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은 또 사진이 많습니다. 은각사에서 하도 많이 찍어서 그럴겁니다. 이날의 코스도 그 다음날의 일정에 비한다면 상당히 길었습니다.


0710 숙소 출발(버스 1일권 구입)
0800 9번버스 탑승 후 이치죠 모도리바시 하차(세이메이 신사 앞) → 203번 타고 이마데가와 역 정류장 하차
0815 시비 찾음, 출발
0845 긴가쿠지(은각사) 도착 (개장은 8시 반부터)
0910 철학자의 길
1010 난젠지 도착
1055 히노데 우동에서 점심 식사
1125 거슬러 올라가기
1145 요지야 카페 긴가쿠지 점 도착, 대기
1225 요지야 카페 입장
1307 긴가쿠지 쪽 입구로 돌아와 버스 탑승
1330 시조 카와라마치 하차> 니시키 시장 구경, 등등


일정을 보면 아시겠지만 철학의 길을 따라 내려갔다가 도로 올라온겁니다. 그리고 평소 제 걸음으로 걸었다면 아마 타임은 이것보다 짧았겠지요.-ㅁ-;

긴가쿠지(銀閣寺)의 사진이 많은 관계로 이번 글에서는 도시샤 대학의 시비(詩碑)에 대해서만 다루겠습니다.




도시샤 대학을 돌다가 결국 허탕치고 나서는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검색을 했습니다. 우와.-_- 찾기 아주 쉬운 곳에 있습니다.
구글지도에서 교토지역으로 옮겨 놓고 doshisha라 치면 자동완성으로 도시샤 대학이 나옵니다. 한자로는 同志社. 이름이 참 멋지군요. 이름에서 생각하는 풍기는 분위기와는 달리 개신교 계통의 학교인듯합니다. 구교인지 신교인지는 모르지만 학교 안에 예배당이 있고 크리스천이라는 단어도 비석 등에 종종 등장합니다.
(이 때 찾은 시비 말고 다른 시비에서도 크리스천이란 단어가 등장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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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지도상에서 확대한 도시샤 대학 모습입니다. 이마데가와(今出川)역에서 나와 바로 있는데, 학교 한가운데 예배당이 있고 그 옆에 하늘색 사각형 표시가 있습니다. 연못이지요. 이 연못 바로 옆에 윤동주와 정지용의 시비가 있습니다.




오른쪽이 연못, 사진 한가운데 보이는 둥그런 돌덩이가 정지용 시비입니다. 윤동주 시비는 그 왼쪽에 있고요.




이것이 정지용 시비.
새겨진 시문은 가모가와강을 배경으로 한 시인데, 읽다보면 굉장히 쓸쓸합니다.





왜 정지용 시비를 세웠는가에 대한 이야기군요. 위쪽이 일본어, 아래쪽이 내용입니다. 자세히 읽어보진 않았지만 정지용이나 윤동주나 둘다 도시샤 대학 출신입니다.




이쪽은 윤동주 시비. 윤동주란 한자는 시인 본인이 쓴 것을 가져가 썼다고 합니다. 여기 실린 것은 서시네요. 누군가 꽃(조화였음..)랑 한복 모양의 책갈피를 두고 갔습니다.




이쪽은 윤동주의 시비가 세워진 배경에 대한 이야기.



정지용 시비나 윤동주 시비나 둘다 도시샤대학내 한국학생 모임에서 세웠다고 합니다. 보고 있자니 꽃이라도 한 다발 가져갈걸 그랬나 싶기도 했습니다. 다시 찾을 때는 꽃을 들고 찾아가야지요.


윤동주는 재학 중에 한국어로 시를 썼다 하여 독립운동을 했다는 죄명으로 끌려갑니다. 그리고 후쿠오카 형무소(구치소)에서 생을 마감하지요. 해방되기 몇 달 전이었다고 합니다.(정확히는 45년 2월 16일. 해방 반 년 전이었군요.) 위키 백과를 찾아보니 이 시비가 세워진 것이 95년이었네요. 정지용 시비는 그 뒤에 세워졌다 합니다.


정지용 시비의 제막과 관련한 기사가 마침 위키백과에 링크되어 있어 연결합니다.(동아일보)
한국인 시인들의 시비 건립을 허락한 도시샤 대학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음, 딱히, 한국이라면 어땠을까 그래서 그런 것만은 아니고요...'ㅂ';;;


여튼, 아침 7시부터 서둘러 준비해 학교에 들린 보람이 있었습니다. 8시 쯤 들어갔을 때도 이미 열려 있었으니 아침 일찍 찾아가도 괜찮겠지요. 시비를 둘러보고 나서는 다시 긴가쿠지로 향합니다.



다음 글은 긴가쿠지 이야기. 오늘 저녁에는 (가능하다면) 윤동주 시인의 시비 사진을 확대해서 올리겠습니다. 오역 문제로 말이 있다 해서 대강 읽어보았는데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부분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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