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도 꽃처럼을 사러가는데는 상당히 무리한 일들이 뒤따랐습니다.

어머니가 질색하는 일 중 하나가 짐 잔뜩 들고 미련하게 걷기라든지, 오래 걷기라든지 일종의 자학행태인데 꽃보다도 꽃처럼을 사러가는 날이 딱 그랬습니다. 타워팰리스 식탐계 때는 정장은 아니더라도 그에 근접한 옷을 입어야 할 것이며, 그렇다면 굽 높은 구두를 신어야 할 것 같아 사두고 한 달 째 방치되어 있는 5cm 굽의 구두를 꺼내들었습니다. 이게 금요일 아침의 상황이었지요. 그날은 들고 올 짐도 꽤 많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왜 그런 삽질을 했냐 하면 웃지요. 당연한 일이지만 아침에 출근하면서 발이 굉장히 아팠습니다. 지금까지는 3cm도 높다고 생각했는데 5cm가 되니까 몸무게가 앞으로 쏠리면서 앞꿈치부분이 구두에 쓸려 아픕니다.

하여간 출근하고 나서 시아와 미소년 대화를 펼치다가 꽃보다도 꽃처럼 4권이 나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3권과 4권의 발행텀이 너무 길어서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던 참인데 하루라도 빨리 보고 싶었던 겁니다. 게다가 다음날인 토요일은 2시에 인사동에서 약속이 있어서 동대문은 못갑니다. 발이 아픈 것을 참고 동대문을 가느냐, 아니면 다음으로 미루느냐에서 몸의 문제는 장렬하게 참패하고 동대문으로 향했습니다.

그 뒤의 삽질들.

1. 지하철 탄 40분 가량 동안 내내 서 있었습니다. 당연히 발 아픕니다.
2. 동대문에서 집까지 근 40분을 걸었습니다.(동대문 가는 것을 망설인 이유가 동대문에서 집까지는 걷는 쪽이 더 편하기 때문입니다. 그 신발을 신고 걷는다는 것은...;)
3. 걸어가면서 신발 안이 조금 축축해지길래 혹시라도 새 신발을 피투성이로 만든게 아닌가 걱정했지만 그건 아니었고 양 새끼발가락에 물집이 잡혔다가 터진 것이었습니다. 바늘로 따는 수고는 덜었지만 걷는 동안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이런 수고 속에 데려온 꽃꽃 4권. 대만족입니다.T-T 이 책도 지난 주말 동안 몇 번이나 다시 읽었으나 도중에 아주 재미있는 대사가 나오더군요. 아는 사람만 아는 이야기란게 그겁니다.


꽃보다도 꽃처럼 4권에는 아리와라노 나리히라가 나옵니다.
누군지 모르신다면 다행이고, 아신다고 해도 "그 책"을 통해 아셨다면 미친 듯이 웃고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앞권에도 등장한 나오즈미(直角 : 이름이 아주 상큼합니다)가 이런 대사를 읊습니다.

"정말 좋아요. 가키츠바타. 나리히라는 내 이상형이에요. '많은 여성들과의 교제는 여성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큰소리 치는 것 같아서!"

그런데 그 아래의 작가주를 보면 "<가키츠바타> 정말 이런 말을 합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처음 읽을 때는 누가 이상형인지 슬쩍 넘어갔는데 다시 보니 나리히라입니다. 뒤에도 아리와라노 나리히라라고 정확하게 이름이 나와 있습니다. 켄토가 공연을 맡은 <가키츠바타>의 주역은 가키츠바타(제비붗꽃, 연자화)의 정령이기도 하고 나리히라 본인이기도 하고 나리히라가 사귄 여성들이기도 한 묘한 인물입니다. 이부분까지 이해를 하는 순간 미친듯이 웃었습니다.


혹시라도 왜 웃었는지 궁금하시다는 분, 난 남자들만이 주역이라도 상관없다는 분들은 대원에서 나온 왕조로망스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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