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는 추리소설이 제격입니다. 하지만 추리소설도 나름이지요. 입맛에 맞는 것만 좋아하지, 괴기나 호러가 들어가 있다거나 잔혹 엽기코드가 들어 있으면 못봅니다. 특히 엽기의 경우, 2000년대 초반에 유행한 것처럼 의외성이나 유쾌한 반전 등을 주제로 했다면 괜찮지만 엽기 잔혹 호러라면 절대 안 봅니다. 테스 게리첸의 외과의사 시리즈, 막심 샤탕의 악의 3부작, 그외 노블마인에서 나온 링컨 라임 시리즈나 퍼트리샤 콘웰 책은 몇 권 보다가 최근에는 손을 안대고 있습니다. 보고 있자면 제 영혼을 갉아 먹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고풍스러운 표현이니 조금 바꿔 쓴다면 제 마음을 좀 먹는 책이란 겁니다.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더군요. CSI 라스베가스 편의 엽기 살인마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바꿔쓰고 150% 정도 잔혹도를 올리면 저런 책이 나옵니다. 물론 책에 따라 잔혹도의 뻥튀기 여부는 다릅니다. 가장 심한 것이 막심 샤탕이고 나머지는 테스 게리첸>퍼트리샤 콘웰=링컨 라임 시리즈정도 되겠네요. 이런 책을 좋아하신다면 추천합니다.(먼산)


최근에 읽은 추리소설은 거의 가 다 가볍습니다. 저런 책을 떠올리다가 애거서 크리스티를 돌아보면 참으로 밝고 경쾌하게 느껴집니다. 어렸을 적-초등학교 때-기암성의 표지가 무섭다고 책을 박스에 담아 놓고도 무서워서 가위 눌렸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지금에야 뭐, 피 뚝뚝 흘리며 지옥으로 끌고 가겠다는 살인마가 아니라면 괜찮습니다. 요약하면 미친놈이 등장하는 추리소설이 아니라면 그럭저럭 괜찮다니까요.


슈가와 미나토의 <도시전설 세피아>를 다 보고 나서 감상을 써야겠다는 생각에 컴퓨터를 붙들었는데 생각해보니 그 간 책을 또 많이 읽었더랍니다. 어제 반납한 책도 꽤 되었으니까요. 그 중 한 권은 리뷰를 따로 쓰기로 하고 나머지만 몰아 올립니다.

<열세가지 수수께끼>, <침니스의 비밀>, <세븐 다이얼스 미스터리>, <서재의 시체>는 모두 애거서 크리스티입니다. 열세가지 수수께끼는 그저 마플 여사님이 보고 싶어 빌렸는데 뒤적거리다보니 서재의 시체도 마플여사 책이더랍니다. 흐뭇한 마음으로 읽었는데 서재의 시체는 보면서 얼추 트릭이 보였습니다. 엘러리 퀸의 모 소설과 분위기가 닮았더군요. 아니, 분위기가 아니라 구조라 해야 맞겠네요. 하여간 넷 다 모두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열세가지 수수께끼는 마플 여사가 본격적으로 추리실력을 발휘하는 이야기고, 침니스의 비밀과 세븐 다이얼스 미스터리는 서로 연관된 이야기입니다. 앞쪽은 연애소설이고(..) 뒤쪽은 하드보일드가 되려다가 만 것 같은 느낌의 첩보물입니다. 읽다보면 역시 애거서란 생각과 함께 짝짓기의 화살표를 들고 흉악한 웃음을 짓고 있는 할머님이 떠오르게 될겁니다. 이번에도 또 왕창 애거서를 빌려왔는데 이러다가 올 여름에는 애거서 크리스티만 읽게 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목매다는 하이스쿨>과 <카니발 매지컬>은 헛소리꾼 시리즈의 중간쯤 됩니다. 목매다는~은 앞서 본 목조르는 이야기와 바로 이어지는데 카니발 매지컬은 그 다음 다음 이야기였습니다. 사이에 <사이코 로지컬>이 있더군요. 두 권 짜리인데 책이 일부만 있어서 안 빌렸더니 사이가 떴습니다. 지금까지 읽은 것이 4권이고 앞으로 다섯 권이 남았으니 절반쯤 왔나봅니다. 하지만 책 권 수는 그렇다 해도 시리즈는 두 개만 남았으니까요. 사이코 로지컬은 평이 나쁘지 않은데 마지막인 모든 것의 래디컬은 평이 안 좋습니다. 크게 기대는 하지 않고 읽어야겠군요.
목매다는 하이스쿨은 니시오 이신의 마구 죽이기 필살기가 발휘되었다 하여 원성을 샀는데 저는 그냥 그랬습니다. 저는 주인공과 그 커플에만 관심이 있으니까 그 둘만 살아남으면 됩니다.(...) 그런 고로 그 외의 등장인물은 웬만해선 사라져도 관계 없다는 겁니다. 아하하.

