤다.-_-;;


사실 맨 위의 인용문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한국도 비슷합니다. 하지만 한국은 조금 다릅니다. 예를 들어 서해 원유 유출 사건을 떠올려봅시다. 이것도 서해 주민들에게는 아주 지독한 재앙이었지요. 지금도 삼별은 책임회피하고 있지만-저는 삼별에 책임이 있고 그에 대해 보상을 해아한다고 생각합니다-그 사건을 해결한 것은 '국민'이었지요. 전국에서 구름떼처럼 몰려든 자원봉사자들. 그 사람들이 일일이 해안을 닦아서 깨끗하게 만들지 않았습니까. 국가가 시켜서 한 일도 아니고, 이런 사태에 대한 어떤 매뉴얼이 있었던 것도 아니지요. 그저 달려가서 도왔을 뿐입니다. 음, 이번 도호쿠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봐도 그런 기질적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막무가내로 결과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하여 과정이나 결재라인이나 적합성은 뒤로 제쳐두고 일단 실행하는 그 실행력 말입니다.; 한국인은 잘 잊기도 하고 다혈질적이기도 하지만 그게 사건이 터졌을 때는 행동력으로 발휘됩니다. 하지만 안전제일주의인 일본 사람들에게는 사건이 터지면 일단 뭔지 한참 의논하고 위에 물어보고 라인에 문제 없나 확인하고 그걸 다 맞춘 다음에 움직입니다. 그렇다보니 긴급사태가 발생했을 때는 대처가 늦을 수 밖에 없어요. 그리고 국민들은 그걸 감내합니다. 한국에서라면 당장에 들고 일어날 정도로 느린데도 말입니다.

JL123편이었나. 정비불량으로 산중에 추락한 그 비행기 말입니다. 사망자가 다수 나온 이유가 '사람들이 다 죽었을 거다'라고 생각하여 그날 당장 구조하러 가지 않았던 JAL과 자위대와 기타 기관들의 늦장대처 때문이었다던가요. 떨어지고 나서는 대책 위원회 이름을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에 대해 탁상공론을 펼치고 있었다는군요.
이 추락사고에 대해 들었을 때 아시아나의 첫 사고-라고 기억합니다-였던 김해 추락사고가 떠올랐습니다. 산 중턱에 떨어진 비행기, 그리고 생존자중 일부가 마을까지 내려왔고, 마을 사람들이 올라가 단체로 구조 활동을 벌였지요. 그렇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기야 JL쪽은 완전 산간이었고, 한국의 산간지방하고는 또 아주 많이 차이나기도 하지만...(먼산)

하여간 이 책을 읽으면서는 그런 잡다한 생각들이 더 떠오르더랍니다. 2권은 과연 어떤 이야기일지 궁금하네요.


무라카미 하루키.『언더 그라운드 1』, 양억관 옮김. 문학동네, 2010.


덧붙임.
주석 ₁을 달아놓고 나중에 안 적었네요.OTL
마쓰모토 사린 사건에 대해서는 이 책에서는 간략하게만 다루고 있습니다. 옴진리교는 이전에도 사린 관련한 사건을 여럿 일으켰는데 이것도 그 중 하나입니다. 지하철 사린 사건 전에 일어났으며, 나가노현 마쓰모토 시에다 사린 가스를 살포한 사건입니다. 아예 도심지에다가 가스를 풀었는데, 옴진리교가 했다는 심증만 있고 물증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그 전해-그러니까 94년에 일어난 사건인가보네요. 여기서도 사망자가 7명 나왔습니다. 여기서 제대로 증거를 확보하고 돌입(?)했더라면 지하철 사린 가스 살포사건은 없었을테고, 그리고 만약 거기서 대처를 더 제대로 하고 그 때 매뉴얼이 좀 작성되었더라면 지하철 사린 가스 사건에 대한 초기 대응이 조금 더 빠르지 않았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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