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 아마 앞으로는 창경궁으로 꽃놀이를 가지 않을 겁니다.



위의 말은 한 줄 결론인 거고..-ㅁ-/


토요일은 정신적인 스트레스 때문에 그로기 상태였습니다. 그게, 갑자기 연락을 받아서 약속이 잡힌 거였고 느긋하게 보내야하는 토요일, 그것도 별로 내키지 않는 사람과 저녁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 부담이 커서 그랬던 겁니다. 거기에 어머니에게 화를 내고 있다보니 토요일은 아침도 안 먹고(!) 아침 6시 반에 출근했습니다. 출근시간이야 평소와 같지만 아침을 안 먹고 나갔다는 건 상당히 부담이 되더랍니다. 그래서 초코바 하나로 대강 허기를 가렸는데 효과가 짧더라고요. 이미 12시쯤에는 두통이 올 지경이었습니다.;
게다가 이날도 아침운동은 착실히 했고, 카페인은 섭취 못했고, 몸은 피곤해서 창경궁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집에 들어가고 싶고, 하지만 어머니 얼굴은 마주하고 싶지 않고. 갈등에 갈등을 거듭하다가 일단 걸었습니다. 그리고 가다가 마某님이 추천하신 가게에 들어가 오렌지 셔벗이 올라간 샐러드를 싸들고는 창경궁으로 직행합니다.

1천원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순간부터 기가 질립니다. 사람 많은 것은 질색인데 이정도는 뭐, 그럭저럭 괜찮아요. 하지만 DSLR을 들이밀고 꽃 사진 찍는 사람들은 안 괜찮아요. 아버지도 비싼 카메라 들고 사진 찍으러 잘 다니시지만 아주아주 솔직히 말하면 말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아버지는 꽃보다도 파인더만 기억에 남겠다 싶은 정도던걸요. 하여간 다들 꽃 가까이 모여서 꽃을 보는게 아니라 꽃을 찍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가능한 그런 사람들을 피하겠다고 안쪽으로 들어가는데, 그 쪽은 또 꽃이 안 보입니다. 속으로 투덜대다가 꽃구경은 포기하고 배부터 채우자 싶어 벤치에 앉아 위의 사진처럼 늘어놓습니다 그리고 한참 샐러드를 먹고 있는데... 데...

지나가는 사람이 난처한 얼굴로 저를 보며 말합니다.

"여기서 먹으면 안되는데."

아.
까맣게 잊었습니다.
창경궁은 아무데서나 음식물을 먹으면 안되지요.; 기억이 맞다면 창경궁 남쪽 어딘가에 있는 피크닉장 외에는 음식물 을 먹는 것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깨닫는 순간 부끄러움과 짜증이 확 치밀어 오르는군요. 아니, 꽃놀이의 핵심은 먹을 것인데! 꽃놓이에서 먹을 것이 빠지면 무슨 재미야! .... 하지만 규정이니까 지켜야지요. 샐러드만 허겁지겁 먹고 참치라든지 떡이라든지는 도로 싸들고 집에 들어가 먹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들어오면서 주변에 핀 벚꽃에 넋이 나가 중얼거립니다. 역시 꽃놀이는 가까운 곳에서 하는 것이 좋다라고요. 그러니 이제 창경궁으로 꽃놀이를 하러 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냥 집 근처에서, 어디선가 차이나 칼라의 검은 교복을 입은 남학생이 나타나 히죽 웃는 것이 보이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며 꽃구경 하렵니다. 뭐, 일본인이니까 설마 여기까지 오진 않겠지요. 그러니 그런게 보이면 환상으로 치부하고 못 본척 하고 넘어가면 됩니다.



그리하여 꽃놀이 3탄은 이번 주말로 미루었다는 이야깁니다.'ㅁ' (2탄은 차후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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