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사람이든 사람과 인간이든, 어차피 같은 것을 지칭하나 한쪽은 순수 한글 단어이고 다른 쪽은 한자어라는 점이 다릅니다. 플랑베르의 일물일어설을 받들어 같은 것을 말한다 해도 완전히 같은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라는 것도 다르고요. 인간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야하는 곳에 사람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도 이상하고, 사람이란 단어가 들어갈 자리에 인간이 들어가도 굉장히 이상한 느낌이 듭니다. 바로 이런 상황이죠.


이번 연수 동안에 사용한 여러 준비자료들 중에 업무자료가 있습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저는 절대 몸에서 떼어놓을 수 없다고 부르짖는 필수자료지요. 무지막지한 부피를 자랑하는 그 자료를 연수동안 잘 썼다가 도로 갖다 놓기 위해 오늘 잠시 일터에 다녀왔습니다. 웬만하면 출근하는 날 들고가겠지만 2kg 이상으로 추정되는 무게 때문에 시간 날 때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한 겁니다.
쉬는 날이라 사람은 하나 없고, 그래서 자료만 놔두고 바로 나왔습니다. 귀엔 이어폰을 꽂고 껄렁껄렁(...)하게 걸어나오는데 저기에 웬 남자 하나가 지나가는군요. 그 때 머릿 속으로 이런 문장이 스치고 지나갑니다.

"응? 처음보는 인간인데?"

잠시 뒤.
뭔가 이상한 것을 느끼고 문장을 다시 검토합니다. 그리고는 저 인간이라는 단어를 두고 절망을...lllOTL

제가 맨틀 아래서 뒹굴던 드래곤인 것도 아니고, 동해바다 저 깊은 해구에서 잠자고 있던 용도 아니고, 그렇다고 스칸디나비아 반도 저 깊은 숲에서 사는 트롤인것도 아니고. 저 문장 자체의 이미지는 "나는 인간이라는 종족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저기 지나가는 저것(그 분께는 죄송합니다;)은 내가 처음 보는 인간이다."에 가깝지 않습니까?

판타지를 너무 많이 봐서 저렇게 연상하는 것이다라고 해도 할 말은 없지만 왠지 호빗스런(혹은 트롤같은, 용같은, 드래곤 같은 등등) 생각을 하고 말았다는 것에 대해 좌절했습니다. 그렇다 해도 5분만에 이미 그 상황을 잊고 서래마을로 갔지만요.

서래마을 전리품은 조금 있다가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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