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은님의 이글루에서 트랙백합니다. '물건'으로써의 책에 관한 문답 - Q편

보고 있자니 왠지 손이 근질근질해서 저도 한 번 해보았습니다.+ㅁ+ 질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책이라는 물건/사물에서 가장 좋아하는 점은 무엇입니까?

2. 새로운 (혹은 헌) 책을 구입했을 때 치르는 의식이나 절차가 있습니까?
(어떤 작가들은 책을 깨물거나 책의 향을 맡아보기도 합니다.)

3.
갈수록 전자화되는 사회에서 책이 반드시 물건으로 존재해야 할까요?
만약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그리 생각하십니까?

4.
최근의 책들 중 당신에게 잘 디자인되고 잘 만들어진 책의 표본이라고 생각되는 책은 무엇이 있습니까?

5.
책에 관한 나누고 싶은 기억이 혹시 있으십니까?


쓰다보니 더 재미있던걸요. 제가 작성한 문답은 이렇습니다.


1. 책이라는 물건/사물에서 가장 좋아하는 점은 무엇입니까?
내용. 즉, 그 형태가 담고 있는 것. 가끔은 일러스트도 그 대상입니다. 삽화가 마음에 들지 않는 책도 있지만 NT 노벨 등의 판타지 소설들 중 소장하고 있는 것은 대부분 삽화를 좋아합니다. 특히 상냥용 시리즈는 삽화 때문에 구입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니 6권 구입은 하지 않았고...
그리고 종이, 느낌, 안정감도 좋아합니다. 책의 형태인 종이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아트지보다는 재생지 느낌의 가벼운 종이를 더 좋아합니다. 이건 들고 다니면서 읽는 책의 경우 더 그렇죠. 하지만 화집을 그런 종이로 만든다면 아마 구입 대상에서 제외되겠지요. 역시 목적에 맞는 종이여야 좋아하는 것이고. 책이 주는 안정감-느낌도 좋아하는 부문입니다. 책상 위에 도서관에서 갓 빌려온 책들이 쌓여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해지고 뿌듯하고 배가 부릅니다. 그러니 책의 집합체도 당연히 좋아합니다. 과제용 책이라면 보는 것만으로도 질리겠지만 그것이 아니라 특별히 내가 좋아하는 책만 모아 놓았다면 흐뭇한 기분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고,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서가에 꽂힌 책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아, 물론 공포소설이 가득 꽂혀 있는 책장이라면 기피 대상이지만; 도서관이나 서점에 꽂힌 책의 무리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좋습니다. 특히 도서관의 책은 빌릴 수 있으니까요. 서점의 책은 구입해야하지만.;


2. 새로운 (혹은 헌) 책을 구입했을 때 치르는 의식이나 절차가 있습니까?
(어떤 작가들은 책을 깨물거나 책의 향을 맡아보기도 합니다.)
책을 펼쳐 앞의 3-4페이지를 넘긴 다음 실제본인지 아닌지 확인합니다. -ㅁ-; 최근 몇 년 사이에 생긴 습관인데 좋아하는 책일수록 가능한 빨리 살펴봅니다. 좋아하지 않는 책은 살펴볼 가능성이 낮습니다.


3. 갈수록 전자화되는 사회에서 책이 반드시 물건으로 존재해야 할까요? 만약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그리 생각하십니까?
전자화되는 사회의 퍼센트가 얼마나 될거라 생각합니까? 대학을 나오고 컴퓨터를 사용하고 인터넷을 사용하는 당신은 전세계 1% 안에 드는 상위 생활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99%는 '물건으로 존재하지 않는 책'을 접할 기회가 없겠지요? 전 세계가 전자화될 날은 오지 않을 것이므로-그 전에 지구가 멸망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봅니다-이 질문은 제게 의미가 없습니다.
게다가 전 전자책은 질색이거든요.-ㅅ-; 모니터상으로도 소설은 잘 보지만 책은 종이를 붙잡고 넘겨야 제 맛입니다.

