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좋아하는 모 작가의 첫 소설을 읽었을 때, 그 소설을 같이 읽었던 친구 Y와 함께 굉장히 감동(동감)을 했습니다. 그 소설이 동류에 대한 것이었고 그 때 저나 그 친구가 동류에 대해 이모 저모 생각할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코드가 맞는다는 것도 친구간의 교제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사실 저는 코드보다는 동류, 혹은 같은 사회문화적 배경의 공유를 더 중시하는 편입니다. 코드만 같아서는 아래와 같은 대화가 되지 않거든요.
이 건에 대해 다시금 생각을 하게 만든 것은 가크란이 가볍게 던진 말 때문입니다. 며칠전에 눈색과 머리색의 조합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이런 말이 나왔지요.
(갈색머리칼을 두고 시작한 이야기)
K : 이 눈 색은 어때? 청록색인데 괜찮지 않나?
G: 뭐, 그럭저럭 괜찮네. 저 조합이면 클라리사가 되겠지만.
K: 아하하, 그렇네.
G: 어,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듣는거야?
K: 그야 당연하지.
K : 이 눈 색은 어때? 청록색인데 괜찮지 않나?
G: 뭐, 그럭저럭 괜찮네. 저 조합이면 클라리사가 되겠지만.
K: 아하하, 그렇네.
G: 어,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듣는거야?
K: 그야 당연하지.
위 대화의 중점은 눈색도 머리색도 아닌 클라리사입니다. 혹시 누군지 아십니까?
에니드 블라이톤의 소녀소설(사실 해리포터도 길게 썼다 뿐이지 이 소녀 기숙사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봅니다)인 다렐르 시리즈에 나오는 등장인물입니다. 굉장한 부잣집 딸이지만 치아 교정기와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있어서 처음엔 어떤 외모인지 다들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안경을 벗어라(콩깍지 벗어라라는 정도의 의미;)라는 말을 진짜로 받아 들여 안경을 벗는데, 그 순간 그 자리에 있던 애들이 놀랍니다. 선명한 녹색눈. 거기에 다갈색 머리칼이 굉장히 예뻤거든요.
클라리사는 이후 승마에 빠지게 되어서 윌헬미나와 함께 열혈 승마소녀가 되지만 그래도 클라리사에 대한 첫 번째 기억은 항상 녹색눈에 다갈색 머리칼입니다.
다시 말해, 같은 책을 읽고 같은 부분을 기억하고(혹은 기억을 떠올릴 수 있고) 그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없다면 위의 대화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저나 가크란은 같은 사회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저정도 대화가 가능하지만 혹시라도 다른 사람과 저런 대화를 했다면 당장에 "누구야?"나 "무슨 소리야?"라는 말이 나왔을 겁니다. 가크란의 주변 친구들 중에 배경공유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적어서 저런 말을 던져도 제대로 받아 치는 경우가 많지 않을겁니다.
저는 .... 뭐, 상당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저 상황에서 다른 사람을 끼워 넣으면 이정도 대화는 가능하겠지요.
(같은 상황에서)
S : 이 눈 색은 어때? 청록색인데 괜찮지 않나?
K : 뭐, 그럭저럭 괜찮네. 저 조합이면 클라리사가 되겠지만.
S : 클라리사?
K : 그 왜, 다렐르 시리즈에서 말 좋아하는 부잣집 딸래미. 걔가 갈색 머리에 녹색눈이잖아.
S : 아아.
K : 녹색눈이 등장한 소설은 그게 처음이라 읽을 당시에 꽤 충격적(?)이었거든.
S : 왜, 녹색눈이라면~(대화 생략)
S : 이 눈 색은 어때? 청록색인데 괜찮지 않나?
K : 뭐, 그럭저럭 괜찮네. 저 조합이면 클라리사가 되겠지만.
S : 클라리사?
K : 그 왜, 다렐르 시리즈에서 말 좋아하는 부잣집 딸래미. 걔가 갈색 머리에 녹색눈이잖아.
S : 아아.
K : 녹색눈이 등장한 소설은 그게 처음이라 읽을 당시에 꽤 충격적(?)이었거든.
S : 왜, 녹색눈이라면~(대화 생략)
만약 S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서라면 네 번째 대화문에서 "옛날 소설 등장인물 중에 다갈색 머리에 녹색눈 한 애가 있었어."정도로 대화가 끝나겠지요. S도 어느 정도 교집합이 이루어지니 저렇게 해도 알아 듣는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