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호, <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방문했습니다>, 종이심장, 2006

여행책(혹은 포스트)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키르난 기준)

1. 기행문은 대리만족이다. 책으로 대신 체험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ex> 한비야씨의 책을 포함한 대부분의 기행문들
2. 아무리해도 저런 여행은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ex> 오지 체험기, 배낭여행기 중 일부, 자전거 여행기 등.
3. 괜히 봤다. 적금을 깨고 싶어진다.
ex> 도쿄 기행 중 일부, 사진만으로도 사람을 흔드는 무서운 책들

최근의 여행책들은 사진 위주, 거기에 약간의 글을 덧붙여 내놓지만 만족할 만한 수준에 오르는 것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대개는 1번이거나 0.5번쯤 되는 "괜히 읽었다. 돈과 시간이 아깝다"라는 수준입니다.

어쩌다보니 한 달 정도 꾸준히 여행관련 책들을 들여다 보고 있는데,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 가장 나중으로 제쳐놓았던 이 책은 이 중 3번에 해당됩니다. 3번에 해당되는 책들이 거의 일본여행이나 관련 포스트들인데 이것은 일반적인 여행지가 아닌 아주 독특한, 아프리카를 무대로 하는 책입니다. 정확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이지요.

사진도 멋지지만 글도 아기자기합니다. 에스키모 중에서 종종 발견되는 글타입인데 읽기 편하게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말투입니다.(글쓴이가 한국사람인데 왜 에스키모 언급을 하시냐 하면 웃지요.)
특히 남아공에서 만날 수 있다는 농장체험은 보는 사람의 속을 흔들다 못해 왕복 항공권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러 달려가게 만듭니다. 생각만 하고 기억의 저편으로 묻어두었던 남아공의 블루트레인조차 지름의 불씨를 살리게 만듭니다. 본문에는 블루트레인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지름의 충동을 불러 일으킵니다. 거기에 여행 기간도 며칠이 아니라 적어도 한 달, 길게는 몇 년으로 잡게 만드는군요. 지금이라도 당장에 짐 싸들고 (그렇게 영어를 싫어함에도) 남아공으로 어학연수를 떠나고 싶습니다.

저 못지 않게 여행책을 많이 들여다본 가크란도 이 책이 최근 몇 달 간 본 여행문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라는데 동의했습니다. 그러니 저는 지금부터 적금들러갑니다. 언제쯤 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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