      
4. 최근의 책들 중 당신에게 잘 디자인되고 잘 만들어진 책의 표본이라고 생각되는 책은 무엇이 있습니까?
구텐베르크의 성경.(웃음) 그 다음은 윌리엄 모리스가 만든 예술 장정 책.(으하하;)
손에 들고 보기 좋은 책의 의미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같은 작은 판형의 책을 좋아합니다. 조앤 해리스의 <초콜릿>도 좋지만 책이 조금 빽빽한 감이 있습니다. 그만큼 내용이 많아서 좋아하긴 합니다. 비슷한 느낌은 손안의책에서 나온 교고쿠도 시리즈도 그렇습니다. 빽빽하니 내용이 많아서 읽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 좋습니다. 얇거나 내용이 적은 책은 출근하면서 책을 다 읽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책을 두 권 이상 들고 타야하는 문제가 있거든요. 그리고 마틴 가드너의 주석달린 <앨리스>는 책 판형에 비해 가볍고 디자인도 은근히 취향이라 좋아합니다. 하지만 보관의 문제로 인해 구입은 하지 못했습니다. 윤현승의 <라크리모사>는 끝부분의 편집이 재미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겉보기만 예쁜 책이라 생각하는 것은 한길아트의 책입니다. 아트지를 이용해서 책이 무거운 편이며 오래 보관하면 종이가 누렇습니다. <동과 서의 차 이야기>가 그랬고요. 판형이나 그런 것은 처음 보았을 때는 예쁘다 생각했지만 소장하면 할 수록 마음에 안드는 점이 눈에 들어오는 독특한 책입니다. 특히 책을 뜯어 보았더니 속 제본에 상당한 문제가... 제책면에서 가장 아쉬운 책이 한길사 책인데 특히 시오노 나나미의 책이 그렇습니다. 다시 제본을 하고 싶어도 실제본인 책이 한 권도 없더군요. 그런 의미에서 제일 피하고 싶은 출판사 책이 거기...;


5. 책에 관한 나누고 싶은 기억이 혹시 있으십니까?
청계천 헌책방.
최근에는 거의 가보지 않았지만 어렸을 적에 부모님이 사다주신 전집은 다 청계천에서 나온 책이었습니다. 40-50권씩 되는 전집이 집에 들어와서 책장에 꽂혔을때의 느낌이 지금도 떠오릅니다. 볼 책이 많다는 것에 대한 기쁨, 그리고 어떤 책일지에 대한 두근거림, 몇 번이고 돌려 읽고 또 읽고를 반복하며 행복에 젖었던-이보다 더 적당한 표현이 없을 정도로 좋았습니다. 지금은 책을 사더라도 그런 기쁨은 맛보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뭐, 도서관에서 읽고 싶은 책을 잔뜩 빌려 왔을 때의 느낌이 비슷하긴 하겠지요. 아, 처음 가보는 도서관 서가의 느낌도 굉장히 좋습니다. 대학교에 막 입학해서 처음으로 도서관에 들어갔을 때, 생전 처음으로 들어가보는 거대한 도서관과 그 서가에 홀딱 반했습니다. 붕 떠 있는 느낌으로 도서관 서가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한참을 기쁘게 거닐었지요.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건 어느 도서관이든, 제가 책을 잔뜩 빌릴 수 있는 커다란 도서관에 들어간다면 다 같은 기분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책에 대한 기억보다는 도서관에 대한 기억과도 같지만, 그렇게 도서관에서 보고 싶은 책을 잔뜩 빌려와 책상 위에 쌓아 놓았을 때의 흐뭇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작가와 책에 관한 기억이라면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처음 신문에서 광고를 보았을 때, 서둘러 서점에 달려가 몇 권 남지 않은 책을 구입해 손에 들고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보면 일본 만화 같고 번역도 이상한 소설이지만 그 당시에는 굉장히 공감하며 몰입해 읽었습니다. 지금도 <키친>은 우울할 때 가장 먼저 찾아보는 책입니다. 처음 읽었을 때의 공감은 지금도 잊혀지질 않는군요.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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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다시 한 번 고백하자면, 전 서치(書癡)-책에 미쳤사와요.-ㅁ-; 물론 국어사전에서의 서치 의미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북매니아가 아니라 책 읽기에 미쳐 일상생활의 영위가 제대로 안되는 사람이지만, 단어 그대로의 의미로 책에 미쳐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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