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루스 밸리를 돌아다니다가 홍대의 데코아 발림에서는 핫초콜릿을 시키면 냄비에서 데우고 있던 녹은 초콜릿을 한 국자 부어준다라는 글을 보았습니다. 초콜릿이 부글부글 끓을리는 없지만-직화금지!-중탕냄비든 뭐든 간에 은근한 불에서 데워지고 있는 녹은 초콜릿 한 국자를 듬뿍 컵에 부어준다는 광경은 상상만 해도 흐뭇합니다. 그 상상의 원류가 조앤 해리스의 <초콜릿>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요. 그 책 때문에 초콜릿 공방에 대한 환상은 무럭무럭 자랐으니, 그 환상을 충족시킬 수 있는 곳이 있다면 당연히 가보아야지요.

데코아 발림은 한 주에 한 번 정도는 꼬박꼬박 돌아다니는 곳이라 가기 어렵지는 않은데, 거기서 음료를 살만한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더군요. 이전에 데코아 발림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긴 한데 그 전까지 단 한 번도 들어가 본적은 없었습니다. 하하.; 다른 것보다 간식류를 구워팔거나 간단한 제과제빵시연 및 강의를 중심으로 하는 곳이라 사서 먹을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보통은 사서 들고 나가는-일본의 집앞 과자점과 비슷한 느낌이라 더 그렇습니다.
어느 날, 평소보다 늦은 시각에 움직이다보니 중간에 어디 들러서 잠시 쉬었다 갈 시간도 없었습니다. 바로 이동해야하는 날인데 달달한 초콜릿 음료가 땡깁니다. 마침 잘 됐다 싶어 데코아 발림에 들러 드디어 핫초콜릿을 맛보기로 결정합니다. 기억이 맞다면 밸리에서 글을 보고 데코아 발림에 가기까지는 몇 주 걸렸습니다. 한 달까지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 다행이지요. 하지만 이 글을 쓰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렸으니 처음 글을 읽고 나서 한참 뒤에야 후기를 올리는 셈입니다.

메뉴판에는 핫초콜릿이 아니라 조금 더 긴 이름이 붙어 있었습니다. 가격이 4천원이었을겁니다. 에스프레스 핫초콜릿인가, 아마 그 비슷한 이름이었을테고요. 주문을 하자 잠시 기다려 달라길래 저는 그 사이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재미있는 초콜릿을 발견했습니다. 마시멜로에 초콜릿을 입힌 것이더라고요. 핫초콜릿이나 따끈한 우유에 데워먹으면 좋다고 하길래 호기심에 구입해 G에게 주었습니다.

하여간 핫초콜릿을 만드는 방법은 생각한 그대로였습니다. 에스프레스 한 샷을 컵에 붓고, 거기에 데운우유(스팀우유)를 붓습니다. 그리고 냄비에서 녹인 초콜릿을 한 국자 듬뿍 떠서 컵에 담습니다. 아아. 이 장면이 보고 싶었던 겁니다!
물론 꿈꾸었던 것처럼 오래된 국자도 아니고, 마녀의 솥 같은 무쇠 솥에서 데워진 초콜릿도 아니지만 만족했습니다.

뜨거운 음료라 그런지 스티로폼 같은 재질로 종이컵을 한 번 쌌습니다. 그리고 앞쪽에 보이는 것은 초콜릿으로 코팅한 커다란 마시멜로입니다. 그리고 저 숟가락.;;


사진에 보이는 것은 초콜릿의 흔적입니다.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 바닥에 깔려 있는 것은 다크 엘프 트릴로지.;)

음료를 주시면서 주인 아저씨가 '숟가락으로 가능한 많이 저으세요. 많이 저을 수록 맛이 좋습니다. 숟가락이 열 때문에 휘어질 수 있지만 신경쓰지 말고 계속 저으세요'라고 이야기 하시던데 진짜 그렇습니다. 플라스틱 숟가락을 넣는 순간 숟가락이 휘어서 당황했습니다. 흐물흐물 거리니 제대로 저어지지 않아서 일단 다 섞지 않은 상태로 한 모금 마셔보았는데 맛 없습니다. 맹탕 우유에 맹탕 에스프레소란 느낌이예요. 안되겠다 싶어 부지런히 계속 섞었습니다. 휘젓다보니 음료가 조금 식어서 그런지 숟가락이 휜 상태로 굳었더라고요. 그 때쯤에는 섞기가 훨씬 편합니다. 한참을 섞어서 달콤한 향이 올라오기 시작해 한 모금 마셨습니다.
우와!
아까하고는 맛이 전혀 다릅니다. 아까는 커피맛도 안나고 우유맛도 안나고 정말 아니다 싶었는데 잘 섞고 나니 초콜릿을 듬뿍 녹인 핫초콜릿에 쌉쌀한 에스프레소의 맛이 맛있게 조화를 이룹니다. 단지 섞기만 했을뿐인데 이런 맛이!

그리하여 스타벅스의 시그니처 핫초콜릿을 당당히 제쳐놓고 데코아 발림의 핫초콜릿이 마시고 싶은 핫초콜릿 순위에 올랐습니다. 도넛공장의 핫초콜릿과 며칠 차이를 두고 마셨는데 양쪽의 맛 방향은 다릅니다. 그러니 각각 마시고 싶을 때도 다르다라는 이야기지요.


추적추적 비 오는 날씨라 그런지 오늘은 따끈한 핫초콜릿이 마시고 싶습니다. 데코아 발림도 좋고 도넛 공장도 좋아요. 언젠가 날잡아 데코아 발림을 한 번 더 다녀와야겠습니다.



덧붙임. 데코아 발림의 위치를 빼먹었네요.

극동방송국 근처입니다. 하카다분코가 있는 골목을 몇 십미터 더 올라가면 됩니다. 오른쪽에는 커피콩 볶는 집인 '카페 더 블루스'가 있고 그 위쪽에는 '살롱 드 라 소시에르', 그리고 소시에르 맞은 편에는 '아르 데코'가 있습니다. 주택가고 골목도 좁아서 고즈넉한 분위기입니다.


덧붙임 두 번째.
오오. 티스토리의 지도 기능 좋은 걸요? 다음에 올리게 되는 카페 후기글도 지도 첨부해서 올려보겠습니다.+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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