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기,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4 - 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과업>, 웅진지식하우스, 2007


이윤기씨의 그리스 로마 신화 1-3권은 아주 옛날에 읽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반쯤은 의무감에 읽었기에 그리 재미있다 생각하지도 않았고요. 하지만 4권은 훌훌 넘겨보다가 뭔가 재미있겠다는 반응이 있어 집어 들었습니다. 아침 출근시간에 시작해 퇴근시간, 그리고 퇴근한 이후에도 다 읽어 하루에 죽 읽어내렸습니다. 책이 두껍긴 하지만 종이가 조금 두꺼운 편이고 그림이 많은데다 편집 자체가 느슨-글자가 빽빽하지 않은-해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대신 책이 좀 무겁더군요. 비슷한 두께의 소설책은 가벼운 종이를 쓰면 되니 이정도까지는 아닌데 그림들 때문에 아트지에 가까운 코팅 종이를 쓰다보니 어쩔 수 없습니다.

그리스 신화의 끝부분이랄까요. 신들의 세계에서 인간의 세계로 넘어갈 때쯤의 이야기라 신들의 비중은 조금 낮습니다. 신화와 전설의 중간쯤. 어쨌건 처음부터 끝까지 헤라큘레스의 이야기고 그의 가계도에 대한 이야기, 그 부모들에 대한 이야기, 그와 얽힌 영웅들의 이야기가 죽 이어집니다.
헤라큘레스의 업적에 대한 이야기는 대강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확실하게 읽고는 정떨어졌습니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남성상입니다. 악동을 넘어서서 망나니에 패륜남, 온갖 사고는 다 치고 다닙니다. 게다가 본인이 종우(種牛)라는 사실에도 그리 신경쓰지 않고, 아니 아예 생각을 안하고 있다니까요. 그걸 감안하면 헤라큘레스의 자손은 환상적인 수준으로 많을 거라고 ... 12가지 과업을 하나씩 해결하면서 가끔은 머리를 쓰는 모습도 보이지만 그건 머리를 쓴다기 보다는 본능에 가깝습니다. 허허. 삼국지 인물 중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을 뽑으라면 단연 장비. 술 마시고 사고치는 것도 닮아 있군요. 그래도 장비는 형들에게는 꼼짝 못하기나 하지, 헤라큘레스는 아무나 가리지 않고 다 덤빕니다. 어머니를 닮은 부분이 없어 보이니 이건 제우스를 빼닮았다고 할까요? 씨 뿌리기가 장기라는 것을 감안하면 맞습니다.

헤라큘레스 이야기 외에 몇 가지 곁다리 이야기들도 등장하는데 그 중 가장 뜨악한 것은 제우스가 칼리스토를 유혹한 방법입니다. 큰곰, 작은곰자리의 모델인 칼리스토는 원래 아르테미스를 모시는 요정이었지요. 그러다 제우스에게 덜컥 걸렸는데, 레다때처럼 백조로 변한 것도 아니고, 페르세우스를 잉태시킬 때처럼 비로 변한 것도 아니고. 택한 방법은 아르테미스였답니다. 딸래미로 변해 요정을 유혹했다는 이야기에서 기겁했습니다. 칼리스토가 제우스 아이를 임신하고는 아르테미스에게 벌을 받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유혹했는지는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허허허허허허...

그러고 보니 헤라큘레스가 죽을 때 남겼던 말도 뜨악합니다. 헤라큘레스가 죽은 이유는 아내의 착각과 투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헤라큘레스가 구혼했다가 구혼시험을 통과하고도 쫓겨난 나라가 하나 있었더랍니다. 거기서 쫓겨난 다음 자기 친구의 여동생을 만나 결혼하게 된건데-짧게 줄였습니다. 그 사이에도 사건 사고는 많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자기를 쫓아낸 그 나라를 찾아가 점령합니다. 당연히 예전에 구혼했던 그 나라 왕녀도 포로가 되지요. 그 이야기를 듣고는 아내가, 헤라큘레스가 그 여자랑 결혼하는 것 아닌가 싶어 사고를 쳤지요. 나중에 자기의 착각으로 남편이 죽게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목을 매달지만...
하여간 죽기 직전, 마지막 아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에게 네가 왕녀를 거두어라라고 말합니다. 아버지가 구혼했다가 차이고 결혼해서 낳은 아들인건데, 아버지의 전 구혼녀와 아들의 나이차이는? 아름답다고 언급은 되어 있지만 그래도 나이가 안 맞아요!



단숨에 읽어내릴 수 있는 재미있는 책입니다. 읽고 나니 1-3권도 다시 보고 싶어지는군요. 차근차근 찾아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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