그런 의미에서 문학소녀 8권이 어떻게 마무리 될지 걱정됩니다. 6권 맨 뒤의 에필로그만 다시 보았는데 묘한 분위기던걸요. 거참. 지금 검색하니 8권 나왔던데 오늘이라도 당장 책 사러 달려가고 싶은 걸 참고 있습니다. 내일 가서 사야지요. 오늘은 무조건 집에서 쉬는 날입니다. 삐~랑 이어지면 화낼겁니다.;ㅂ; 그렇게 되면 7-8권 합해 마스터님께 넘기겠습니다.(응?)


그리고 마지막으로 감상 적는 책이 <도시전설 세피아>입니다. 제목이 참 뭣하죠. 슈가와 미나토는 이전에 꽃밥이란 책이 나오키 상을 탔다 해서 도서관에서 관심깊게 보았지만 정작 빌려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수은충이란 책이 나와서 빌려 볼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에 옆에 있는 책과 함께 집어 오게 되었으니, 그 옆에 있던 책이 도시전설 세피아였습니다. 단편집인데 대강 넘겨 보는 사이에 그럭저럭 괜찮다 싶어서 빌렸습니다.
하지만 취향을 꽤 탈만한 이야기네요. 분위기는 도쿄기담집(무라카미 하루키)이나 환상루기담(아사다 지로), 아시야 가의 전설(쓰하라 야스미)와 유사합니다. 그리고 도시 괴담이라는 점에서는 코끼리와 귀울음(온다 리쿠)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맥은 같이 하지만 완성도에서는 상당히 차이가 난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작 단편인 다른 책들과는 달리 이쪽은 단편들이 다 떨어져 있거든요. 앞의 두 편은 해설(이시다 이라;)에 의하면 문학지 발표작이랍니다. 분위기가 조금 가볍다 싶었는데 그렇더군요. 하지만 그 중에서도 어제의 공원은 꽤 느낌이 좋았습니다. 아니, 그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괴담이지만 그 풀어내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아시야가의 전설처럼 약간의 장광설을 포함해 이야기를 풀어내다가 조금은 혐오스런 분위기로 가서 마무리 짓는 것이 아니라, 이쪽은 아예 단편 하나 하나가 완결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완전한 끝맺음에 여운은 조금 남지만 완결된 공간 안에서 만족스러운 여운을 맛보는 겁니다. 먹는 것에 비유하자면 맛있게 커피 한 잔을 마시고는 혀 끝에 남는 향기로움을 만끽하는 것 같은 거죠. 단편에 따라서는 마지막에 혀끝에 와닿는 맛이 의외인 경우도 있습니다.
괴담류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추천하기 망설여지네요. 하지만 글 자체의 느낌은 꽤 좋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단편인 월석이 기분 좋은 마무리를 해주었기 때문에 감상도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저 맨 마지막 문장가지고 한 마디 더.'ㅅ'
란포상 수상 작가의 단편 모음인 *색의 수수께끼 시리즈는 단편 단편의 느낌은 꽤 좋습니다. 마음에 드는 단편도 여럿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이 집 서가에서 방출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책을 읽었을 때의 뒷맛이 썼습니다. 대개 맨 앞에 놓인 것은 시대물이고 중간에는 제 취향에 잘 맞는 단편이 들어가 있었지만 맨 뒤에는 꺼림칙한 이야기가 들어 있어 마무리가 나빴습니다. 그런 고로 방출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책을 보면서도 '다나에'는 조금 아쉽지만 나머지는 아쉬울 것도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단편 한 편 때문에 들고 있기에는 집안 서가가 포화상태입니다.



오늘 대강 거실에 있는 책을 뽑았습니다. 오래된 책들이 많아서 뽑아 내면서도 대부분은 폐지 처분되겠다 싶었습니다. 전체 목록 올리고 나서 안 나가는 것은 대학로의 구세군 카페에 기증해야지요.



애거서 크리스티, <열세가지 수수께끼>, <침니스의 비밀>, <세븐 다이얼스 미스터리>, <서재의 시체>, 황금가지, 2003-2007, 9천원
니시오 이신, <목매다는 하이스쿨>, <카니발 매지컬>, 현정수,  학산문화사, 2007-2008, 9500원, 13000원
슈가와 미나토, <도시전설 세피아>, 이규원, 노블마인, 2007,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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