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내용은 다나카 요시키의 은하영웅전설의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으므로 혹시 이후에 읽으실 분들은 내용폭로를 각오하고 보시거나 피하시길 바랍니다.
이글루스 슈타인호프님의 글을 읽으면서 은영전 을지판이 내용을 잘라낸 부분이 몇 있다하기에 궁금했습니다. 혹자는 그것이 을지판과 서울문화사판이 서로 다른 판본을 사용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이야기를 하더군요. 을지판이 훨씬 먼저 나왔으니 그게 초기 판본을, 서울문화사는 그 이후의 개정판을 이용했다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원서과 을지판을 비교하면 되겠다 싶었는데 마침 양쪽 모두 손이 닿는 곳에 있었습니다. 을지판은 옛날 옛적, 고등학교 동창인 J양이 일본 유학 가기 전 유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제게 판 책으로 들어와 있었고 원서는 도서관에 있었습니다.
일단 원서가 언제 출판되었는지를 확인해야하는데 그건 아주 쉽게 풀렸습니다. 위키피디아 일본판의 은하영웅전설 항목에 문고판과 애장판 등의 출판년도와 ISBN이 나와 있습니다. 이걸 찾는 것도 쉽습니다. 한국의 위키백과에 은하영웅전설이라 치고 언어 설정을 일본어로 바꾸면 일본어 위키피디아로 바로 이동이 됩니다.
다른 것보다 출판년도를 확인하는 것이 골치 아팠던 것이..
사진에서 보듯이 언제 출판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저작권이 1983년이라는 것만 나와 있군요. 다행히 ISBN이 있어 확인이 가능합니다. 이 책은 80년대에 출간된 도쿠마쇼텐의 문고판이 맞습니다. 일어 위키에 의하면 1983년 9월 30일에 나왔네요. 문고판 1권과 2권의 합본인 애장판은 1992년에 나왔습니다.
도서관 책 인증 표지 사진도 찍긴 했지만 찍고 나서 보니 도서관 명이 큼직하게 나와 있어서 그 사진은 뺐습니다.
다른 분들께 물어, 은영전 을지판에서 잘린 것이 확실하다는 안네로제와 라인하르트의 대화장면을 찾았습니다. 2권 끝부분에 있더군요. 도서관에 서울문화사판은 1-2권이 없어서 그쪽과는 비교해보지 못했지만 을지판과 비교해본바, 잘렸습니다. 그리고 그 잘린 부분은 안네로제의 마음입니다.
을지판입니다. 어머.-_- 지금 다시 읽어보니 이야기가 홀랑 잘렸군요.
가르침을 달라더니 그 이야기는 홀랑 빠졌습니다. 그럼 원서에는 어떻냐면..
을지판에서는 잘린 부분입니다. 날림으로 해석해보면,
라인하르트는 침을 삼키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누님은 키르히아이스를......사랑하셨습니까?"
그리고 쭈뼛쭈뼛 누님의 얼굴을 보았다.
대답은 없었다. 다만 라인하르트는 그 때처럼 투명하게, 그 때처럼 슬퍼보이는 누님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살면서, 그 표정을 잊는 일은 없을거다라고 생각했다.
이런 이야기가 됩니다. 색이 다른 부분이 잘린 부분입니다. 다시 말해 안네로제가 키르히아이스를 사랑했다는 것은 확실하고, 그 이야기가 홀랑 빠진 거죠. 누구씨의 말에 홀려 소꿉친구이자 반신과의 선을 긋는 순간 그를 잃었고, 그를 잃음과 동시에 유일한 가족인 누님도 잃습니다. 키르히아이스도 저 상태로 가면 매형(..)이 되었을 것 같으니 어떻게 보면 가족을 통째로 잃었달까요. 불쌍하지만 불쌍하지 않다란 이중 감정이 듭니다. 키르히아이스를 먼저 버린 것은 너니까 버림 받아도 할 수 없음! 흥!
그나저나 아무리 남동생이라지만 물을게 있고 아닐게 있지, 사랑하던 사람의 사망소식을 접한지 얼마 안된 누님한테 저런 걸 물어본답니까. 약관의 꼬맹이라 눈치가 없다해도 한계가 있지, 안네로제가 남동생을 버리고 싶어진 것도 당연하단 생각이 듭니다.(물론 권력에 취해서 자신의 소꿉친구를 내친걸 보고는 강력 대응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했을테지만..;)
하여간 상당히 중요한 장면이라 생각하는데 왜 홀랑 빠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로서 판본이 다른 것이 아니라 빠진 것이 맞다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궁금증 해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